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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14화 (114/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14화예상대로 세나 공녀는 흑기사를 내세웠다.

사실 비올라는 마리앙투 공작가의 소속기사들, 혹은 공작가와 친분이 깊은 몇몇 가문의 기사들을 염두에 두고는 있었다.

그런데 이 이름이 튀어나올 줄은 전혀 몰랐다.

‘셀빈 브란디아?’

몇 번을 다시 확인해 봤지만 셀빈브란디아가 맞았다.

얘가 왜 여기서 나와?’

마리앙투 공작도 여러모로 생각이 많았을 것은 분명했다.

검은 벨라투도 아니고 하얀 벨라투인 비올라 공녀를 상대로 할 기사를 지목해야 했고, 그러면서 패배하지 않을 사람을 선택해야 했었다.

게다가 비올라는 겨우 12살이었으니, 마리앙투 입장에서는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셀빈 브란디아라니?’

브란디아.

중앙대륙의 서쪽 끝 황해 부근에 위치한 공작가.

천하의 바람둥이 세르폰을 한 주먹에 죽여버린 브란디아 공작이 다스리는 무투의 가문이었다.

‘왜?’

머리가 복잡해졌다.

마리앙투 공작가와 브란디아 공작가는 그렇게 친분이 두터운 사이는 아니었다.

마리앙투 공작가는 브란디아 공작가를 난폭하고 야만스럽다고 배척하였고, 브란디아 공작가는 마리앙투공작가를 소심한 책상물림들이라고 손가락질했다.

‘둘 사이가 좋을 리 없는데.’

결투 대리자는 보통 친분이 깊은 관계가 있을 때 나선다.

세나 공녀와 셀빈 공녀 사이에는 접점이 별로 없었다.

‘둘이 친하지도 않은데.”

그렇다면 왜 갑자기 셀빈 브란디아가 지목되었을까.

그리고 왜 셀빈 브란디아는 그 제안을 수락했을까.

‘브란디아의 늦둥이 막내딸 셀빈이라.’

따지고 보면 마리앙투 입장에서는 좋은 선택이었다.

셀빈은 이제 겨우 9살이 된 영애였다.

비올라보다 무려 세 살이 어렸다.

그것은 비올라가 ‘하얀 벨라투’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한 선택으로 비춰질 것이었다.

그러면서 무투의 명가인 브란디아의 적통이니 서로 격도 맞았다.

‘ ‘벨라투가에게 모욕이 되지 않는 선에서 최고의 흑기사를 내세웠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제논입니다.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들어와.”

딸기 에이드를 가져온 제논이 빙그레 웃었다.

“셀빈 브란디아라니. 마리앙투 입장에서는 좋은 선택지네요. 머리를 꽤 썼겠어요.”

“그렇겠지.”

“셀빈 공녀는 왜 흑기사 요청을 수락했을까요?”

비올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닐 거야.”

“네?”

마리앙투가 셀빈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셀빈 공녀가 먼저 요청했겠지.”

물망초 연회에서의 일은 소식지를 타고 대륙 전역에 퍼졌을 테니까.

흥미를 느낀 셀빈 공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을 확률이 높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셀빈 공녀는 그런 아이니까.”

“셀빈 공녀에 대해 잘 아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요?”

“잘 알아.”

예전에 아린은 셀빈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렸었다.

메데이아 처돌이.

“셀빈 공녀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던 소식지가 있었을까요?”

“메데이아 언니를 꼭 만나고 싶다.

고 대대적으로 말하고 다니고 있 있어.”

“메데이아 공녀님을요?”

비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언니에 미쳐 있는 애거든.”

***

결투 날짜는 4주 뒤로 정해졌다.

브란디아에서 출발하여 겨울성에 도착하고 셀빈의 휴식 시간을 고려 하여 정해진 시간이었다.

‘올 게 오는구나.’

비올라는 한탄하며 침대에 누웠다.

‘아이고, 내 신세야.

빙의 5년 차.

언제든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코앞에 닥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로판 빙의자가 진지하게 결투를 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냐고!’

그녀의 기억에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아린이 읽었던 로판에서 여주인공은 이런 가시밭길을 걷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뿌! 빠! 삐! 뾰!에 다 해결되든지.’

여주의 귀여움에 녹아 싱글벙글 꽃길이 펼쳐지든지.

‘나랑 결혼해요, 최애캐씨…

은 급발진을 한다든지.’

이유가 벨라투처럼 합리적이고 무서울 필요도 없었다.

최애캐라는 이유로 들이대면 대부 분 넘어가 줬다.

그런 생각이 들자 비올라는 조금 억울해졌다.

‘나도 ‘내 최애캐씨! 난 너로 정했다!‘로 급발진하고 싶다.

아니.

그렇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이런 진지한 결투 상황에 노출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가늘고 길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왜 이런 가시밭길이 펼쳐진단 말인가.

‘왜 난 왜 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이 폭신폭신한 마법 침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2주 뒤면 메데이아 처돌이가 눈까뒤집고 달려들 텐데.”

셀빈은 메데이아에게 미쳐 있었다.

그녀는 메데이아의 강함에 매료되어 작품 후반부에는 이렇게 외쳐대곤 했다.

「“나는 언니의 사생팬이에요.”」

당시 〈벨라투의 그림자> 속에는 제르미 때문에 ‘사생팬’이라는 단어가 탄생했을 시점이었고, 사실 그리 유쾌한 단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셀빈은 스스로를 사생팬이라 자처하며 메데이아를 존경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원작 속에서 비올라가 메데이아를 죽이게 되고.

