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어떤 별님들 (13/14)

5. 어떤 별님들

저는 우주의 먼지로 떠다니다가 오라버니를 만났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서로 눈이 마주치자마자 하얀 실이 생겨나 우리 둘을 이어 주었지요. 그래요, 우리는 쌍생(雙生)이 될 운명이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쌍둥이 형제가 생겼다고 해서 곧바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갈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우리는 그 뒤로도 아주 오래오래 우주를 떠돌았어요. 별들은 다정하고 먼 태양은 따뜻해서 심심하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돌봐 주러 오는 삼신할머니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거든요.

물론 우리가 가장 재미있게 들은 얘기는 가금산 이야기였습니다. 그곳의 애기 신부님 얘기요. 우리는, 특히 저는, 할머니를 졸라서 같은 얘기를 듣고 또 들었습니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질문이 떠올랐지요.

“그러면 뱀말 사람들은 다 죽은 거예요?”

“그래, 죽었지.”

“그 사람들은 저승에서 벌을 받았어요?”

“그건 염라대왕만이 알 일이야.”

“인간 세상은 무서운가 봐요. 인간 세상에 가고 싶다는 애들도 있는데, 전 그렇게 무서운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가기 싫어요.”

“인간 세상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아.”

“애기 신부님의 부모처럼요?”

그 말을 했더니 할머니는 그냥 빙긋 웃었습니다. 좋은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는 뜻인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는 인간 세상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죽는 것도 무섭고요, 환생도 싫고요, 그냥 신들의 세상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게다가 애기 신부님이 그랬듯 어릴 때 부모님을 잃으면 어떡해요? 아니면 그 부모님이 무섭게 때리거나 아이를 버리는 사람이면 어떡해요? 적어도 신들의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드물지 않겠어요?

“그런데 왜 애기 신부님한테는 아이가 안 생겨요? 간절히 기다리잖아요.”

“아직 때가 되지 않았거든.”

“때가 언제 오는데요?”

내내 조용하던 오라버니가 불쑥 물었습니다. 마침 저도 궁금했던 차라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지요.

“쌍생의 오누이들아, 오늘은 너무 질문이 많구나. 질문만으로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알 수는 없어.”

“할머니도 몰라서 그렇죠?”

“몰라서 그렇죠?”

오라버니의 말을 냉큼 따라 하자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넓은 우주로 번져 갑니다. 별들도 와글와글 눈짓하며 반짝반짝 웃는 것만 같습니다.

“너희 부모가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이들 덕분에 외롭지는 않겠구나. 이렇게 말이 많아서야!”

“애기 신부님도 그럴까요? 사랑해 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아이는 필요 없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그래서 아이가 안 생기는 걸까요?”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던 할머니가 갑자기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런 것과는 상관없지. 너희가 하도 졸라 대니 한 가지만 얘기해 주마. 우주의 진리는, 모든 것이 인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거란다. 이유 없이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고, 이유 없이 슬픈 일이 생기기도 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인생에 너무 많이 질문하지 말라는 뜻이다, 요 수다쟁이 꼬마들아.”

할머니는 아직 작은 동그라미에 불과한 우리를 한 번씩 쿡쿡 찔렀습니다. 우리는 광활한 우주 너머로 떠밀려 갑니다. 먼지처럼 자유롭게요.

“오라버니, 아무래도 할머니는 애기 신부님에게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은가 봐.”

“그런 걸까?”

“우리가 몰래 가면 어때? 내가 얼마 전에 할머니가 아이들을 어디로 내보내는지 봤거든. 문이 있었어!”

“훔쳐보면 안 돼.”

“훔쳐보지 않았어.”

사실 몰래 본 게 맞지만요.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몸을 가진 아이가 아니랍니다. 이 정도는 잘못해도 되는 거잖아요? 그렇지요? 게다가 할머니는, 제가 계속 태어나고 싶어 하는 걸 알면서도 부모를 점지해 주지 않고 있단 말이에요. 인간 세상이 싫다고 해서 그런 걸까요? 인간 세상에만 제 부모님이 있어서, 제가 인간 세상을 좋아하게 되길 기다리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애기 신부님한테 갈까?”

