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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40화 (140/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40화

“네가 간절히 원하던 것이니 특별히 그렇게 하였다.”

헤론은 이전보다는 훨씬 따스한 눈빛으로 그러나 비올라는 체감하지 못했다-비올라를 바라보았다.

헤론은 확신했다.

‘기뻐하겠지.’

비올라는 누구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너무 어렸다. 유력한 후계자인 메데이아는 제쳐 두고서라도 2공자와 3공자의 벽도 넘기 힘들 것이다.

이토록 불리한 상황에서 5공자인 비첸의 지원은 비올라에게 큰 힘이 될 터였다.

그리고 그것을 공작이 직접 공증해 주기로 하였다. “네가 그토록 바라던 것 중 하나가 이루어졌구나.”

헤론이 보는 비올라는 커다란 야망을 가진 아이였다. 그는 아버지로서 그 야망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었다. ‘비첸을 완전히 제 편으로 포섭했고, 내가 그것을 공증했다. 네가 바라 마지않는 것이겠지.’

비올라가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비올라는 울고 싶었다. 왜! 왜 흐뭇한 표정을 짓는 건데요! 아니, 그 잘난 진안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내 마음을 안 읽는 건데. ‘근데 이 와중에 또 왜 저렇게 잘생겼는데!’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저 사기적인 외모는 지금의 현실성없는 상황을 더더욱 현실감 없게 만들었다.

‘돌겠네.”

사실 비첸이 비올라를 돕겠다 말하는 것 자체가 매우 큰 문제는 아니었다. 비올라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후계 전쟁에 참여한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겠지만, 이 역시 큰 장애물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흑색 신전 마물의 피로 맹세하려면 나도 똑같은 마물을 사냥하러 가야 하잖아!”

똑같이 피를 뒤집어써야 했다. 그것을 ‘흑색 신전의 서약’이라고 불렀는데, 많은 귀족이 신성하고 중요한 서약을 맺을 때 이런 방식으로 약속을 맺었다. ‘아버지가 공증까지 했으니 빼박이 네.’

얄짤 없이 흑색 트롤을 토벌하러 가야 했다. 이제 와서 ‘아뇨, 전 그런 거 필요 없는데요’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비올라는 썩은 미소를 지었고, 공작은 비올라의 표정을 곡해했다.

“기쁜 것이냐?”

“물론이지요.”

비올라는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진안이 작동을 안 하는 거 같은데?’

실제로 공작은 비올라의 마음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다만 공작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런 적이 전에도 있었다. ‘라엘을 볼 때와 같구나.’

공작의 진안은 라엘에게만큼은 작동하지 않았었다. 라엘의 속마음을 알고 싶을 때조차도.

그래서 답답했던 때가 많았다. ‘네게는 진안이 통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답답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내게 새로운 바람이 부는구나.’

비올라라는 산들바람이..

* * *

방으로 돌아온 비올라가 물었다.

“제논, 흑색 신전과 흑색 신전의 서약에 대해 말해봐.”

“흑색 신전은 고대의 유명한 신관이었던 아르게가 흑마법에 중독되고 말년에 만들어낸 신전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사제의 신전이라고도 불립니다. 고대 영웅이었던 할콘이 그의 목을 베었고 그 목에서 나온 피가 신전을 가득 덮었다고 전해집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얘기였고 비올라도 다 아는 내용이었다. “할콘은 아르게의 오랜 친구였다고 합니다. 할콘은 아르게의 목을 베던 날 슬피 울며, 그의 피로 흑마법과의 전쟁을 선언했습니다. 대륙 전역에서 영웅들이 모여 그곳에서 서약을 맺었습니다.”

그것이 시초가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흑색 신전에는 흑색 마물 종이라는 특수한 마물들이 생성되었고, 그 피를 뒤집어쓴 뒤 맹세를 하는 서약의식이 생겨 나게 되었다.

“비첸 공자님께서 토벌한 마물은 흑색 트롤입니다만.”

그냥 흑색 트롤도 일반 트롤보다 훨씬 강력한 개체였다. “머리가 두 개였다고 합니다.”

씽긋 웃는 제논의 모습이 얼마나 얄밉던지. 비올라는 제논의 인중을 꽉 때려주고 싶었다.

“공녀님께는 별거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 비첸도 죽을 뻔했다며?”

“죽지는 않았잖아요.”

“신성한 서약을 위하여 나는 혼자 가야 하는 거지?”

“신전 앞까지는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비첸과의 서약을 위하여 비올라는 혼자 흑색 신전에 들어가야 했다. 다만 예외적인 조건이 하나 있었다. 서약 당사자보다 더 어리거나 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자를 데려갈 수 있었다.

서약을 돕는 보조 수행원의 개념으로 말이다.

“셀빈에게 서신을 보낼 거야.”

“알겠습니다.”

셀빈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비올라에게 팬레터(?)를 보내는 중이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비올라 언니에게.

저 셀빈은 진심을 다하여 언니의 발자취를 쫓으려 한답니다.]

글씨에는 영 소질이 없는지 삐뚤빼뚤한 글씨였지만 정성만큼은 대단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글씨체도 조금씩 정돈되었다. 비올라가 셀빈에게 자주 답장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셀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답장이 없어도 덕질은 자유니까요!]

*** 며칠 뒤.

비올라에게 서신을 받은 셀빈은 펄쩍 뛰며 기뻐했다.

“아빠!!!”

그녀는 한달음에 달려가 브란디아공작에게 자랑했다. “비올라 언니가 편지를 보내줬어요!”

“무슨 내용이니?”

적에게는 한없이 무자비하여 모든 것을 부숴 버린다 하여 파괴자라고도 불리는 브란디아 공작은 막내딸앞에서만큼은 굉장히 상냥했다. “흑색 신전에 가자고 했어요. 저.

