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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1. 초야 (9/14)

외전

1. 초야

도란과 진사해가 혼례를 올린 날, 가금산에 모인 모두는 날이 저물도록 떠들썩한 축제를 벌였다. 가온산맥 곳곳을 다스리는 진사해의 가신들도, 도란의 다정한 벗들도,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지신도 마음껏 그날의 기쁨을 누렸다. 산에 사는 작은 미물들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즐거워했다.

도란도 날이 어두워지기 전까지는 생애 가장 큰 행복을 느꼈다. 벗들의 축하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랐고, 애기 신부님이 언제 이렇게 컸느냐며 손을 잡아 주는 가신들 앞에서는 마음이 울렁거렸으며, 부모님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안아 주었을 때는…… 그 품에서 아이가 된 것처럼 웃으며 울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축하와 축복으로 가득했던 아침과 낮은 순리대로 물러가고 밤이 찾아왔다. 도란의 부모님도 인간 세상으로 돌아갔고, 축하하러 온 나머지 사람들은 신랑 신부가 맞절했던 뜰에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도란아.”

가신들 사이에 끼어 앉아 있던 도란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묘한 미소를 지은 진사해와 눈이 마주쳤다. 도란은 어쩐지 주위가 조용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벌써 자시(밤 열한 시부터 오전 한 시)가 다 되어 가는데 피곤하겠구나.”

“네? 괜찮아요.”

“……그래?”

그때 도란 옆에 있던 지신이 아무 말도 없이 허공으로 훌쩍 날아올랐다. 도란이 갑자기 사라지는 지신을 바라보고 있는데, 소야도 콜록콜록 헛기침을 하더니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수도, 해범도, 오늘 처음 만난 해범의 부인도 은근한 눈짓을 주고받았다.

“저희도 피곤하네요. 이제 갈까요?”

“저쪽에 술이 남은 것 같네? 애기 신부님, 전 술이 부족해서요.”

“어휴,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이제는 밤을 못 새우겠어.”

어리둥절하게 그들을 보는 도란의 어깨에 따뜻한 손이 올라왔다. 진사해는 천천히 그녀를 이끌었다.

“우리도 이만 들어갈까.”

“네……. 전 괜찮은데, 다른 분들이 피곤하신가 봐요.”

“그런 모양이구나.”

신궁으로 가며 도란은 새삼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쩐지 신궁이 아주 달라 보였다. 변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텐데, 더 아늑하게 느껴졌다. 달빛이 말갛게 부서지는 담장과 순하게 내리깐 눈꺼풀 같은 지붕들, 은방울처럼 피어난 봄꽃들……. 변화한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도란은 깨달았다.

신궁이 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변했음을. 이제 그녀는 가금산의 가신이 아니라 진사해의 신부였다. 이제 신궁은 평생토록 그녀의 집이었다.

“이상해요.”

조용조용 걸음을 옮기며 도란이 진사해를 올려다보았다.

“이상하다니, 무엇이?”

“여기가 정말 제 집이 됐잖아요…….”

“늘 네 집이었다.”

여상한, 그러나 다정한 어조가 도란을 감쌌다. 진사해는 확신을 주듯 한마디 덧붙였다.

“네가 가금산에 온 순간부터, 이곳이 네 집이 아닌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 말을 가만히 곱씹던 도란이 맑게 웃었다. 뱀말 사람들을 주인처럼 섬기며 그들의 헛간에서 자던 과거가 아득하게 멀어지고 흐려지다가 이내 사라져 버렸다. 이제 다시는 악몽을 꾸지 않을 것이다. 누가 말해 주지 않았는데도, 도란은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여긴 연못 별채로 가는 길이 아닌데요.”

문득 깨달은 도란이 진사해를 향해 중얼거렸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깨달았다. 당연히 연못 별채로 가는 길이 아닐 수밖에. 그들은 지금 연못 별채가 아닌 신방으로 가고 있으니까!

도란의 얼굴이 미미하게 달아올랐다. 혼례의 감상에 젖어 오늘이 초야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러니까, 진사해와, 다른 사람도 아닌 신령님과 바로 오늘…….

