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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200화 (200/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200화

군악대 행렬을 헤치고 거대한 마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백색의 거대한 마차였다.

그곳에서 누군가 내렸다.

이 마차는 마도 명장의 특수제작품으로서,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기도 했다. “언니…?”

침을 꿀꺽 삼켰다. 이 군악대에는 수많은 엘프도 함께였다. 그들은 그들의 신비한 악기인 ‘마리카 풀피리’를 불고 있었다. “이게 무슨 돈지…… 아니, 돈 난리야?”

이 군악대 행렬이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돈이 폭발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 행렬의 주인은, 그 폭발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가였다. 헤라였다.

“마중 나왔어. 내 마차로 가자.”

비올라는 얼떨결에 마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갑자기 공간이 확장되며 아주 넓고 편안한 방이 나타났다.

과연 마도 명장의 걸작다웠다.

“어때?”

“저택에 들어온 것 같네.”

안에는 두 사람이 눕기에 충분한 침대도 있었다. 헤라가 먼저 침대에 누운 뒤, 팔을 활짝 벌렸다.

“이리 와. 나 졸려.”

“응?”

“안아줄게.”

“갑자기?”

헤라가 킥, 웃었다. “어릴 때, 너랑 같이 자면 난 깊이 잠들 수 있었어.”

5년 전에는 그랬다. 헤라는 늘 그때를 그리워했다.

“너한테 안긴 기분이었거든.”

......” “이제는 내가 안아줘야겠네.”

훌쩍 성장한 헤라와 달리 비올라는 아직 작았다. 헤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이렇게 귀여웠어?”

예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느껴지는 존재감은 여전히 거대했으나, 지금의 눈으로 본 비올라는 작고 어렸다.

헤라가 누운 채 침대를 톡톡 두드렸다.

“여긴 조용하고, 아무도 방해할 사람 없어. 이리 와. 집에 도착하면 깨워줄게.”

안 그래도 퐁퐁이와 비첸 때문에 피곤했던 비올라는 침대에 누웠다. 마차 안에 이토록 안락한 침대라니.

참 좋은 세상이야.

헤라는 다시 한번 킥, 웃고서 비올라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비올라는 금세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헤라는 한참이나 잠든 비올라를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내가 이랬었는데.”

비올라와 함께 있을 때 깊이 잘수 있었는데.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

비올라가 평안히 자는 모습을 지켜주기로 했다.

“내가 네 언니니까.”

마차는 마치 물 위에 뜬 요트처럼 편안하게 달렸다. 한참 동안 달렸다.

비올라가 눈을 떴고, 그때까지도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헤라를 발견했다.

“언니, 안 잤어?”

“나도 방금 깼어.”

“뭐 하고 있는데?”

“네가 귀여워서 보고 있었어.”

헤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많은 신관이 양성되면서 헤라에게도 기적이 일어났다.

매일 일정량의 신성력을 흡수하면, 일정 시간 동안은 걸을 수 있었다.

“네가 탔던 위치 기억하지?”

“기억하지.”

헤라는 한쪽 벽면으로 걸어가 책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지도책이었다.

책을 펼치자 커다란 마법 영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지도였다.

이곳이 ‘마차 안 이라는 것을 잊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거기가 여기야.”

헤라가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짚었다. 그곳에 빨간 점이 표시되었다.

“여기서.”

손가락으로 다른 지점을 또 짚었다. 그곳에 빨간 점이 또 표시되었다.

“여기까지가 내 땅이야.”

비올라는 두 눈을 끔뻑거렸다. 헤라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네가 누워 있던 5년 동안, 나는 필사적이었어. 네가 깨어나면, 네게 은혜를 갚아야지. 우리를 위해 희생한 너를 위해 살아야지.’

헤라가 생각하기에 비올라가 가장 원했던 것은 겨울성이었다. 비올라는 겨울성의 지배자가 되기에 한 점 부족함이 없는 아이였다.

그래서 말했다. “그리고 네 것이기도 하지.”

킥, 웃었다.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네 원대한 꿈과 함께 호흡할 수 있음이 기뻐.”

비올라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런 원대한 꿈이 없다고 말하면 대참사가 벌어질 것 같았다. *

겨울성 남문 앞.

겨울성에는 수많은 사람이 매일 같이 찾아들었다.

용병왕 카이저는 과한 업무량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목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남문 아래쪽.

평야 지대에 쩌렁쩌렁 울렸다.

“선물 그만!”

그놈의 특사니. 사절단이니.

비올라를 향한 선물이니..

‘어우, 귀찮아 죽겠네.’

매일같이 몰려드는 인파에 카이저는 진지하게 남문 수비대장을 때려 치울까 고민했다. “야, 힉슨, 쟤네 그냥 다 패버리면 안 되냐?”

“그럼 비올라가 싫어할걸?”

“끄응.”

