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32화 (132/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32화겨울성은 ‘눈이 부는 곳’과 맞닿아있는 곳이다.

눈이 부는 곳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마물이 서식하는 곳이며, 겨울성의 사람들은 마물들과 끊임없이 전투를 치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부산물을 획득한다.

부산물에는 마물의 사체나 털뿐만 아니라 마물의 심장 부근에 박혀 있는 특별한 돌도 포함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일컬어 ‘마정석’이라고 표현하였고, 마정석은 현대 마도 공학의 필수 재료였다.

“설목(雪木) 마정석을 주니 쉽던데요.”

설목은 눈이 부는 곳에서만 서식하는 나무 형태의 마물이었다.

눈 덮인 나무의 모양을 하고 있다가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잡아먹는 마물이었다.

단단한 껍질 때문에 숙련된 무인이 아니면 사냥할 수 없는 개체였다.

그러나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일단 발견만 한다면 대량의 마정석을 획득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설목 마정석은 아주 희귀한 마정석은 아니라는 뜻이다.

“제가 아는 그 하얀 돌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시장가로 대략 500만 달리아정도 하는 것들이요.”

마정석치고 가격도 아주 비싼 편은 아니었다.

엘시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관리인들이 설목 마정석을 받고승인을 해줬다고요?”

“네.”

“그건 뇌물이잖아요.”

“선물이라고 해주세요.”

엘시나는 믿을 수 없었다.

관리인들이 뇌물을 받고 승인을 해줬다니.

“엘시나 경,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것은 좋지만 때로는 현실을 직시해야죠.”

비올라는 비록 13살이지만 자본주의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자본의 힘이 얼마나 큰지, 어릴 때부터 뼈저리게 경험하고 자라왔다.

“마탑의 관리인들이 그럴 리 없어요.”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은 거 아니고요?”

“그래도 명예를 아는 자들이에요.”

차라리 설목 마정석이 아니라 브락키오 마정석이라든가, 켈베로스 마정석이라든가.

누구나가 인정할 법한 최상급 마정석이라면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시장가가 겨우 500만 달리아밖에 하지 않는 설목 마정석에 이토록 쉽게 서류를 처리해 준다니.

‘그럼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건 뭐야?’

마나를 봉인하기 전 그녀도 설목정도는 아주 쉽게 사냥할 수 있었다.

설목 군락지를 휩쓸고서 설목 마정석을 획득했으면, 거지들을 마탑 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지난 노력이 허무해졌다.

이런 쪽으로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명예를 아는 자들이 다스리는 것 치고는 거지가 너무 많던데.”

마탑은 이 세계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마법과 마도 공학을 연구하는 곳이다.

당연히 돈이 아주 많다.

거지들이 있을 이유가 없다.

거지들의 역할을 마법사들이 해도 되는 거고, 외부에서 큰돈을 주고 고용해도 된다.

그런데 마탑은 굳이 거지들을 만들었다.

마법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국 마법사들도 사람이에요. 저는 그걸 건드린 거고, 평등한 세계에도 욕심은 존재하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겨우 500만 달리아밖에 안 하는 설목 마정석으로 제가 그들을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한 거죠?”

“…….”

엘시나는 왠지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

열고 싶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았다.

“예쁘니까.”

“…뭐라고요?”

“설목 마정석은 보석으로도 쓰여요. 마나를 주입하면 오묘한 백색으로 밝게 빛나요. 이런 건 몰랐죠?”

엘시나의 입장에서 마정석은 단순히 마도 공학의 재료다.

그녀는 순수하게 마법을 공부했고, 마도 공학만 연구했으니까.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이 더 윤택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공부해 온 사람이다.

좋게 말해 이상을 꿈꿨고, 나쁘게 말해 현실을 몰랐다.

“이 예쁜 것만 쥐여 주면 서류에 사인을 해줄 사람들인데, 여태까지 안 해준 거예요.”

비올라는 엘시나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겨우 한 움큼 남아 있던, 마탑과 마법사에 대한 애정이 파사삭 식어버렸을 것이 분명했다.

꿈만 꾸던 이상주의자가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어요. 마탑주께서는 저를 내보내 주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엘시나는 시르송의 흠이었다.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으나 스스로의 힘과 권리를 내팽개치고 마탑을 반쯤 배신한 천덕꾸러기.

그래서 마탑 밖으로 내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비올라가 씨익 웃었다.

“절대로요?”

“네, 절대로.”

“제가 엘시나 경과 동행하겠다고 했잖아요. 절대로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엘시나는 또 말문이 막혔다.

이 13살 소녀는 정말 13살이 맞기는 한 걸까.

“보여줄게요.”

엘시나는 하마터면 자신보다 한참 어린 비올라에게 ‘네, 언니’ 하고 대답할 뻔했다.

속마음을 겨우 다스리며 되물었다.

“저와 비올라 공녀에 대한 보고가 이미 올라갔을 거예요. 시르송 님은 비올라 공녀와 만나주지도 않을 것이 분명해요.”