“도란아.”

진사해는 붉어진 도란의 낯을 가만히 바라보며 운을 뗐다. 네가 싫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다정한 말을 하려던 그때.

“빠, 빨리 가요.”

도란이 진사해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리고 상기된 얼굴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걸음을 재촉했다. 작은 손에 붙들려 끌려가고 있으니 꼭 그날 같았다, 도란이 함께 화원으로 가자며 자신을 잡아끌었던 그날. 연꽃 속에서 도란이 환하게 만개하던 그날. 그래서 진사해는 잠자코 그녀의 뒤를 따랐다.

* * *

화촉의 불이 흔들렸다. 여린 불빛을 사이에 두고, 초야의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진사해는 불빛이 어른거리는 도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구했고, 또 사랑하게 된 신부는 물망초처럼 보얗게 피어나 있었다. 깨끗하고 흰 얼굴에 감도는 희미한 홍조가 진사해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머리카락을 위로 틀어 올려 목덜미가 환히 드러났다. 꽃대처럼 가는 목에 입술을 묻으면 꽃향기가 날 것만 같았다.

한편, 도란은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진사해와 이렇게 어색했던 적이 있었나. 가슴이 간질거리고 손을 가만히 두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괜히 이리저리 움직이고 싶은 손을 가만히 맞잡으며 진사해를 힐끔거렸다.

그는 도란을 보며 아름답다 감탄하고 있었지만, 수려하기로는 그도 만만치 않았다. 흰 종이에 누군가 심혈을 기울여 그려 놓은 것 같은 붉은 입술이, 어스름한 신방에서도 도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손끝으로 덧그려 보면 따뜻할까 궁금했다. 그의 몸은 어떨까. 신령님의 맨살을 만져 본 적이 있었나…….

“머리가 불편하겠구나.”

도란이 움찔하며 현실로 돌아왔다. 커다란 손이 화려한 머리 장식을 풀기 시작했다. 긴 소매가 도란의 뺨을 스쳤고, 머리 장식이 사라지자마자 검은 머리카락이 물결치듯 쏟아졌다.

하얀 뺨에 흩어진 까만 머리카락을 떼어 주는 진사해의 손길이 진득했다. 침묵이 흐르고 숨결이 얽혔다. 두 쌍의 눈동자 안에서 화촉의 불빛이 가늘게 몸을 떨었다.

“무척 긴 하루였을 텐데.”

“…….”

“이만 자자.”

도란이 멈칫했다. 오늘은 초야인데, 이렇게 잔다고? 설마 ‘그런’ 생각을 한 건 자신뿐인 걸까. 분명 신령님을 감싼 공기도 뭔가 달랐는데 그저 착각이었던 걸까.

진사해의 손이 도란의 옷고름에 닿았다.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벗겨 주려는 다정한 손길이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는 도란에게 더 손대지 않았고, 뺨이나 입술에 입맞춤을 하지도 않았다. 머리카락 끝을 잠시 만지작거리던 그가, 무언가를 참아 내듯 손을 거둬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사해 역시 침의 차림이 되었다. 도란은 그때까지도 제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어쩔 줄 모르는 신부와 눈이 마주친 진사해가 미려하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이끌었다.

“자, 어서.”

그렇게 둘은 한 침상에 누웠다. 꽃잎을 뿌려 둔 금침은 꽃구름처럼 향기롭고 포근했다. 도란은 그 안에 누워 눈만 이리저리 굴렸다.

후, 부는 소리와 함께 화촉이 꺼졌다. 그래도 방은 달빛으로 환했다. 도란은 자신의 옆에 나란히 눕는 진사해의 기척을 느끼며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조용한 숨소리만이 신방을 채웠다. 도란은 어쩐지 뻣뻣해 보이기까지 하는 진사해를 곁눈으로 힐끔거렸다.

“저, 신령님. 벌써 잠드셨어요?”

“아니.”

“……그래요?”

“왜, 어디가 불편해서?”

