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16화
“저는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3대 공작가가 모두 얽히게 된 사건이니..
마리앙투 공작가의 명예 회복을 위하여, 브란디아 공작가가 나섰고, 벨라투 공작가는 브란디아 공작가와 결투를 치르게 되었지요. 우리는 모 두 명예로운 가문이며, 자신의 명예와 상대의 명예를 존중하고 있답니다.”
셀빈은 하품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여기서 하품을 하는 것은 벨라투공작가에 대한 모욕이 될 수도 있으니까.
허벅지를 힘차게 꼬집으며 밀려오는 졸음과 사투를 벌였다.
“그래서 저는 셀빈 영애에게 제안하려 합니다.”
이사벨라가 아공간에서 푸른색 액체가 찰랑이는 포션을 꺼냈다.
“이 포션은 과거 물의 마술사가 연구하여 만들었던 포션이에요.”
폴투아가 움찔했다.
“물의 마술사라면……….”
“맞아요. 헤론 공작님의 전 부인이 시지요. 지금은 국화꽃과 함께 따스한 곳에 잠드셨어요.”
“그분의 명성이라면 익히 들었습니다. 대륙에서 제일가는 포션 제작자였다더군요.”
“맞아요. 그분은 우아하고 아름다 우셨으며 기품있는 귀족임과 동시에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포션 제작자였어요.”
셀빈은 졸린 와중에도 푸른색 포션에는 관심을 가졌다.
‘저거, 맛있을까?’
맛있다면 먹어보고 싶은데.
이왕이면 달달한 음료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자 졸음을 조금은 몰아낼 수 있었다.
“그 포션을 저희에게 보여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까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서로의 명예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벨라투는 결투에서의 패배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폴투아는 이해하지 못했다.
패배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포션을 보여주는 것 사이에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공정하지 못한 결투에서 승리를 따내는 것도 우리는 패배로 생각합니다.”
“공작부인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만, 그 포션과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비올라는 강한 아이입니다. 여러분은 그녀가 하얀 벨라투라고 알고 계시지요?”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히 하얀 벨라 투가 아닙니다. 그 아이는 1공녀와 비견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검은 벨라투로서도.”
그 말에 셀빈이 눈을 번쩍 떴다.
잠 같은 건 싹 달아났다.
“정말요? 그럼 비올라 언니는 센가요?”
“물론이지요. 하얀 벨라투라고 생각하시면 안 될 거예요.”
이사벨라는 불공정한 경쟁은 싫다고 하였다.
벨라투는 합리적인 가문이며 공정을 추구한다고 말하면서, 검은 벨라 투나 다름없는 비올라와 셀빈 영애의 나이 차이를 언급했다.
“그 나이대의 3년은, 성인의 3년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저희는 공정한 경쟁을 위하여 물의 마술사가 남긴 포션을 드리려는 거예요. 몸을 가볍게 해주고, 마나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줄 거예요. 브란디아 공작가를 위하여 개발된 포션이라 부작용도 거의 없을 거예요.”
“부작용이 있기는 합니까?”
“가벼운 설사, 운 나쁘면 약간의 무력감 정도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러한 증상은 이틀 내로 사라질 거예요.”
폴투아가 포션을 받아 들었다.
“포션은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만, 사용은 저희의 소관이겠지요?”
“물론이에요.”
폴투아는 가능하다면 이 포션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이 포션을 그대로 브란디아 공작가로 가져가 연구해 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이 아이가 결투 중에 눈만 안 돌면 좋겠는데.’
폴투아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과연 벨라투가답군요. 북방을 지키는 방패. 가장 명예로운 가문의 소문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
비올라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누웠다.
결투를 대비하여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셀빈이라니. 브란디아 공작가라니.’
북방에 벨라투가 있다면 서방에는 브란디아가 있다.
벨라투가 ‘눈이 부는 곳으로부터 내려오는 마물들을 막아내는 북방의 방패라면, 브란디아는 ‘황해’를 통해 침범하는 서대륙의 약탈자들을 막아내는 서방의 창(槍)이었다.
-서대륙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가문을 꼽으라면 바로 브란디아 공작가였다.
-브란디아 공작가는 단순히 서대 륙의 침범을 막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때때로 서대륙에 진격하여 수많은 영지를 함락시켰다.
브란디아 공작가에는 철칙이 있었다.
당한 것은 곱절 이상으로 갚아주라는 것이었다.
브란디아 공작가는 수 세기 동안 서대륙과의 전쟁의 일선에 서 있었으며, 덕분에 사람과의 전투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경험과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벨라투는 마물과의 전투에 특화되었고, 브란디아는 사람과의 싸움에 더 익숙하고.’
그런데 하필이면 브란디아의 영애와 싸우게 되다니.
비올라 나름대로는 열심히 준비하고 대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섭고 서글픈 건 어쩔 수 없었다.
피폐 로판에 빙의한 것도 억울한데 직접 결투라니.
아무리 발을 동동 굴러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제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푹 쉬셨나요, 공녀님?”
아니.
너 같으면 쉴 수 있겠어?
하지만 겉으로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물론.”
“그래도 셀빈 영애는 그 나이대에서는 꽤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는 영애인데요. 긴장감을 전혀 찾아볼수 없네요?”
“긴장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비올라는 세이반에게 부탁하여 화장(화장 마법)을 받은 상태였다.
비올라의 섬뜩한 분위기가 증폭되었고, 그녀의 드레스는 비올라의 심리 상태를 완벽히 가려주었다.
“결투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제논이 하얀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비올라가 그 위에 손을 얹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논은 하마터면 말할 뻔했다.
