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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28화 (128/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28화카를로의 손에는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핑크 다이아몬드가 들려 있었다.

저토록 순도 높은 빛을 뿌리는 핑크 다이아몬드는 극도로 적었고, 저 정도 크기는 더더욱 없었다.

말 그대로 최상급.

비올라는 저 최상급 핑크 다이아몬드를 이미 본 적이 있었다.

‘세알 자작님에게 준 거잖아.’

세알 자작에게 존경과 위로의 의미를 담아 선물했던 핑크 다이아몬드였다.

‘저게 왜?’

비올라는 그리 어렵지 않게 상황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귀족 중의 귀족, 진짜 귀족인 세알은 핑크 다이아몬드를 사리사욕을 위해 쓰지 않은 듯했다.

이 핑크 다이아몬드를 어떻게 하면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카를로 수석 디자이너에게 보낸 듯했다.

‘이게…… 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

비올라의 추측은 정확했다.

세알은 비올라에게 큰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고, 거인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비올라와 만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해했다.

그래서 이 핑크 다이아몬드를 비올라를 위해 사용하려고 했다.

마침 카를로 수석 디자이너가 핑크다이아몬드를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세알 자작이 직접 파르아자작령을 찾아 핑크 다이아몬드를 건넸다.

‘비올라 공녀의 선물입니다.

비올라가 주는 것이 아니라 세알이 주는 것이었지만, 일부러 말은 그렇게 했다.

그래서 카를로는 이 핑크 다이아몬드가 비올라의 선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일루아의 눈물이라니. 이 은혜를 어찌 보답해야 할지……!”

비올라는 거기서 또 한 번 황당해졌다.

일루아의 눈물.

소설 속에서 몇 번인가 등장하는 어마어마한 보석이었다.

이 일루아의 눈물은 동대륙 코렐제국의 초대 황제가 사랑하고 아꼈던 기사에게 하사했던 물건으로 알려져 있었다.

‘기사의 이름이 일루아. 당대 최강의 무인이자 황제의 연인.’

일루아는 황제를 위하여 적진에 홀로 침투하게 되고, 결국 황제를 구해냈다.

그 과정에서 일루아는 황제가 하사한 핑크 다이아몬드를 잃어버렸고 그녀는 크게 상심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황제의 품 안에서 결국 사망했다.

‘황제는 깊이 탄식하며 삼 일 밤낮으로 울었고…… 그 이후로 저건 일루아의 눈물이라고 불렸어.’

일루아의 눈물은 당시 적장이었던 블라독트가 획득하였다가 페토 제국의 황제에게 진상되었다.

그것은 당대 최강의 무인이었던 일루아를 죽였다는 상징이었고, 제국의 보물로 지정되어 수백 년 동안 관리되었다.

이후 페토 제국이 멸망하면서 ‘일루아의 눈물’은 초대 마탑주인 카브루엘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것은 또 초대 브란디아 공작에게 빼앗겼다.

이후 ‘일루아의 눈물은 몇몇 절대자의 손을 거치다가 이내 소실되었다.

“이 일루아의 눈물에는 역사와 기록이 녹아 있습니다. 이걸 하사하신 공녀님의 깊은 마음에 감탄을 멈출수가 없습니다.”

일루아의 눈물은 굉장히 특별한 보석이기도 했다.

소유주의 마나를 소량 흡수하여 광물 자체에 기록하였는데, 아주 뛰어난 마법사라면 광물의 기록을 열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다이아몬드에 주입된 소량의 마나를 느낄 수 있다고도 했다.

이는 불가사의의 영역이었다.

“공녀님의 마음을 받들어 루이바르텐의 역사를 새로이 써나가겠습니다. 반드시.”

제가 그렇게 말한 적은 없는데요.

비올라는 말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내가 준 것이 아니라고 해봐야 모양새만 우스워질 것이 뻔했다.

그때, 카이저가 눈을 떴다.

“이봐. 넌 뭐야?”

수염이 길다.

머리가 벗겨졌다.

늙은 남자다.

“나쁜 마법사로구나.”

그는 논리적이지 못한, 지극히 편협한 생각을 통해 ‘추격에 나선 마법사’라고 결론을 내려 버렸다.

철퇴를 들어 올렸다.

어린이. 아니, 착한 비올라를 괴롭히면 크게 혼이 날 줄 알아라.

