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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48화 (148/201)

왜 비올라가 저런 말을 꺼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48화

퀘이사에게는 또 다른 이름이 하나 있었다.

‘나이아 게일, 빈민가의 수많은 아이에게 꿈과 희망이 되어주는 수녀.’

스스로 어떤 신을 섬긴다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빈민가 사람들에게 퀘이사는 수녀였다. 그녀는 굶주린 사람들을 위하여 적선을 아끼지 않았고 그를 위하여 비영리 공익단체인 ‘아침햇살’을 운영중인 단체장이기도 했다.

‘배고픈 사람은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캐릭터지.’

퀘이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퀼튼가의 가주일 때에는 한없이 냉정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사람이지만, 아침햇살의 수녀일 때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가난한 이들을 보살필 줄 알고 때로는 불의한 일에 함께 목소리를 내주기도 하는 사람.

‘같이 밥 먹자는 빈민가 아이들의 애원을 무시하지 못하고 30일 동안한 빈민가에 머물렀던 적이 있을 정도야’나이아(퀘이사)는 함께 밥 먹자는 말에 유독 약했다. 풀뿌리로 연명했던 어린 시절의 가난했던 기억 때문이라나 뭐라나.

“조카, 내 다른 이름을 알고 있구나?”

“그럼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요.”

“어떻게 알았어?”

“정보상인들을 통해서요.”

“거짓말. 그렇게 입이 싼 녀석들은 아닐 텐데.”

퀘이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로 그렇게 입이 싼 놈들이 있다면 모조리 다 죽일 거야. 너와 접촉했던 모든 정보상인의 목을 딸 건데. 책임질 수 있겠어?”

비올라를 시험하는 말이었다. 비올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거짓말이에요.”

“그럼 어떻게 알았어?”

“그녀의 가면을 만들어준 사람을 알아요. 겨울성에 아주아주 뛰어난 변장 술사가 있거든요.”

“세이반이 술술 불었단 말이야?”

“설마요.”

퀘이사의 허를 찔렀다. “아버지의 서재에 여러 번 들락날락했거든요.”

“헤론의 서재에?”

“네, 서재에 각종 서류가 있었는데, 세이반과 관련된 예산 지출 내역이 있었어요. 대략적인 견적과 1년의 주기. 그를 통해 가면이라는 사실을 유추했어요.”

가면은 특상품일수록 그 교체 주기가 짧다. 1년에 한 번은 교체 혹은 보수를 해줘야 했다.

“가면의 유지 보수에 들어가는 약품들이 매달 ‘아침햇살’로 향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나이아의 얼굴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세이반 마르코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퀘이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메데이아쯤 되면 몰라도.

아직 어리기만 한 13살 비올라가 어떻게 헤론의 서재에 여러 번 들락날락한단 말인가. “그래서 내가 나이아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거야? 겨우 서류 한 장으로?”

“이모가 나이아라는 말은 안 했는 데, 스스로 시인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퀘이사는 한동안 멍하니 비올라를 바라보다가 이내 웃고 말았다. “흐응, 발칙한 아이구나.”

“칭찬으로 이해할게요.”

퀘이사는 흐응, 하고서 턱을 매만지다가 또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헤론과 시간을 많이 보낸 모양인데?”

“네, 저와 여러 번 대화를 나누셨어요. 지난 1년 동안은 사적인 시간도 많이 보냈고요.”

“………혹시 진안과 관련된 말은 안하디?”

퀘이사는 헤론의 라이벌이자 친구였다. 전쟁터에서는 서로의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였으며 헤론의 옛 모습을 알고 있는 벗이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제게는 진안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어요.”

“그렇구나.”

퀘이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진안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었어.’

헤론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었던 라엘. 오로지 라엘을 볼 때만 진안이 멈줬었다.

‘헤론이 변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이사벨라 언니가 더 초조해 하고 있는 건가. 이렇게 작은 아이의 암살을 의뢰할만큼? “배고프다고 했지?”

“네, 배고파요. 흑색 신전에서 큰일들이 있었거든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음식을 먹으면서 얘기하자꾸나.”

퀘이사가 손을 뻗었다. 퀘이사의 그림자가 주욱- 늘어나는가 싶더니 숲속에서 무엇인가를 끌고 왔다.

돼지와 비슷한 형태의 네발 달린 짐승이었는데, 몸에는 털이 하나도 없었다.

비올라는 저 짐승이 무엇인지 알수 있었다.

‘너비아누?’

고기가 부드럽고 잡내가 나지 않는다 하여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최상급으로 손꼽히는 짐승이었다. 다만 털이 갑옷처럼 딱딱하고 움직임이 날쌘 데다가 사람을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녀석인지라 노련한 사냥꾼들도 기피하는 사냥감이기도 했다. ‘그새…… 이 넓은 숲에서 너비아누를 찾아 사냥까지 했단 말이야?’

비올라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삼켰다. 게다가 어지간한 갑옷보다 단단하다는 털까지 모조리 밀어서?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 짐승을 이렇게 손쉽게 사냥한다고?

비올라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도 모르게 저 그림자에 갇히는 상상을 하고 말았다.

‘상상도 하기 싫다.

