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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47화 (147/201)

겨울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구를 만나게 될지 전혀 모른 채.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47화

겨울성으로 복귀하는 길.

셰일란은 바짝 긴장한 채 초검을 운용하여 승차감에 신경 썼다.

그 와중에 곳곳에 존재하는 산적 무리도 제거해야 했다. ‘바쁘네, 바빠.’

안 그래도 피곤할 것이 분명한 제자님의 숙면을 위해서 말이다. 속으로 짜증을 냈다.

‘너는 좀 가만히 좀 있고.

아공간에 억지로 욱여넣은 덱시알이 자꾸 꿈틀대는 것이 굉장히 신경쓰였다.

보통 사람을 아공간에 넣지는 않는다.

아공간은 차원과 시간이 단절된 인위적인 공간으로서, 그곳에 생명체가 들어가면 예측할 수 없는 각종 부작용을 겪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제국에서는 아공간에 사람을 집어넣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셰일란은 그런 사실쯤은 가뿐히 무시하기로 했다. ‘옳은 제자님을 건드렸으니 이 정도도 많이 봐준 거지.”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금 더 격렬하게 패서 완전히 정신을 잃게 만들어야 했다는 점이다. 너무 빨리 깬 것 같았다.

‘이크, 돌무더기다.

초검을 운용했다.

저런 건 얼른얼른 치워줘야 했다.

‘집중력을 잃지 말자.’

그렇게 정신을 집중하며 마부의 일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그는 불길한 바람을 느꼈다. ‘뭐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불길했다. 마차를 잠시 세우고 본능적으로 그림자들을 관찰했다.

평소와 다를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살자로서의 기감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경고해 왔다.

‘누구지?’

그는 저만치 멀리 숲을 바라보았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암살은 이미 실패네.”

퀼튼가의 가주. 퀘이사 퀼튼이었다.

마차 안에 타고 있던 비올라도 그 말을 똑똑히 들었다.

작은 목소리였는데도 마차 안까지 또렷이 전달 되었다.

‘또 누구야?’

비올라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꼈다. ‘뭐? 암살 실패?’

원래는 암살하려고 왔다는 뜻 아니겠는가.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아참, 내 소개를 안 했네. 나는 퀘이사라고 해. 비올라의 이모뻘 되는 사람이지.”

비올라는 더욱 마음이 불편해졌다. 퀘이사가 왜 여기서 나와!

‘암살이라니요.

퀼튼가의 가주쯤 되는 거물이 왜 자신을 암살하러 온단 말인가.

격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지 않는가!

그나마 다행인 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남주 툰드라와 집사제논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감정의 동요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아무나 막 죽이는 성격은 아냐.

더더군다나 비올라 같은 어린아이를 죽이기 위하여 몸소 움직이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결국 의뢰를 받았겠지. 평소라면 이런 의뢰 따윈 받아들이지 않았을 테고.

이런 의뢰를 한 당사자의 목이 날아갔을 거다. 퀘이사 퀼튼을 모욕한 죄로 말이다.

‘이사벨라의 짓일 거야.’

비올라가 말했다. “제논, 마차 문을 열고 나를 에스코트해.”

“알겠습니다.”

제논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마차 문을 열었다. 먼저 내려가 하얀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비올라는 그 손을 잡고 사뿐사뿐 걸어 땅으로 내려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모.”

“인사성이 밝구나.”

퀘이사의 눈이 반달을 그렸다. 그녀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내가 두렵지 않니? 살기가 느껴질 텐데?”

“아시겠지만 저는 살성을 타고났어요. 살기에 지극히 예민하죠.”

비올라는 치마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래서 무척이나 두렵답니다.”

다리가 살살 떨렸다. 평소라면 이 떨리는 다리를 무조건 숨겼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래도 되었다.

퀘이사 퀼튼이라는 암살자를 맞이한 상황이니까.

퀘이사의 살기에 반응하여 몸이 떨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었다.

“몸은 두려워하고 있지만 정신은 두려워하지 않는 묘한 느낌이구나.”

퀘이사가 피식 웃고서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붉은 머리카락이 비단결처럼 찰랑거렸다.

가까이 다가오는 퀘이사를 향해 마부가 말했다.

“멈춰.”

그 말에 찔끔 놀란 사람은 퀘이사가 아니라 비올라였다. ‘쟤 뭐야?’

비올라는 마부의 정체가 셰일란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제논이 고용한 마부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존재감이 거의 없어서 잘 못 느끼고 있었는데, 갑자기 커다란 존재감이 느껴졌다.

‘여태까지는 기척을 숨기고 있던 거야.’

퀘이사라는 강대한 적이 나타나자 더 이상 기적을 숨기는 데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퀘이사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낱 마부로 저런 실력자를 부릴 수 있다니.”

마부 셰일란 주위로 풀들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급박한 상황이 되자 구결 없이 초검을 운용했다.

그제야 비올라는 마부의 정체를 깨달았다.

‘셰일란?’

퀘이사는 왜 여기서 나오고, 셰일란은 또 왜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비올라는 이 상황이 어딘가 낯설다고 생각했다.

겁쟁이 셰일란이 퀘이사 퀼튼 앞을 가로막고 있다니.

‘겁쟁이가 왜?’

