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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60화 (160/201)

그러니까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 변수가 작가가 만든 세계에 기적을 일으키기로 했다.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60화

언젠가, 비올라는 제논에게 딸기 에이드의 비법에 대해 물었었다.

“라스본 빙검식도 빙검식이지만, 사실 정령수의 역할을 아주 크답니다.”

“정령수?”

“네, 퐁퐁이의 눈물이요. 정확히는 정령빙이겠지요?”

제논은 일전 퐁퐁이의 눈물바다를 모아놓았고, 그것으로 얼음을 제조하여 딸기 에이드를 만들었다. “정령빙으로 만들면 더 맛있어?”

“일반적인 얼음보다 어는 온도가 훨씬 낮아서 시원할 뿐만 아니라 기이한 기운까지 녹아들어 있어요.”

기이한 기운은 다름 아닌 기적의 물 ‘아레나’ 였다. 퐁퐁이는 아레나가 흐르는 강물에서 헤엄치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아레나의 기운이 퐁퐁이에게 깃들어 있었다.

“아레나의 또 다른 이름들은 알고 계시지요?”

“기적의 물. 혹은 생명수.”

비올라는 제논표 딸기 에이드가 왜 그렇게 맛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레나.

그러니까 생명수 덕분이었다. “아레나의 기운과 딸기가 반응해서 훨씬 달콤하고 싱싱한 맛이 난답니다.”

아레나에는 생명의 기운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비올라는 아레나를 잔뜩 머금은 마거리트 꽃밭을 반지에 품고 있었다. 비올라의 몸 주위로 화풍(花風)이 불기 시작했다.

셰일란은 그 화풍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내가 가르쳐 준 적이 없는 초검이야.”

비올라는 스스로 초검을 만들어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검술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셰일란은 스승의 말씀을 떠올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검이 무엇인지 아느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검은 초검이죠!’

‘아니란다. 잘 생각해 보거라.’

‘초검의 최종 검식 ‘녹음 세계’가 제일 무서운 검이에요!’ ‘틀렸다. 가장 무서운 검은 사람을 살리는 검이다.

‘에이, 스승님 허풍은! 검이 어떻게 사람을 살려요?’

‘그를 일컬어 생검(生劍)이라 부른 단다.

셰일란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조금 깨달았다. ‘사람을 살리는 검.’

기적의 생명수를 머금은 꽃밭이 펼쳐졌다. 비올라는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초검을 운용했다.

그녀의 무의식이 초검의 마나 흐름을 거꾸로 이끌어냈다. ‘나는 살성을 타고났어.’

누군가를 죽이는 힘을 타고났다. 그건 작가가 설정한 힘이었다.

‘그걸 거꾸로 사용할 수 있을 거야.’

보라색 꽃 폭풍이 주변을 휘감았다. 꽃잎들이 휘날리며 비첸의 몸을 감쌌다.

비올라의 머릿속에, 과거 글자로 접했던 <벨라투의 그림자> 속 세계가 펼쳐졌다.

「생검의 구결을 가르쳐 주마.

셰일란은 스승의 말이 허풍이라 생각하면서도 구결에는 귀를 기울였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권세를 부렸으나.」

그 구결이 비올라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권세를 부렸으나.”

독자 아린은 구결을 보며 유치하다 생각했었다. 이렇게 진부한 대사는 어떻게 생각해 낸 거람. 이러니까 셰일란이 개그캐가 되어버렸지.

그렇게 비웃었었다. 비웃음은 이제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초목의 노래가 사망권세를 이겨.”

툰드라는 검을 거두었다. 메데이아도 호흡을 가다듬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비올라가 무엇인가를 하려는 것 같았다.

비올라의 초검에서는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비첸의 몸에 아레나가 깃들기 시작했다.

보라색 꽃잎으로 가득 찬 세계는 경건했다.

메데이아는 검을 내려놓고 비올라를 향해 걸어갔다.

‘진심이구나.’

비올라는 눈을 감고 있었다. 메데이아가 비올라의 오른손을 잡았다.

‘혼자서 감당하느라, 많이 힘들지?’

비올라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마 많이 어지러울 것이다.

저 작은 몸으로 이 무게를 지탱해내고 있었다.

‘언니가 함께할게.’

메데이아도 눈을 감았다. 자신의 몸을 관조하며 깊은 명상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몸은 하나의 우주였고, 그 우주로부터 충만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비올라에게 전해졌다. 툰드라도 문득 정신을 차렸다.

‘옆에 있을게요.

툰드라도 비올라 옆에 섰다.

비올라의 왼손을 잡았다.

비올라의 손은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비올라가 무엇에 간절한가.

툰드라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툰드라는 비올라가 비올라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올라의 삶에 동행할게요.”

그 삶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적어도 지금 비올라의 삶은, 비첸을 살리는 삶이었다.

“삶이 깃든 노래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리라.”

유치하기 짝이 없던 대사가 권능이 되었다. 생명의 기운이 비첸을 가득 덮었다.

비올라는 어마어마한 탈력감에 빠져들었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고, 툰드라가 비올라를 부축해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제논.”

“알겠습니다.”

제논이 재빠르게 앞으로 나서며 빙(水)의 기운을 끌어냈다. 라스본 빙검식을 사용하여 비첸을 급속 냉결 시켰다.

나비를 얼릴 때와 같은 방식이었다.

비올라는 오늘 확실히 깨달았다.

‘이 세계는 작가의 세계가 아니야.’

원래 소설 속 비첸은 죽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비올라의 칼에 찔려 죽는다.

소설 속 비올라는 결국 겨울성의 주인이 되지만 외로웠다.

