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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201화 (201/201)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201화

헤론이 화관을 쓰고 있었다.

‘해당화네.’

언젠가 비올라는 헤론에게 해당화로 만든 화관을 만들어 주었었다. 그러고 보니 헤론은 지금 그 화관을 쓰고 있었다. 공작이 해당화 화관을 쓰고 있다.

세계관 내에서는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모습이었으나 헤론의 아름다운 미모는 그 모습조차 우아하게 만들어주었다.

‘어차피 얼굴이 다 하는구나.’

한편, 베나토의 손을 잡은 엘시나가 비올라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베나토도 함께였다.

비올라는 그쪽으로 걸어가 베나토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베나토, 고마워.”

베나토는 마나를 모두 잃었다. 대마법사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베나토는 마법사를 포기하고, 비올라와 툰드라를 살렸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베나토가 방긋 웃었다. “누나가 저 책임져 주셔야 해요.”

말하는 것은 조숙했으나 외양은 대여섯 살에 불과한 베나토였다. 비올라는 베나토의 통통한 볼살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으나, 그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한편, 연회에 참여한 퀄튼가의 가주 퀘이사 퀼튼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래서야 며느리 삼기는 힘들겠어.”

어찌어찌 며느리를 삼는다고 해도,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혹시라도 비올라에게 문제가 생기는 날, 이 연회에 참석한 모든 영웅이 퀼튼가를 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모는 늘 열린 마음이야.

알지, 비올라?”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와인을 즐겼다. 엘프들의 여왕 하모나는 비올라 앞에서 다시금 무릎을 꿇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릎을 꿇은 사람은 하모나뿐만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비올라 공녀.”

세알 자작이었다. 그는 먼발치서 베나토를 보고서 눈물을 흘렸다. 조만간 베나토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아버지가 되어주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제 그는 부인의 외도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자작 부인도 비올라에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비올라에게 경의를 표했다.

“비올라 공녀가 무엇이 옳고 그른 지를 알게 해주었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죄송했어요. 앞으로, 제 남편과 베나토를 위해 헌신하며 살게요.”

“그 마음, 잊지 마세요.”

박수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비올라 공녀의 귀환을 환영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진심이었다.

3대 공작가 중 하나.

마리앙투 공작가의 메리사 마리앙투도 비올라를 향해 잔을 들어 올렸다.

“비올라, 네 덕분에 많은 것이 해결되었어.”

언니도. 딸도.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았다.

“너는 마리앙투의 은인이란다. 혹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렴.”

또 다른 공작가의 가주. 살몬 브란디아도 크하핫! 웃었다.

“내 대에서 벨라투를 뛰어넘기는 힘들 것 같구먼, 으하하핫!”

벨라투를 이길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벨라투에는 비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이이이이!”

셀빈이 달려와 비올라에게 안겼다. 사실 셀빈이 훨씬 키가 커서, 안겼다기보다는 안은 모양새에 가까웠다. 셀빈은 자신의 볼을 비올라에게 부볐다.

“나, 그냥 언니랑 살면 안 돼요?

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녀의 어머니인 아셀다가 나서 셀빈을 떼어놓았다. “셀빈, 그러기에는 물리쳐야 할 적들이 너무 많은데?”

“히잉.”

“놓아주렴. 비올라와 한마디의 대화라도 나누고 싶은 사람이 많으니.”

아셀다가 가볍게 윙크했고, 비올라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루이바르텐의 실세. 카를로 수석 디자이너도 있었다.

“공녀님을 만나 뵐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는 루이바르텐가와 함께 제작한 수백 벌의 초호화 드레스를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이 대륙의 영웅을 위하여 보일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라면서.. 그리고 그 자리에는 쓸데없이(?) 진중한 사람도 한 명 있었다.

“누가 더 반려에 어울리는지, 지금부터 알아보려 해.”

소폭풍 제르미였다. 수많은 영애의 가슴에 불을 지핀제르미는 이제부터 ‘반려의 자격’을 갖춰 보기로 했다.

툰드라를 넘어서 언젠가 진정한 반려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툰드라가 비올라 옆에 섰다.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툰드라는 툰드라 나름대로 전의를 불태우는 중이었고,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직접 내려와 비올라 앞에 허리를 숙였다. “폐하?”

“비올라 공녀에게 보내는 내 경외의 표현이다.”

