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42화
덱시알은 하이디와 더불어 엄청난 악명을 떨친 악당 중 한 명이었다.
「“흐흐흐. 나의 실험 제물이 되는 것을 기쁘게 여기거라.”」
특히 그는 흑마법의 발전을 위해 인체 실험을 진행했는데, 힘없는 사람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개중에는 흑마법과는 상관없이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실험도 다수 존재했다.
「인체 실험의 최종 목표는 브란디아와 같은 강인한 육체를 손에 넣는 이었다.」
덱시알은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왜소했고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그는 많은 괴롭힘을 당하며 살았다.
그는 옆집에 살던 거구의 남자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고, 그의 부모는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19살 어느 날 밤.
그날은 덱시알에게 끔찍한 밤이었다. 그의 부모는 밤늦게까지 마정석 공장에서 일을 했고, 그는 집에 혼자 있었다. 옆집에 살던 남자는 결국 그날 밤 덱시알의 집의 문을 따고 들어왔다.
「“자, 착하지, 덱시알. 아저씨는 나쁜 사람 아니야. 자, 여기 와보렴.”」
덱시알은 저항하지 못했다.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덱시알은 분했다.
더욱 분하고 화가 났던 건, 그의 부모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도 모른 체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부모 역시 옆집 남자를 두려워했다. 덱시알은 깊은 절망에 빠져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증오, 자신을 지켜주지 않은 부모에 대한 분노, 끔찍한 상황을 목격하고도 모른 체하는 비겁함에 대한 혐오부정적인 마음이 덱시알을 집어삼켰다.
「 “강해지고 싶으냐?”」
언젠가 그는 목소리를 들었다.
「“나와 계약하면 강해질 수 있다.”」
한 악령이 그에게 접근했다.
악령과 계약하였고 그는 흑마법에 손을 댔다.
「“제물이 필요하다, 계약자여.”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제물로 삼았다.」 직계 혈족을 죽여서 그 피를 마시는 것만큼 흑마법 성장에 좋은 것은 없었다.
몇 년 후, 그는 옆집 남자를 잔혹하게 죽인 뒤 그 피를 마셨다.
「그날 밤. 그는 빈민가의 모든 사람을 죽였다.」
빈민가의 사람들은 덱시알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덱시알을 도와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침묵하고 외면했다.
덱시알이 물었다.
「“왜 아무도 날 안 도와줬어?”
“너, 너만 아프면 우리는 모두 평화롭게 살 수 있었으니까.”
|덱시알은 알고 있었다. 빈민가의 사람들은 오히려 덱시알에게 고마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덱시알만 아프면 되니까.
덱시알만 희생하면 되니까.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은 평화를 누릴 수 있으니까. 「“그 새끼보다 너희가 더 더러워.”」
그는 빈민가의 모든 사람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특히 남자들에 대한 가학성이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벨라투의 그림자> 속에서는 차마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서술되어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본격적으로 인체 실험을 진행했다. 브란디아와 같은 강인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면 내게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왜소한 체격이 아니었다면. 눈이 잘 보였다면,
그런 끔찍한 일들은 없었을 거야. 덱시알은 그래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다.
어느 정도 연구 성과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란디아의 막내딸이 호위도 없이 혼자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오늘 같은 기회는 또다시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브란디아의 막내딸.
그 아이를 해부하여 브란디아의 비밀을 밝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을 위하여 여태껏 몸을 숨기고 약한 이들만 사냥해 왔다.
‘네 피부도, 근육도, 신경도, 장기도, 모두 내가 가져가야겠어.’
염원을 이루는 날이 될 것이었다.
* * *
제논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저희 공녀님께서는 가족을 중히 여기십니다.”
비올라는 순간 움찔했다. 소설 속에서 제논이 정말로 화를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벨라투의 그림자>에서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화가 났을 때만 라스본 빙검식의 최종 검식인 ‘얼어붙은 세계’를 운용하였다.」
‘지금 이건…… 얼어붙은 세계인데?’ 라스본 빙검식을 최대치로 운용하기 위하여 주변 마나의 성질을 얼음속성에 가깝게 치환해 버리는 작업.
어마어마한 힘을 소모시키지만 그만큼 파괴력과 살상력이 보장되는 검식이었다.
「‘얼어붙은 세계’는 마법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따라서 혹자는 라스본 빙검식을 단순한 검술이 아닌 마검술로 지칭하기도 하였다.」
제논이 말을 이었다. “가족과의 맹세를 하기 위하여 오셨거든요. 우리 공녀님이.”
“넌 뭐냐?”
제논은 검을 뽑아 든 채 가슴팍에 오른손을 대고 허리를 숙였다. “비올라의 집사입니다.”
덱시알은 긴장했다. 제논의 정체를 알아차리지는 못했으나 제논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젠장!’
저놈은 어디서 튀어나온 괴물이란 말인가. 셀빈이 혼자 움직인다는 정보를 입수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는 만에 하나를 대비했다.
브란디아의 특성을 수년간 연구해 왔기 때문에 그는 자신 있었다.
‘브란디아는 이 결계를 뚫지 못할 텐데.’
