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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29화 (129/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29화

‘어째서 6마탑 안쪽의 길을 알고 있지?’

돌이켜보면 제논이 6마탑의 길을 ‘모른다’ 라는 서술은 없기는 했다.

다만 원작 속 비올라가 6마탑에 들어왔을 때 안내를 자처한 사실 또한 없었다.

독자였던 아린도, 원작 속 비올라도 제논이 길을 모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탑은 그만큼 폐쇄적인 곳이었으니까.

‘그럼…….’

소설 속 설정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었다.

‘당시 원작 속 비올라에게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 않았던 거고, 지금은 알려주는 건가?’

비올라는 그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마탑의 빈민가들을 샅샅이 뒤질 거야.”

“마탑에는 빈민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녀님.”

“그야 대외적으로 그렇겠지.”

마탑은 이상향과도 같은 곳이다.

사시사철 맑고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며, 마탑의 통제 아래 모든 것이 갖춰진 곳.

일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으며 마법사들은 마법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는 꿈같은 세상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밝은 면만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다.

“대외적으로라니. 어떤 뜻일까요, 공녀님?”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없는 이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들이 있을 텐데.”

그들은 낙오자였다.

마법은 재능에 의하여 크게 좌우되는 학문이었다.

재능이 없다면 꿈조차 꿀 수 없는 학문.

그래서 재능 없이 태어난 사람들에게 마법은 절망적인 학문이기도 했다.

“마탑에도 허드렛일을 해줄 사람들은 필요해.”

마법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귀찮은 일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단적인 예로 마법사들은 ‘청소 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청소를 해주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마법을 통해 필요 칼로리와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제조할 수는 있지만, 그들은 사람이 해준 맛좋은 음식을 더 좋아한다.

마법에 대한 재능 없이 태어난 사람들은 청소부, 요리사, 구두닦이, 정원 관리사 등 마법사들이 말하는 3D 직종에서 일하며 살아간다.

“마탑은 재능이 없는 자를 일컬어 거지라고 부르고, 그들이 모여 사는 곳들을 빈민가라 부르잖아.”

바깥세상의 ‘거지 패’와는 달랐다.

어쨌든 그들 역시 마탑 소속이고, 최소한의 음식과 여벌 옷 정도는 제공되었다.

의식주 중 의와 식은 제공되었으나

‘주만큼은 예외였다.

“빈민가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대충은, 우리 고귀하신 마법사들께서는 거지들과 함께 섞여 살 수 없으시니, 거지들은 결국 한적한 곳이나 더러운 곳으로 쫓겨나 촌을 이루었어. 그게 마탑의 빈민가야.”

보통은 마법사들의 눈에 띄지 않는 지하 혹은 다리 밑, 혹은 아주 외곽지역 등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신 모양이네요.”

“공공연한 사실인데, 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정보였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이 관심이 없을뿐.

“마탑에 공식적인 빈민가는 없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주관으로 빈민가라 판단되는 몇 곳이 존재해요. 그쪽으로 안내할까요?”

“그래.”

제논이 먼저 안내한 곳은 은빛 물결이 인상적인 한 강의 다리 밑이었다.

강이라고 보기에는 규모가 작았고, 개울이라고 하기에는 컸다.

다리 밑, 벽 쪽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마치 동굴 같았다.

“마탑의 거지들은 아마 외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릴 것입니다.”

“알고 있어.”

‘거지’들은 마탑 입장에서는 ‘흠’이었다.

지워 버리고 싶은 오점.

그들은 마탑이 숨기고 싶어 하는 이들이고, 혹시라도 외부인과 접촉하여 문제가 생겼을 때는 즉결처분당하는 존재들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 생기는 책임이 너무 막중하겠지.”

제논은 빙그레 웃었다.

“역시 하나를 말씀드리면 열을 깨달으시는군요.”

늘 느끼지만 저 통찰력은 13살의 그것이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저 통찰력을 가진 소녀가 아무 대책도 없이 빈민가를 찾지 않았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공녀님께서는 어떻게 하실까요?’

제논은 두근대는 심장의 기분 좋은 박동을 느끼며 비올라를 지켜보았다.

***

엘시나는 위대한 마법사이자 6마탑의 탑주인 ‘시르송’의 제자였다.

그녀는 시르송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마법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소식지가 엘시나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기도 했었다.

<검도(劍道)에 메데이아가 있다면, 마도(魔道)에는 엘시나가 있다.

검술의 천재로 늘 거론되는 메데이 아.

엘시나는 메데이아와 비견되는 천재 중의 천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게 되었다.

어깨에 날개를 단 메데이아. 그러나 그렇지 못한 엘시다.)

메데이아는 1성 기사가 되어 승승장구했다.

서대륙의 암살자들을 몰살시켜 하얀 삭풍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대륙인들의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엘시나는 점차 낙오되어 갔다.

<두 천재의 엇갈린 희비.)

엘시나는 최초의 파문 제자가 될 것인가?>

아직도 대외적으로는 6마탑주의 제자이기는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파문당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그 자리를 내팽개쳤다.

그녀는 마법적 재능을 타고났으나 성공한 마법사가 되기에는 가슴이 너무 따뜻했다.

