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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15화 (115/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15화

‘폭풍검의 원리를 가르쳐 달라니.’

폭풍검은 바람의 기운과 패도적인 마나의 힘을 바탕으로 운용하는 팔라일 가문의 검술이다.

당연히 팔라일의 피를 이은 직계 후손과 팔라일 가문 내에서 직접 사사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폭풍검을 익힌다.

폭풍검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다 가르쳐 달라는 건 아니야.”

비올라는 제르미를 연무장으로 데려가 초검을 먼저 보여주었다.

그녀가 보여준 것은 ‘운’의 경지였다.

‘운’을 통해 풀들이 흩날리는 모습을 본 제르미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건 동대륙의 무술이고 폭풍검의원리를 접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아주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면 돼. 방계와 수련 제자들이 돈을 내고 배울 수 있는 수준.”

폭풍검도 두 가지 폭풍검이 존재했다.

하나는 팔라일 가문의 직계와 최측근들이 익히는 진짜 폭풍검.

나머지 하나는 방계와 수련 제자들이 익히는, 다소 위력이 약한 폭풍검.

“물론 돈을 낸다고 해서 누구나 다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란 건 알아.”

위력이 반감되었다고는 해도 폭풍검은 폭풍검이었다.

폭풍검은 팔라일 가문의 비기였고, 그들의 자존심이자 긍지였다.

비록 방계와 수련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검이라고 해도 아주 허튼 것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팔라일가와 깊은 친분이 있거나 은혜를 입었다거나 팔라일 가문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다거나.

그래야만 폭풍검을 배울 수 있었다.

제르미가 차분히 대답했다.

“생각이 조금 필요해.”

“그래.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나를 불러. 연락은 제논을 통해서 하면 돼.’ 제르미는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걸 터앉았다.

‘폭풍검을 가르쳐 달라니.

마음만 먹으면 벨라투 검식을 배울 수 있는 벨라투의 입양 딸이 폭풍검을 탐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버지께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지?’

사실 비올라가 제안했던 그 시점에서, 제르미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제르미는 비올라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성의를 보이려고 마음먹었고 비올라의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당장 그러기에는 팔라일 가문과 아버지인 재칼이 마음에 걸렸다.

‘잘못하면 가문을 배신하는 행위인데.’

폭풍검은 팔라일가의 보물이었으니까.

그 보물을 빼돌리는 행위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아무리 ‘진짜 폭풍검’이 아니라 할지라도 어쨌든 가주의 허락을 얻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비올라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러 왔다.

그리고 비올라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어.’

비올라와 한 약속은 아니었지만 그는 스스로 그렇게 약속했다.

제2의 므엘란.

제3의 므엘란이 생기는 것을 막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했다.

‘시작부터 챙길 거 다 챙겨가면서, 원리원칙 다 따져가면서 할 수는 없어.’

그것은 사과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과는 사과다워야 했다.

제르미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네가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거라. 설령 그것이 너와 네 가문을 해치는 일이라 할지라도.

‘옳다고 믿는 것을 외면하는 행위야말로 진정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네가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면 좋겠구나.’

아버지는 늘 신념을 강조했다.

무릇 귀족이라면 옳은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옳은 신념이란 행동하는 신념이라고도 가르쳐 주셨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 가르침대로 행동하는 겁니다?”

다음 날, 제르미는 비올라를 찾았다.

“가르쳐 줄게, 폭풍검.”

*****

일주일이 흘렀다.

셰일란은 더 이상 놀라기를 포기했다.

놀라지 않고 평온한 상태로 물었다.

“제자님. 지금 뭘 한 거죠?”

“초검에 다른 기운을 덧입혀 봤어.”

“무슨 기운인데요?”

“비밀이야.”

비올라도 자신이 난처한 부탁을 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제르미가 폭풍검을 가르쳐주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화났어?”

