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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41화 (141/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41화 원래는 메데이아에게 갔어야 할 애정이 비올라에게 모두 쏟아진 듯했다.

비올라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래.”

애교 많고 귀여운 동생이 있는 것도 나쁜 건 아니지. 그래. 좋은 거야.

비올라는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는 안 되었다.

‘진짜로 혼자서 오다니.’

그래도 브란디아는 벨라투에 비해서는 비교적 상식적인 가문이다. 막내딸을 이렇게 무방비하게 보낼리 없는데, 이상하게 혼자 보냈다.

“내가 토벌할 마물이 뭔지는 알지?”

“아라여! 흑맥(흑색) 트롤!”

셀빈은 신이 난 것 같았다. “땅두(쌍두)!”

“.……그래.”

흑색 신전은 총 3층이었다. “흑색 트롤은 1층 혹은 2층에서 생성되는 마물이야.”

1층보다 2층에 더 강력한 마물이 서식한다. 그리고 흑색 트롤은 1층보다 2층에 더 많이 나타나는 개체였다. 셀빈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당욘히 2층으로 갈 거예여?”

“아니.”

“그러면은?”

“1층.”

“왜여?”

“2층에는 흑색 오우거가 출몰하는 경우가 있어서.”

“뿌셔 버리면 되자나여.”

비올라가 피식 웃었다. “네가 있어서 안 돼.”

셀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사람이 저렇게 말했다면 화를 냈겠지만 비올라에게만큼은 예외였다.

“언니가 지켜주면 대자나여.”

“네 몸은 스스로 지켜.”

사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무섭다고, 엉엉. 셀빈은 비올라의 속마음은 전혀 모른 채 ‘네!’ 하고 밝게 대답했다.

“언니는 역시 머시써.”

둘은 함께 흑색 신전 앞에 섰다. 맹세를 나누는 신전답게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입구에 몰려 있었다.

두 남자의 대화가 들려왔다.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좀 별로인데.”

“그러게나 말이야.”

“맹세는 내일 하지 뭐.”

비교적 흔한 대화였다. 둘은 어린아이(비올라와 셀빈)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때,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에 주근깨가 잔뜩 있는 하얀 피부의 소년이 가까이 다가왔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미소가 예쁜 소년이었다.

“영애님들, 혹시 가이드가 필요하시지 않으신가요?”

*** 툰드라는 홀로 ‘눈이 부는 곳’에서 외로운 사투를 벌여갔다.

눈이 부는 곳 어딘가에는 ‘옛 무인들의 성지가 잠들어 있다고 했고, 툰드라는 그 위치를 잘 찾아냈다.

그곳은 시간 감각이 없는 곳이었다.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힘들다.

툰드라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회수했다.

어떤 마물을 얼마나 토벌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매일같이 검을 휘둘렀다.

‘옛 무인들의 성지’는 불가사의한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먹거나 자지 않아도 살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끊임없이 환상이 생성되었으며 그 환상 속에서 툰드라는 매일같이 마물과 싸워야 했다.

힉슨의 말을 떠올렸다.

‘어느 순간이 되면, 그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될 거야.’

옛 무인들의 성지는 사람을 극한으로 단련시키는 곳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왜곡하고, 자신의 존재마저 잊게 만드는 곳.

‘네 자신을 잊지 마. 잊게 되는 순간,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어.’

그러나 그곳에서 빠져나오기만 한다면 굉장히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검제도 천살 공작도 모두 이곳에서 수련했다고 했다.

쿵!

환상 속 오우거가 쓰러졌다.

툰드라는 혼자서 오우거를 쓰러뜨렸다.

“헉……! 헉…!”

이곳이 환상 속임을 잊었고, 내가 왜 검을 휘두르고 있는지도 잊었다. 이곳을 찾았던 수많은 사람처럼, 그 자신을 점차 잊게 되었다.

‘아니!’

툰드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성장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유는 오로지 비올라였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비올라뿐이었다.

가장 힘들고 외로웠을 때 손을 내밀어준 주인.

주인을 위한 반려견이 되겠다고 다 짐했었다.

이곳에서 잊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환상 속에서 또 다른 툰드라를 보았다. ‘어?’

그 툰드라의 이름은 강한준이었다. 이름도, 배경도, 모두가 낯설었다.

그 와중에 딱 하나 확실한 것이 있었다. ‘주인님?’

환상 속에서 툰드라는 비올라를 주인님이라 부르지 않았다. 아린이라고 불렀다.

비올라는 툰드라를 오빠라고 표현했다.

‘머리가 아파..

이것은 나의 과거인가.

나는 지금 내 과거를 보고 있는 것인가. 툰드라는 환상 속에서 오랜 날을 괴로워했다.

“아니.”

툰드라는 이윽고 검을 들었다. “너는 내가 아니야.”

환상 속 강한준을 베었다. 한준으로서의 전생이 실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냥 툰드라다.”

강한준이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피는 나지 않았고, 툰드라와 그를 둘러싼 세계가 종잇장 찢기 반으로 갈라졌다.

‘그래. 나는 툰드라다.

자아를 잊을 뻔했지만 툰드라는 다시 스스로를 찾아냈다.

높이 올라, 주인님과 함께할……

정상에 선 비올라 옆을 보필하는 것이 그의 원대한 꿈이었다.

‘…가 맞나?’

툰드라는 환상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인님은 정말로 절대자를 원하고 있는 건가?’

첫 만남부터 모든 것이 재해석되고 새로이 보이기 시작했다. 입속에 칼을 밀어 넣던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주인님이 정말로 원하는 게 뭐지?’

