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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43화 (143/201)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43화

<벨라투의 그림자> 세계는 흑마법과 악령이 존재하는 세계였다.

악령은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이용하여 인간과 계약하여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는 악마 같은 존재였다.

인간은 악령과의 계약을 통해 큰 힘을 얻을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점점 악령에게 몸을 빼앗기게 된다는 것이 주된 설정이었다.

악령을 퇴치하는 방법은 다양했으나 그중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악령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해당 악령이 두려워하는 영창을 외우는 것이었다. 비올라가 읊은 영창은 ‘광야의 악령을 퇴마하는 퇴마 영창이었다.

그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같잖은 것을 주워들었나 보군.”

악령이 킬킬대며 웃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낮은 목소리로 웃기도 하였고 동시에 높은 소리로 낄낄대기도 하였다.

‘으, 무서워’비올라는 속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악령은 말하자면 귀신에 가까운 존재였다.

아무리 비올라가 강심장이어도 귀신은 무서웠다.

낄낄대는 웃음소리를 들으니 자신감이 옅어지는 기분이었다.

‘설마 광야의 악령이 아닌가?’

해당 언령은 ‘광야의 악령’을 퇴치하는 언령이므로 다른 악령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아냐.’

덱시알과 함께 등장한 악령이었다. 덱시알과 계약한 악령이 바로 ‘광야의 악령’이다.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 퇴마 언령도 그 힘을 잃는다.

“낄낄, 다시 한번 언령을 외워보시지?”

“그림자를 걷어내고 빛을 마주하라.”

비올라는 전혀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낄낄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쉽게 됐네. 여기서 죽여줄게.”

저만치 앞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사람의 형상을 하고서 가까이 다가왔다.

셀빈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게 모에여?”

악령은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잡아먹고 강해진다. 불안, 우울, 두려움, 공포.

이 모든 것이 악령에게 힘을 더해 준다. “반응하지 마.”

“아라떠요.”

셀빈은 하늘 같은 비올라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 굳건한 믿음과 신뢰 덕택에 ‘광야의 악령’은 그 어떤 힘도 얻지 못했다. “셀빈은 차카니까 눈 감고 언니 말만 기다리고 이쓸께여!”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강대한 믿음이었다. 한편, ‘광야의 악령’은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갔다. 언령 때문에 정신이 온통 흔들렸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낄낄대고 웃었다. ‘이런 적은 이미 여러 번 있었지!’

그러나 인간은 연약하다. 그렇기에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의심하는 순간 퇴마 언령의 힘은 깨져 버린다.

검은 아지랑이가 모여 기다란 채찍형상으로 변했다.

“죽여줄게.”

검은 채찍이 비올라의 몸을 감싸고 옥죄기 시작했다. 셀빈은 모든 기감을 차단하고 눈을 감고 있어서 비올라가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했다.

비올라는 두려웠으나 마음을 다스렸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 오면 퐁퐁이를 부르면 돼.’

최후의 한 수가 남아 있다. 그러니 아직은 당황하거나 두려워할 때가 아니었다. “아프지?”

악령이 낄낄대며 웃었다. 계속해서 겁주었다.

“죽인다?”

“얼마든지.”

다시 생각해 보면 ‘광야의 악령’ 이 헤론이나 메데이아만큼 위험천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들을 경험했던

비올라이기에,

‘광야의 악령’이 숨 막히게 두렵지는 않았다.

비올라가 씨익 웃고서 말했다.

“아르게는 오랜 친구이자 대륙의 영웅이었던 할콘을 질투했어.”

그사이, 검은 채찍이 비올라의 몸을 더욱 강하게 옭아맸으나 크게 괴롭지는 않았다. 물의 장막을 펼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비올라조차도 조금 놀랐다.

이건 비올라의 신체 능력이 뛰어나 서가 아니라, 지금 입고 있는 아티팩트(드레스)가 훌륭한 덕분이었다.

루이바르텐의 보물은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해냈다.

숨쉬기가 불편하기는 했지만 아주 괴롭지는 않았다.

비올라가 말을 이었다.

“질투는 곧 증오가 되었지. 결국 아르게는 광기에 젖어 갔고, 할콘은 눈물을 머금고 아르게의 목을 베었어. 그날, 네가 태어났어.”

아르게의 목에서 새어 나온 피가 신전에 스며들며 ‘광야의 악령’이 태어났다. 소설을 여러 번 정주행했다.

설정집 내용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광야의 악령이 그 어떤 행동과 말로 진실을 숨기려 들어도 비올라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야!!!”

수많은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비명을 토해냈다. “검은 신전, 이곳이 바로 네가 태어난 신전이야. 덕분에 이토록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거겠지.”

악령은 스스로 물리적 힘을 내기가 어려웠다. 계약자인 덱시알이 패퇴한 지금은 더욱 그랬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덱시알의 몸을 빌릴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령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 채찍을 만들어 비올라를 옥죄었다.

“그러니 너는 광야의 악령이 맞아.

틀림없이.”

비올라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다시 말했다. “그림자를 걷어내고 빛을 마주하라. 광야의 악령.”

악령은 비올라를 흔들지 못했다. 끼아아아악!

비명을 토해냈고, 한 웅큼의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 * *

셰일란의 앞머리가 바람결에 흔들렸다.

풀잎들이 어우러져 그의 몸을 감싸고 회전했다.

지금의 그는 변장한 마부가 아니라 비올라의 스승이자 동대륙의 암살자 셰일란이었다.