“일반적이라면 그렇겠지요.”

설득도 일단 만나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 시점에서 비올라는 절대로 시르송과 만날 수 없었다.

엘시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비올라가 품 안에서 나무패 하나를 꺼냈다.

“그렇지만 이게 있다면 어떨까요?”

시르송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패였다.

엘시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

도시 중앙에 높이 세워진 첨탑.

저 첨탑이야말로 ‘마탑’이라는 거대도시 안에 세워진 진짜 마탑이었다.

비올라가 그 앞에 섰다.

‘와, 엄청 높네.

첨단 마도 공학의 산물이자 각종 마법진이 잔뜩 새겨진 최첨단 건물이었다.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는 총 4개였는데, 비올라는 그중에서도 VIP들만 입장한다는 남문으로 향했다.

남문에는 로브를 뒤집어쓴 수문장둘이 있었다.

“돌아가십시오.”

“이 문은 마탑주, 혹은 부마탑주의 초대가 있을 때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비올라는 성큼성큼 둘을 향해 걸어갔다.

“돌아가지 않으면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비올라가 품 안에서 나무패를 꺼냈다.

“경고하기 전에, 이런 게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둘의 눈이 커졌다.

시르송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패라니.

이곳에 근무한 지 5년이 넘었지만 둘 다 몇 번 본 적 없는 물건이었다.

저 소녀가 누구인데 저 나무패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실례했습니다. 귀인을 알아뵙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실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나무패의 힘은 강력했다.

비올라는 황송할 정도의 대우를 받으며 마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외부인에게 필수적인 절차라 할 수 있는 몸수색도 제외되었다.

“최상층으로 직행하는 엘리베이터입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비올라는 감회가 조금 새로웠다.

‘이야, 엘리베이터네.”

이곳의 엘리베이터는 마력으로 구동된다.

현대의 엘리베이터와 모습은 거의 똑같았다.

사실 워프가 활성화된 이곳에서 엘리베이터는 구시대의 산물 같은 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탑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했다.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마탑의 전통이라나 뭐라나.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제논이 빙그레 웃으며 비올라의 귀를 살포시 막아주었다.

“마탑의 엘리베이터는 구시대의 산물입니다. 마나를 진탕시켜 구역감과 구토를 유발하기도 해요. 이렇게 귀를 막으면 그러한 증상이 개선된다고 해요.”

제논의 손은 따뜻했다.

비올라는 제논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아주 자연스레 시중을 받는 모양새였다.

그 모습이 엘리베이터 관리인에게 어떻게 비칠지도 알았다.

이봐요.

괜히 긴장해서 침 꿀꺽 삼키지 마요.

비올라는 그 말을 삼켰다.

“최, 최상층에 도착하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몇 층이 아니라 ‘최상층’이라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탑의 정확한 층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누군가는 30층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50층이라고 했다.

이 탑 자체가 마법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워낙 많아 물리적인 층수는 크게 상관없었지만 말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굉장히 넓은 방이 눈에 들어왔다.

‘각종 실험도구.

정체를 알 수 없는 포션들이 뽀글뽀글 끓고 있었고, 온갖 약품 냄새가 났다.

바닥에는 이상한 문자가 가득 새겨진 종이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벽면에는 새장이 여러 개 있었는 데, 그 안에는 괴이하게 생긴 새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뱀의 몸통에 날개가 달린 것도 있었고, 인간 아기의 몸을 가졌으나 새의 얼굴을 가진 것도 있었다.

‘유쾌한 공간은 아니네.

비올라는 박달나무 패를 꺼내 들었다.

“6마탑주님을 뵈러 왔는데요.”

그러자 뱀의 몸통에 날개가 달린 새가 갇혀 있는 새장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

날개를 펼치고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놀라지 말자.’

이미 알고 있었다.

저 새는 곧 인간으로 변할 거다.

6마탑주 시르송으로 말이다.

몸통이 점점 커지고, 날개가 커지 는가 싶더니 어느덧 늙은 남자로 변했다.

그 장면이 상당히 그로테스크해서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그래요. 비올라 공녀는 이곳에 어쩐 일일까?”

흉흉한 눈빛이 느껴졌다.

마탑주에게서 호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건 당연했다.

수백,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마탑의 전통을 흔들어대고 있는 비올라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만약 벨라투의 공녀가 아니었다면 1차 침입 때 살아남지 못했을 텐데.”

6마탑주는 아쉽다는 듯 웃었다.

혼잣말로 ‘그때 그냥 죽였어야 했나, 귀찮군’이라고 중얼거리는 것도 들렸다.

그는 불편함을 감추지 않고 대놓고 도발했다.

비올라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역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제가 만약 아버지였다면 6마탑을 박살 내버렸을 텐데.”

골든 로드를 둘러싼 이권 다툼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시르송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렇게 받아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런데 비올라의 응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빠도 참 온화하시단 말이야.”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