브란디아의 혈육. 혹은 브란디아의 무술을 익힌 자들은 이 결계를 뚫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작 신경 써야 할 사람은 브란디아 측 전력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공녀님께서 신성한 맹세를 하여야 하니 물러서 주시면 고맙겠는데요.”
제논이 뚜벅뚜벅 걸어 덱시알 앞에 섰다. 덱시알은 본능적으로 판단했다.
‘여기서 싸우면 곤란하다.’
결계와 환상 마법이 만능은 아니었다. 모든 여행자의 눈과 귀를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
여기서 크게 싸웠다가는 자신의 행적이 들통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의 정체가 노출될 것이었다.
‘저들은 내 정체를 몰라.’
그러니 오늘은 이 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해야만 했다. ‘다음 기회를 노린다.
덱시알이 두 손을 들어 올리고 항복 의사를 표시했다.
“실례했군. 물러나지.”
“좋은 선택이네요.”
제논은 비올라를 등지고 있는 상태. 늘 웃고 있던 그는, 오늘 웃지 않았다.
그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아주 멀리 가시겠지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풀독을 조심하시길.
결계 밖에는 셰일란이 대기하고 있었다.
* * *
비올라는 이상하다고 느꼈다.
제논이 무려 ‘얼어붙은 세계’를 사용한 것도 이상한데, 이 기술까지 사용한 제논이 덱시알을 그냥 보내 준 것도 이상했다.
‘분명 끝을 봐야 하는데.”
그래서 비올라는 알아낼 수 있었다. ‘밖에 누군가가 대기하고 있구나.’
신성한 피의 맹세를 하는 장소이니, 여기서 불결한 피를 쏟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분명했다. 누군가가 대기하고 있겠지만 그 누군가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비올라가 말했다.
“제논, 놈을 죽이기 전에.”
제논의 몸이 움찔했다. 몸을 돌려 비올라를 쳐다보았다.
덱시알을 바라볼 때의 표정과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빙그레 웃으며 비올라의 말을 기다렸다.
“소속과 이름을 확실히 밝혀내.”
덱시알은 악명 높은 악당이었으나 사실 그는 조무래기에 불과했다. 흑마법사 단체인 ‘데스’가 몸통이었고, 덱시알은 그저 꼬리였다.
비올라가 일부러 씨익 웃었다.
“감히 내 맹세 서약을 방해하였고.”
마음이 영 내키지는 않지만 어쨌든 대의명분을 들먹였다. “내가 아끼는 동생과의 시간을 망가뜨렸어. 몹시 불쾌해.”
그 말에 셀빈은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끼는 동생, 아끼는 동생, 아끼는 동생, 그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소리쳤다. “셀빈은 아끼는 동생이다! 히히!”
비올라가 말을 이었다. “놈의 로브에는 소속을 나타내는 표식이 있었어. 확실히 조사하고 알아내. 브란디아의 협력을 요청해도 좋아.”
“알겠습니다, 공녀님.”
운 나쁘게(?) 덱시알을 만나긴 했지만 이건 비올라에게 있어서 또 다른 기회였다. 흑마법사 덱시알이 소속된 단체 ‘데스’는 소설 속 흑막인 ‘열풍’과도 깊은 관련이 있으니까.
데스와 열풍은 비올라에게도 매우 위험한 단체였다.
그러니 이 세계의 절대자들이 저 두 단체에 대해 빨리 인지하면 인지 할수록 좋았다. 특히 성격이 불같은 브란디아 공작은 오늘의 일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자들이 비밀단체들에 대해 알게 될 거야.’
소설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절대자들이 비밀 단체들에 관심이 적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래야 이야기가 진행되었겠지만.’ 그러나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많은 변수가 생기겠지만 그래도 비올라는 이 선택이 옳다고 생각했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것들을 양지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들어가자.”
“녜!”
비올라와 셀빈은 흑색 신전에 들어갔다. ‘음?’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 자체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덱시알의 결계 때문에 사람들이 신전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보면 될 일이니까.
‘마물도 없어.’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어.”
마치 조작된 공간처럼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흑경을 잠에서 깨웠어.”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었다. “폭풍검 재칼의 정신을 재건했고, 검귀 에르사를 각성시켰지. 물망초연회의 테러도 훌륭하게 막아냈네.
그리고 내 계약자도 죽여 버렸네?” 셀빈이 쾅! 바닥을 내리찍었다. 웅웅- 신전 바닥이 진동했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빨리 안 튀어 나와!”
정확한 발음이었다. 그녀의 혀는 짧지 않았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죽어줘야 할 것 같아.”
비올라가 흥분한 셀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셀빈은 거짓말처럼 호흡을 가다듬고 비올라를 쳐다보았다.
“언니?”
“가만히 있어.”
“왜여?”
셀빈의 혀가 다시 짧아진 듯했다. “내가 언니잖아.”
셀빈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비올라도 떨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긴장한 내색을 감추고서 허공을 향해 말했다. “광야의 악령.”
독자가 아니면 알기 힘들고, 진성독자가 아니면 기억하고 있기 힘든 ‘언령’이었다. “그림자를 걷어내고 빛을 마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