‘다치지 마세요.
그러나 결투 중에 다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다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비올라를 모욕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속으로만 말했다.
‘저는 공녀님이 안 다치셨으면 좋겠어요.
비올라가 다치면 많이 속상할 것 같았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제논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혹시라도 공녀님이 다친다면 말이에요.”
만약에라도 비올라가 크게 다친다.
면.
‘똑같이 만들어드릴게요.
비올라의 팔이 다치면 상대의 팔을 자를 것이고, 비올라의 다리가 다치면 상대의 다리를 자를 것이다.
상대가 누가 됐든 그렇게 할 것이다.
제논이 빙그레 웃으며 걸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네.
요.”
***
제국의 3대 공작가가 모두 얽힌 일이다 보니, 대륙의 관심이 쏟아졌다.
겨울성의 연무장에는 특별히 허가 받은 소식지의 기자들도 여섯 명이나 자리하고 있었다.
“저기 봐. 6공녀께서 걸어오고 계셔.”
비올라는 대중에 얼굴이 공개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식지에 얼굴이 공개되지는 않을 것이나, 그들은 마법 촬영도구에 비올라의 모습을 한껏 담았다.
“소문이 실제를 다 못 담았네.”
“그러게나 말이야.”
소식지 기자들은 비올라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다.
눈을 마주치면 안 될 것 같은 위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현장을 경험한 그들조차 처음 느껴보는 신기한 분위기였다.
“살성을 가진 분이라더니…….”
그중 살기에 예민한 한 명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얼마 후, 브란디아 공작가의 셀빈영애가 걸어왔다.
폴투아와 함께 걸어오고 있는 그녀는 비올라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기자들은 하마터면 탄성을 내지를 뻔했다.
‘귀, 귀여워!’
만약 브란디아의 영애가 아니었다.
면 소리치고 말았을 것이다.
‘뭘 먹고 있는 거지?’
양손에 에그타르트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모두 한 입씩만 베어 먹었다는 것이다.
“음성을 증폭해봐. 뭐라고 말하는지 좀 들어보게.”
마법 촬영 도구를 통해 음성을 증폭했더니 티 없이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워서 한 입만 먹었어. 내일 또 사 먹을 테야.”
이런 말도 들렸다.
“진짜지? 여기 며칠 더 있는 거지? 꼭이다? 나 여기서 맛있는 거 왕창 먹고 돌아갈래.”
그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기자들의 눈에 호감이 가득 담겼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저 귀엽디귀여운 셀빈 영애의 승리를 기원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자리에 또 다른 거물이 한 명 등장했다.
“결투의 중재는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대륙에 겨우 30여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성(星)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살벌한 귀기에 놀랐다가 산뜻한 귀여움에 녹았던 기자들은 이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1공녀, 메데이아!’
타 대륙에서야 흑발적안의 마녀라 불리지만, 그녀는 결코 마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완숙함 아름다움에 기자들은 홀린 듯 셔터를 눌러댔다.
기자 중 셋은 남자였고 셋은 여자였는데, 성별을 가리지 않았다.
여섯 모두가 메데이아의 모습에 넋을 잃었다.
“폴투아 경께서도 동의하시나요?”
“물론입니다. 1성기사께서 중재를 해주신다니 한결 마음이 가볍군요.”
메데이아는 비올라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연무장 중앙에 섰다.
“지금부터 결투는 제가 주관합니다. 해당 결투는 마리앙투 공작가에서 벨라투 공작가에 결투장을 보내어 성사된 결투로서, 마리앙투 공작가에서는 셀빈 영애를 흑기사로 지목하였고, 벨라투 공작가에서는 비올라 영애가 직접 나서 결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마리앙투 공작가의 레븐 경이 참관하고 계시다는 것을 고지합니다. 이곳은 신성하고 명예로운 결투가 벌어진 장이며, 저 메데이아는 세 가문의 명예를 모독하는 그 어떤 행위도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메데이아의 말이 끝나고 비올라와 셀빈이 마주 보고 섰다.
비올라는 셀빈의 눈빛에 담긴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빨리 싸워보고 싶다!
신난다!
기타 등등.
비첸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비올라는 셀빈의 눈을 피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비올라가 셀빈을 무시한 것처럼 보였다.
‘후우. 미리 준비한 대로만 하자.’
비올라는 달달 떨리는 다리를 필사적으로 감추며 결투에 앞서 마음을 다잡았다.
언젠가 한 번 이상은 경험할 일이었다.
메데이아가 말했다.
“비올라 영애와 셀빈 영애는 서로를 마주 보도록 합니다.”
둘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결투에 앞서 두 영애에게 발언권을 드리겠습니다. 셀빈 영애부터 말씀하세요.”
“저는 마리앙투 공작가의 명예를 위하여 대신…… 그, 뭐라더라?”
그녀는 뒤통수를 살살 긁으며 폴투아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결투가 시작된 이상 폴투아는 개입할 수 없었고, 셀빈은 대충 얼버무렸다.
“그 아무튼 마리앙투의 세나 대신에 결투하러 왔어요.”
메데이아가 비올라에게 시선을 옮겼다.
비올라는 미리 준비했던 대사를 읊었다.
“셀빈 영애. 나는 정령술도 다룰줄 알아요.”
혹시라도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미리 말을 해두었다.
“상관없어요!”
셀빈은 빨리 결투를 치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듯했다.
입가에는 노란 크림이 묻어 있었다.
“그럼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결국 메데이아가 결투 시작을 알렸다.
그런데 비올라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