도끼눈을 치켜뜨며 기세를 내뿜었다.

“아저씨. 제발. 생각이란 걸 좀 해봐.”

“왜? 왜 화내는 거지?”

“대화 안 들었어?”

“안 들었는데.”

저 귀와 뇌는 참으로 신기했다.

듣고 싶은 것만 쏙쏙 골라 듣고, 듣고 싶지 않은 건 뇌를 거치지 않고 흘려보냈다.

“아무튼 적이 아니야. 제발 얌전히 좀 있어줘. 나한테 자꾸 팬 케이크폭탄을 던지지 말란 말이야.”

카이저는 시무룩해졌다.

***

카를로는 품속에서 나무패 하나를 꺼냈다.

“벼락 맞은 박달나무로 만든 나무 패입니다. 시르송이 직접 본인의 마나로 이곳에 이름을 새겨넣었지요.”

이 나무패가 있으면 마탑에 10번까지 출입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마탑주 시르송을 세번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거참. 더럽게 비싸게 구는 놈이 네.”

카이저는 귀를 후볐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법사 놈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

“저는 이미 시르송과 한 차례 만난 적이 있고, 기회가 두 번이 남았으니 이것을 공녀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고마워요.”

비올라는 카를로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카를로의 반짝거리는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말이다.

“마탑 안까지는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좋아요.”

카이저는 마탑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마탑의 권역까지는 꾸역꾸역 함께 가주었다.

“내 눈으로 안전을 좀 확인하고.”

마탑 놈들이 또 비올라를 핍박하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마도 병기건 뭐고 전부 부숴 버리겠다고 생각했지만 마탑의 공격은 없었다.

‘시르송의 나무패’ 덕분이었다.

마탑은 ‘탑’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거대한 영지였다.

여느 성과 마찬가지로 성문이 존재했고, 비올라가 다가서자 성문이 저 절로 열렸다.

성문이 열리자 카이저는 그제야 안심한 듯했다.

“혹시 나쁜 놈들이 괴롭히면 나 부르고.”

“알겠어. 고마워.”

카이저는 조금 의외였다.

뭐만 하면 자꾸 화를 내서 의기소침해 있던 차였다.

그런데 갑자기 고맙단다.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뭉클해졌다.

“화 안 내네?”

“화를 왜 내?”

“계속 화냈잖아?”

“아저씨의 방법이 잘못됐으니까 화냈지.”

“난 옳은 방법을 모르는걸?”

평생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저렇게 살아갈 거다.

작가가 만든 세계의 카이저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래도 마음은 고마워.”

카이저가 눈을 크게 떴다.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귓불도 두툼하고 컸는데, 귓불이 빨갛게 물들었다.

“아저씨의 예쁜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라.”

동물과 아이를 사랑하는 모습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겨울성에 놀러와.”

“진짜?”

그 말을 들으니 카이저는 비올라와 정말로 친구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 진짜 놀러 간다?”

“응. 거기에 아저씨랑 얘기가 잘통하는 좋은 친구가 있을 거야.”

“누군데?”

“있어. 캣맘.”

카이저는 멀찍이 떨어져서 손을 흔들었다.

아름드리나무가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카이저는 성문이 완전히 닫혀서 비올라의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비올라가 마탑 안으로 들어가고 카이저는 품 안에 있던 계약서를 꺼내 북북-찢었다.

“어떤 정신 나간 미친놈이 저런 애를 죽여달래?”

카이저는 애초에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린이는 보호받아 마땅하고, 절대로 죽일 수 없는 존재였다.

다만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누군가 다른 놈이 이 계약을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일부러 받았다.

“어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네놈.”

카이저는 칼튼이 있는 방향을 정확히 쳐다보았다.

칼튼의 정체까지는 파악하지 못해도 위치는 대략적으로 잡아내었다.

“네놈, 벨라투의 사람이냐? 가서 똑똑히 전해. 한 번만 더 비올라를 죽여 달라는 의뢰를 했다가는 겨울 성부터 박살 낼 줄 알아.”

그리고 중얼거렸다.

“용병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친구를 배신하지 않아. 알겠냐?”

말하다 보니 혼자 화가 났다.

저 어린애를 죽이라니.

이렇게 최악인 의뢰는 오랜만이었다.

“저렇게 작고 소중한 애를 어떻게 죽여?”

