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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68화 (168/201)

.. …예?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68화

비올라는 순간 당황했다.

‘여왕…… 이요?’

‘여왕’이라는 말이 엘프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경외하는 말인 건 알겠다. 엘프들이 비올라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호감을 넘어 신앙심까지 담겨 있었다.

‘그렇다고 그게 뭐냐고 캐묻기도 좀….’

아니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고. 분위기가 영 그랬다.

“하모나는 일어나세요. 여왕은 당신입니다.”

“그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받들겠습니다.”

비올라는 부담스러워 죽을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최대한 자연스레 마차에 올라탈 준비를 했다.

“비올라! 마차에 나도 태워주지 않겠는가!”

말투가 묘하게 달라진 엘바토 영감이 짐을 꾸려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배낭이 어찌나 큰지 엘바토 영감의 다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제논, 도와드려.”

“알겠습니다.”

제논이 다가가 배낭을 받고서 아공간에 쏙 넣었다. “나도 마법을 배우든가 해야지. 아이고, 허리야.”

하모나가 인상을 찡그렸다. “영감탱이. 신관이 마법을 배운다니? 마법은 신의 뜻을 거역하고 인간이 주제넘게 마나를 다스리는 불경한 행위잖아?”

기본적으로 신관들이 마법사를 대하는 자세는 그러했다. 당연히 마법사들도 신관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난 퇴역 신관이라 괜찮아.”

신의 뜻은 이미 진작에 아작 냈다. “할망구도 잘 있으라고.”

“진짜 가려고?”

하모나의 눈동자에 쓸쓸함이 담겼다. “진짜 가야지, 그럼.”

“왜 다 늙어가는 몸뚱이로 생고생을 하려그래?”

엘프들의 숲에 있으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엘바토는 굳이 겨울성으로 가겠다고 했다. “겨울성에 가면 내게도 기적이 있을 듯하다.”

엘바토의 오른손에는 여전히 희미한 빛을 내는 월계관이 들려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바토 영감! 내 팔이 박살 났을 때는 치료도 안 해주더니!”

“카이저냐?”

“그때 고쳐줬으면 지금보다 근육이 더 컸을 텐데.”

“아서라. 지금보다 더 커지면 넌 인간이 아니라 고릴라야.”

“오, 그거 좋은데?”

“정신 차려. 넌 인간이야.”

“아무튼. 그때 고쳐줬으면 좀 좋아? 이제 와서 뭘 하려고?”

“그래서? 내가 겨울성으로 가는 것이 싫으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카이저가 크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영감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인 이유가 따로 있겠지?”

카이저의 눈이 엘바토가 들고 있는 월계관에 향해 있었다. 엘바토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다.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구나.”

*** 카이저는 나비를 향해 쿵쾅쿵쾅 뛰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코뿔소 같았다. “나비야아아아아!”

나비는 카이저를 슬쩍 피해 힉슨의 품에 안겼다. 카이저의 붉은 머리카락이 파르르떨렸다.

“나비, 이 배신자!”

카이저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비는 힉슨의 품에서 냐앙- 하고 하품을 하고 있었다. “흐흐. 내가 이겼다, 근육 돼지.”

“영원히 네가 승자라고 생각하지 마.”

“분하냐?”

“안 분하지 않다!”

“분하다는 거네.”

“젠장!”

힉슨과의 결투(?)에서 패한 카이저는 아기 사슴 용병대를 이끌고 엘프들의 숲을 빠져나갔다. 비올라가 말했다.

“제논, 네가 따라붙어.”

“저는 당신의 집사입니다.”

제논도 사실 비올라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기 사슴 용병대는 자유로운 용병들이잖아. 분명 뿔뿔이 흩어질 거야. 그런데 카이저는 엄청난 길치라고, 겨울성 남문의 수비대장이 자리를 오래 비우면 되겠어?”

명을 받듭니다.” 헤론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제논, 네 마음을 이해하겠다.’

평소였다면 제논을 질책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제논에게 실망했을 수도 있다. 공녀가 내린 명령에 토를 달며 이 행하지 않았으니까.