피부로 느껴지는 이 따끔따끔한 살기를 분명 느끼고 있을 텐데. ‘하나도 안 두려워하잖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캐릭터 설정이 바뀌어 가는 것이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

‘왜 갑자기 겁이 없어진 거야?’

갑자기가 아니라 서서히 없어졌다. 비올라는 자신 때문에 셰일란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퀘이사 퀼튼이 연검을 꺼내 들었다.

연검은 길이가 자유자재로 조절되어 채찍처럼 교묘한 움직임을 통해 변칙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무기였다.

다만 익히기가 지극히 까다로워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퀘이사는 대륙 제일의 연검사였다. “저런 무인을 어떻게 마부로 고용한 거야? 돈으로는 못 하는데.”

저도 몰라요! 이건 제논이 알아서 한 거라고요!

비올라는 왠지 억울한 기분이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비올라는 두려움을 딛고 걸어 셰일란 앞에 섰다.

“이모는 절 죽일 생각이 아니시잖아요.”

“난 널 죽이러 왔는걸?”

“이미 실패하셨다고 말씀하셨는걸요.”

“1차 시도가 실패한 거지, 2차는 아직 시작 안 했단다.”

“거짓말.”

퀘이사의 몸이 움찔했다. 그녀의 몸에서 은근한 살기가 새어 나왔다. 그 살기는 마치 독과도 같아서 주변의 풀들이 생기를 잃었고, 비올라도 숨을 쉬기가 불편했다. “조카는 말을 이상하게 하는구나.”

“이모가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둘중 하나예요. 증거를 전혀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이쪽을 모조리 죽이거나, 아니면 암살을 시원하게 포기 했거나.”

모습을 드러낸 시점에서 퀘이사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지였다. 완전범죄 혹은 임무 포기.

“흐응, 그런데?”

“이모는 의뢰를 포기했을 거예요.”

“내가 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완전범죄를 저지르기에는 이미 틀렸으니까요.”

비올라가 주변을 한 번 훑어봤다. “제가 암습을 대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손가락으로 셰일란을 가리켰다. “제 마부는 이모의 기적을 읽어낼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졌어요. 제 스승이기도 하죠.”

“흐응, 그렇구나. 어쩐지. 평범한 마부가 아니더라니.”

“이상한 상황이죠?”

“이상해. 너무너무 이상해. 저쯤 되는 무인이 마부 노릇을 하고 있는 것부터 이상했어.”

“저는 미리 대비한 거예요. 오늘을 위해서. 무엇보다 저는 누가 이모한테 의뢰했는지도 알고 있거든요.”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사벨라 외에 이런 임무를 의뢰할 사람은 없었다.

“제가 최근 한 오빠를 망가뜨렸거든요. 오빠가 저 때문에 후계권을 포기했어요. 그 탓에 어떤 어머니께서 크게 실망을 하셨지요.”

굳이 ‘이사벨라’ 라고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퀘이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대비한 냄새가 많이 나긴 하는구나.”

퀘이사가 왼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제논, 오랜만이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퀘이사 경.”

“진짜로 집사 노릇을 하고 있을 줄이야.”

“모시는 즐거움이 있는 분을 모시게 되어서요.”

퀘이사의 시선이 이번에는 툰드라로 향했다. “저 소년은?”

“툰드라.”

툰드라에게서는 호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정체야 어찌 됐든 비올라를 암살하기 위해 찾아온 암살자다.

툰드라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퀘이사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 네가 반려검?”

“말이 짧다?”

“당신도.”

툰드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 퀼튼의 가주인데, 예를 좀 갖추는 게 어떠니?”

“예의를 운운하기 전에 살기부터 지우는 게 어떨까 싶은데.”

툰드라가 세 발자국 앞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비올라를 압박하던 살기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툰드라의 존재감이 퀘이사를 밀어냈다.

비올라는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와…!’

저 나이에 퀘이사의 기세를 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네 짧은 혀만큼이나 명도 짧겠구나.”

“그럴 수 없는 몸이라서.”

“무슨 뜻이지?”

“옆에 있어드려야 하거든.”

툰드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퀘이사의 살기를 흘려냈다. “호호호호! 너 재미있는 애구나.”

퀘이사가 즐거운 듯 말을 이었다. “기감이 예민하고 날카로운 암살자 출신 마부, 라스본 빙검식의 제논, 실력이 과소평가된 반려검까지.”

또 하나가 더 있었다. 브란디아의 막내딸이 브란디아로 돌아가지 않고 마차에 함께 타고 있었다.

사실 셀빈이 함께 있는 시점에서 의뢰는 실패였다. 셀빈까지 죽일 수는 없었으니까.

‘더없이 완벽하게 준비를 해놨네.”

된통 당한 기분이었다. 물론, 사실은 셀빈이 그냥 비올라랑 좀 더 함께 있고 싶다고 졸라서 같이 있는 것 뿐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내가 올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던 거네, 철혈 공녀.”

“물론이죠.”

물론, 몰랐죠. 아무래도 위기를 잘 넘긴 모양이었다.

비올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모.”

“응?”

이곳의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말을 내뱉었다. “배고파요.”

“음?”

“이모랑 식사 한 끼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제논의 몸이 움찔했다. 그러나 곧 가볍게 미소 지었다. ‘역시 우리 공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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