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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92화 (192/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92화

비올라는 툰드라를 힐끗 바라보았다.

“참, 잘생겼단 말이야.”

툰드라는 멈칫하고서 비올라를 바라보았다. 그는 비올라가 변한 것을 눈치챘다. ‘내가 아는 공녀님이 아니야.’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처음 비올라를 만났을 때, 비올라의 사나운 모습은 진짜 비올라가 아니었다.

툰드라의 기준에서, 지금의 비올라는 진짜 비올라라고 할 수 없었다.

비올라는 입술을 말아 올리고 웃었다.

“죽일 수 없는 걸 죽일 수 있는 걸까?”

비올라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내 그녀의 눈에서 피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녀의 몸에 내재된 살성(殺星)이 그녀의 몸에 무리를 일으킬 만큼 강제로 활성화되었다. 바하카룬이 말했다.

“글쎄, 한번 해보거라. 기회를 줄테니.”

바하카룬의 목소리에는 묘한 기대마저 서려 있었다. 마치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좋아.”

비올라는 단도를 들어 올려 공간을 찍었다. 비올라의 단도 끝이 까만색으로 물들었다.

툰드라가 보여준 소멸의 경지가 비올라의 단도 끝에도 머물렀다.

비올라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헤헤.”

그녀의 얼굴에 광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허공을 여러 번 찔렀다.

“무엇인가가 손에 닿는 느낌이 좋네.”

“나도 그러하구나.”

바하카룬은 낮은 목소리로 작게 웃었다. 공간 전체가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이것이 고통이라는 것인가?”

바하카룬도 고통을 느끼는 듯했다. 그래서 행복한 것 같았다. “나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인가?”

“아파?”

“아프구나.”

바하카룬은 처음 느껴보는 ‘통증’

에 몹시 기뻤다. “나를 더 찔러다오.”

“원한다면.”

비올라가 미소가 짙어졌다. 그리고 눈뿐만 아니라 귀에서도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툰드라는 직감했다.

‘막아야 해.’

이대로면, ‘저 가짜 비올라가 내 진짜 비올라 공녀님을 잡아먹을 거야.’

지금은 살성이 폭주한 상태였다. 몸 안에 내재된 특성인 살성에 의하여 정신과 신체가 잡아먹힌 상태.

“비올라.”

비올라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의 비올라는 공녀님이 아니므로,툰드라가 비올라의 단도를 막아냈다.

비올라를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툰드라를 바라보았다.

“막지 마.”

“공녀님은 나의 공녀님이다. 너 따위가 잡아먹을 수 없어.”

비올라가 싱긋 웃었다. 그리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비올라야, 툰드라, 정신 차려.”

툰드라는 그 목소리에 움찔했고, ,비올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툰드라의 몸으로 파고들어 툰드라를 찔렀다.

툰드라가 황급히 피했다.

툰드라의 왼팔이 단도에 찔렸다.

‘위험했어.’

툰드라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왼팔의 상태를 점검했다. 피가 많이 나기는 했으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중상은 아니었다.

“아쉽네. 심장을 노렸는데.”

바하카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언제 찔러줄 것이냐?”

“찌를 거야. 기다려.”

비올라는 문득 짜증이 치밀어 오른 듯했다. “방해하지 마. 죽일 거니까.”

“아니.”

툰드라가 비올라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검끝이 비올라의 목을 향했다. “넌 공녀님을 지배할 수 없어.”

살성을 막아야 한다. 살성은 파괴하고 죽이는 힘이다.

저 힘은 비올라 자신도 그렇게 만들 것이다.

비올라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그 검으로 날 막으시겠다?”

비올라는 툰드라의 검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툰드라를 향해 걸어왔다.

낄낄대며 주변을 찌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하카룬은 즐거워했다.

“황홀하구나, 이 고통이.”

한편, 셀빈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올라와 툰드라를 바라보았다. 셀빈도 비올라가 평소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 언니도 멋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비올라 언니가 더 멋있어.”

단순히 무력의 강함만 놓고 보자면 지금의 비올라가 더 강할지도 모른다. 살육에 대한 강력한 열망이 느껴졌다.

‘우리 언니는 부드러운데 강하니까.’

그리고 살성 따위에 잡아먹히지도 않으니까. 단순히 강한 사람이 강한 것이 아니다.

셀빈에게 있어서 ‘강함’의 기준은 본래의 비올라였다.

약자에게는 약할 줄 알고.

스스로의 힘을 감당할 수 있고, 살성 같은 것에 굴복하지도 않고.

내 손과 내 발과 내 의지로 세계에 저항할 수 있는 강인한 마음을 가졌고, 그러니까 나는 내 언니를 찾을 거야.’

셀빈은 툰드라를 향해 걸어가는 비올라 앞을 막아섰다. 비올라가 또 피식 웃었다.

“너도, 날 막게?”

“내 언니를 돌려줘.”

“내가 네 언니야.”

“아니야. 내가 아는 내 언니는, 훨씬 더 멋있고 훨씬 더 강해.”

“그 언니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지? 내가 아니었다면 너희는 모두 소멸했어. 바하카룬, 그렇지?”

세계의 어둠이 그 말에 동의라도 하듯 대답했다. “나를 좀 더 고통스럽게 해줘.”

그는 궁금했다. “나도 피가 날 수 있나?”

피가 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살아 있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무생명의 소멸은 가치 있지 않았다.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야말로 바하카룬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나는 살아본 적이 없으니 피를 흘려본 적도 없다.”

