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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67화 (167/201)

고저 없는 목소리였다.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67화

헤론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크게 눈을 뜨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기적의 신관 엘바토.

벽면을 따라 시선을 옆으로 돌려보니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아이가 보였다.

헤론은 성큼성큼 걸어 비올라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 아버지?”

비올라는 얼떨떨한 상태로 헤론의 심장박동을 느꼈다. 쿵! 쿵!

심장이 크게 뛰고 있었다.

몸에서는 화한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몸이 간헐적으로 떨렸다.

호흡, 맥박, 표정, 열기.

비언어적인 모든 언어가 비올라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다. 필사적이고 애타는 표현들이 느껴졌다. 비올라는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려 헤론을 안아주었다.

“저 괜찮아요.”

“걱정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겨울성에서는 참사가 벌어졌고 비첸이 오염되어 겨울성 밖으로 뛰쳐 나갔으니.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네 잘못이 아니니 네가 미안할 필요는 없다.”

헤론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라엘을 잃은 이후로 단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헤론 스스로도 놀랐다.

‘내가…….’

울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사내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렇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울어요?”

“그래.”

헤론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의 순간을 인정하고 받아 들였다. “왜 울어요?”

“두려웠기 때문이다.”

“무엇이요?”

“혹여 너를 잃을 것이.”

그는 이미 소중한 사람을 잃은 기억이 있었다. 헤론은 그 기억이 너무 두려워 20년 동안 도망쳤다.

20년의 세월은 그를 천살이라 불리는 괴물로 만들었다.

그는 감정이 없는 괴물이 되었다. 혈육 간의 살육 경쟁조차 장려하며 오로지 강한 겨울성을 만드는 것에만 몰두했다.

그것이 그의 도망이었다. “위험하기는 했어요. 비첸은 괴물이 되어 나타났고, 제 옆의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죽었을지도 몰라요.”

원작 〈벨라투의 그림자> 속 비올라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아마 몰래 칼을 빼 들어 헤론을 찔렀을 거고, 헤론은 여유롭게 막아내며 칭찬했겠지.

그러나 지금의 비올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엘바토 영감은 기적이 임했다고 말해주었어요.”

실제로 기적이 벌어졌다. ‘선생님, 아빠는 언제 저 데리러 와요?”

백 밤이 지나면 데리러 온다고 했었다. 이제야 데리러 왔다.

백 밤쯤은 훨씬 지나서..

“아버지가 지금 제 앞에 있는 것이 기적 같아요.”

많이 늦었지만 더 멋진 모습으로, 헤론이 비올라를 조금 더 꽉 끌어 안았다. “매일이 너의 기적이 될 것이다.”

“고마워요.”

비올라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20년 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헤론의 눈물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제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헤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비올라의 말이 헤론을 감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렸다.

라엘을 잃고 혼자 묵묵히 살아내던 삶의 벽을 비올라가 부있다.

이미 균열이 가득했던 그의 방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헤론은 비올라의 기적이 되어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네가 나의 기적이다.”

저 낯간지러운 말이 비올라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이 세계는 그런 세계였다. 비웃음은 간절함이 되고, 낯간지러움이 진심이 되는 세계.

비올라는 문득 비첸의 존재를 떠올렸다.

‘비첸은?’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히, 아부지, 나도 안아줘요.”

비첸의 목소리였다. 비첸이 폴짝 뛰어올랐다.

그 모습은 마치 살쾡이처럼 날쌌으나 헤론은 어렵지 않게 오른팔로 그를 안아 들었다. 왼팔로는 비올라를, 오른팔로는 비첸을 안았다.

“우와, 나도 아부지한테 안겼다!”

비첸은 제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전혀 기억조차 못 하는 듯했다. 혹은 지금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처음이당.”

힘을 꽉 주어 제 아버지를 안아보았다. 생경한 경험이었다.

“나도, 안길 수, 있.”

비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비첸은 여전히 헤론보다는 많이 작았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울면 안 돼.’

그건 겨울성의 5공자답지 않은 모양새였다. “아부지한테 안, 겼, 다!!!”

비첸은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나는, 안, 슬퍼!”

사랑받기 위해서는 강한 포식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교육받았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해 왔고 지금에 이르렀다. “안아주니까 좋아요, 아부지.”

비첸의 목소리에는 애교가 듬뿍 묻어나 있었다. 큰 눈에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 내렸다.

헤론은 비첸을 가만히 안고 서 있었다.

이 기묘하고 이상한 기분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 ‘내 지난 20년은 어땠는가.”

부끄럽지 않은 20년이었다. 그가 다스린 겨울성은 전에 없이 강한 전력을 지니고 있었고, ‘눈이 부는 곳’으로부터 인류를 지켜내는 최강의 방패로 군림했다. 그의 삶은 충분히 명예로웠다. 그러나. ‘아름답지는 못하였다.

비올라와 비첸의 몸은 작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작은 아이들이었다.

‘그랬다.

그걸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이 아름다웠으니까. 헤론 공작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나의 삶의 한 페이지가 조금은 아름답게 채워지고 있구나.

