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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63화 (163/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63화

비올라가 차분히 대답했다.

“과연 그럴까요? 월계관에 담긴 기적은 이제 거의 끝났을 텐데.”

뭐라고요?” 하모나는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몸이 움찔 떨렸다.

“기적의 권능이 빛을 잃어 카레나의 봄은 지고 겨울이 찾아오리라.”

카레나는 엘프들이 ‘엘프들의 숲’을 일컫는 말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때 한 아이가 있어 슬피 울며 기적을 노래하나 봄은 가고…….”

“그만!”

하모나는 ‘카레나’를 다스리는 지배자였다. 그녀는 다른 엘프들과 달리 ‘카레나의 열매에서 태어났으며, 그때 목소리를 들었다.

“기적의 권능이 빛을 잃어 카레나의 봄은 지고 겨울이 찾아오리라.

그때 한 아이가 있어 슬피 울며 기적을 노래하나 봄은 가고, 겨울이 찾아올 새에 깊은 흑암이 드리워 카레나의 모든 잎이 땅에 떨어져 썩고 월계관도 썩어 없어지나 언젠가 봄이 도래하여 새로운 꽃을 피우리라.”

소설 속에는 이러한 설정이 부여되어 있었다. 「하모나의 왕관은 ‘카레나’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장치였다.

왕관에는 ‘기적의 권능’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숲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숲을 번성시켰다.

그러나 그 힘이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왕관에 담긴 기적의 권능은 700년에 불과했다. 인간의 기준으로는 기나 숲의 기준으로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왕관에 담긴 권능은 이제 거의 끝나간다는 소리였다. 비올라가 계속 말을 이었다.

“겨울이 찾아올 새에 깊은 흑암이 드리워 카레나의 모든 잎이 땅에 떨어져 썩고 월계관도 썩어 없어지나 언젠가 봄이 도래하여 새로운 꽃을 피우리라.”

하모나가 비올라에 의해 최후를 맞이할 때 읊었던 이 말은 노래 가사가 되었다. 이 노래는 훗날 ‘하모나의 노래’로 알려지게 되며, ‘여왕의 장송곡’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이 구절을 알고 있는 존재는 하모나가 유일했다. 하모나가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었던 계시.

하모나 입장에서는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어떻게 그 계시를 알죠?”

“중요한 건, 제가 그 계시를 알고 있다는 거고, 월계관에 담긴 기적의 권능이 곧 끝나간다는 것도 알고 있다는 거예요.”

“말도 안 돼요.”

고작 열세 살짜리 어린 인간이, 도대체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카레나에서 나고 자란 다른 엘프들도 모르는 이 내용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제 정령 친화력은 말이 되나요?”

하모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비올라의 ‘정령 친화력’ 역시 말이 안 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대의 상식으로 저를 판단하지 않기를 바라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올라는 상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빙의자’ 였으니까.

다만, 가이아에게는 저 말이 한없이 오만하게 들렸고 하모나에게는 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하모나에게 있어 비올라는 마치 신의 계시를 가지고 천상에서 내려온 신의 사자 같았다.

“그러는 영애는 어째서 내 왕관의 권능이 끝나간다고 판단하죠?”

“왜 인간을 싫어하는 당신이 엘바토 영감과 친구가 되었죠?”

“그건…….”

“엘바토 영감이 기적의 신관이니까.”

하모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비올라의 말이 맞았다.

지금이야 뜻이 맞는 친구가 되었다.

지만 처음 그를 엘프들의 숲 카레나에 들였던 것은, 그가 ‘기적의 신관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힘으로 월계관의 권능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제 말이 틀렸나요?”

*** 소설 〈벨라투의 그림자> 속에서 본래 ‘엘프들의 숲’은 비올라에 의해 점령당하는 곳이다.

정확히 말하면 비올라가 이곳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 이유는 이곳에 ‘에바토 영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올라는 메데이아를 죽였지만, 한편으로는 또 메데이아를 두려워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언니가 살아 돌아온다면, 일이 피곤해져.’ 분명히 메데이아는 죽었다.

비올라는 그녀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그녀는 혹시 모를 기적조차 제거하기로 하였다. 혹시라도 엘바토가 기적을 일으킬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비올라가 메데이아를 얼마나 신경쓰고 있는지가 드러났던 대목이다. 「“당신이 기적을 일으키는 신관이라지? 나는 당신의 기적을 원하지 않아.

그러니 죽어.」 비올라는 에바토 영감마저 죽인 이후 ‘엘프들의 숲’을 모조리 불태웠다. 그 과정에서 하모나는 의연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어차피 카레나의 봄을 질 예정이었어.”

“당신 때문에 겨울이 조금 빨리 찾아왔을 뿐”

하모나는 유언을 남겼다.

「“기적의 권능이 빛을 잃어 카레나의 봄은 지고 겨울이 찾아오리라. 그때 한 아이가 있어 슬피 울며 기적을 노래하나 봄은 가고, 겨울이 찾아올 새에 깊은 흑암이 드리워 카레나의 모든 잎이 땅에 떨어져 썩고 월계관도 썩어 없어 지나 언젠가 봄이 도래하여 새로운 꽃을 피우리라.”」

여왕의 장송곡이었다.

* * *

비올라와 하모나의 대화를 들으며 가이아는 본의 아니게 반성했다.

‘아, 나는 여태껏 뭐 하고 살았냐?’

빙의자 앞에서 정보단체의 수장은 한없이 작아졌다. 비올라의 모든 말이 가이아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비올라가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여왕께 제시한 것은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고, 계속해서 생성되는 마거리트 꽃밭이에요.

제 소중한 사람이 선물해 준 이 반지가 그대의 왕관보다 가치가 떨어 지나요?” 하모나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비올라의 말이 모두 다 맞았다.