그렇다면, 피가 나면 살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떻게든 피를 내줄게. 조금만 기다려. 방해꾼들을 좀 치우고.”

“그렇다면 조금 더 기다리지. 기대하고 있겠다, 신의 뜻을 거역할 수 있는 아이야.”

바하카룬은 소멸을 잠시 멈추었다. 비올라는 셀빈 앞으로 걸어가 셀빈과 눈을 마주쳤다.

“셀빈.”

비올라의 목소리로 말했다. 셀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단순하긴.”

비올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셀빈의 복부를 찔렀다. ‘옛 무인들의 성지’에서 성장한 셀빈이었지만 지금은 너무 지친 상태였다. 그녀는 ‘용암 거인화’를 통하여 소멸의 힘을 오롯이 받아들인 상태.

그래서 비올라에게 잠깐의 틈을 보였고, 비올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네 피도 맛보고 싶지만, 아쉽네.”

비올라는 쓰러진 셀빈을 지나쳐 걸어갔다. 비올라도 시간이 많지 않음을 직감했다.

셀빈까지 죽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이 몸이 버텨줄 수 있을 때, 죽일수 없는 것을 죽여보고 싶었다. 비올라는 이윽고 툰드라 앞에 섰다.

“너도 비켜.”

툰드라의 검끝이 살살- 떨리고 있었다.

비올라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네 마음조차 다잡지 못한 상태로, 나를 찌를 수 있다?”

비올라는 툰드라를 비웃었다. 툰드라의 검을 슬쩍 치워내고 툰드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거봐. 못 찌르잖아.”

비올라는 단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가볍게 뛰어올라 툰드라의 목을 향해 단도를 휘둘렀다. 비올라는 순간, 깜짝 놀랐다.

‘뒤로 피할 줄 알았는데.’

툰드라는 뒤로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비올라를 꽉 껴안았다.

‘멍청한 놈.’

툰드라의 뒷목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비올라는 이번에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툰드라의 뒷목 부근을 찔렀다.

비올라가 하아~ 하고 가벼운 웃음소리를 내었다.

‘찔렀다.

그녀는 이 감각이 좋았다.

바하카룬이 소멸을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면, 자신은 이 감각을 즐기기 위해 태어난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툰드라의 몸이 힘없이 쓰러져 내렸다.

결국 툰드라는 비올라를 찌르지 못했고, 막지도 못했다.

“그럼 이제, 바하카룬, 너를 찔러볼게내 진심을 다해서.”

그런데 그때. 쓰러진 툰드라가 비올라의 발목을 잡았다.

“너는 나의 공녀님을 차지할 수 없어.”

“귀찮게 하기는.”

툰드라의 손목이 보였다. 저걸 잘라내면 이 귀찮음도 사라지 리라.

“꺼져.”

툰드라의 손목을 향해 단도를 휘둘렀다. 〈벨라투의 그림자〉 원작 속에서 툰드라는 비올라를 위하여 죽어준다.

비올라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준 뒤 비올라에게 찔려 죽는 장면이 존재했다.

그것이 작가가 설정한 ‘남주의 운명이었다. 그리고 아린은 그 운명을 또 보고야 말았다. ‘아니야.

원작 속 비올라의 검은 날카로웠고 살성은 어마어마한 살심을 품었다.

아린은 괴로웠다.

‘이거 아니야.”

내 손으로 툰드라를 죽일 수는 없었다. 이건 잘못되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너희는 여기서 다 죽어. 원작 속 비올라는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럴 거면, 내가 즐거움이라도 느끼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나는 나로 살 거야.’

-어차피 죽을 건데 그딴 게 뭐가 중요하지? 비올라는 아린에게 몸을 내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비올라는 순간순간을 즐겼다.

– 피 냄새. 살을 가르는 감각. 이 모든 것이 날 너무 즐겁게 해. 아린은 이를 악물었다.

몸의 지배력을 다시 찾아와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때, 쓰러진 툰드라가 비올라의 발목을 잡았다.

비올라는 귀찮다는 듯 그 손목을 잘라내려 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단도가 툰드라의 손목에 닿기 직전. 단도가 멈추었다.

“툰드라…….”

툰드라는 엉망진창인 얼굴로 비올라를 올려다보았다. “거봐. 넌 우리 공녀님을 못 이겨.”

툰드라는 웃었다. 내가 찔린다면, 내가 그렇게 된다.

면 우리 공녀님은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툰드라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 생각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돌아오셔서 기쁘네요, 공녀님.”

툰드라는 마지막까지 힘을 짜내었다. 비올라가 혹여 지나치게 놀랄까 싶어 최대한 눈을 떴다.

‘눈이 감겨.’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그러나 눈은 감지 않기로 했다. 눈을 크게 뜨고, 비올라가 어떻게 할지를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나는 죽겠지?’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비올라의 이름을 불러보기로 했다. 비올라가 들을 수 없을 만큼 아주 작게.

“비올라.”

비올라를 향해 진심을 말했다. “당신을 섬길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 목소리가 너무 작아 비올라에게 닿지는 못했다. 비올라에게는 다른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래서, 뭘, 어쩌려고? 그녀는 무척 화가 난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왜 내 마지막 즐거움을 뺏느냔 말이야! 바하카룬도 조금 실망한 것 같았다.

“그럼 이제는 나를 찌를 수 없는 건가?”

그는 더 이상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종장을 지을 차례인 것 같구나, 아이들아. 잠시나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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