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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26화 (126/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26화아무리 벨라투의 그림자를 많이 읽었어도 모든 일이 뜻대로 풀려가는 건 아니었다.

지금이 딱 그랬다.

“아무리 봐도 어린애잖아!”

한 거대한 남자가 뛰어왔다.

그 모습이 마치 성난 황소가 날뛰는 것 같았다.

‘진짜 크다.

적어도 키가 2미터 50㎝는 될 법했다.

그저 키만 큰 것이 아니었다.

기골이 저토록 장대한 사람은 처음봤다.

‘완전히 거인이네.

작품 속 묘사 그대로였다.

단순히 체구가 큰 게 아니었다.

그의 몸은 세포마저 근육으로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과연……… 뇌까지 근육으로 들어갔다고 표현될 법해.’

머리에는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있었고, 아무렇게나 덥수룩하게 자 자란 빨간색 구레나룻이 특징이었다.

어깨에는 아주 커다란 철퇴가 올려져 있었다.

‘용병왕 카이저.’

비올라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카이저는 악인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선한 사람에 가까웠다.

머리가 꽃밭이라서 문제지.

작가의 설정집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었다.

[특징 1. 아이와 동물을 좋아함.]

[특징 2. 뇌도 근육으로 이루어졌음. 정신세계는 꽃밭, 그리고 대단한 길치.]

[특징 3. 세계관 내에서 가장 단단한 몸뚱이를 가짐.]

[특징 4. 철저한 식단 관리의 귀재.

닭가슴살과 소고기, 일부 단백질 함량이 높으면서 칼로리가 낮은 마물생선/고기 등만 섭취.]

대략 이 정도 설정을 가진 캐릭터였다.

“아주 혼쭐을 내줘야겠어!”

카이저는 갑자기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코뿔소가 뛰어가는 것 같았다.

“제논, 저 아저씨 막을 수 있겠어?”

“이미 돌진을 시작했군요. 막으려면 막을 수는 있겠지만 저도 큰 부상을 각오해야 할 것 같아요. 막을까요?”

“아니. 됐어.”

카이저가 나타난 시점에서 계획이다 꼬여 버렸다.

카이저의 입장에서 6마탑의 침입자 방어 시스템은 ‘어린이를 괴롭히는 적’이었다.

“용병왕 카이저지? 뭐더라, 어린이 행복단체의 단체장을 겸임 한다던가.”

“네, 카이저 님이 맞는 것 같습니다.”

보통 이 세계에서 존칭을 붙일 때는 ‘경’을 붙인다.

그런데 카이저는 귀족을 싫어하는 캐릭터였고 ‘경’ 대신 ‘님’이라 불리는 것을 선호했다.

“지금 마법 시스템에 화내고 있는 거고?”

“네, 어린이를 괴롭혔으니까요.”

“무생물에 진지하게 화내고 있는거 맞지?”

“그렇게 보입니다.”

제논은 빙그레 웃었다.

미친 코뿔소처럼 달려가는 카이저의 몸에 마법 탄환이 발사되었고, 몇몇 트랩 마법이 카이저를 옭아맸다.

“흥! 이까짓 것들, 간지럽지도 않다!”

카이저의 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 장벽이 둘러싸여 있었고, 마탑의 그 어떤 방어 시스템도 카이저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어린이를 괴롭힌 죄, 죽음으로 갚거라!”

후웅!

카이저가 거대한 철퇴를 휘둘렀다.

강풍이 일어 마탑의 성벽을 덮쳤다.

외벽에 새겨져 있던 마법진들이 폭발했다.

그와 동시에 카이저는 육중한 몸을 성벽에 꽝! 부딪친 뒤, 철퇴로 성벽을 여러 차례 내리쳤다.

쿠과과광!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성벽에 쩌적 금이 갔고, 성벽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카이저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모두 죽. 이. 셨. 다.”

마법진과 마도 병기는 비록 무생물이지만 아무튼 죽였다고 생각했다.

비올라는 카이저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와, 나 존X 멋있었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신기했다.

속마음을 읽는 능력이 없는데도 속마음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느껴지다니.

“제논. 나랑 카이저랑 같은 편인 것처럼 비쳐지겠지?”

“마탑 입장에서는 동료로 인식될 겁니다.”

사실상 외벽의 1차 방어 시스템은 말 그대로 경고용이었다.

1차 방어체계가 무너지고 나면 2차 방어 시스템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게 진짜였다.

“카이저는 과연 1차 방어와 2차 방어의 개념을 알까?”

“모를 것 같은데요. 혹은 알아도 신경 쓰지 않거나요.”

“일단은 도망쳐야 하는 거지?”

“사실 저도 그렇게 제안하고 싶었어요.”

“날 안아.”

제논은 비올라를 안아 들었다.

비올라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제논의 속도보다는 빠를 수 없었으니까.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비올라는 기절할 뻔했다.

‘으아어어어! 너, 너무 빨라!’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빠르고 스릴 넘친다는 에벌랜드의 아틀란타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간이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다.

는 사실에 비올라는 이곳이 판타지 세계임을 다시 직감했다.

수풀이 우거진 곳에 도착해서야 제 논은 자리에 멈춰 섰다.

“내려 드릴게요.”

비올라는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뻔했지만 겉으로는 필사적으로 침착함을 유지했다.