언젠가 한 번, 그녀는 시르송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왜 저는 이렇게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지요?”

“그것은 네가 재능을 타고났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들도 노력하며 살아가잖아요.”

엘시나가 말했던 ‘저들은 마탑의 거지들이었다.

“그들은 장애인들이지. 우리와는 다르단다.”

“마법적 재능이 없을 뿐이잖아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뿐인걸요.”

엘시나는 오늘도 그녀의 전속 요리 사가 정성껏 만들어준 생선구이를 먹었다.

눈물이 날 만큼 맛있었다.

요리를 이렇게 잘하는데 왜 거지라고 불린단 말인가.

시간이 좀 더 흘러 엘시나는 마법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마법의 정신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잖아요.”

그런데 왜 빈민들은 거의 가축 같은 대우를 받으며 무시당하는 것일까.

왜 마법사들은 그들과 한 공간에서 숨 쉬는 것조차 불쾌해할까.

같은 도로를 이용할 수도 없고, 같은 시설을 함께 쓸 수도 없다.

거지들은 마법사들에 의해 철저히 배척당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마법의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인체 실험의 도구로 전락하기도 했다.

“엘시나,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거라. 그들은 그들의 의지로 이곳에 남았고, 용기가 없어 마탑을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이야.”

“아뇨. 마탑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사실 거지들은 마탑에서 나갈 수 있었다.

신청만 하면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거지들이 마탑을 빠져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들은 적절히 받아야 할 교육을 받지 못했어요. 마탑 밖에는 마물들만 득실거린다고 알고 있다고요.”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알아왔다.

마탑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막연한 공포감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서류를 접수하면 받아주기나 하나요?”

서류를 받아주는 마탑의 관리인들은 모두 마법사다.

그들은 거지들을 혐오하며, 그들이 내민 서류 따위는 처리해 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애초에 그들이 서류를 작성할 수는 있어요?”

마탑은 마법사들의 탑이고, 마법사들의 언어를 사용한다.

‘공식 서류는 무조건 마법을 사용하여 작성해야만 한다.

“실질적으로 애초에 반쯤 세뇌당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없어요. 설령 용기를 낸다 하더라도, 그들은 서류를 작성할 수 없어요. 우여곡절끝에 작성한다 해도 관리인들이 받아주지 않을 거고요.”

사람들은 마탑이 꿈의 이상향 같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엘시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무언가 많이 잘못되었다.

그때부터 엘시나는 마법 공부를 그만두었다.

이런 게 마법이라면 익히고 싶지 않았다.

마법 공부에 열심을 쏟는 대신, ‘거지’들을 교육하고 싶어 했다.

글씨 정도는 쓸 수 있는 마법력을 길러주고 싶었고, 바깥세상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고 싶었다.

적어도 그들이 인체 실험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막고 싶었다.

당연히 마탑의 권력자들과 기성세대는 엘시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손가락질했다.

안타깝게도 거지 패들 역시 엘시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두려웠고, 새로운 것을 배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라는 게 엘시나의 설정.

결국 엘시나는 스스로 마탑주의 제자라는 신분을 벗어던지고 마나를 봉인한 채 거지 패에 섞여들어 가게 되었다.

엘시나는 스스로 낙오자가 된 최초의 천재 마법사였다.

‘사랑이 넘치고 따뜻한 사람.’

그리고 그녀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큰 열정이 있었다.

사실 그녀는 마법의 천재이기도 했지만 교육에 더 큰 재능이 있었다.

천재 마법사이면서, 그보다 더한 천재 스승이었다는 얘기다.

‘베나토의 둘도 없는 스승이자 마음의 어머니가 되어줄 거야.’

그래서 비올라는 엘시나를 선택했다.

제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모두 숨을 죽이고 있네요.

저희와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에요.”

“그러게.”

비올라는 동굴 앞에 섰다.

제논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주실까.

어떤 가면으로 마탑의 낙오자들을 상대하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실까.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가면을 쓰실까.

비올라가 말했다.

“셋의 시간을 줄게.”

비올라의 발밑에 물웅덩이가 생겨났다.

퐁퐁이의 기운이었다.

그러자 비올라의 반지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물의 정령후인 퐁퐁이와 정령수를 머금은 꽃밭이 가득 담긴 쿠룸쿠룸의 명작이 반응하고 있는 것이었다.

“안 나오면 모두 죽일 거야.”

비올라는 자신 있게 말하는 한편,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런 말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모두 죽인다니.

스스로 한 말이지만 끔찍했다.

그리고 비올라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비쳐질지도 잘 알았다.

“셋.”

저만치 안쪽.

동굴에서 인기척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둘.”

우당탕탕!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몇몇 사람이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왜 우리를 핍박하십니까? 저희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사, 살려만 주세요.”

“말 잘 들을게요. 떠나라면 떠나겠습니다. 눈에 띄지 않고 숨어 살겠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늘 위축되어 살아가고 손가락질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항의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듯했다.

‘속상하네.’

비올라는 가슴이 아팠다.

저들은 마법적 재능이 없다 뿐, 모두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마법을 못한다는 이유로 천대받으면 안 된다.

비올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최대한 따뜻하게 웃었다.

“너희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

비올라는 하얀 벨라투답게 일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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