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52화 (152/201)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52화

공작이 직접 남문까지 나와 비올라의 마중을 나왔다는 것 자체로도 큰 이슈였다.

“근데 저분은 메데이아 공녀님 아니신가?”

“맞는 것 같은데.”

겨울성의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공작님이 직접 마중을 나오시고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것 자체로도……… 비올라 공녀의 후계권을 더욱 인정해 주시는 행동이지?”

“아무래도 그렇겠지.”

겨울성 내에서 비올라의 입지는 메데이아를 제외한 다른 후계자 후보들보다 훨씬 높았다. 비올라가 마탑의 거지들을 겨울성에 데려오면서 겨울성에 부족했던 기술공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덕분에 겨울성 주민들이 누리는 삶의 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메데이아 공녀님은 제1순위 후계자 후보잖아.”

“맞아.”

메데이아는 비올라와 달리 겨울성주민들에게 직접 체감되는 업적을 달성한 적은 없었다. 다만, 그녀가 해왔던 모든 일이 기적에 가까웠던지라 체감되지 않아도 체감할 수밖에 없는 위업이었다. 겨울성 주민들의 대부분은 메데이 아가 차기 공작이 될 거라고 굳게 믿기도 하였다.

“자, 상황을 정리해 보자고, 공작님이 비올라 공녀님을 인정한다. 대외적으로 그걸 일부러 보여준다. 거기에 제1후계자가 함께한다.”

주민들이 아는 사실을 메데이아가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메데이아 역시 지금 이 상황이 ‘공작이 의도적으로 비올라에게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메데이아 공녀님도 비올라 공녀님을 인정하고 지지하겠다는 뜻아니겠어?”

“아무래도 얘기가 그렇게 되는 것 같은데?”

그래서 많은 소식지의 기자들이 다시 한번 거지 패를 찾았다. 빈민가의 왕초였고, 지금은 겨울성에서 이름난 구두닦이인 케이타룬은 하루에도 수차례 인터뷰에 시달려야 했다.

“맞습니다. 메데이아 공녀님께서 저를 찾아와 많은 것을 질문하셨습니다. 마탑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비올라 공녀님이 저희에게 어떤 배려를 해주셨는지. 어떻게 저희를 신세계로 이끌어낼 수 있었는지.”

소식지의 기자들이 하도 들이닥치는 통에 본업에 열중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나 케이타룬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겨우 본업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는 알리고 싶은 것들이 존재했다.

“저희에게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셨거든요.”

메데이아에게도 똑같이 말했었다. 비올라가 거지들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저희같이 하찮고 어리석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위험을 감당하시고 저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요.”

그들도 이제는 안다. 비올라가 어떻게 마탑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출해 냈는지.

마탑과의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 비올라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상에는 그렇게 알려졌다 거지 패에게 인간다운 삶을 선물해 주었다.

“네, 맞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분명 메데이아 공녀님이 맞으셨습니다.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카락과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동자가 참으로 매혹적이고 고귀하신 분이셨습니다요. 비올라 공녀님에 대해 많은 것을 여쭤보셨습니다.”

무려 메데이아가 비올라의 행적을 보고 배웠다. 대외적으로 보면 그렇게 해석되었다.

소식지 기자들에 의하여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전파되었다.

<헤론 공작, 비올라 공녀에게 힘을 실어주다.>

막내 비올라를 보고 배우라는 아버지의 명령?)

그러한 이야기가 급속도로 퍼지고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이번 메데이아의 동행은 큰 시사점을 남겼다. <메데이아, 비올라의 여정에 동행.>

이번 여정은 비올라가 셀리나 대신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다시 말해 이번 여정의 ‘주연’은 비올라였고, ‘조연’이 메데이아였다.

소문은 점점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게 되었다.

헤론과 메데이아, 모두 비올라를 인정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메데이아’ 였기 때문에 이런 소식들은 굉장한 파급력을 가졌다.

왜냐하면 메데이아는 그 누구보다 후계자 경쟁에 치열하게 임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메데이아는 반드시 공작이 되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는 후계자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다른 후계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행동 같은 건 안하시겠지?”

“당연하지. 그분은 후계자가 되기 위하여 태어나신 분인데.”

그런 메데이아가 비올라에게 힘을 실어주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본인이 조연이 되는 치욕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메데이아마저 인정한 벨라투의 입양 딸.>

<비올라, 떠오르는 차세대 겨울 군주.>

비올라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비올라는 지금 떠오르는 후계자 후보였다.

불과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말이다. 다만, 비올라는 마차 안에서 이동중이라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소식지의 내용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사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비올라도 혼란스러웠다. “언니가 왜 함께하시는지 도통 이유를 모르겠어요.”

“이유가 필요하니?”

필요하죠. 언니는 지금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야 한단 말이에요.

어공언(어차피 공작은 언니)이란 말이에요.

“제1후계자로서 너무 한가로이 구시는 것 아닌가요?”

“왜? 네 라이벌이 못 될까 봐 속상해?”

비올라는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게 속상할 리가 없잖아!

비올라의 속마음을 모른 채, 메데 이아가 말을 이었다.