“아뇨. 화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사실 셰일란은 벨라투에서의 생활에 많이 적응한 상태였다.

적응 정도를 넘어 대단히 만족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 너무나 잘 맞는 곳이었다.

일이라곤 비올라를 가르치기만 하면 되었고, 숙식을 비롯하여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제공되었다.

뿐만 아니라 월급도 두둑했다.

셰일란이 꿈꾸던 지상낙원에 가까웠고, 그는 벨라투가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설령 화가 나더라도 화가 안 날 예정입니다.”

“응?”

“저는 배부른 돼지가 되었거든요.”

누군가 그랬다.

돈 앞에 장사 없다고.

초검의 위대함을 알리겠다는 원대한 포부는 안락한 생활과 비올라 앞에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내가 안 해도 어차피 비올라 공녀가 할 텐데, 뭐.’

비올라의 성취 속도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초검의 명성은 대륙을 울릴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비올라가 할 것이니, 그는 그저 편안한 생활을 즐기며 노후를 준비하기로 했다.

동대륙의 암살자 셰일란은 첫 임무를 끝으로 은퇴했다.

“저기. 5공자님이 오고 계신데요.”

“그러네.”

트윈 헤드 오우거의 머리를 잘라오겠다며 산과 들을 누비던 비첸이 돌아왔다.

며칠을 씻지 못했는지 비첸은 굉장히 꾀죄죄했다.

“누가 보면 거지패인 줄 알겠어.”

“히히.”

비첸의 몸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검은색으로 말라붙은 피는 비첸이 얼마나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왔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트윈 헤드 오우거. 세더라.”

아공간에서 머리를 꺼냈다.

쿵!

거대한 마물의 머리가 땅에 떨어져 내렸다.

“음, 음냐.”

결국 비첸은 트윈 헤드 오우거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고, 비올라에게 선물을 주자마자 곯아떨어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셰일란은 놀라기보다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비올라 공녀만 괴물이 아니구나.’

듣자 하니 5공자는 13살이라고 했다.

13살에 트윈 헤드 오우거를 사냥하다니.

동대륙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혼자 잡지는 않았겠지만.

집사라 짐작되는 남자도 그리 깔끔한 상태는 아니었다.

아마도 집사와 5공자가 협공하여 오우거를 사냥한 것 같았다.

‘아무튼 이런 걸 보면서도 제자님은 천하태평이네.’

이게 얼마나 일상이면 전혀 놀라지 않는단 말인가.

그래서 셰일란도 놀라지 않기로 했다.

이 비상식적인 세계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비상식적이면 어떤가.

숙식 제공도 되고 두둑한 월급도 따박따박 나오는데.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꿀직장 만세다!’

그러나 셰일란의 생각과는 별개로 비올라는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진짜 잡아 왔어? 트윈 헤드 오우거를?’

오우거를 어떻게 13살에 사냥한단 말인가.

그것도 트윈헤드 오우거를 말이다.

‘저 나이대의 메데이아 언니보다 더 센 거 아냐?’

메데이아는 13살에 홀로 잿빛 이리 무리를 토벌한 전과가 있었다.

그 공적으로 그녀는 8급 기사가 되었다.

오우거는 단독 행동을 하는 마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잿빛 이리보다 훨씬 강력한 상위종이었다.

아무리 집사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해도 13살의 비첸이 사냥할 만한 마물은 아니었다.

‘미치겠네..

비첸이 원작보다 더 강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았다.

‘곤란한데.”

가족들이 강하면 강해질수록 비올라 자신도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중간이라도 간다.

여태까지 잘해오기는 했지만 이것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뜻이 되어버린다.

잠시 곯아떨어졌던 비첸이 눈을 번쩍 떴다.

“비! 올! 라!”

피곤에 찌들어 있던 비첸은 어느새 모든 체력을 회복한 듯 보였다.

실로 초인적인 회복력이었다.

“냄새나. 저리 가.”