불편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그렇게 편안하지도 않았다. 혼례를 올렸으니 오늘 밤에는 당연히 부부간의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런데 대놓고 이대로 자는 거냐고 묻기도 뭔가 민망했다. 도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전에 혼인하면 뭐라고 부를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도란이 이불 속에서 손을 꼼지락거렸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희고 가는 손가락이 진사해의 손등에 닿았다. 순간 진사해가 숨을 멈춘 듯한 착각이 일었다. 닿았다고 화들짝 놀라 뿌리치는 것도 이상해서, 도란은 어색함을 견디며 가만히 머물렀다. 연못에 빠져 그의 품에 밤새 안겨 있기도 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를 노릇이었다.

“평범하게…… 여, 여보라고 부르면 어떨까, 꺄악!”

둘의 몸이 단숨에 겹쳐졌다. 도란은 부스러지도록 강하게 안긴 채 놀라서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진사해는 그녀를 끌어안은 채 보얀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그의 숨이, 뜨겁고 거칠었다. 도란이 꺼낸 말이 그의 안에 불을 댕긴 듯했다.

“시, 신령님…….”

“그게 아니지요.”

갑작스러운 존댓말에 도란의 얼굴이 타오르듯 붉어졌다. 그녀는 위에 올라탄 진사해의 얼굴을, 정염으로 가득 차 끓는 금빛 눈을 숨도 못 쉬고 바라보았다. 저절로 발끝이 곱아드는, 농염한 금빛 눈동자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여보라고 불러 보세요, 부인.”

부인. 그 짧은 호칭이 도란을 뒤흔들었다. 이제 그녀는 목까지 붉어지고 말았다.

“어서요. 저도 말을 높였으니.”

삼켜질 것 같았다. 잡아먹힐 것 같았다. 어조는 한없이 다정한데, 허벅지 언저리에 닿아 오는 딱딱한 것은 어쩐지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도란의 눈빛이 파르르 떨리자 진사해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흰 목에 입술을 묻었다.

“겁먹지 말고…… 싫다면 하지 않을 테니까요.”

도란은 맨살에 흩어지는 그의 숨결을 느꼈다. 따뜻하고 달콤했다.

“저, 저는 신령님이 싫으신 줄 알고…….”

“신방은 아예 잊은 것처럼 다른 이들과 어울리시더니.”

피곤하지 않으냐고 묻던 진사해가 떠올랐다. 그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멀어지던 다른 이들도. 어울리는 게 즐거워서 뜰에 오래 머물렀던 것인데, 진사해에게는 합방을 피하는 행동처럼 느껴졌을까.

“손을 뻗을 때마다 긴장하고…….”

“그건!”

억울했다. 싫어서가 아니었는데. 너무 좋아서, 너무 떨려서, 앞으로 일어날 일과 그와 함께 살아갈 삶이 기대되어서 그랬던 건데. 도란의 목소리에 섞인 감정을 읽은 진사해가 다정스럽게도 되물어 왔다. 그는 여전히 도란의 목에 입술을 대고 있었다.

“그건?”

“그건…… 그건…….”

“오늘은 원치 않는다면 억지로 맞출 필요 없습니다.”

“원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도란은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진사해가 그녀와 시선을 맞댔다. 진심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는 듯. 그래서 도란은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신령님이,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저도 원해요.”

그는 그다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래서 도란은, 최후의 수단으로 두 팔을 뻗었다. 그의 목을 안으며 그 부끄럽고 쑥스러운 말을 겨우 속살거렸다.

“여, 여보…….”

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입술이 겹쳐졌다.

뜨거운 것으로 입 안이 가득 차며 순간 호흡이 차단되었다. 자신이 입을 벌린 줄도 몰랐던 도란은 흡 숨을 멈추며 진사해의 품에 매달렸다. 그 반응이 진사해에게는 또 다른 자극이었다.

그가 더 못 견디겠다는 듯 이불을 걷어치웠다. 둘의 몸이 순간 환하게 드러났다. 정확하게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진사해가 눈꼬리를 휘며 미소를 지었다.

“부인.”

그는 천천히 도란의 가슴으로 고개를 숙였다. 무엇을 하려는지 몰라서, 도란은 그저 굳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가 붉은 입술로 침의의 옷고름을 물었다.