“걱정 말렴. 네가 충분히 훌륭하지 않다면, 나는 내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지 않을 거란다.”

“제가 충분히 훌륭하다면요?

“나는 누가 가주가 되든 상관없다.

고 생각해.”

쿨럭! 비올라는 기침을 할 뻔했다.

실제로 메데이아가 저렇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소설 후반부까지 저런 속마음을 밖으로 내뱉는 경우는 없었다.

“벨라투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가 가주가 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

“언니께서는 그자를 언니라고 판단하고 계시지 않나요?”

메데이아야말로 가주의 자리에 어울리는 자다. 비올라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의 반응은 조금 시큰둥했다. “글쎄.”

아뇨! 글쎄라뇨!

언니밖에 없는데!

“가끔은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해.”

“나타나기 어렵겠네요.”

“그렇지. 어렵겠지. 그렇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구나.”

“세상에 불가능은 없으니까요.”

비올라는 메데이아가 말하는 ‘더 뛰어난 사람이 누구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그게 누굴까? 설마 나는 아니겠지.’

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거부했다. 한편, 메데이아는 사랑스러운 눈동자로 막내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내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겠지?’

메데이아가 생각하는 ‘자신을 뛰어 넘는 천재’는 당연히 비올라였다. ‘비올라는 무력 외에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어.’

거지 패의 왕초 케이타룬을 만나고서 확신했다. 케이타룬의 눈에는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희망을 잃은 자들에게 희망을 찾아줄 수 있는 힘.’

그 힘은 고귀하고 숭고한 것이었다. ‘그걸 이미 해냈고, 앞으로는 더 잘해낼 거야.’

비올라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 일까. 어쩌면 내가 생각하고 꿈꾸던 세상보다 훨씬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 일지도 몰라. ‘혹여 무력이 부족하다면..”

지금의 성장세로 보면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인간의 몸은 하나이고, 무력과 지략을 동시에 갖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력은 내가 채워주면 되니까.

군주가 모든 것을 잘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유능한 인재들을 선발하고 그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최고의 효율을 이끌어내는 자가 바로 훌륭한 군주였다. 그런 의미에서 비올라는 매우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용병왕을 수비대에 배치했다지?”

비올라가 한 건 아니었다. 카이저가 손해배상 차원에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건 그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에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스스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지.”

그거 아니라니까요! 비올라는 침묵했고, 메데이아는 그 침묵을 겸손으로 해석했다.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웠다. 저 어린 나이에 겸손의 미덕을 깨우치다니.

“겨울성에 필요한 인재들을 대거영입한 것도 네가 한 거고.”

……그건 대마법사 벵가스가 태어나지 않도록 신경 쓴 건데요. “검은 고래 힉슨 아저씨와 폭풍검재칼 경도 각성시켰어. 네가 폭풍요새에 특사로 파견되어 많은 일을 이루어냈던 것들이 생각나는구나.”

옆을 힐끗 쳐다보았다. 잠자코 창문 밖으로 바라보고 있는 툰드라가 보였다.

“그리고 네 개는 더 이상 개가 아니구나.”

메데이아도 툰드라의 성장을 느낄수 있었다. 툰드라와 직접 검을 맞대어 보지 않아 알 수는 없었지만, 툰드라에게서 메데이아 자신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힘이 느껴졌다.

‘네가 그렇게 만든 거란다. 그녀 역시도 ‘옛 무인들의 성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곳에서 버티기가 얼마나 힘든지도.

툰드라가 그곳에서 버틸 수 있었던건 비올라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저렇게 뛰어난 실력을 지닌 마부를 본 적도 없단다. 저 정도 실력을 가진 자가 마부로 일하고 있다.

대다수 무인에게는 모욕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마부는 기쁜 마음으로 일을 수행하고 있다.

“마부에게 물어보았단다. 왜 그런 실력을 가지고 마부로 고용되었느냐고, 마부가 무어라 대답했는지 아니?”

... 뭐라고 했지요?”

“제자님이 작고 소중해서.”

이 또한 비올라의 용병술이리라. 메데이아는 그렇게 판단했다.

* * *

며칠이 흘러, 비올라 일행은 모나 크 제국의 수도 길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통행 허가를 미리 받아놓은 상태여서 수도에 쉽게 들어설 수 있었고 곧바로 황궁으로 향했다.

황제는 외부 일정 때문에 황궁에 없었다.

비올라 일행은 황궁 내에 있는 ‘봄의 관’으로 이동했다.

‘봄의 관’은 셀리나 대신이 주로 업무를 치르는 곳으로써, 제국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곳이었다. “오랜만이에요, 비올라 공녀.”

셀리나 대신의 집무실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다. 공작의 서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연회에서의 셀리나는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나, 집무실에서의 셀리나는 그렇지 않았다.

단정하고 단출한 차림의 그녀는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로 비올라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셀리나가 먼저 본론을 꺼내 들었다.

“혹시 저를 직접 찾아온 이유가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하기 위함인가요?”

“제게 과분한 기회를 주신 것에는 깊이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송구하게도 셀리나 대신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셀리나가 빙그레 웃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녀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비올라는 괜스레 불안해졌다.

“그렇지만 이건 어때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