“역사상 최초로 금성훈장을 받은 이에게, 이 정도 성의 표현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황제가 손을 내밀었다. 비올라가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어느덧 박수 소리는 멈추었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거…… 괜찮은 거야?’

황제가 싱긋 웃고서 작게 말했다. “비올라 공녀, 혹시 황제 할 생각 없나?”

“예?”

비올라는 저도 모르게 컥,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왜? 구미가 당기는 것인가?”

“그럴 리가요.”

“보통은 좋아하지 않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데.”

“만인지상에 관심 없어서요.”

“과연.”

넬라크는 황제답게 말을 이었다. “이미 만인의 우러름을 받고 있으니 황제 자리 따위에는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그런 거창한 의도는 아니었는데요.”

“겸양 떨 거 없다. 이미 그대의 위세는 황제를 넘어섰으니.”

그렇게 말을 하는 황제는 딱히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연회의 주인공을 모셔왔다. 헤론.”

헤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황제가 그렇게 하였듯, 헤론도 허리를 숙였다.

황제로부터 비올라의 오른손을 받아 든 헤론은, 비올라의 오른손에 가볍게 입술을 맞추었다.

“오늘의 연회를 즐기려무나.”

손등에 키스한 뒤 헤론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비올라는 금성훈장을 받았으니,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 높다고 할 것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반역이나 다름없는 말이지만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심지어 황제 본인과 셀리나 대신조차도.

“그러니 이곳에 모인 모든 귀빈 여러분께서는, 제 딸, 아니, 비올라 공녀의 무사귀환을 축하하며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특식으로는 아줄레지아의 에그타르트가 주어졌고, 귀빈들은 아줄레지 아의 에그타르트에 혼을 빼앗겼다. 비올라는 황제와 헤론의 중간.

상석에 앉은 채 연회를 즐기게(?)

되었다.

셀리나가 귓속말하듯 물었다.

“비올라 공녀, 진짜 황제 할 생각 없어요?”

“없습니다.”

“왜요? 누구보다 원하고 있었잖아요. 겨울성을, 그리고 제국을.”

비올라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내가 그런 연기를 했었지.’

그렇지만 본심은 아니었다. 여전히 자신이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았다.

이제는 거짓을 벗어버리고 진실을 찾을 때가 되었다.

“그건 그냥 연기였어요.”

‘누군가’를 연기하는 삶이 아니라. 진짜 비올라의 삶.

그 삶을 살기로 했다. “저는 그냥.”

힐끗, 옆을 보았다. 이 시끄러운 연회장 가운데에서도 헤론은 비올라의 숨소리마저 놓치지 않고 듣는 중이었다. “저를 이토록 사랑해 주는 많은 사람이 있는 곳이 좋아요.”

백 밤만 자면 돌아온다던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을 수 있는 곳이 좋았다. “저는 아빠를 좋아하고.”

헤론의 몸이 움찔했다. 듣지 않는 척하면서 다 들었다.

해당화 화관이 움찔움찔 떨렸다.

“힉슨 아저씨도, 카이저도 다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일일이 옮기 힘들 정도로.

“제르미도 좋고.”

그리고 늘 옆에 있어주겠다고 약속한 사람. “툰드라도 좋아서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떠나 정치의 길을 걷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저만치 아래.

연회장에서 시선을 보내오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들 역시 연회를 즐기는 척하면서, 마나를 동원하여 비올라의 일거수일투족을 느끼고 있었다. ‘휴우.

한숨을 내쉰 비올라는 한 명, 한 명을 읊기로 했다.

싫지는 않았다.

겨우 이런 말이 저들에 대한 감사가 될 수 있다면, 꽤 기쁜 일이었다.

“메데이아 언니, 비첸 오빠, 헤라 언니.”

3공자 쿤도는 어차피 후계 경쟁에서 밀렸다 생각하여 현재 가문을 떠난 상태. “엘시나 경, 제논, 베나토, 퀘이사이모, 하모나 여왕, 메리사 공작님, 카를로 디자이너님, 세알 자작님, 셀빈, 셰일란 스승님.”

비올라가 언급한 대부분의 사람의 시선이 비올라를 향했다. 그들의 눈에는 비올라를 향한 애정이 가득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이 세계에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 자신의 이름에 집중하며 비올라를 바라본 이들과는 다르게, 이 연회에 초대조차 되지 못한 평범하디 평범한 주민들.

