소설리스트

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97화 (97/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97화비올라는 하이릴스 후작령으로 향했다.

하이릴스 후작령은 중앙 대륙 중에서도 중심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륙 5대강 중 하나인 그란디아를 끼고 있어 예로부터 물자와 인적 자원이 모이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제논이 말했다.

“마차로 모시겠습니다. 공녀님.”

그 말을 이어 에르사가 설명했다.

“하이릴스 후작령까지는 마차까지 함께 이동할 수 있는 대형 이동 관문이 잘 닦여 있는 편입니다. 필요한 일 외에는 마차에서 나오지 않고 편안한 여정을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최초의 이동 관문까지 3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비올라와 툰드라.

그리고 헤라가 같은 마차에 탔다.

동행하기로 했었던 세이반 마르코스는 하이릴스 후작령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후작령으로 이동하는 마차 안.

툰드라가 말했다.

“주인님.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여태까지 참고 또 참아왔지만 더 이상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

“이번 연회장 입장 에스코트는……

누가 하게 되었나요?”

툰드라의 눈에는 일말의 기대가 서려 있었다.

“제논이 하겠지.”

“그렇군요.”

툰드라의 눈에 실망이 가득 서렸지만 그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았다.

반려견은 산책을 요구할 수 있지만, 자신이 에스코트하겠다며 나설 수는 없었다.

그건 선을 넘는 행위였다.

툰드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진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한편, 비올라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잘 모르겠어.’

난데없이 제르미와 셀리나가 등장했다.

제르미는 사교계라면 치를 떠는 등장인물이었고, 셀리나는 이번 물망초 연회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였다.

‘아무래도 나 때문이겠지?”

제르미만 나타나든지, 아니면 셀리 나만 나타나든지.

둘 중에 하나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둘이 함께 나타났다.

‘셀리나 대신은 제국을 위해 일할 충성스럽고 훌륭한 인재들을 발굴하는 것으로 아주아주 유명해. 거절할 수 없는 명분으로 스카우트하지.’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훌륭한 재목을 길러내는 것에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제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며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훌륭한 대신이다.

‘나를 그렇게 보면 곤란한데..’

셀리나 대신의 눈에는 띄면 안 됐다.

셀리나의 그물망에 걸리는 순간 삶이 피곤해진다.

비올라에게는 제국을 향한 애국심같은 건 단 한 움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 영달과 행복을 위해서………!’

셀리나에게 발탁되는 순간 제국을 위해 몸과 영혼과 뼈를 갈아 넣어야 할 것이다.

그런 미래는 절대로 사양이다.

‘이번 물망초 연회에서는 몸을 사려야 하는데 하필 제르미라니.

제르미가 사교계에 나타나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했다.

비올라 자신과의 친분을 다지기 위해서일 거다.

‘그 단순한 녀석은 그냥 친해지는 행위 정도로 생각하겠지.’

하지만 사교계는 그렇게 단순한 모임이 아니다.

겉으로는 하하 호호 웃으며 즐기지만 속으로는 끝없이 냉철한 계산을 하며 세력을 일군다.

여기서 교류하며 친분을 형성한 사람들이 훗날 제국 정치판에서의 동료가 된다.

사교계란 미래의 동료를 만드는 전초전인 셈이다.

사교계를 지배하는 자가 결국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폭풍 요새의 팔라일 가문과 겨울 성의 벨라투는 본래 사교계와는 거리가 멀어.’

그런데 그 둘이 동시에 등장했다?

둘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남방의 폭풍 요새와 북방의 벨라 투가 비밀리에 회동하고 폭풍 검과 천살 공작이 물밑 거래를 진행했다.

는 소문이 퍼질 거야.’

제르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원래 사교와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그 두 세력이 힘을 합치면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중앙 귀족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피곤해진다.

게다가 몇 년 뒤면 골든 로드가 완성될 거야.’

대륙 북방과 중심 그리고 남방을 잇는 거대한 무역 로드가 셀리나의 진두지휘 아래 만들어진다.

중앙 귀족들은 의도적으로 벨라투를 정치에서 배제하고 고립시켜 왔다.