그 말에 비첸은 크게 상처를 받은 듯하였으나 이내 히힛!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비첸은 육체의 회복력도 비상식적이었고, 마음의 회복력도 상상을 초월했다.

상처가 금방 나았다.

“결투한다며?”

“응. 셀빈 브란디아랑.”

“나 걔랑 싸웠다?”

“언제?”

“며칠 전에.”

비올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싸웠다고?’

비첸과 셀빈 정도 되는 조연들이 싸웠다면 언급은 되었을 텐데.

적어도 이 나이대의 비첸은 셀빈과 싸운 적이 없었다.

‘아…!’

며칠 전이라고 했다.

그건 비첸이 트윈 헤드 오우거를 사냥하기 위해 길을 떠났을 때였다.

셀빈은 결투를 위해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을 거고, 그러던 중 중간에서 만난 듯했다.

“어땠어?”

“음. 내가 만난 9살 중에서는 두번째로 섰던 것 같아.”

비첸이 히히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비올라는 괜스레 긴장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라니?”

자꾸 작품 속 인물들이 점점 강해 진다.

그것만으로도 변수가 늘어나는 셈이었다.

그런데 9살의 셀빈보다 더 강한 9살이 있다니.

‘작품 속에 그런 9살은 없었어!’

비올라는 몰랐다.

비첸이 말한 첫 번째 아홉 살이 비올라 그녀 자신이라는 사실을.

*****

셀빈은 굉장히 설렜다.

브란디아 공작가는 벨라투와 마찬가지로 최소의 인원만 움직였다.

수호기사 같은 건 필요 없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셀빈은 그녀의 삼촌인 폴투아와 함께 산길을 걸었다.

“삼촌, 내가 13살이 되면 비첸 오빠보다 강해질까?”

그녀가 오른손을 뻗었다.

퍽!

소리와 함께 그녀를 급습하던 고블린의 머리가 터졌다.

“강해질 수 있을 게다.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응.”

셀빈이 주먹을 탁탁 털어냈다.

고블린의 핏방울이 비산했다.

“그 오빠가 그랬어. 9살의 비올라 언니가 나보다 더 세대.”

“그건 비첸의 말이니 너무 맹신할 필요는 없어. 비올라는 하얀 벨라투니 한계가 분명할 거야.”

“나 너무 신나. 진짜로 나보다 세면 좋겠어. 난 강한 언니가 좋거든.”

안 그래도 메데이아를 꼭 보고 싶었던 차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 비올라와 결투도 치르고 메데이아도 만나보기로 했다.

셀빈은 부푼 꿈과 설레는 마음으로 겨울성에 도착했다.

“나! 나! 에그타르트부터!”

그녀는 신세계를 맛보았다.

“으흐으으음!”

미간을 찌푸리며 양손으로 볼을 잡았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국이 몸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마시쪄!”

에그타르트를 입속에 한가득 넣은 상태라 발음이 좀 뭉개졌다.

손가락으로 자신의 미간을 가리켰다.

“이거슨 진시레 미간이야(이것은 진실의 미간이야).”

천국을 경험한 그녀는 곧 울상을 지었다.

“왜 두 개밖에 못 먹어?”

“네 개 먹었잖아, 내 거까지.”

“나 슬퍼졌어.”

셀빈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차올랐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아쉬운 마음으로 일어섰다.

“내일 또 오자, 삼촌.”

“그래.”

셀빈은 일주일 동안 매일매일 에그타르트를 먹었고, 매일매일 진실의미간을 선보였다.

그리고 결국 결투 당일이 되었다.

셀빈과 폴투아가 공작저에 도착했다.

공작은 현재 ‘눈이 부는 곳’으로 원정을 나간 상태였고, 셀빈과 폴투아를 맞이한 사람은 이사벨라 공작부인이었다.

“어서 오세요.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어요.”

그런데 이사벨라 공작 부인이 이상한 얘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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