“잘 생각하세요. 제 반지 안에 담긴 세계가 이미 기적을 증명하고 있잖아요.”

생명수 아레나를 머금은 마거리트꽃밭은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햇빛도 토양도 없는 그곳에서 무한히 생성되는 중이다.

이 힘이 과연 엘프들의 숲에도 적용이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기적의 증거임에는 틀림없었다.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해요.”

“ “많이 못 드려요. 저도 마음이 조급하니까.”

* * * 결국 하모나는 비올라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생명이 다한 월계관을 건네주고 비올라의 반지를 받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안 돼!”

퐁퐁이가 울기 시작했다. 마치 이 주변에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내가 물 준 아이들이란 말이야.”

퐁퐁이는 펑펑 울며 결사반대를 외쳤다. 비올라가 단호히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어어 어어!”

“비첸을 살려야 해.”

“내가 비올라한테 준 첫 선물이잖아! 그걸 어떻게 다른 애한테 줘?

안 돼! 절대 안 돼!”

퐁퐁이가 타협안을 제시했다. “어쨌든 아레나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 그렇지?”

비올라가 하모나를 쳐다보자 하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모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 숲에 생명의 힘을 더해줄 기적이다.

그것이 아레나를 머금은 마거리트가 되었든, 아니면 진짜 아레나가 되었든 상관없었다. 하모나에게 중요한 건 숲의 봄을 유지하는 거니까.

“내가 가져올게! 아레나!”

퐁퐁이는 곧바로 정령계로 돌아가 난장을 피웠다. 또다시 아레나를 가져가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베론, 그건 안 될 말이구나.”

물의 정령왕 웨일이었다. 그는 퐁퐁이를 부를 때 보통 퐁퐁이라 불렀는데, 퐁퐁이가 그 이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베론이라 불렀다. 켈-베론.

퐁퐁이의 정령명을 불렀다는 건, 웨일도 진지하다는 뜻이다.

“법칙을 어길 수는 없어. 저번에 이미 한계치 이상으로 아레나를 반출했잖니?”

“원래 어기라고 있는 게 법칙이잖아요.”

“억지는 그만 부리렴. 떼를 쓴다고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지는 않아.”

“제가 억지로 가져가겠다면요?”

“억지로 정령문을 통과하면 네 몸이 부서질 거야.”

그것은 곧 소멸. 영원한 죽음을 뜻했다.

퐁퐁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럼 어떡해요? 비올라가 울고 있단 말이에요.”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게 없으면 비올라는 지금처럼 강하지 않아요.”

아레나를 머금은 반지 덕택에 지금 같은 정령력을 부릴 수 있었고, 물의 장막을 펼칠 수 있었으며, 초검의 성취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그런데?”

“비올라 주변은 위험하단 말이에요.”

이번에 비첸이 나타났을 때도 위험했다. 만약 ‘물의 장막이 없었다면 비올라는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비올라에게는 반지가 꼭 필요해요.”

“베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어.”

아레나를 포기하고 반지를 넘겨주든. 반지를 포기하고 아레나를 넘겨주든.

둘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저는 법칙을 어길 거예요!”

법칙을 어기면 퐁퐁이는 부서지게 될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니?”

“비올라가 행복하면 좋겠으니까요.”

“왜?”

“비올라는 제 계약자잖아요.”

켈-베론은 태어나면서부터 배척을 당했다.

‘베론이라는 이름이 너무 불길한데.’

‘베론은 악마들의 이름이잖아.’

‘켈의 성과 베론의 이름을 이은 정령이라니?’

‘끔찍한 피의 정령왕이 되는 거 아니야?’

정령문을 통과하여 정령계를 빠져나갈 때 그 어떤 정령도 켈베론을 붙잡아주지 않았었다. 켈베론은 슬프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슬펐다.

정령문을 통과해 비올라와 만났을 때, 비올라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당연하지. 난 켈베론을 종아해.

‘왜, 왜?’

좋아하면 안 돼?’ ‘나, 나는 네 약점을 파고들어 공격하려 했는걸?”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비올라는 저를 미워하지 않았어요.”

비올라는 켈-베론에게 이름도 주었다.

우스꽝스럽기는 해도 더 이상 불길한 이름은 아니었다.

“저한테 퐁퐁이라는 이름도 주었어요.”

“처음에는 무척이나 싫어했었지.”

“우리는 같이 꽃밭도 가꾸었어요.”

“......”

“비올라는 제 친구예요.”

그래서 퐁퐁이는 비올라를 위해 법칙을 이기기로 했다. “비올라는 뛰어난 정령술사니까 제가 아니어도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퐁퐁이는 아레나가 가득한 호수에 풍덩 뛰어들어 꿀꺽꿀꺽 아레나를 마셨다. 반지는 다시 만들 수 없지만 정령계약은 다시 할 수 있다.

반지를 대체할 수 있는 반지는 없지만, 퐁퐁이를 대체할 물의 정령은 많았다.

퐁퐁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친구들아. 혹시 나를 대신하여 비올라와 계약하게 된다면 꼭 비올라와 친하게 지내줘야 해. 알겠지?”

준비는 끝났다. 이제 이 아레나를 비올라에게 전해주면 되었다.

“켈-베론, 나의 아이야. 한 가지는 기억하렴. 반지를 대체할 수 있는 반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퐁퐁이를 대체할 퐁퐁이도 없단다.”

·네?” “퐁퐁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퐁퐁이니까.”

이상했다. 퐁퐁이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강대한 정령력이 퐁퐁이의 몸을 옮아맸다.

“너도 소중한 아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오늘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꼭 기억하렴.”

“정령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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