생각해 보면 ‘주인님’이라는 호칭도 그다지 달가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호칭은 벨라투로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거야.’

그의 세계가 다시 정립되기 시작했다. 뿌옇게 서려 있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었다.

‘나의 모든 행동이 사실은 주인님께 부담이 되는 행동들이었다.

반반백서를 읽으면서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개는 개답게 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솔직하게 다가갔고, 개처럼 행동했다. ‘그걸 원하시지 않아.”

공녀님이 정말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의 환상 속에서 더 이상 마물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로지 깊은 어둠만이 존재했다.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작고 여린 손을 내밀고 있었다. 옆에 있어줄게.’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옆에 있어주는 것.

굳이 개가 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비올라에게 필요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분은…

어두운 우주 속에서 비올라를 떠올렸다.

비올라가 어떤 감정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제논의 말도 떠올랐다.

‘저도 들은 얘기입니다. 공녀님께서는 입양 첫날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늘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대요.

툰드라를 집어삼킨 어둠이 더욱 걷히기 시작했다.

비올라에게 필요한 건 반려견이 아니었다.

옆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가족처럼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

‘공녀님은….’

‘옛 무인들의 성지’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툰드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비올라가 느끼고 있을 고독함과 외로움이 창날이 되어 자신의 가슴팍을 깊이 찌른 것만 같았다.

‘외로우셔.’

벨라투로서 늘 완성된 모습을 보이기 위하여 완전을 연기하고 있다. 비올라의 삶에는 진짜가 없었다.

환상 속 아린이 보여주었던 그 밝은 미소가, 겨울성에는 없었다.

그를 둘러싼 어둠에 균열이 점차 커졌다.

이내 쩌적- 찌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벨라투를 연기하며 살얼음판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처절함이 느껴졌다.

‘마음이 아프다, 너무.

그러니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쨍그랑!

그의 어둠이 완전히 깨져 버렸다. 그를 괴롭히던 마물도, 강한준의 모습도, 자아를 잡아먹던 어둠도, 모든 것이 사라졌다.

‘옛 무인들의 성지’는 분명 ‘눈이 부는 곳에 있었지만, 지금 이곳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툰드라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제가 옆에 있어드릴게요.”

혼자서 외롭게 싸우지 않게 해드릴 게요. 제가 도움이 되어드릴게요.

어느새 감정에 따라 요동치던 ‘마나 꼬리가 사라졌다.

툰드라는 자연스레 그 마나를 온몸으로 퍼뜨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마나막이 그의 몸에 퍼지는가 싶더니 검에 집중되었다.

툰드라의 검에 황금빛 마나가 생성되었다.

마나를 집약시켜 검에 입혔다.

상급 기사들만이 구현할 수 있다는 마나 소드였다.

‘음?’

그런데 마나 소드가 사라졌다. 툰드라의 검이 마나를 버티지 못하고 깨져 버렸다.

휘잉~!

커다란 바람과 함께 눈폭풍이 불어닥쳤다.

‘옛 무인들의 성지’ 전체가 웅웅-떨렸다. 마나가… 검을 이루고 있어. ’마나가 검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마나로 형상을 만드는 건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이제 ‘마나 꼬리’가 아니라 ‘마나 검’이 되었을 뿐이었다. 〈벨라투의 그림자)에서는 이것을 일컬어 ‘오러 소드’라고 불렀다.

제국에서도 오로지 1급 기사들만 가능하다고 알려진 경지였다.

툰드라는 크게 기쁘지 않았다.

‘돌아가야 해.’

비올라 옆에 있어주기로 했다. 비올라의 솔직한 마음과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

그게 비올라가 진짜 원하는 것일테니.

어느덧 눈 폭풍이 그쳤다.

툰드라는 남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방해하지 마.”

그가 검을 휘두르자 황금빛 잔상이 남았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거대한 거미가 반토막 났다가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툰드라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가 토벌한 마물은 ‘인면지주’라는 위험한 대마물이었다.

* * *

한편, 신전 앞에서 가이드를 자청한 소년을 만난 비올라가 싱긋 웃고서 물었다. “가이드라고?”

“맞아요. 4년 차 베테랑이랍니다.”

비올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단도를 꺼내 들었다. “환상을 구현하려면 조금 더 정밀했어야지.”

비올라는 망설임 없이 소년의 목을 찔렀다. 그녀의 천재적인 육체는 깔끔하게 소년의 동맥을 잘라냈다. 그러나 피는 흐르지 않았다. 소년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흩어 지다가 이내 없어져 버렸다.

짝! 짝! 짝!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어떻게 알아차렸지?”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팡이를 들고 있는 마법사였다.

비올라는 직감했다.

‘강해.’

그리고 로브에 새겨진 두 개의 해골 모양. 흑마법사 단체 중 하나인 ‘데스’소속의 흑마법사였다.

사람이 제법 많은 흑색 신전 입구에 과감하게 환상 마법과 결계를 칠수 있는 실력자.

그가 로브를 벗었다. 눈두덩이가 새까맸다.

‘눈이 없어?’

정돈되지 않은 흰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치고 꽤 장발이었다.

‘눈이 없고,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 데스 소속의 흑마법사라면.’

비올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 ‘흑마법사 덱시알?’

마녀 하이디와 쌍벽을 이루었던 악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올라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근데 그거 알아? 나는 아직 신전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제논이 신전 입구까지는 동행하기로 했다. 방금까지도 같이 있었다.

“안 그래, 제논?”

순간 주변이 차가운 냉기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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