랑.같.이.”

셀빈은 ‘저랑 같이’를 크게 강조했다. “저랑 둘이서.”

셀빈은 굉장히 기쁜지 히히- 하고 밝게 웃었다.

브란디아 공작이 턱을 매만졌다.

“서약을 맺는가 보구나. 토벌 대상마물은?”

“흑색 트롤이래요. 머리가 두 개!”

지금 너희 수준에서는 조금 힘들 텐데. 1년 정도 지난 후에 도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렇게 말을 하려고 했다. 그때, 셀빈이 공작의 품에 안겨들었다.

“허락해 주실 거죠?”

아기 고양이처럼 공작의 가슴팍에 볼을 부볐다. 공작 입장에서는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물론이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 * *

비올라는 침대에 누웠다.

제논이 세심한 손길로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러운 모양새로 비올라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섬기는 주인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표시하는 행동이었다.

“좋은 밤 되십시오.”

“제논도 푹 쉬도록 해.”

다음 날. 떠날 채비를 마친 제논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툰드라가 있었다면 도움이 될 텐데요.”

툰드라?” “예. 사람이 아니라 반려견을 자체하고 있고, 공작님도 인정하는 분위기니까요.”

“그러게.”

비올라는 문득 툰드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나면 마나로 만든 꼬리를 세차게 휘저으며 굉장히 기뻐했었지.

괜스레 툰드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설 속에서는 원래 벌어졌을 일이야.’

소설 속에서도 툰드라는 ‘눈이 부는 곳’에서 성장한다. 소설보다 시기가 앞당겨졌을 뿐, 원래 일어났을 일이었다.

“그래도 셀빈 공녀가 함께해서 다행이네요.”

제논이 마차에 올라탔다. “이번 일정에서는 마부를 따로 고용했답니다.”

“왜?”

“공녀님을 보필하는 사람이 저 혼자니까요. 옆에서 보다 세심하게 신경 쓰기 위함이니 이해 부탁드려요.

숙련된 마부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제논이 빙긋 웃었다. 제논이 그렇다니 그렇겠지.

밖에서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어쩐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였으나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한편, 비올라의 마차를 운행하게 된 마부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후후, 짭짤한 부업이구나!’

제논이 사비를 털어 꽤 큰 금액을 보수로 지불했다. 그는 기감을 퍼뜨려 주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늘 그렇듯 단촐한 귀족의 일정에는 파리들이 꼬이게 마련이었다.

‘우리 제자님, 자고 있단 말이야.’

풀잎이 흩날렸다. 호시탐탐 비올라의 마차를 노리던 산적 무리가 토벌되었다.

최대한 은밀하고 조심스레 움직여서 깊은 잠에 빠져든 비올라는 바깥 사정을 몰랐다.

며칠이 흘렀다.

‘이상하게 습격이 없네.”

호위기사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게 아닌데 의외로 습격이 없었다. 못해도 한두 번은 있어야 정상인데 말이다.

게다가 마차가 굉장히 안락했다. “승차감이 엄청 좋네.”

“능력이 출중한 마부니까요.”

“그러게. 이 마부 정규 고용하도록해.”

“알겠습니다. 재정부에 예산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며칠의 시간 동안 셰일란은 깨달음을 얻었다. 마차가 가는 길에 있는 자갈이나 구덩이 같은 것을 없애고 평탄하게 만들면서, 셰일란은 평소보다 훨씬 급박한 상황에서 훈련 아닌 훈련을 진행했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구결 없이도 초검을 읊게 되었다.

셰일란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우리 제자님은 잠이 많단 말이지.

잠을 충분히 잘 자야 무럭무럭 크고 건강하지.

최고의 승차감을 위하여 셰일란은 오늘도 정진했고 진화했다.

* * *

흑색 신전까지는 약 10여 일이 걸렸다.

흑색 신전은 대륙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흑색 신전 근처에는 크고 작은 마을이 여럿 형성되어 있었다.

비올라와 셀빈이 만나기로 한 곳은 흑색 신전과 가장 가까운 여행자의 마을이었다.

“언니!”

저만치 멀리서 셀빈이 손을 크게 흔들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찼는지 주변의 여행자들이 모두 셀빈을 쳐다보았을 정도였다. 미세하지만 약간의 충격파도 터졌다.

‘마나를 실어서 사자후를 터뜨리지 말아주라.’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셀빈은 도도도도! 달려와 비올라에게 와락 안겼다.

‘와, 코뿔소인 줄.

만약 반지의 무게가 아니었다면 뒤로 넘어갔으리라.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비올라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응?’

사실 비올라가 굳이 셀빈을 지목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셀빈은 브란디아의 금지옥엽이다.

서약이고 뭐고, 일단 셀빈이 나서 기만 한다면 당연히 보호자가 따라 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흑색 신전에서도 최소한의 안전을 책임져 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었다. ‘왜 없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보호자! 보호자 왜 없어! 내 마지막 안전 장치!’

셀빈은 집사조차 데려오지 않은 듯 아주 커다란 배낭을 등에 메고 있었다. 비올라가 침착하게 물었다.

“네 보호자는?”

“보호자여?”

셀빈은 평소보다 혀가 좀 짧았다. 비올라의 품에 안긴 셀빈은 반짝이는 눈동자로 비올라를 올려다보았다.

쌕쌕거리는 아기 새 같았다.

셀빈은 비올라와 만났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에 취했다.

헤헤 웃으면서 말했다.

“그야.”

보호자를 반드시 데려올 거라고 생각했던 비올라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대답이 들려왔다. “언니와 단둘이 보낼 수 있는 소듐 한 시간이쟈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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