반박하려면 논리적이고 합당한 근거를 들었어야 했다.

엘바토가 마차의 창문 밖으로 크게 외쳤다.

“내 속옷도 배낭에 들어 있으니 너무 늦지 않도록 해라!”

먼발치서 하모나는 저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 “영감탱이,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걸 보니 갈 날은 아직 멀었구나.”

그녀의 눈이 조금 붉었다. 비올라 일행은 길을 떠났다.

비첸은 헤론의 팔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었고 에바토 영감도 꾸벅꾸벅 졸았다.

비올라와 마주 앉은 헤론이 물었다.

“정말로 반지를 주려고 했느냐?”

“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헤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올라의 말이 맞았다.

비첸의 살리기 위해서 반지를 선물해야 했다면 분명 가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네 정령이 카레나의 멸망을 막았구나.”

“.......”

비올라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온화하고 따스하고 잘생긴 얼굴과는 대비되는 끔찍한 내용에, 비올라는 이곳이 〈벨라투의 그림자〉속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퐁퐁이가 이상해요.”

“무엇이?”

“제가 불러도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퐁퐁이는 펑펑 운 뒤, 모습을 감추었고, 비올라의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제가 위험 빠져야 할까봐요.”

위기에 빠진 뒤 부르면 퐁퐁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농담으로 한 말인데 주변의 마나가 동결되었다.

말하자면 이 주변의 세계가 겁을 집어먹었다.

“노, 농담이에요.”

“농담이 지나치게 살벌하였구나.”

아니, 아빠가 훨씬 더 살벌한데요. 비올라는 크흠,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퐁퐁이는 왜 그럴까요?”

“아레나를 또다시 반출하기 위하여 그들의 법을 어겼을 것이다.”

〈벨라투의 그림자> 속에 정령들에 관해서는 자세히 서술되지 않았다. 비올라도 모르는 정보였다.

“본신의 소멸, 혹은 그에 준하는 소중한 것을 내놓았을 것이다.”

“몰랐어요.”

“그러나 너를 위해 그것을 선택하였으니 마음이 정돈되면 금방 모습을 드러내겠지. 나타나면 위로해 주거라.”

“네?”

‘방금 아버지치고 너무 따뜻한 말이었는데?’ 비올라가 헤론을 빤히 쳐다보자 헤론은 딸의 시선을 피했다.

본래 <벨라투의 그림자> 속 헤론은 누군가의 눈빛을 피한 적이 없던 인물이다. “물론 너는 그러한 섬김을 받기에 충분한 권리가 있는 뛰어난 아이지만.”

“그런 말을 어떻게 그렇게 진지하게 할 수 있어요?”

“여왕 아니더냐?”

“예?”

비올라는 황당해서 헤론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방금 농담하신 거죠?”

“그래.”

“농담을 좀 웃으면서 해주세요. 웃으면 더 잘생겼단 말이에요.”

“안 웃어도 잘생겼다.”

“농담은 웃으면서 하라니까요.”

19 헤론의 침묵에 비올라는 할 말을 잃었다. 잘생겼다는 건 농담이 아닌 모양이었다.

‘뭔가 많이 변하긴 했는데.”

그것이 너무 좋기는 한데. 생각보다 좀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하고, 슬쩍 눈치를 보고 운을 떼보았다.

“뿌?”

19 헤론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렵한 턱선이 바람마저 예리하게 갈라놓을 것만 같았다.

“빠?”

헤론은 시선을 이쪽으로 주지 않았다. “삐?”

“뽀?”

원래 이러면 로판 속 아버지들은 정신을 못 차리던데. 그러나 헤론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역시 어림도 없나 보다.

비올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마차 밖, 셰일란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세르핌 나무에 꽃이 핀다?’

세르핌 나무는 1년에 한 번만 꽃을 피우는 나무였다. 운이 좋아도 2주 이상은 구경할 수 없는 분홍빛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초검을 다루는 셰일란은 이 상황을 기적으로 받아들였다. 세르핌 꽃이 필 때가 한참 지났다.