“……!”

사아악, 옷감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옷고름이 풀렸다. 진사해의 입술도, 그 소리도,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도란은 자기도 모르게 두 다리를 오므리며 살짝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진사해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가만히 계셔야죠, 부인.”

순식간에 저고리가 벗겨졌다. 가슴 가리개도 눈 깜짝할 사이에 저만치로 밀려났다.

은은한 달빛이 도란의 몸을 타고 흘렀다. 진사해는 그녀의 모든 것을 샅샅이 눈에 담았다. 핥고 빨아 진한 자국을 남기고 싶었다.

진사해가 도란의 어깨를 꾹 깨물었다. 아파서 신음하자 마치 달래 주는 듯 혀로 할짝거렸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자극에 도란의 다리가 움찔거렸다. 들이닥치듯 깨물고 또 상냥하게 달래 주는 몸짓이 그녀를 간지럽혔다. 배 속이 뜨거워지며 아래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제는 싫어도…….”

“잠깐…….”

“……어쩔 수가 없겠습니다.”

“흐읏, 신령님…….”

“여보라니까요, 부인.”

상냥한 질책 뒤로는 물음이 이어졌다.

“아이는, 몇이나 낳을까요.”

도란은 속절없이 그에게 매달렸다. 질문을 제대로 듣기는 했으나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진사해의 손이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몸 어디에서 어떤 감각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빴다.

“우리끼리 평생 이리 사는 것도 달콤할 듯한데. 그렇지만 부인은 외로움을 타니…….”

진사해가 도란의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붙드는 대로 붙잡히는 작은 몸이 안쓰럽고 사랑스러웠다.

꽃잎처럼 곱던 살결에 붉은 손자국이 새겨졌다. 땀에 젖은 이마에 검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었다. 둘의 하지는 빈틈없이 맞물렸고 교접은 불길처럼 거세어졌다.

도란은 자기 몸이 사라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허벅지며 종아리가 팽팽하게 긴장하고 발끝은 저절로 쫙 펴졌다 오므라들기를 반복했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낯선 감각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낯선 것은 진사해였다. 늘 고요하던 눈빛이 달빛 속에 흐드러진 꽃처럼 강렬했다. 눈썹은 찌푸려지고 입은 거친 숨을 내뱉고, 몸에는 무엇도 걸치지 않았다. 판판하게 다듬어진 가슴과 복부가, 또 그 아래에는…….

“흐윽!”

그녀는 고개를 꺾고 새된 신음을 내질렀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때와 비슷한, 깊은 흥분이 그녀를 덮쳤다. 그들은 서로의 절정을 온몸으로 알아차렸다. 둘의 결합은 완벽했고 희락은 동시였다.

“어여쁜 내 부인…….”

진사해는 그대로 몸을 숙여 도란의 눈가에 입술을 떨어뜨렸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는 손길이 다정했다.

“부인.”

그렇지만 내려다보는 금빛 눈은 위험스럽게 빛났다.

“뱀은 본래 온종일도 교미하는데.”

“……네?”

“모르셨던 모양이지요.”

도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 된다. 희락을 느끼긴 했지만 더는 기운이 없었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서 진사해가 흔드는 대로 몸을 맡겼을 뿐인데도 그랬다.

그녀는 꽃잎 같은 손으로 두꺼운 팔을 밀어 냈다. 아양을 떨려는 게 아니었는데 진사해는 그 손을 잡아채 입술을 묻었다. 손등의 얇은 살을 아프지 않게 잘근잘근 씹으면서, 그는 도란을 채근했다.

“신령님은…… 여보는, 진짜 뱀이 아니잖아요…….”

“글쎄요.”

“종일 하는 건 지, 짐승이나 그렇고…… 여보는 신이고, 또 저는 인간이니까…….”

“교접할 때는, 부인.”

“…….”

“모두 짐승이 아닐까요.”

진사해가 도란의 팔을 잡았다. 그러더니 그녀의 몸을 천천히 뒤집었다.