***

칼튼은 유능한 총집사답게 모든 것을 유추해 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카이저가 이곳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벨라투의 누군가가 의뢰한 것이다.

‘총집사인 내가 파악하지 못했어.

그러면서 용병왕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공작님과 두 분 부인밖에 없지.’

공작은 아닐 거고.

한 명의 부인은 실종된 지 오래고,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이사벨라 공작 부인뿐이었다.

‘용병왕의 신념을 알고 있으니…

비올라를 죽이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을 거야.’

이사벨라가 원했던 건 용병왕이 비올라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용병왕이 비올라를 지키기 위해 마탑과 싸우는 것을 원했던 것 같았다.

‘카를로 수석 디자이너가 없었다면 비올라는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에 처했겠지.’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마탑과 비올라는 척 지게 되었을 것이다.

마탑과 불편한 관계를 개선하지 못한다면 하얀 벨라투로서의 평판도 나빠질 것이 분명했다.

칼튼은 공작에게 보내는 서신을 작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올라는 용병 왕을 회유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대외적으로 둘은 친구가 되었으며, 용병왕은 겨울성 방문을 약속하였습니다.

용병왕처럼 신의를 중시하는 사람이 약속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는 것을 토대로 생각하면, 비올라 공녀의 용병술은 실로 대단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한편, 편지를 받아 든 공작은 왜인지 기분이 나빴다.

극찬밖에 없는 편지인데도 그랬다.

그의 눈이 편지의 마지막 줄에 닿아 있었다.

[용병왕은 영문을 알 수 없는 혼잣말을 끝으로 사라졌습니다.

‘저렇게 작고 소중한 애를 어떻게 죽여?‘라고 하였는데, 무슨 뜻인지는 해독이 필요합니다.]

비올라는 마탑 안에 들어섰다.

거대한 광장이 보였고, 질서정연하게 잘 짜인 계획도시가 보였다.

…와.”

비올라는 저도 모르게 감탄성을 내뱉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인공 태양은 따사로웠고, 기분 좋은 바람이 넘실 넘실 불어왔다.

온도와 습도 등이 모두 완벽하게 관리되는 공간.

마탑의 사람들은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다른 일은 배제한 채, 마법만 연구하면 되었다.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이곳은 지상낙원이었다.

‘저기가 6마탑.

이 거대한 도시가 ‘마탑’이라 불린 이유가 바로 도시 중앙에 세워진 첨탑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저 첨탑이 있는 도시를 일컬어 통칭 ‘마탑’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비올라의 목적지는 저곳이었다.

“이 길을 쭉 따라가시면 단거리 워프 게이트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안내자들의 안내를 따라 워프하시면 마탑에 도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카를로 수석 디자이너의 몸에 두드러기가 돋았다.

실제로 이런 증상이 존재했다.

마탑 안에만 들어오면 피부가 뒤집히는 증상.

이것을 ‘마탑 두드러기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가려움증 정도지만 오래 방치하면 피부가 썩는다.

“카를로 수석 디자이너는 돌아가 보세요. 신세 많이 졌네요.”

“신세라니요. 은혜를 갚은 것뿐입니다. 끝까지 여정을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공녀님.”

카를로는 여전히 진심이었다.

일루아의 눈물이라니.

“마음 같아서는 공녀님 발…… 크흠!”

발닦개라도 하고 싶습니다.

저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네?”

“발에 키스를 올리겠습니다.”

존경과 감사의 의미를 담아 엎드렸다.

비올라는 카를로를 걷어차고 싶었으나 그러지는 못했다.

‘아, 이거 개싫어!’

이 세계의 문화였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쨌든 카를로는 비올라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한 뒤, 마탑에서 떠나갔다.

제논의 입가에는 늘 그렇듯 미소가 걸려 있었다.

‘용병왕과 카를로 수석 디자이너의 마음까지 확실하게 얻으셨네요.

비올라가 말했다.

“가자.”

이제 엘시나를 찾아야 했다.

“어디로 안내할까요?”

음? 안내한다고?

비올라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길을 알고 하는 말이야?”

“네, 6마탑은 다른 마탑에 비하여 비교적 정확히 아는 편입니다.”

그 말인즉, 다른 마탑의 길도 안다는 소리였다.

이상했다.

소설 속 제논은 마탑의 길을 모르는데.

‘설정이 바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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