“마탑의 2차 방어 시스템이 곧바로 가동되지 않은 건 내가 벨라투의 공녀여서겠지?”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올라의 출입을 허가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비올라의 존재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탑의 마법은 자동으로 비올라를 인식하였고,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할 것을 대비하여 2차 방어 시스템의 활성화를 늦춘 것이 분명했다.

“카이저는?”

“일단 죽지는 않은 것 같네요.”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맣게 그을 린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냐?”

“아저씨가 더 안 괜찮아 보여.”

마음 같아서는 카이저의 머리를 한대 확! 쥐어박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머리가 너무 높았다.

“이 몸한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상반되는 하얀 치아가 드러났다.

“어떠냐? 멋있었냐?”

비올라는 갑작스레 피곤해졌다.

마탑의 침입자로 인식되었으니 마탑에 들어가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내가 벨라투의 공녀가 아니었다면 아저씨는 죽었을걸?”

“흥, 마탑 놈들의 마법쯤이야 별거아니지. 엥? 근데 뭐? 너 귀족이냐?”

“척 보면 알잖아.”

예사롭지 않은 드레스.

햇빛에 그을리지 않은 깨끗한 피부.

찰랑거리는 머릿결.

이 모든 것은 귀족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이었다.

“척 보면 어떻게 아냐? 내가 신도 아니고.”

그런데 그때,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 꼬르륵 소리마저도 엄청나게 컸다.

“근데 혹시 닭가슴살 있어?”

***

일단은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카이저의 설명을 들어보니 소설 속 카이저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길을 잃었다고?”

“모험가에게는 흔한 일이지.”

카이저는 길을 잃었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가 비올라를 발견했다고 했다.

“마탑 주변에 마물이나 식량이 될만한 동물은 없어. 마법으로 관리되는 지역이라고.”

“그래도 한 마리쯤은 있겠지!”

“솔직히 말해. 마탑의 권역인지 몰랐지?”

카이저는 아무렴 어떻냐는 듯 귀를 후볐다.

“권역은 개뿔. 내가 다리 뻗는 곳이 내 땅이지.”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요, 내가자는 곳이 내 집이다.

카이저는 그렇게 일생을 살아왔다.

마탑의 권역 같은 건 고블린에게나 주라지.

“아저씨랑 동료라고 오해받게 생겼어.”

“동료 하자고?”

“그 말이 아니잖아.”

“아! 사인 해달란 뜻인가?”

아, 이거 오늘 펜이 없는데, 라고 중얼거리는 카이저를 보며 비올라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제논, 마탑으로부터의 추적자는?”

“없습니다. 다만 벨라투 쪽으로 손해배상청구서가 날아갈 것 같긴 합니다.”

끄응.

비올라는 두통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13살에 편두통이라니.

세상 풍파를 너무 많이 맞은 것 같아 서글퍼졌다.

“야. 그놈들이 먼저 공격했는데 손해배상을 왜 해줘?”

카이저는 진지하게 분노했다.

“착하게 있으면 호구인 줄 안다니까? 그냥 가서 다 때려 부숴야 돼.”

“아저씨, 정신 차려. 상대는 마탑이야.”

“그게 뭐? 내가 더 세.”

비올라는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보면 헤론보다 대하기 더 까다로운 상대였다.

“내가 말했지. 내 신분이 아니었다.

면 마탑의 마법사들이 우릴 추적해서 죽였을 거야.”

“내가 왜 죽어? 그놈들이 죽지.”

어느덧 원래 피부를 되찾은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더욱 화가 난 듯했다.

“아니, 근데 애도 죽인단 말이야?

진짜 안 될 놈들이네?”

어린이를 해치는 건 신이라도 용서할 수 없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저씨는 마탑이 무섭지도 않아?”

“전혀! 넌 혹시 마탑이 무섭냐?”

그럼 마탑 같은 건 내가 부숴주지.

이러고서 또 혼자 쳐들어갈 것 같아 비올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는 무서운 게 없어?”

“당연하지.”

“진짜?”

물론.”

카이저는 자신만만했다.

비올라가 제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동 간식 창고.”

“알겠습니다.”

제논이 아공간에서 이동 간식 창고를 꺼냈다.

특별히 주문 제작한 간식 주머니였다.

이 주머니에는 에그타르트와 푸딩을 비롯하여 비올라가 좋아하는 간식들이 종류별로 보관되어 있었다.

비올라가 우유 생크림이 잔뜩 올라 간 팬케이크와 설탕 시럽이 듬뿍 든 망고 주스를 들어 올렸다.

“안 무서워?”

카이저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앉아 있던 상태였는데 순식간에 몇 걸음이나 뒤로 멀어졌다.

“제, 젠장! 저리 치워!”

고칼로리.

고탄수화물.

고지방.

고당분.

카이저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었다.

비올라는 팬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먹고서 말했다.

“거봐. 아저씨도 무서워하는 거 있잖아.”

군침이 아닌, 진짜 침을 꿀꺽 삼키는 카이저를 보며 비올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배려라는 걸 좀 배워보면 어떨까?

아저씨가 아이들을 위하는 방식은 너무 일방적이야. 모두가 아저씨 같지는 않단 말이야.”

비올라는 벨라투의 그림자>의 진성 독자로서, 착하고 강하지만 조금(많이) 모자란 용병왕을 가르쳐 보기로 했다.

이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 당시의 비올라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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