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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56화 (156/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56화

[너도 곧 이렇게 될 거란다. 예쁜 우리 딸.]

누가 보낸 건지는 뻔했다. ‘이사벨라 공작 부인!

나는 쪽지를 바닥에 버린 뒤 나비를 안아 들었다. 퀼튼가 특유의 그림자가 나비를 옮아매고 있었고, 지금은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죽지 마.’

나비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나비는 그저 힉슨 아저씨와 친해졌을 뿐이고, 나랑 가끔 교감했을 뿐이다.

‘나비는 아무 죄도 없잖아!’

이사벨라는 시간마저도 치밀하게 계산했다. 비올라가 쪽지를 확인할 즈음 나비가 죽도록.

지금은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제논!”

비올라가 크게 부르자 제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 공녀님.”

제논은 비올라의 품에 안긴 나비를 바라보았다. 제논의 눈으로 보았을 때, 나비는 이미 죽어 있었다.

혹은 죽는 것이 더 나을 정도의상태였다. 비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좀…… 해줘.”

순간 제논은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쿵! 하고 가슴속에 무거운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철혈의 공녀 비올라의 눈망울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았다.

제논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사벨라 공작 부인.

제논은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이사벨라가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것도 눈치챘고, 비올라가 그 때문에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당신은 이제 저의 적입니다.

오늘의 일로 확실히 깨달았다.

비올라가 슬퍼하는 것이 가슴 아팠다.

단순히 후계자 후보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아니었다.

결국 제논은 완벽히 인정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저는 공녀님을 좋아하니까요.” 그래서 비올라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비올라를 슬프게 만든 이사벨라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화가 납니다.

감정을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제논을 감정없는 괴물이라 불렀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제논에게도 감정이 있었다.

지금은 너무 슬펐다.

“공녀님, 슬퍼하지 마세요.”

제논이 마나를 일으켰다. 라스본 빙검식 제7장.

‘급속 빙결’의 묘리를 사용하여 나비를 얼려 버렸다. 임시방편이기는 하지만 당장 죽지는 않을 것이었다.

“당신의 집사가, 어떻게든 명령을 수행하겠습니다.”

** 나비가 들어 있던 작은 상자와 쪽지를 가져온 사람은 비첸이었다. 비올라를 기다리다가 지루해진 비첸은 밖을 구경하다 돌아왔다.

“어? 비올라!”

비첸이 해맑게 웃었다. “……응?”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손가락으로 나비를 가리켰다.

“그건 나비야?”

나비는 단단하고 투명한 얼음 속에 갇혀 있었다. 척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오빠가 가져온 거야?”

“응?”

비첸은 본능적으로 대답을 꺼렸다. 사실 비첸은 상자 속에 뭐가 들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비올라가 있는 수도로 놀러 간다는 사실에 즐거워했을 뿐이다.

그리고 어머니인 이사벨라가 절대 상자를 열어보지도 말고, 관심조차 주지 말라고 여러 번 강조했었다. 그래서 비첸은 상자는 집사에게 맡겨둔 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게……”

그래도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맞아. 내가 가져왔어.”

“왜 그랬어?”

“나, 난 잘못이 없어.”

비첸은 당황한 나머지 손사래를 치며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비올라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이크, 큰일 나겠어.’

비첸은 저도 모르게 검을 뽑아 들 뻔했다. 그만큼 비올라의 살기는 강렬했다.

비첸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호, 혹시 나랑 싸우고 싶은 거야?

비첸을 죽이고 싶어졌어?”

그 말을 듣고 비올라는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비첸의 잘못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해맑게 어머니의 심부름을 했을 뿐이다.

‘그래, 비첸의 잘못은 아니야.’

호흡을 가다듬었다. 일단 급속 냉결을 해놓았으니, 뛰어난 신관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냐. 미안해. 생각해 보니 오빠잘못은 아니네.”

“나 미워하지 마.”