벨라투가 가진 강대한 무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폭풍 요새와 겨울 성이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득보다 실이 훨씬 클 것이다.

안 그래도 살벌한 사교판과 정치판에서 온갖 견제를 다 받을 테니까.

하지만 그놈은 그런 건 전혀 신경쓰지 않겠지?’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해졌다.

하얀 벨라투로서의 무언가를 보여 주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물 건너간 것 같다.

‘반지까지 받았는데…….’

그래도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후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헤라는 생각에 잠긴 비올라를 보며 다르게 생각했다.

‘셀리나 대신의 눈에 들 수 있는 좋은 기회야. 그러니 저렇게 진중하겠지.’

상황을 똑같이 보았으나 그 상황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비올라가 상황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벌써부터 궁금한걸?”

***

며칠 뒤.

비올라 일행은 별 탈 없이 하이릴 스 후작령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임시 개통한 초대형 이동 관문을 통해 하이릴스후작가의 위세와 재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마탑을 동원하여 임시로 대형 이동 관문을 운용하다니.’

대륙 각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한 서비스였다.

‘잘은 몰라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겠지.’

현대로 비유하자면 연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해 개인 공항을 만들어 전세기를 뿌려준 것과 비슷했다.

하이릴스 후작령에는 연회 참석자들을 위한 호텔이 세 군데 마련되어 있었는데 벨라투가는 그중 ‘달 그림자’라는 호텔에 배정되었다.

대륙 각지에서 물망초 연회를 위해 찾아온 소년 소녀들과 그들을 수행하는 수행원들 때문에 북적거렸다.

“저희는 수속 절차를 밟고 오겠습니다.”

제논과 에르사가 데스크 쪽으로 향했다.

그사이 누군가가 이쪽으로 접근했다.

“어머, 이게 누구야? 저와 친분이 깊은 벨라투의 헤라 공녀 아닌가요?”

척 보기에도 굉장히 화려한 붉은 드레스와 반짝이는 장신구를 과하게 착용한 영애였다.

나이는 대략 열다섯 살 전후.

손가락에는 무려 일곱 개쯤 되는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싸 보였다.

비올라는 속으로 웃고 말았다.

‘저렇게 비싸 보이는 물품들을 저렇게 안 예쁘게 매치하는 것도 재주다.

헤라가 은은한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세나 공녀. 반가워요. 오랜만이네요.”

다가온 사람은 세나였다.

여태껏 헤라를 조롱하고 무시해 왔던 마리앙투의 3공녀.

비올라가 잘근잘근 밟아주겠다고 약속한 영애였다.

그녀는 이미 수속을 모두 마쳤는지 혼자서 로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니까요. 6개월 만인가요? 제 초대를 받아주시지 않아 조금 섭섭하던 차였답니다.”

“미안해요. 최근 일이 너무 바빠 찾아뵙지 못했어요. 다음에 꼭 따뜻한 차와 함께 담소를 나누면 좋겠네요.”

“좋아요. 그 약속은 꼭 지키셔야 해요.”

“그럼요. 고도로 문명화된 성숙한 사회를 제 눈으로 꼭 감상하고 싶던 차랍니다.”

“헤라 공녀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그런데 옆에 이 어여쁜 영애분은 누구신가요?”

“제 동생, 6공녀 비올라예요.”

“아! 그 소문의 6공녀! 루이바르텐의 귀빈 6공녀가 바로 영애시군요!”

비올라가 한쪽 손으로 가슴팍을 가리고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처음 뵙겠어요, 세나 공녀. 비올라 벨라투입니다.”

“세상에, 비올라 공녀를 향한 흉흉한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리던데. 그 소문은 모두 잘못된 것이었군요. 머저리들이 비올라 공녀를 음해하는 것이었어요.”

“어떤 흉흉한 소문이 들렸나요?”

“피가 철로 이루어져 있대요. 게다가 손속이 아주 잔인하고 야만적이라는 황당한 소문이 돌고 있답니다.”

귀족들 사이에서 본인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소문을 직접 전달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예의를 전혀 지키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것참 이상한 소문이네요.”

“역시 그렇죠? 이렇게 가녀리고 어여쁜 영애에게 가당치도 않은 소문이에요.”