그런데 저 멀리서 군악대 소리가 들려왔다.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것이 영 심상치 않았다.

“저건 또 뭐냐?”

저렇게 큰 규모의 행렬이면 일단 검열부터 까다롭다. 신경 써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카이저는 인상부터 찡그렸다.

“안 되겠다. 저 정도 규모는 쫓아내야겠어.”

그런데 알고 보니, “뭐? 안에 비올라가 타고 있다고?”

‘테라 그룹’이 이끄는 군악대란다. 비올라를 위한 행렬이었다.

카이저는 성벽 위에서 뛰어내렸다.

입성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카이저는 그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달려갔다.

“비올라!”

그 옆에 또 다른 코뿔소 한 마리가 뛰었다. 힉슨이었다.

‘옛 무인들의 성지’에서도 그랬듯, 달리기는 힉슨이 더 빨랐다. 성벽 위, 겨울성의 전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기 봐. 발자국 패였어.”

성벽 위에서 뛰어내린 두 마리의 코끼리가 거대한 구덩이 두 개를 파놓았다. “저거 또 언제 삽질해서 다 메꾸냐?”

“얼른 삽 챙겨서 나가자! 공녀님 오신다!”

삽질은 싫었지만, 비올라를 위한 삽질은 괜찮았다. 다행히 근처에 엘시나가 있었고, 엘시나가 마법을 운용하여 금방 길을 평탄하게 만들어주었다.

어쨌든 비올라는 힉슨과 카이저의 환대를 받으며 공작저에 들어왔다. 공작저의 대문이 열렸다.

‘아….’

왠지. ‘피곤해.’

헤라의 마차에서 깊은 잠을 잤는데도 피곤했다. 5년간 잠들어 있다 깨어나니 세상이 아주 피곤해져 있었다.

‘집착들이 심해졌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게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그 피곤함은 집에 돌아와서도 끝나지 않았다. 총집사 칼튼이 비올라를 찾아와 말했다.

“공녀님, 아무래도 응접실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응접실은 왜요?”

“공녀님께서 엘바토의 묘지를 찾으신 이후, 귀빈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귀빈이 너무 많다. 그래서 칼튼은 총집사 차원에서 거르고 또 걸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VIP들이 응접실로 찾아왔다.

“개중에는 삼 일을 꼬박 응접실에서 기다린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비올라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인사들이었다. 비올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차피 마무리 지어야 하는 거라면, 얼른 끝내고 쉬어야겠다.

“오랜 여정을 끝내고 왔어요. 씻을 시간 정도는 주겠죠?”

“물론입니다. 응접실에서 기다리겠습니다.”

** 퐁퐁이는 비올라와 함께 복도를 걸으며 말했다. “내가 씻겨줘도 되는데.”

기분 좋고 따뜻한 정령수로 씻어내줄 수 있었다. “인간들한테 성이 있다는 건 참 불편한 일이야.”

6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데, 그냥 나를 이용하면 되지 않아?”

퐁퐁이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퐁퐁이를 한 번의 공격으로 역소환시켜 버렸다.

“정령계에서 쉬고 있어라.”

“야이 나쁜 자식아………!”

퐁퐁이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퐁퐁이를 반으로 갈라버린 자는 바로 툰드라였다.

비첸에게 속아 서쪽에 다녀온 툰드라는 비올라 옆에 섰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툰드라는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묵묵히 비올라 옆에서 걸었다.

비올라는 그게 조금 고마웠다.

담담히 옆에 있어주는 믿음직한 존재.

세상 모두가 나를 배신해도, 툰드라만큼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근데…… 제논이 안 보이네?’

본래 에스코트는 늘 제논의 몫이었는데 지금은 제논이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응접실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모두….”

응접실은 그냥 응접실이 아니었다. 마차 안이 확장되었듯, 응접실도 거대한 연회홀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그 안에서는 황궁 악사들이 선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건…… 뭐야?’

저만치 멀리. 상석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아빠?’

아빠와 더불어 두 사람 더. ‘황제 폐하와 셀리나 대신님?’

황제와 셀리나도 있었다. 보통 황제가 움직이면 대륙 전역에 난리가 나게 마련인데..

‘비밀리에 찾아왔다고?”

황궁 악사들까지 데리고? ‘엘프들도….’

아까 군악대에 포함되어 있던 엘프들도 있었다. 응접실 안, 제논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올라 벨라투, 6공녀께서 입장하십니다.”

짝! 짝! 가벼운 박수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박수를 친 사람은 메데 이아였다.

“비올라, 언니는 너를 사랑한단다.”

남문에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던 힉슨&카이저가 투박한 손으로 꽃한 송이씩을 내밀었다. “헤론이 그러는데, 네가 이거 좋아한다며?”

“돈으로는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용병왕은 비교적 가난했고(?) 진귀한 보물 대신 꽃을 선물했다. 비올라는 그 꽃 두 송이를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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