…응? 비올라는 의외의 말에 귀를 의심했다.

비첸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 ‘생각해 보니…… 비첸의 반응이 이상하네.’

비올라는 저도 모르게 살기를 내뿜었다. 비첸은 그 살기에 반응해서 검을 뽑을 뻔했다.

원작 속 비첸이었다면 ‘히히! 우리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이는 거야? 신난다!‘라면서 칼을 휘두르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그 비첸이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네가 날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비첸은 두려웠다. 비올라가 자신을 미워할까 봐.

비올라는 그 모습이 약간은 낯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익숙했다.

‘아빠가 내 아빠가 되어준 것과 똑같아.’

비첸도 마찬가지였다. 소설 속 해맑은 살인 기계 비첸은 이제, 비올라 자신을 좋아하는 가족이 되어 있었다.

“안 미워해.”

“응?”

비첸은 다 들었지만 한 번 더 확인받고 싶었다. “안 미워한다고. 너무 놀라고 속상해서, 오빠한테 화풀이한 거야.”

“그렇담 다행이다. 헤헤.”

비첸은 그제야 안심하고 헤헤 웃었다. 원작과는 너무나 다른 행동 양상이었지만 비첸 본인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보고자 겸 감시자인 제논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다만, 제논은 한 가지 사실을 눈치 챘다. ‘마냥 행복하게 웃는 건 아니군요, 공자님.’

비첸은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미묘한 살기가 내포되어 있었다. 비올라를 향한 살기가 아니라 이사벨라를 향한 살기였다.

겉으로는 헤실헤실 웃으며 속으로만 물었다.

‘공작 부인, 왜 그랬어요?’

궁금했다. 이사벨라가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왜 비올라를 저토록 슬프게 만들었는지. ‘저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이제 그녀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이사벨라는 어머니가 아니라 그저 공작 부인일 뿐이었다.

하루빨리 겨울성으로 돌아가 이사벨라에게 책임을 따져 묻기로 했다.

“아 참, 나는 중요한 임무가 있어서 먼저 나가볼게.”

손을 크게 흔들었다. “나 다치면 연고는 꼭 발라줘야 해!”

나한테 연고를 발라주는 사람은 비올라밖에 없는걸! 그 말을 삼키고 곧장 겨울성으로 향했다.

* * *

어두운 방 안.

이사벨라가 말했다.

“어미를 잡아먹어야 진정한 군주가 될 수 있는 법이란다.”

그녀의 발밑에는 2공자 가르시아가 깔려 있었다. 가르시아는 그 상태로 고개를 저었다.

이사벨라의 눈동자는 시꺼멓게 물들어 있었고, 그녀의 몸에서는 불길하고 어두운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흑마법에 손을 대셨습니까?”

2공자는 크게 위축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이사벨라의 이러한 행동에 익숙해져 있었다.

다만 오늘은 선을 조금 넘은 것 같았다. “저는 어머니를 죽이지 않겠습니다.”

힘으로 이사벨라의 발을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어렸을 때처럼 무력하게 당하지 않았다.

그는 경멸의 시선으로 이사벨라를 한 번 쳐다본 뒤 몸을 돌렸다. “지금의 어머니는 잡아먹을 가치도 없습니다.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아버지께서 그 모습을 보시면 무어라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이, 이게 무슨……!”

그림자가 그의 가슴을 찔렀다. 죽음의 기운을 담은 퀼튼가의 그림자가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어머……… 니?”

2공자 가르시아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겨울성 내에서 이사벨라가 이런 짓을 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크게 방심한 상태였다.

오늘의 일도 으레 있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림자와 연동된 이사벨라의 손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어미를 잡아먹지 못하는 사자는 필요 없어요.”

그녀는 가르시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사벨라의 눈에서는 시꺼먼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마음이 아프네요.”

호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그녀는 아들의 주검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곧 올 때가 됐군요.

또 다른 아들.

비첸이 올 것이었다.