“뭐? 어떻게?”

“문으로 나가면 되잖아! 할머니 문으로.”

“할머니한테 다시 잡혀 올 텐데.”

아이참, 오라버니는 착해서 좋지만 답답해서 탈입니다. 뭘 그런 걸 고민하는지 몰라요.

“잡혀 와도 상관없잖아. 할머니가 우리한테 나쁜 짓을 할 것도 아닌데. 그냥 잔소리 좀 하고 말겠지.”

“그래도 혼나잖아.”

“오라버니는 혼나는 게 그렇게 무서워?”

일부러 놀리듯 얘기하자 오라버니도 발끈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흰 실로 이어진 채 할머니의 문으로 열심히 달려갔습니다.

바보 같은 할머니! 문단속을 잊은 모양이에요. 우주 한가운데 둥둥 뜬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얼른 가자, 오라버니.”

“잠깐만. 그런데 저 문이 애기 신부님한테 가는 문인지 모르잖아.”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면 갈 수 있어. 게다가 내가 애기 신부님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옷자락을 붙잡고 품으로 뛰어들 거야.”

“난 애기 신부님을 못 알아보면 어쩌지…….”

“오라버니는 나랑 실로 이어져 있잖아.”

내 말에 동조하듯, 길게 이어진 실이 반짝거립니다.

“나를 믿어.”

머뭇거리던 오라버니가 천천히 내게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할머니가 깜빡 잊고 열어 둔 우주의 문으로 폴짝!

정말 기대돼요. 어서 애기 신부님과 만나고 싶습니다!

* * *

진사해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맑게 빛나는 별 두 개가 침실로 들어오는 꿈이었다. 그 별들은 기이하게도 희고 튼튼한 실로 이어져 있어서 꼭 쌍둥이 같았다. 사실 진사해는 그 별들을 움켜쥘 마음이 별로 없었다. 별이란 본래 궤도를 따라 도는 것, 가던 길로 가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별들이 스스로 진사해 앞에 멈춰 섰다. 진사해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애기 신부님이 아닌데.”

“오라버니도 참. 가금산 신령님이잖아. 애기 신부님의 남편!”

“애기 신부님 배로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니야?”

“오라버니는 태몽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구나?”

진사해는 자기 앞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별들을 보며 심히 당혹했다. 지금 별들이 자기 앞에서 운행을 멈추는 심각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는 별들을 다시 나아가게 할 방법을 몰랐다. 천지의 운행이 흐트러지면 땅도 영향을 받는 법. 그는 어서 별들을 궤도로 돌려놓고 싶었다.

그런데 별들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좀 더 작은 별이 진사해 눈앞까지 불쑥 떠올랐다.

“삼키세요.”

“……뭐?”

“빨리 꿀떡 삼키시라구요!”

진사해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당돌한 별은 진사해의 입술 사이를 파고들며 입으로 들어가려 했다. 혹시 작고 여린 별을 다치게 할까 봐 본능적으로 입을 벌리자, 별이 순식간에 그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실에 매달려 있던 다른 별도 순식간에 함께 빨려 들어갔다.

별들이 안에서 축제라도 벌이는 것일까, 배 속이 따뜻해지며 정신이 우주 아득한 곳으로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자신이 우주가 된 것 같았다. 작은 두 개의 별을 품은 우주. 이 별들이 자유롭게 운행하려면 더욱 커지고 안전해져야 할 것이다.

기묘한 뜨거움과 함께 진사해가 번쩍 눈을 떴다.

“으응…….”

도란이 뒤척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결 좋은 머리카락이 그의 가슴팍에 흐트러졌다. 익숙한 체온과 사랑하는 얼굴이 그를 현실로 데려왔다.

이상한 꿈이었다. 꿈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신이 삼킨 별들을 도란에게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정말 이상한 꿈.

진사해는 도란을 품에 꼭 안았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느낀 뜨거움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물론, 아름다운 신부님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싶어서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날이 밝도록 오래오래 서로를 안고 있었다. 태양이 떠오르자 하늘의 별들도 사라졌다. 그렇지만, 어떤 별님들은 따뜻한 신부님의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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