그러나 나의 삶이 아름다워도 되는 것인가.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조차 지키지 못한 무능한 인간인데. 내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허락되었는가.’

아무도 허락해 주지 않았다. 조금은 행복한 것 같은 이 기분이 두려웠다.

자격 없는 자가 누릴 수 없는 것을 탐하는 기분이었다.

비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비올라는 헤론 그 자신보다도 더 헤론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행복해도 돼요. 누군가는 아빠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랐어요.”

진안을 쓰지 않아도 비올라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저 진심이 아주 오래된 진심이라는 것도 느꼈다. “언제부터?”

“아주 오래전부터요.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헤론은 아린의 최애캐였다. 아린은 헤론을 보며 많은 시간을 울고 웃었다.

소설 속 비올라가 헤론을 죽인 그 순간, 아린은 정말 많이도 울었다.

“자격 같은 거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어리석으리만치 우직한 나의 아버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격을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아내를 살리지 못한 죗값을, 그리고 아내와 함께 죽지 못한 벌을 아직도 달게 받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곳은 작가의 세계가 아니라 비올라의 세계였다. 비올라가 말했다.

“아빠가 행복하길 원해요, 제가.”

무너졌던 헤론의 세계가 다시 소생하기 시작했다. 환청이 들려왔다.

“기적의 권능이 여왕의 왕관에 임하니.”

“언젠가 봄이 도래하여 새로운 꽃을 피우리라.”

*** 툰드라는 정신을 차렸다.

이질적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비첸 공자는 살아났고, 헤론 공작님이 나타났다.

그리고 헤론이 둘을 안고 있었다. 툰드라는 잠자코 셋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눈에는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헤론 공작님의 몸에…….’

비첸의 몸을 옭아매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두껍고 단단한 쇠사슬이 매어져 있었다. 그 어떤 검으로도 감히 잘라낼 수 없을 만큼 두터운 쇠사슬이었다. ‘그 쇠사슬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봄바람에 눈이 녹듯.

봄이 오고 있었다.

“매일이 너의 기적이 될 것이다.”

헤론이 그렇게 말했을 때, 많은 쇠사슬이 녹아내렸다. “안아주니까 좋아요, 아부지.”

또다시 많은 쇠사슬이 무너졌다. “제가 아빠가 행복하길 원해요.”

툰드라의 눈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이 보였다.

헤론을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쇠사슬이 부서지고 소멸했다.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비첸도 마찬가지였다.

비첸의 몸을 옭아맨 모든 제약이 사라져 버렸다.

기적의 신관 엘바토는 입을 쩍-벌리고 툰드라를 바라보았다.

툰드라의 눈이 황금색으로 물든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었다.

물의 마술사 라엘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가짜야.’

라엘은 기적의 신관 엘바토를 부정했다. ‘당신은 기적의 신관이라 불릴 자격이 없어. 그저 신의 힘을 빌려 기적을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하지.”

당시, 엘바토는 몹시 화가 났지만 시한부 여자의 히스테리라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진짜 기적’이 필요해. 신의 뜻을 거역하여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진짜 기적의 사람.’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이오?’

‘글쎄, 하지만 보면 바로 알 수 있어. 당신은 신관이잖아.’

모두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무슨 소리를 하든 내가 참아야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알겠다.”

라엘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툰드라의 금안(金眼)을 보니 알 것 같았다.

‘신의 뜻을 거역할 수 있는 힘. 나아가 신의 뜻을 새로이 세울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툰드라였다. ‘그러나 툰드라 혼자만 있어서는 안 돼.’

툰드라가 기적의 힘을 세우기 위하여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있었다. 엘바토의 시선이 비올라에 닿았다.

‘비올라 공녀다.

비올라 공녀가 있을 때 툰드라가 비로소 빛날 수 있었다.

비올라의 간절함이 곧 툰드라의 간절함이었고, 그것이 기적의 형태로 일어났다.

‘대륙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구나.’

봄이 왔다. 본래 그는 삶에 미련이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예정한 신의 뜻에 거역 한 번 못하는 머저리이니, 그냥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죽고 싶지 않아졌다.

비올라와 툰드라를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신의 의지가 무너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내 눈으로 더 담아야겠다.

그는 앞으로도 이 기적을 경험하고 싶었다. ‘겨울성으로 가야겠어.’

엘바토는 겨울성에 몸을 의탁하기로 결정했다. 헤론 공작을 위시한 비올라 일행은 엘프들의 숲을 떠났다.

수천의 엘프들이 입구까지 모두 나와 비올라에게 무릎을 꿇었다.

하모나 역시 무릎을 꿇었다.

“기적을 하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퐁퐁이가 한 거야, 내가 한 게 아니라.”

하모나는 비올라가 겸손한 왕이라고 생각하였다. “카레나의 중앙수에 맹세합니다.

카레나의 지배자인 저와 이곳에 숨쉬는 모든 것은 당신의 명에 따를 것입니다.”

거기까진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거기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저의 여왕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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