확실히, 이 세계의 절대자들과는 얽혀서 좋을 것이 없었다.

그냥 나는 숨만 쉬었는데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세상이었다.

“바비큐 좋아하니?”

그동안 숨죽이며 타이밍을 엿보던 셀빈이 재빠르게 대답을 가로챘다. “네!”

너비아누 바비큐 앞에 셀빈은 혀가 또 짧아졌다.

* * *

퀘이사는 손뼉을 치기도 하고 활짝웃기도 하면서 비올라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흑색 신전이 무너진 거구나. 이야. 소식지 기자들이 바빠지겠는데?”

흑색 신전. 1층의 지배자.

흑마법사 덱시알.

거기에 고대 영웅 할콘과 아르게에 관한 서사까지.

이 모든 요소는 사람들이 흥미로워하는 주제였다. “조카님, 또 유명해지겠어.”

과연. 하얀 벨라투로 성장하겠다더니 그 말이 빈말은 아닌 듯했다.

뛰어난 통찰력과 분석을 기반으로 여론과 대중.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아이.

퀘이사는 비올라를 그렇게 정의했다.

“그나저나 거기에 고대 영웅 할콘의 검이 숨겨져 있었다니. 반려검이 들고 있는 저 묵검이 그 검인 거지?”

퀘이사가 툰드라에게 시선을 옮겼다. 퀘이사를 보는 툰드라의 눈빛이 곱지만은 않았다.

“얘, 눈빛으로 사람 잡아먹겠다. 말했잖아. 난 이번 의뢰를 깔끔하게 포기했다고.”

“그래도 당신이 내 공녀님을 위협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반려검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었어. 그렇지만 이 정도 무인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데.”

퀘이사는 또 흐응, 하고 턱을 매만지다가 말했다. “너도 혹시 ‘옛 무인들의 성지’에서 수련한 거야?”

툰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퀘이사는 그럼 그렇지라며 손뼉을 쳤다.

“그 안에서 얼마나 있었어?”

“10년.”

그 말에 퀘이사가 눈을 크게 떴다. “뭐? 10년? 에이, 거짓말하지 마.”

“체감이 그랬다. 정말로 10년인지는 모르겠군.”

“미치겠네.”

퀘이사가 몇몇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안에서 제일 오래 버틴 사람이 누군지 알아? 헤론이야. 헤론이 그 안에서 5년을 버텼어. 바깥 시간으로는 일주일에 불과했지만, 메데이 아가 그와 근접한 시간을 버텼고, 흑경이라 불리는 힉슨도 그 언저리였고, 검제 역시 그 정도였지.

이 세상에서 절대자라 불리는 이들이 보통 5년을 버텼다. 그런데 10년이라니.. “10년 동안 자아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단 말이야?”

“원래대로면 불가능했겠지.”

툰드라의 시선이 비올라를 향했다. 퀘이사를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다른 눈빛이었다.

“그러나 약속이 무거워 버틸 수 있었다.”

퀘이사는 두통이 밀려오는 듯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이사벨라가 왜 벌써부터 제거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비올라를 중심으로 하여 영웅들이 집결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반려검, 얘는 진짜 충격적이네.”

머릿속으로 툰드라와 싸워보았다. ‘지금의 나는 반려검과 싸워 이길수 있을까?’

부딪쳐 봐야 알 것 같았다. ‘승률은 6 대 4. 내가 이기기는 할 거야.”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실력의 우위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웠다. 전쟁과 전투에 대한 경험과 그것으로부터 오는 판단력.

그것이 아마도 승패를 가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승률은 점점 줄어들겠지. 아직 툰드라는 어리니까. “헤론도 네 나이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렇게 흘러가나 모르겠네. 저런 애가 비올라한테 미쳐서 목숨까지 바칠 것처럼 굴고.”

비올라와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충격은 강렬했다. 헤론에 힉슨에 제논에 툰드라에 셀빈까지.

듣자 하니 루이바르텐의 은인이기도 하며 셀리나의 총애까지도 독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카이저랑도 접점이 있다고 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일부러 알아보지 않았다. 용병왕 카이저는 퀘이사의 옛 연인이었고, 카이저에 관한 소식은 일부러 외면하는 중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구나.’

기존의 벨라투와는 다른 행보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조카, 조카는 어떤 세상을 꿈꾸니?”

“글쎄요.”

전 그런 거창한 생각은 안 해봤어요. 그냥 가늘고 길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래도 아린이 꿈꿔왔던 세상은 있었다. “아이들이 버림받지 않고, 배고파서 울지 않는 세상이요.”

그 한마디는 퀘이사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생각해 보니 이 아이는 빈민가 출신이라고 했었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져 혼자가 되었을 때, 누군가 한 명쯤은 옆에서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세상.”

“.......

“버려진 아이가 그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어린 시절 강한준이 그렇게 해줬다. 덕분에 그녀는 살아갈 수 있었다.

툰드라는 손에 쥐고 있던 묵검의 손잡이에 힘을 꽉 주었다.

‘제가 옆에 있을게요.

다시 한번 다짐하는 그 순간.

퀘이사가 갑자기 비올라를 끌어안았다.

빠르고 은밀한 것이 마치 살쾡이 같은 움직임이었다.

툰드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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