그들은 미약한 신성력을 가지고서 무려 ‘옛 무인들의 성지’로 찾아왔다. 그들의 작은 힘이 하나로 모여 기적을 일궈냈었다. 그들은 겨울성의 백성이 되었다. “겨울성의 백성들에게서 떠나고 싶지 않아요.”

“비올라 공녀는……….”

셀리나의 눈에 약간의 부러움이 담겼다. “행복한가요?”

비올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행복해요.”

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더 행복해지기로 했다.

에필로그

연회는 7일 밤낮으로 이어졌다.

연회가 끝난 뒤, 비올라는 녹초가 되고 말았다.

하도 많은 악수를 하느라 손바닥이 닳을 지경이었다.

그날 밤. 헤론이 비올라를 찾아왔다.

머리에는 여전히 해당화 화관을 쓴 채였다.

“아빠?”

헤론만 찾아온 게 아니었다. 메데이아, 비첸, 헤라도 함께였다.

“소소하게, 가족끼리 차라도 마시면 어떨까 싶어서.”

헤론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에게도 이런 시간은 익숙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익숙하지 않아도 따뜻한 시간임이 틀림없었다.

“공녀님은 딸기 에이드를 좋아하셔서요. 딸기 에이드로 준비하고, 다른 분들은 홍차로 준비하겠습니다.”

제논이 그렇게 말하고서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헤론에게 이 시간이 따뜻했듯, 비올라에게도 이 시간이 귀했다.

밤이 깊어갔다.

호로록~

딸기 에이드를 모두 마신 비올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메데이아 언니, 있잖아요.”

“말해보렴.”

“혹시, 제가 벨라투를 잇지 않겠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메데이아가 빙그레 웃었다. “네가 벨라투를 잇지 않겠다면?”

“네.”

“내일 아침 내 심장은 멈춰 있을 거야. 그래도 괜찮겠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 만약 비올라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메데이아는 비올라가 원하는 대로 해줄 것이었다. 그것이 비올라가 잠들어 있던 5년 동안 내린 결론이었다. 다만, 비올라는 메데이아의 진심을 읽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면, 만약에 말이에요.”

이번에는 시선을 헤론에게로 옮겼다. “말해보거라.”

비올라는 본래 소소하고 행복한 독립이 목표였었다. 그래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저도 나이상으로는 성년이잖아요?

제가 만약에 독립을 해서 산다면 어떨 것 같아요?”

5년 동안 집착이 무척이나 심해진 헤론이 대뜸 인상을 찡그렸다. 그의 눈에서 스산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독립? 해보거라. 그 땅에 개미 한 마리 살려놓지 않을 테니.”

“.......”

비올라는 저 말이 반쯤, 아니, 완벽히 진심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거, 걱정 마세요. 울보 아빠 두고 어디 안 간다고 약속했으니까요.”

그 말에 헤론의 얼굴이 또 조금 붉어졌다. 자식들 앞에서 ‘울보’라는 말을 들으니 부끄러운 듯했다.

그러나 ‘어디 안 간다고 약속’이라는 말에만 집중했다. “그 약속, 평생 지켜야 할 것이다.

내 옆에서.”

“……….”

“대답은?”

“네.”

비첸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낄낄대고 웃었다. “그럼 나도 결혼 같은 거 안 하고, 비올라 옆에 붙어 있어야지.”

헤라도 킥, 웃었다. “언니, 아버지. 걱정 마세요. 비올라는 이미 원대한 꿈을 가진 아이이고, 겨울성과 대륙을 지배할 아이니까요.”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툰드라였다.

헤론, 메데이아, 헤라, 비첸의 시선이 툰드라로 향했다.

그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툰드라를 데려온 사람은 다름 아닌 제논이었다.

“물론 툰드라가 가족은 아니긴 하지만요, 왠지 공녀님께서는 툰드라를 원할 것 같아서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논 역시 툰드라를 보는 눈빛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사실 제논은 툰드라와 거래했다. ‘내가 당신을 방으로 들여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제논에게도 명분이 필요했다. 저 가족 모임에 함께할 수 있는 명분이.

툰드라를 안내해 왔다고 은근슬쩍 말한 뒤, 가족 모임에 함께하기로 했다.

툰드라는 어깨를 으쓱하고서 벨라 투가(家) 사람들의 시선을 담담히 받아냈다.