‘무슨 영향을 받아서?’

셰일란은 비올라의 생검을 직접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상태. ‘이 역시 생검의 묘리와 비슷한 기운이야.’

여전히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헤론 공작으로부터 기이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후, 세르핌꽃이 피었다.

‘의도한 건가?’

의도한 건 아니었다. 비올라의 ‘뿌빠삐뽀’는 대륙에 봄을 불어왔다.

‘근데 세르핌꽃은 원래 분홍색이잖아?’

꽃이 보라색이었다. 마치 비올라의 초검처럼.

셰일란은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하모나의 계시를 읊었다.

“언젠가 봄이 도래하여 새로운 꽃을 피우리라.”

그리고 옆에 앉은 힉슨은 제길, 하고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고릴라한텐 이겼지만 헤론한테 졌구나.’

그의 품 안에는 나비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 * *

겨울성에 커다란 변화가 벌어졌다.

이사벨라는 대외적으로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다.

2공자는 대마물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엘바토 영감이 겨울성에 자리를 잡았다. 소식지 기자들은 퇴역한 ‘기적의 신관’을 찾아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종려나무 지팡이에 얻어맞고 쫓겨났다.

“썩 꺼지거라! 인터뷰 따위에 응할 생각은 없으니.”

그렇지만 가이아의 정보원마저 쫓아낼 수는 없었다. 가이아의 정보원은 엘바토에게 몇몇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들은 얘기는 충격적이었고, 가이아도 깜짝 놀랐다. “신관을 양성한다고?”

“분명 그렇게 들었습니다.”

“신관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거잖아.”

신성력은 타고난다. 신의 뜻을 이어받은 자들만이 신성력을 다룰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수가 아주 적었다. “하모나의 왕관을 이용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나 봅니다.”

“그 안에 담긴 기적의 권능으로?”

“예.”

가이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근데 인위적으로 신관을 양성하는 건…… 신성모독 아냐?”

“그래서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한테는 얘기를 해줬다?”

가이아는 씨익 웃었다. 이쪽에만 정보를 주었다.

“밥값 하라는 얘기지?”

언젠가 엘바토가 하려는 행위는 세상에 알려지게 될 거다. “밥값…… 말입니까?”

“시간을 끌어달라는 얘기지. 적절히 정보를 교란시켜.”

“알겠습니다. 그런데 셀리나 대신 님 쪽은 어떻게 할까요?”

“그쪽에는 거짓말 못 해.”

먼저 가서 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셀리나가 묻는다면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엘바토 영감도 그 정도는 알고 정보를 줬을 거야.”

한편, 비올라는 겨울성에 돌아와 나름대로 평안한 일상을 보냈다. 삶 자체는 평화로웠지만 머릿속까지 안녕했던 건 아니었다.

‘이사벨라 부인과 2공자가 죽었어.

비첸도 죽을 뻔했고.’

이제 열풍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열풍의 일도 여러 차례 방해했으니, 열풍도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겠지. ‘평화롭고 행복한 독립은 멀어졌네.’

비올라는 직감했다. 열풍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두렵지는 않았다. ‘원작 속 비올라도 혼자서 이겨냈어.’

그때의 비올라는 혼자였다. 그러나 지금의 비올라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겨낼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황실 기사단 중 최고의 정예라 불리는 ‘태양 기사단’이 겨울성 남문근처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제논 덕택에 길을 헤매지 않았던 카이저는 코를 후볐다.

“통행 허가도 없이 중무장한 기사단을 끌고 와? 제㉮ 것들이 황실기사단이면 다냐? 못 들여보낸다 그래.”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꼬우면 뜨자고 전해.”

“아무래도 그게 좀 힘들 거 같습니다.”

“왜? 걔네 대장이 뭐 황제의 명령서라도 갖고 왔대?”

“그게….”

황제의 명령서는 없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라. 모나크의 태양께서 임하셨다.”

황제가 직접 찾아왔다. 중무장한 태양 기사들을 이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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