그는 비록 은퇴했지만 오늘도 현역으로 활동했다. “너를 어떻게 죽여야 할까?”

겁쟁이 셰일란은 겁을 잃었다. 겁을 잃은 셰일란의 눈동자에는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

그의 발밑에는 흑마법사가 한 명 널브러져 있었다. “사, 사, 살려다오.”

“부탁이 잘못됐는데.”

셰일란은 덱시알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살려달라가 아니라 안 아프게 죽여달라고 해야지.”

“제, 제발 목숨만은 …… 흐, 흐윽.”

“그러니까 왜 내 제자님을 건드려.”

덱시알은 살려달라고 빌며 셰일란의 발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애원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턱!

셰일란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때.

덱시알이 속으로부터 무언가를 게 워냈다.

“우웨에엑!”

그것은 덱시알이 몸속에 품고 다니는 맹독이었다. 상대가 방심했을 때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죽어라! 이놈!’

그러나 그 최후의 수단마저도 셰일란의 초검의 벽을 뚫어내지는 못했다. 나뭇잎들이 스스로 생명을 가진 듯 움직여 덱시알의 수를 막아냈다.

셰일란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제자님은 옳아.”

무엇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비올라는 일단 옳았다. 옳은 대상을 죽이려고 들었다.

그건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었다.

“나는 정의로운 스승님이니까.”

그러니 벌을 내리기로 했다. 이제는 겁쟁이 셰일란이 아니라 스승 셰일란이었다.

날카로운 절삭력을 지닌 나뭇잎이 덱시알의 목을 관통하기 직전, 제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녀님께서 일단 살려는 두라네요. 정보를 좀 캐내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셰일란이 볼을 살살 긁었다. 나른한 눈동자로 밑에 깔린 흑마법사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죽일 때는 내가 죽일 거야.”

제논이 빙그레 웃었다. “알겠습니다. 많이 아프게 죽이십시오.”

“음? 너 화났어?”

“화 안 났습니다.”

“화났는데?”

“화는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자는 제 주인님을 살해하려 했어요.”

평온한 듯 말하는 제논의 입가에서 냉기가 새어 나왔다. 셰일란이 대답했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일게.”

그 평온하지만 끔찍한 대화를 들은 덱시알은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머시써여!”

셀빈 입장에서는 마술이 펼쳐졌다. 모든 기감을 차단하고 눈을 감았다 뜨니 악령이 사라져 있었다.

셀빈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비올라를 바라보며 팬심을 숨기지 않았다.

“셀빈은 꼭 언니처럼 되고 말 꺼예여. 언니는 벨라투를 지배하게쩌?

셀빈도 브란디아를 지배하께요!”

비올라는 갑갑한 마음을 숨긴 채 셀빈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어 상황을 넘겼다. ‘운이 좋았어.’

독자로서의 정보가 있었고 그 정보를 확신했다. 정보와 확신.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위험할 뻔했다.

비올라는 ‘광야의 악령’이 있던 자리를 한번 훑어보았다.

광야의 악령은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광야의 악령이 사라졌으니 덱시알도 더 이상은 힘을 쓸 수 없을 거 야’이미 셰일란에게 제압당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덱시알이었지만, 비올라는 바깥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어?’

운이 한 번 좋은가 싶더니 연달아행운이 터졌다. ‘흑색 트롤이잖아?’

그것도 머리가 두 개 달린 흑색 트롤이 보였다. 트롤은 재생력이 굉장히 좋은 마물이었다.

다시 말해 생명이 끈질긴 마물.

‘광야의 악령’의 청소에 끝끝내 살아남은 모양이었다. ‘거의 죽어가네.

재생력이 엄청나게 좋은 마물이지만 광야의 악령에게 치명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았다.

‘쉽게 맹세 의식을 치를 수 있겠어.’

피를 뒤집어쓰는 것이 끔찍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했다. 셀빈은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비올라가 어떻게 하는지를 바라보았다.

비올라는 초검을 운용하여 트롤의 목을 잘라내었다.

우와! 언니 최고! 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셀빈이 조금 부담스러웠던 비올라는 셀빈의 시선을 외면한 채 퐁퐁을 소환했다.

퐁퐁.’

퐁퐁이는 비산하는 핏방울들을 끌어모아 한 덩어리로 만들었다. 비올라는 찝찝함을 감추며 그 덩어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팟!

마치 물풍선 터지듯 피가 터졌다.

비올라는 그 피를 뒤집어썼다.

역한 피비린내가 날까 봐 숨을 참았다.

‘냄새가 안 나네.

오염을 막아주는 이 아티팩트는 피비린내까지도 실시간으로 정화하여 비올라에게 깨끗한 공기를 제공했다.

덕분에 구역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벨라투의 6공녀 비올라는, 벨라투의 5공자 비첸과 서약을 맺을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

서약 의식도 성공적으로 끝냈다. 셀빈은 이 역사적인 순간의 증인이 되었다며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비올라는 이유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일단 다 끝났는데.’

이상했다. ‘이상하게, 운이, 너무, 좋아.

이렇게 운이 좋으면 뭔가 일이 생기는데.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나?’

생각해 보니 있었던 것 같았다.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 혹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망했다. 마지막 하나 남아있던 흑색 트롤이 토벌되었고, 이제 여기 마물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태어났던 ‘광야의 악령’이 소멸했다. 이곳에 올 때 염두조차 두지 않았던 두 가지 조건이 한 번에 충족되어 버렸다.

흑색 신전 1층의 지배자를 불러내는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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