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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04화 (104/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04화비올라는 기가 차서 웃고 말았다.

‘이야.’

이게 말로만 듣던 집단 따돌림인가.

현대를 살아왔던 비올라의 눈으로 보니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말하자면 이건 일진놀이였다.

일진 세나와 떨거지들.

‘모이면 지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보네.’

세나를 포함하여 7명.

넷은 여자였고, 셋은 남자였다.

개중 한 명은 또래에 비해 덩치가 훨씬 커서 눈에 띄었다.

‘무슨 생각들 하는지 투명하다 투명해.’

저들은 비올라 자신이 어떻게 반응할지 한껏 기대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자존심이 상해 엉엉 울기라도 바라는 것 같았다.

‘귀여울 지경이네.’

비올라는 한동안 보석함을 바라보기만 했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세나가 호호 웃었다.

“제 팔이 무겁답니다. 비올라 공녀는 제 성의를 받아주지 않을 생각인가요?”

“우리가 선물을 주고받을 만큼 친한 사이였나요?”

“아직은 그렇지 않지만 곧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비올라는 피식 웃고서 셀리나 대신쪽 눈치를 살폈다.

‘셀리나는 이쪽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고, 마침 제르미도 없네.”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적당히 유치하게 굴면서 세나를적으로 돌리자.

그 모습은 셀리나 대신에게 아주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다가가게 될 것이다.

마리앙투 공작가는 제국 3대 공작가 중 하나이며, 지금 시점에서는 실세 중 실세인 가문이니까.

이러한 가문의 영애인 세나와 유치한 싸움을 벌인다면 셀리나는 분명 실망하겠지.

헤라의 앙갚음도 해줄 겸, 겸사겸사 좋은 기회였다.

“왜 우리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하죠?”

비올라가 머리를 검지로 배배 꼬았다.

“나는 세나 공녀 같은 친구 필요 없는데요.”

“네?”

세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래. 자존심이 상하겠지.’

바보가 아닌 이상 반지를 건네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 것이다.

비올라의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고 확신했다.

그러니 저토록 모진 반응을 보이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자 세나는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속상하네요. 제 성의를 이렇게 무시하시다니.”

그러자 세나 뒤에 서 있던 소년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이름은 자킬라.

길리 지방에 자리 잡고 있는 한 남작가의 공자였다.

7명의 무리 중 가장 덩치가 커서 눈에 띄던 소년이었다.

“비올라 공녀는 예의가 참 없군요.

세나 공녀는 이토록 상냥한데 말이야.”

자킬라는 예의를 갖추는 듯하면서도 은근슬쩍 말을 놓았다.

자킬라는 오늘이야말로 세나 공녀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또래에 비해 덩치가 굉장히 큰 편이었고 인상도 험악한 편이어서, 그가 인상을 쓰면 또래의 친구들은 위축되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넌 누구세요?”

비올라는 자킬라의 외형에 전혀 겁먹지 않았다.

겁먹기는커녕 가소로웠다.

“뭐, 뭐라고?”

“통성명도 없이 지적질이라니. 참도 예의 바르네요. 나 아세요?”

통성명 없이 이의 제기를 하거나 말을 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성별이 다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비올라는 이들의 심기를 박박 긁으면서도 묘하게 명분을 챙겼다.

자킬라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에게는 너무나 낯선 상황이었다.

“내, 내 이름은 자킬라다. 길리 지방 출신이고 로번트 남작가의 차남이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나와 세나 공녀에게 사과해.”

“왜요?”

“그대가 예의 없고 무례하게 굴었으니까.”

감히 너 따위가 세나 공녀에게 그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그의 눈빛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길리 지방 출신 로번트 남작가의 차남 자킬라.’

설정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벨라투의 그림자> 속에서 직접 서술된 적 없는 조연이라는 얘기였다.

“왜 시키지도 않은 세나 공녀의 수발을 들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조연이라 그런가.”

“뭐?”

줄 잘못 잡았다.

마리앙투 공작가는 몇 년 내로 망해.

그거 썩은 줄이라고.

얼른 놔.

이건 진심 어린 충고야.

“세나 공녀 뒤꽁무니 졸졸 따라다녀 봤자 아무것도 안 떨어져요.”

비올라가 피식 웃었다.

“아. 혹시 세나 공녀가 뭐라도 던져준대요?”

“이봐, 비올라 공녀! 세나 공녀와 저의 우정을 모욕할 셈인가!”

“그쵸. 우정이죠?”

비올라가 시선을 세나에게로 옮겼다.

“그 논리면, 네가 날 모욕한 거네?”

아주 작게 말했지만 세나 공녀 무리에게 안 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세나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비올라가 대놓고 반말을 할 줄은 몰랐다.

‘이 야만 족속이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내는구나!’

북방의 벨라투.

다들 그들을 위대한 가문이라 칭송하지만 세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변방의 지방 귀족 주제에!’

사실 그녀는 벨라투가 자신과 같은 ‘공작가’로 칭송받는 것이 싫었다.

저 북방 끝의 벌레잡이들이 무슨 공작가란 말인가.

품위도 없고 예의도 없으며 귀족다움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는 족속들.

“지금 뭐라고 했어요?”