셀빈은 비올라에게 큰 앙심을 품게 된다.

그렇게 적이 되는 스토리인 인데.’

셀빈은 비올라의 매우 까다로운 적이 된다.

「“너는 메데이아 언니보다 약해. 왜 언니가 너를 사랑했던 대가가 죽음이어야 했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아는 클리셰 중에 아버지가 나서서 ‘겨울성으로 오너라. 도전을 받아줄 것이다. 내 막내딸이’라는 클리셰는 없었다.

‘에휴.’

결투를 준비하기는 해야 했다.

공작이 직접 막내딸을 언급했으니 흑기사를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직접 부딪쳐야 했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했다.

‘난 약한데.’

퐁퐁이라도 없었으면 정말 갑갑했을 것 같았다.

최후의 순간에는 툰드라의 눈을 마주치는 것도 고려해야 했다.

그러던 중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제르미?’

편지를 보낸 사람은 제르미였다.

***

편지의 시작은 이러했다.

[친애하는 비올라 공녀에게, 친구가 되고 싶은 제르미가.]

비올라는 제르미의 편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내용은 둘째 치고 필체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이상하네.’

글씨가 꽤 예뻤다.

마치 글씨 연습을 따로 한 사람 같았다.

‘제르미는 악필로 설정된 캐릭터인데.’

악필치고 글씨가 많이 예뻤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연습을 많이한 것 같았다.

편지는 무려 14장에 달했다.

왜 그가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친구가 되고 싶었는지에 대해 서술했고, 그에 대해 깊은 사과를 표했다.

[정말 미안해.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서 너무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것 같아.]

그리고 이런 내용도 있었다.

[널 모욕하려는 의미는 아니지만, 나는 너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

혹시 괜찮다면 내가 네 흑기사가 되어도 괜찮을까?

물론 너는 나의 보호를 받을 만큼 약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게 내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서.]

혹시 가능하다면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뜻도 전해왔다.

제르미의 편지를 받아 든 비올라는 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던 중, 좋은 생각이 났다.

“제논. 제르미에게 서신을 보내. 겨울성에서 만나자고.”

“알겠습니다.”

제논은 밖으로 나갔다가 금방 돌아왔다.

“왜 벌써 와?”

“제르미 공자가 겨울성의 한 여관에서 묵고 있던데요. 당장에라도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제르미는 이미 겨울성에 도착해 있었다.

“데려올까요?”

“데려와.”

얼마 후.

누추한 복장의 제르미가 비올라의 방에 도착했다.

그가 로브를 벗은 뒤 가면까지도 벗었다.

그 순간 마치 주변이 밝아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정말 과하게 잘생기긴 했네.’

과연 수많은 팬을 거느리게 될 미공자다웠다.

제르미가 빙그레 웃으며 비올라와 눈을 마주쳤다.

그사이 반성을 많이 했는지, 꽤 조신해진 모양새였다.

“다행히 만남을 허락해 줬네.”

“내가 허락 안 해주면 어쩌려고 미리 와 있었어?”

아무리 워프포탈을 이용해서 움직인다고 해도, 적어도 2주는 잡고 움직여야 했을 텐데.

“그냥. 성의를 보이고 싶었어.”

비올라가 허락해 주면 지체 없이 만나려고 했다.

허락해 주지 않으면 조용히 돌아가려고 했다.

그게 자신이 비올라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철 든 거야?”

“그런 것 같아.”

화사하게 웃는 제르미의 얼굴에서, 구김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은 화사하고 밝았다.

“글씨는?”

“글씨?”

“전에 내게 쪽지 줬을 때보다 훨씬 예뻐졌던데.”

“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네.”

사실 제르미는 이번 편지를 위해 특별 가정교습을 받으며 열심히 노력했다.

그렇지만 무려 철혈의 공녀 앞에서 글씨 연습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느낌이었다.

하찮은 것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했다고 비웃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얼굴이 아주 조금 붉게 달아오른 제르미가 화제를 돌렸다.

“그…… 내가 흑기사가 되어주어도 괜찮을까?”

“안 돼.”

비올라는 단칼에 거절했다.

어쩔 수 없었다.

공작이 직접 ‘막내딸’을 언급했는 데, 그 당사자인 비올라가 다른 이를 흑기사를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모르긴 몰라도 몇 년만 더 잘 버티면 따뜻한 메데이아가 공작가를 다스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때까지만 잘 버티면 되었다.

“대신 다른 부탁이 있어.”

비올라가 제르미와 눈을 마주쳤다.

“나를 지켜주고 싶다고 했지?”

“응. 그게 네게 있어서 모욕이 되지 않았으면 해.”

“모욕이라 생각했다면 너를 내 앞에 앉히지도 않았어.”

“그건 그렇네.”

제르미는 다행이라는 듯 또 밝게 웃었다.

아까 부끄러움의 여파가 남았는지 귓가에 아직 붉은 기가 남아 있었다.

그만 웃어.

정 들겠다.

넌 쓸데없이 너무 잘생겼단 말이야.

제르미에게서 시선을 뗀 비올라가 말을 이었다.

“흑기사 말고 다른 방법으로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제르미.

너만이 가능한 방법이야.”

‘너만 가능한 방법.

그 말에 제르미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게 뭔데?”

제르미의 눈이 반짝였다.

어떻게든 비올라의 용서를 구하고, 비올라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게 책임 있는 귀족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제르미가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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