도란을 엎드리게 한 그가, 아래로 손을 넣어 그녀를 한가득 움키었다.

“우리도 지금은 짐승이고요.”

“아, 안…….”

“힘들면 가만히 있어도 괜찮습니다.”

그는 완전히 늘어진 도란을 배려해 주는 척 속삭였다.

지금껏 무엇을 망설였던가. 도란을 가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었다.

잿더미에서 거둔 아름다운 인간 신부.

“부인.”

기운이 빠진 와중에도 멈칫한 도란이 진사해를 돌아보았다. 살짝 벌어진 입술과 그 너머로 보이는 붉은 속살이 어지러울 정도로 달콤했다.

진사해의 체온이 보드라운 구름처럼 밀려와 도란을 덮었다. 도란은 구름 뒤에 숨은 달처럼 발그레해졌다. 벗은 몸이 다시 합해졌다. 겨울밤은 길고도 길었다.

* * *

환한 햇볕이 도란의 잠을 깨웠다.

그녀는 눈을 뜨기도 전부터 심한 근육통을 느꼈다. 진사해에게 매달려 어찌나 흔들렸는지, 또 그렇게 흔들리는 몸을 얼마나 힘들게 지탱했는지, 팔과 다리는 물론 목 근육까지 아팠다.

“아으…….”

“부인.”

햇살보다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전에 닿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자신을 품은 진사해와 눈이 마주쳤다. 미소 띤 얼굴을 본 순간 귓가가 화르르 달아오르며 지난밤의 일이 모두 떠올랐다. 그만해 달라고 울다가도 그가 다가오면 다시 몸이 달아오르던,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기나긴 밤의 모든 일이.

늘 점잖고 청청하던 신령님이 밤에는 그렇게 돌변할 줄 몰랐다. 왠지 그라면 색사도 책을 읽거나 난을 치듯 고고하게 할 것 같았는데.

“많이 아픈가요.”

“그렇게 심하지는 않아요.”

진사해가 도란의 몸 이곳저곳을 만져 보았다. 도란이 근육통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리자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체력을 좀 더 길러야겠습니다.”

“체력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

“그야, 밤새도록 그러면 누구라도…….”

왠지 자기 입으로 하기에는 부끄러운 말이라 도란의 목소리가 비칠비칠 꺾였다. 진사해는 그런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운 듯 그녀를 감싸 안았다.

“점점 익숙해질 겁니다.”

“……네.”

“자주 하면 더 익숙해질 것인데.”

“……네?”

“제가 밤마다 도와드려야겠네요.”

입술이 부드럽게 겹쳐졌다. 애정 어린,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도란은 얼굴을 붉히고 가만히 그의 사랑을 받고 있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 생각해 봤어요.”

“뭘 생각해 보셨을까. 지쳐서 세상을 잊고 자는 것 같았는데.”

“웃지 마세요! 진짜 생각했다고요.”

진사해는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새처럼 어여쁜 그의 신부를 바라보았다. 도란은 어딘가 비장하기까지 한 얼굴로 선언했다.

“아이는 세 명 낳을 거예요.”

“…….”

진사해는 잠시 침묵한 후에야 그게 자신이 어젯밤 건넨 질문에 대한 답임을 깨달았다.

“왜 하필 셋입니까?”

도란은 어릴 때부터 지독하게 외로웠다. 부모가 있는 아이도, 형제가 있는 아이도 부러웠다. 아이를 낳게 된다면 부모의 사랑은 물론 형제간의 우애도 많이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하나는 안 되고, 둘은 조금 아쉽다. 낳을 수 있는 만큼 낳고 싶지만 골고루 사랑을 주려면 넷이나 다섯은 조금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정해진 게 셋이었다.

“그렇군요.”

“네, 그러니까…….”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상기된 얼굴로 아이 얘기를 이어 가던 도란이 갑자기 멈칫했다. 그녀는 어젯밤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였던 무언가를 떠올리며 굳어졌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린 진사해가 맑게 웃으며 신부를 안았다. 둘의 몸이 이부자리에 파묻혔고, 부드러운 입맞춤이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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