그녀 주변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게 작가가 그린 세상이었다.

‘하지만 아니야.’

오른손에서 메데이아의 온기가 느껴졌다. 왼손에서 툰드라의 다정함이 전해졌다.

툰드라는 옆에 굳건히 서서 비올라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소설 속 비올라는 혼자였지만 지금의 비올라는 혼자가 아니었다.

‘작가가 원하는 결말과 내가 원하는 결말은 달라.

독자였을 때 아린은 결말에 대하여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벨라투의 그림자>는 작가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독자 아린은 작가를 응원하고 존중 했었다.

‘이젠 달라졌어.

사람 비올라는 그 세계를 존중하지 않기로 했다.

‘나도, 너도, 우리는, 소설 속 캐릭터가 아니니까.

이곳은 글자의 세계가 아니었다.

이곳은 이제 비올라가 살아가는, 비올라의 세계였다.

‘내가 그리는 세계의 결말에 네 죽음은 없어.”

반드시 비첸을 살리기로 작정했다. “가이아, 이벤타 영감님의 거처를 알고 있지?”

*** 메데이아는 겨울성으로 향하기로 했다.

겨울성에서 벌어진 사건을 조사하기 위함이다.

떠나기 직전 메데이아가 말했다.

“부디 원하는 바를 이루렴.”

메데이아가 비올라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내 동생을 구해줘, 비올라.”

비올라가 메데이아의 동생이듯, 비첸 역시 메데이아의 동생이었다. 메데이아는 겨울성으로 떠났다.

마차 안.

가이아가 말했다.

“이벤타 영감은 ‘엘프들의 숲’에 기거하고 있어요.”

“길은 알고 있지?”

“알고 있지만…… 이미 나비를 치료하러 보내서요.”

이벤타 영감은 괴짜로 불렸다. 환자를 치료해 주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더 이상 누구도 치료해 주지 않는 퇴역 신관.

그럼에도 나비를 보낼 수 있었던건 메데이아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시간은 맞출 수 있겠지만… 나비나 비첸 공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지도 몰라요.”

나비와 비첸. 둘 다 위독한 상태였다.

“그런데 나비 의뢰가 먼저였잖아요. 그 영감탱이는 일의 순서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그러면 이벤타는 비첸이 아니라 나비만 치료해 줄 가능성이 높았다. “괜찮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해.”

네.” 가이아는 입을 다물었다. 솔직한 말로 기대도 조금 되었다.

이벤타 영감은 고약한 성질머리로 유명했다.

‘벨라투의 철혈 공녀가 이벤타 영감을 구슬릴 수 있을까?”

이벤타 영감이 기거하는 ‘엘프들의 숲’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 녹음이 유독 우거진 숲이 보였다.

나무는 거대했고, 나무 넝쿨이 주변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

“엘프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어요.”

가이아는 아공간에서 초록 나뭇잎을 하나 꺼냈다. 그러자 나무 넝쿨이 저절로 양옆으로 움직이며 길을 열어주었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엘프들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종족이에요.”

엘프들은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종족이었다. 편의상 ‘왕’이 존재하지만 엘프들은 왕의 명령을 그다지 잘 따르지 않았다.

개중에는 인간을 적대시하는 엘프들도 있었고, 다짜고짜 화살을 날리기도 했다.

“……근데 화살 같은 건 전혀 안보이네요.”

가이아는 어찌 된 영문인지 금세깨달을 수 있었다. ‘비올라 공녀에게 가득한 정령의 기운 덕택이야.”

사람이 저토록 정령에 가까운 힘을 품을 수 있다니. 보통 저렇게 정령 친화도가 높으면 정령화되게 마련이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정령화가 진행되어 인간 세계를 미련 없이 떠난 정령사도 여럿 존재했다.

‘하지만 달라.’

무엇이 비올라 공녀를 이토록 간절하게 만드는 걸까. 가이아의 조사에 따르면 비올라와 비첸은 이토록 긴밀하고 애틋한 관계는 아니었다.

비올라는 철저히 철혈 공녀였다.

‘내 조사가 잘못된 걸까, 비올라 공녀가 변한 걸까?’

어느 쪽이든 큰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다. 가이아는 개인적으로 철혈 공녀 비올라보다는 지금의 비올라가 훨씬 좋았다.

이쪽이 훨씬 더 ‘진정한 지배자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니까.

‘제 사람을 소모품으로 다루기 시작하는 순간, 지배자의 몰락은 시작되는 거니까.’

적어도 비올라에게서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배자로서 필요한 모든 덕목과 능력을 타고났으면서도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은 공녀였다.

가이아가 판단하기에는 그랬다.

“이랴!”

넝쿨이 양옆으로 계속 비켜나며 길을 생성해 주었다. 마치 길을 안내해 주는 것 같았다.

셰일란이 말들을 멈추었다.

“워워.”

굉장히 커다란 버섯이 보였다. 지나치게 거대하기는 했지만 버섯이 틀림없었다.

버섯에는 문과 창문과 굴뚝이 있었다.

문이 열렸다.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 나왔다.

「이벤타 영감은 ‘거대 버섯 집에서 살았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했다. 그는 늘 종려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비올라는 저 노인이 이벤타 영감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이벤타 영감의 품에는 나비가 안겨 있었다.

이벤타 영감의 품이 편한지, 나비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고 있었다.

“부탁이 있어요.”

“남의 집에 마차를 끌고 무턱대고 쳐들어와서 하는 말이 부탁이 있다?”

이벤타 영감은 코를 후볐다. “예의가 없어도 유분수지. 험한 꼴당하기 전에 썩 돌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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