그러고서 입을 열었다. “어딜 가더라도 주인님 옆자리는 내 거예요. 평생 내 머리 쓰다듬어주기로 약속했잖아. 그렇지요?”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툰드라를 데려온 제논이 조금 당황했다.

“툰드라, 컨셉을 이상하게 잡은 것 같습니다만?”

툰드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대략 이런 분위기인 것 같아서.”

그래도 툰드라는 비올라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냈다. “저의 공녀님은 여러분의 꿈을 이루어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공녀님께서는 겨울성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고, 후계 경쟁에서 승리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그 말에 헤라가 흥, 하고 코웃음쳤다. “그래서?”

“그저 공녀님은 …”

“나도 알아, 멍청아.”

사실 헤라도 알았다. “그리고 그딴 건 하나도 안 중요해.”

비올라가 절대적인 지배자가 되든 말든, 그런 건 헤라와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이제 비올라가 옆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메데이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비올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든 것은 비올라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거야.”

비올라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따뜻했다.

이 따스함이 좋았다. 불현듯, 어떤 대사 한 문장이 떠올랐다.

“내가 단 한 번이라도, 당신의 가족이었던 적이 있나요?”

역시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았다. 왜 이런 대사가 떠오르는지. 어떤 장면이었는지.

그런 건 알 수 없었다. ‘원작 속 네가 기억이 안 나.’

그렇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너는 이제 혼자가 아닌 것 같아.’

비첸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비올라가 후계자 확정 아니었어? 나만 몰랐어? 으윽, 억울하다!”

거기에 헤론이 한마디를 더했다. “그래도, 독립은 불허한다.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아비의 옆이니.”

다른 건 다 해도 되는데, 모든 것은 비올라가 원하는 대로 해도 되는 데, 독립만큼은 허락할 수 없었다. 그것은 헤론 최후의 보루였다.

툰드라는 자리에 앉아 슬며시 웃었다.

‘공녀님, 행복해 보이네요.’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언제부터 공녀님의 행복을 바랐을까. 나는 왜 이렇게 공녀님이 애틋할까. ‘모르겠어.’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비올라를 위해 준비된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훨씬 오래전부 터. ‘저는 당신을 위하여 예비 되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만약에 다른 세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저는 그곳에서도 당신의 곁을 지켰을 것입니다.’

허무맹랑한 생각이지만 그 생각조차 진심이었다. ‘앞으로도 당신 곁을 예비할 것입니다.’

훗날, 헤론에게 말하기로 했다. 비올라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아버지의 옆이 아니라 제 옆이라고.

그렇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적어도 헤론을 뛰어넘었을 때.

헤론조차 압도할 수 있는 강함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때 말하기로 했다.

지금은 침묵을 유지하며 비올라의 모습을 하염없이 눈에 담았다.

지금의 비올라는 분명 행복해하고 있었다.

‘오늘의 나는 그거면 되었다.’

모두에게 따뜻한 밤이 깊어갈 무렵.

공작저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감히 나만 빼놔? 내가 비올라의 또 다른 아버지인데?”

“내가 비올라 절친인데? 날 뺐단 말이냐?”

카이저와 힉슨은 전쟁터에 임하는 것만 같은 자세로 방 안에 뛰어들어왔다. 미공자 제르미도 조금 분한 것 같았다.

내가 조금 더 자격을 갖추었다면.

그랬다면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

“저도 비올라의 옆을 지키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한편, 브란디아가로 돌아가던 셀빈은 왠지 모르게 찝찝하고 불길했다. 마차 안,아셀다가 물었다.

“왜 그러니?”

“왠지 불안해요.”

손톱을 깨물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제가 모르는 사이 어떤 음모가 벌어지는 것 같아요.”

왠지 모르게 겨울성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다시 가출하기로 했다.

“저, 잠시 겨울성에 좀 다시 갔다 올게요!”

벨라투의 작은 ‘가족 모임’은 평온하지 못했다. 셀빈까지 쳐들어온 비올라의 방은 북적북적했다.

정령력을 회복한 퐁퐁이마저 모습을 드러내 폭포를 쏟아내고 있었다.

비올라는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해.’

5년 만에 마주한 세상은 정말 피곤한 세상이 되어 있었다. ‘계속 피곤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침, 창밖에서 별똥별이 떨어져 내렸다.

비올라는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많이 피곤한 세상.’

그리고, ‘백 밤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녀는 이 세상이 계속되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이곳의 모든 사람이 비올라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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