“역시 그렇죠. 이렇게 가녀리고 어여쁜 영애 따위가 그런 거창하고 훌륭한 일들을 할 수 있을 리가요. 완전히 헛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 죠?”

…네?”

“어떻게 이런 어린애가 산적을 토벌하고 골든 로드의 땅을 매입하고 폭풍 요새와 세알 자작령에 파견되어 어려운 일들을 해냈겠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이죠. 라고 생각하는 게 훤히 보여서 귀엽네요.”

비올라가 가볍게 웃었다.

세나는 찔끔 놀랐지만 이내 여유롭게 웃으며 비올라를 쳐다보았다.

“헤라 공녀의 동생은 농담을 잘하는 편이네요.”

그녀는 웃음을 지우지 않고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상대가 함께 즐거워야 농담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올라 공녀는 보다 사교계에 어울리는 화법을 사용하시되, 상대를 향한 존중과 배려를 조금 더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서로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요.”

“상대가 함께 즐거워야 농담이라는 걸 잘 아는 분이 내 언니한텐 왜 그러셨을까요?”

겉에서 보면 둘의 분위기는 굉장히 화기애애했다.

그사이, 에르사와 제논이 수속을 마치고 돌아왔다.

“아. 세나 공녀님이시군요. 인사 올리겠습니다. 비올라 공녀님의 집사, 제논입니다.”

“저번에 인사드렸지요. 헤라 공녀님의 집사, 에르사입니다.”

세나는 둘의 인사를 무시하며 받아 주지 않았다.

집사와 공녀의 신분은 하늘과 땅차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리를 빌려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것조차 저들에게는 크나큰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헤라 공녀. 농담이 심한 동생과 함께 오셨네요. 듣자 하니 동생분도 하얀 벨라투라죠?”

세나가 일부러 웃었다.

하얀 벨라투는 어차피 낙오자들이잖아.

그러한 속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연회에서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좋겠어요. 다음에 봐요. 저는 제르미 공자와 약속이 있어서 이만.”

제르미에게 잔뜩 힘을 주는 것이 ‘나는 제르미와도 아는 사이야’ 라며 우월감을 뽐내는 것 같았다.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온 헤라가 침대에 누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상대는 마리앙투 공작가의 3공녀야.”

“마음부터 차근차근 죽여준다고 했잖아. 난 거짓말 안 해.”

“그래?”

헤라는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비올라라면 세나와 일단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도대체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니?’

역시 비올라는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보는 것보다 더 큰 그림을 보고 있겠지.

‘기대할게. 네가 어떻게 이번 물망초 연회의 주인공이 될지.’

정말로 기대되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사실 비올라의 속마음은 정반대였다.

‘이번 기회는 그냥 버리자.

다음으로 기회를 미루어야 했다.

셀리나 앞에서는 혈기 넘치는 어린아이를 연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첫 참석 연회부터 마리앙투의 3공녀와 불화를 일으키는 어린 말썽꾸러기. 이 정도 포지션으로 가는 게 좋겠어.’

마리앙투는 10년 이내로 세가 기울어 몰락하는 가문이다.

그러니 사이가 좀 틀어져도 괜찮았다.

‘원작과 내용이 너무 많이 달라졌어. 변수투성이야.’

그래서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적을 거라 판단했다.

다소 부족한 어린아이로 보이는것.

그래서 셀리나 대신의 눈에서 멀어지는 것.

그것이 비올라가 이번에 내린 최선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3일 뒤 물망초 연회가 시작되었다.

중앙 대륙 각지에서 모인 수많은 자제가 하이릴스 후작저의 연회장으로 모여들었다.

연회의 개회사가 시작되었다.

“제가 주관하는 연회에 참석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이릴스 후작가의 실세.

셀리나 대신이 말하자 주변이 모두 조용해졌다.

“물망초 연회에 참석하는 귀빈들 덕택에 저와 저의 가문이 더욱 빛날수 있겠네요.”

로 시작한 연설은 약 5분간 진행되었다.

“……하여 여러분께서 7일 밤낮으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짝! 짝! 짝!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연설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셀리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귀빈 여러분께 한 가지를 제안하려 합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