아마도 잔뜩 화가 나서 돌아오겠지.

이사벨라는 시간을 철저하게 계산해서 일을 진행했다.

겨울성의 원로나 다른 사람들이 이 변을 알아차리기에 너무 짧지만, 비첸이 돌아오기에는 충분한 시간.

실제로 비첸은 이미 겨울성의 남문을 통과했고, 이내 이사벨라를 찾아왔다.

이사벨라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기다렸단다, 내 아들.”

이사벨라를 발견한 비첸은 멈칫했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피 냄새가 거짓이 아니었다.

“형은 왜 죽였어요?”

“사자의 자격이 없었단다.”

“여기는 겨울성 안이잖아요.”

“엄마가 그걸 깜빡했지 뭐니?”

비첸이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어머니를 죽여야만 하잖아요. 법칙의 죄를 물어서.”

“어미를 잡아먹어야 진정한 군주가 될 수 있는 법이란다.”

<비올라가 모르는 곳에서, 벨라투의 그림자>와 똑같은 내용이 진행되었다.

「“나는 어머니를 죽여야만 하잖아요.

법칙의 죄를 물어서.”

“어미를 잡아먹어야 진정한 군주가 될 수 있는 법이란다.”

」 이사벨라가 두 팔을 크게 벌렸다. “자, 나를 잡아먹으렴.”

이사벨라는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그녀의 몸에는 마나가 풍만했다. 혈육을 죽여 그 피를 마셨을 때, 흑마법의 진가가 발휘된다.

‘내가 혈육의 피를 마셔 기운을 증폭했단다.’

이제 이 기운을 모조리 비첸에게 넘겨주면 모든 것은 완성되었다.

비첸은 형과 어미를 잡아먹은 진짜 군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비첸은 그래야 했다.

‘나의 아이가, 나의 피를 이은 아이가, 벨라투를 지배해야 해.

그 생각만이 가득했다. ‘나를 죽이면, 네가 지배자가 될 수 있어, 비첸.’

내 자식이 아닌 자가 지배하는 벨라투 따위는 의미 없었다. “나는 매일 엄마를 그리워했어요.”

“나도 아들을 그리워했단다.”

내 옆에 엄마가 있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비첸은 어머니인 이사벨라를 사랑했다. 비첸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래서 당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눈물을 슥- 훔쳐냈다.

더 이상은 눈물이 나지 않았다.

“비올라에게 왜 그랬는지 묻지 않을게요.”

사실 이곳에 오면서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머니가 왜 비올라에게 그런 유치한 짓을 했을까.

나는 화가 나는데 어떻게 따져 물어야 할까. 그러나 이제는 의미 없어졌다. “당신의 소망을 이루어드릴게요.”

어머니를 잃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난 슬프지 않아.’

비록 많이 다치더라도, 연고를 발라줄 사람이 있으니까. 그는 검을 뽑아 이사벨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비올라는 제논의 안내를 받아 한 술집으로 향했다.

제국에서도 이름난 정보단체의 한 지점이라고 했다.

제논도 정확한 이름은 모른다고 했다.

‘나비를 살려야 해.’

큰돈이 들어도 괜찮았다. 나비를 살리고 싶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힉슨의 얼굴을 볼자신도 없었다.

‘아무도 없잖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비올라의 예민한 기감에 무엇인가 기묘한 느낌이 잡혔다. ‘ ‘묘하게…… 죽음의 냄새가 나는데.’

메데이아가 가이아를 만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 사실까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죽음의 냄새가 느껴졌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참. 생각지도 못한 귀인께서 방문하셨네요.”

방금 전까지 메데이아와 대화를 나누었던 여인. 정보단체 ‘밤 고양이’의 수장 가이 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그녀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나비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계시지요?”

“방법이 있나요?”

“있기는 있습니다만………”

가이아가 눈치를 슬쩍 살폈다. “과연 공녀님께서 그 값을 치르실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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