“방금 쟤가 그랬잖아.”

손가락으로 자킬라를 가리켰다.

“뭘 던져주는 게 모욕이라고.”

“예의를 갖추세요, 비올라 공녀.

“내가 낀 반지가 그렇게 하찮아 보여?”

하찮아 보일 것이다.

이 마거리트 꽃밭으로 만든 반지는 아주 자세히 보아야만 그 특별한 무늬와 문양이 보인다.

멀리서 보면 그저 흔한 백금 반지처럼 보였다.

세나는 굉장히 화려하고 번쩍이는 장신구를 좋아하니, 이런 심플한 디자인의 반지가 눈에 찰 리 없었다.

비올라가 세나 공녀의 손을 무심하게 툭! 쳤다.

세나 공녀의 손에 들려 있던 보석함이 땅에 떨어졌다.

“이 반지가 어떤 반지인지 제대로 알아볼 안목도 없는 주제에.”

그 말에 세나가 결국 폭발했다.

“당신의 막말을 더 이상 참아주기 힘들군요! 그까짓 반지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게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죠?”

“네 생각보단 훨씬 대단할 텐데.”

“하긴, 그렇게 하찮은 반지를 소중히 대하는 것을 보니 그대의 안목과 재력을 충분히 알고도 남겠네요.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호호호호.”

세나 공녀 무리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제 나름대로는 품위 있게 웃는 중이었다.

가늘게 뜬 세나의 눈이 비올라를 향했다.

‘제대로 밟아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저 건방진 비올라 공녀가 계속해서 기어오를 것이 뻔했다.

‘벌레잡이는 벌레잡이처럼 굴란 말이야!’

세나가 작게 말했다.

“그따위 볼품없는 반지는 우리 마리앙투에는 널리고 널렸어.”

“거짓말하지 마.”

“눈으로 보질 못하면 믿지를 못하는구나, 멍청하기 짝이 없게도.”

“이 반지가 널리고 널렸다고?”

세나는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북방의 변방 귀족과 마리앙투가 같을 수 없지.

“물론이지. 원한다면 보여줄 수도 있어. 내가 가진 보석함 안에 그런 반지는 셀 수도 없이 박혀 있으니까.”

비올라가 세나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세나는 비올라가 크게 상처 입었다고 착각했다.

“그러니 내가 준 선물을 그냥 받았다면 자존심도 상하지 않고 모양새도 좋았을 텐데요, 비올라 공녀.

“너 지금…….”

때가 무르익었다.

이목은 이목대로 집중되었고, 셀리 나도 이 덜떨어진 대화를 충분히 엿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마침표를 찍을 때가 왔다.

비올라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겨울성의 군주께서 당신의 딸을 위해 선물한 거야.”

뭐라고요?”

“마도명장 쿠룸쿠룸의 손에 의해 제련되었고.”

“………..”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소중한 반지를 초라하다고 비웃네. 가슴 아프게.”

귀족 자제들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거물들의 이름이 등장했다.

겨울군주 헤론 벨라투.

마도명장 쿠룸쿠룸.

둘의 이름이 등장하자 주변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그사이 자킬라는 비올라의 얼굴과 눈을 보게 되었다.

‘무, 무슨 여자애 눈이………!’

자킬라는 저도 모르게 눈을 피했다.

벨라투는 다들 괴물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눈만 마주쳤는데 온몸이 얼어붙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었다.

뭔가 잘못 걸린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물론, 비올라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혼자 쳐다보고 혼자 겁먹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지난 뒤 세나 일행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선물이요?”

세나는 아예 배를 잡고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선물?

겨울성의 벨라투 공작이 선물?

그 천살 공작이 선물을 해줬다고?

제국의 그 누구도 믿지 않을 허황된 이야기였다.

“이제는 아버지의 이름을 팔아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놓는군요. 심지어 마도명장 쿠룸쿠룸이라니. 너무 멀리 간 거 아닌가요?”

선심 쓰듯 말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니에요. 가난하면서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삿된 마음이 죄지.”

비올라와 눈이 마주친 자킬라는 한 마디를 보태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기엔 아까 비올라의 표정과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무서워서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다른 영애가 말했다.

“그래요, 비올라 공녀. 거짓말을 해도 그럴듯한 거짓말을 해야죠. 분을 못 이겨 거짓말을 하다 보면 그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답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반지야.”

비올라는 크게 화가 나지 않았지만 화가 난 것처럼 굴었다.

제 감정을 완벽히 컨트롤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킬라를 제외한 세나 일행은 그 모습을 보며 승리감을 만끽했다.

“그러시겠지요. 천살 공작께서 반지를 선물하는 로맨틱함까지 갖추셨다니.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겠어요. 호호.”

그런데 그때.

연회장 문이 열렸다.

귀족가의 자제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물망초 연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연회의 주최자는 알고 있었던 듯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법을 통해 목소리를 크게 하여 말했다.

“오늘은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본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나 그분의 위대함과 용맹함은 이미 대륙 전역에 칭송이 자자하지요. 꿈을 키워가는 여러분께 큰 희망과 용기가 될 것 같아 깜짝 초빙하였답니다.”

사교계에는 어지간해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북방의 절대자.

겨울성의 군주 헤론 벨라투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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