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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지금 만난 거 맞지 (1/98)

1. 우리 지금 만난 거 맞지

“여보세요? 은정이?”ㅡ아아, 희원아. 나야.“그래그래, 이 시간에 웬일이야?”집 앞에서 주차를 끝마친 희원은 친구의 전화를 받으며 시동을 껐다. 

시간은 오후 8시 53분. 

그녀는 통금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7분 남겨놓은 상황이다. 

ㅡ희원아, 내일 모임에 못 온다며. 정말 못 와? 희원은 친구의 질문이 민망한지 웃었다. 

그 웃음의 이유를 알고 있는 친구도 따라 웃었다. 

“은정아, 알잖아. 모임이 여덟 시 반이더라. 나 아홉 시까지 집에 들어와야 하는데 어떻게 가.”ㅡ그러니까 내 말이, 다들 시간이 그때밖에 안 된대서. 나도 일 끝나고 바로 가도 시간이 그렇게밖에 안 되더라고.“은정아, 괜찮아. 나 신경 안 써도 돼. 청첩장 받았잖아. 결혼식 날 보자.”저녁 아홉 시 통금은 생각보다 많은 일상생활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에 익숙해진 희원은 외려 친구를 위로했다. 

ㅡ희원아, 그런데 나 부탁이 있어. 결혼식 날 네가 부케 받아주면 안 돼?“부케? 내가?”시간은 어느덧 2분 경과. 이제 들어가야 한다. 

희원은 차에서 내렸다. 

“야, 결혼 생각도 없는데 내가 부케를 받아서 뭐 해, 다른 친구 줘.”ㅡ내 주변에 결혼 안 한 사람이 아무리 봐도 너밖에 없어. 알잖아, 나 아는 사람 얼마 없는 거.“아…….”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아홉 시가 넘기 전 집으로 들어서야 한다. 

ㅡ받아주라. 내가 이런 부탁 안 하려고 했는데 정말 너밖에 없어서 그래.“받는 건 어렵지 않은데, 아…… 뭐, 그래. 받을게.”ㅡ정말? 고마워! 고마워 희원아!“일단 나 집에 들어간다. 아홉 시 3분 전이야. 결혼식 날 보자.”ㅡ알았어! 내가 진짜로 부케 예쁘게 만들어서 다시 연락할게! 희원은 친구와 통화를 끝내며 현관문 앞에 섰다. 

어쩐지 낮은 탄식이 터져 흘렀다. 

“에효, 다들 결혼하는구나.”희원은 조금 전 무용단 사람들과 밥을 먹다 말고 통금 시간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달려왔다. 

다 먹지 못한 그릇을 두고 일어섰지만 그녀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에겐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통금 시간을 맞추기 위한 그녀의 사투는 실로 눈물겨웠다. 

뭐, 가끔 가다 통금 시간을 지키지 못해 집안을 뒤집어놓긴 했지만 가끔. 

정말 가끔이니까. 

어느덧 시간은 아홉 시 1분 전이다. 

“휴, 일단 들어가자. 들어가야지.”……비혼주의. 서른두 살.

엄한 집안의 문화 속에 자유를 꿈만 꾸는 권희원의 밤이 지난다. 

***

8:58 P.M

“다녀왔습니다ㅡ.”가까스로 통금 시간 내에 도착한 희원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늘 같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는 집 안의 모습.

“희원이 왔냐?”“네. 아빠.”아빠는 거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고 계시고, 엄마는 그 곁에 앉아 책을 읽고 계신다. 

“일찍 일찍 다녀라. 맨날 이렇게 아홉 시 딱 맞춰 들어오지 말고. 식구끼리 모여서 저녁 식사 해본 게 언제냐 대체.”슬리퍼를 꿰차고 안으로 들어서던 희원은 아빠의 일침에 멈칫, 했다. 

휴…….

“네. 알았어요.”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억울함을 호흡 한 번에 내리누르며 희원은 건성으로 답했다. 

딸아이의 음성이 건조한 것을 느낀 부친ㅡ 권 대표는 힐끔 딸아이를 바라보다 다시 뉴스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부친 권용택 명창은 전통음악의 선두자인 국악인이었고, 판소리의 대가였다.

대학 교수직을 두루 거쳐 현재는 한국민요학회의 대표를 역임하고 있었다. 

“희원아, 밥은 먹었어?”모친 임정순 여사는 책을 덮으며 딸아이에게 다가섰다. 

희원은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생활 한복을 입고 계시는 그녀의 모친 또한 한때는 한국무용계에서 촉망받는 무용수였다. 

“먹고 왔어. 정확하게는 먹다가 도중에 왔지.”“할아버지께 가서 인사드려. 지금 왔다고.”“알았어요.”집안 내력이 이렇다 보니 그녀 또한 자연스럽게 어린 날부터 민속 음악을 접했다. 

여러 갈래의 장르를 두고 고민했지만 그녀는 그중 한국무용을 택했다. 

그 선두엔 삼현육각 대금의 전설ㅡ 

서울시 무형문화재인 희원의 할아버지가 계신다. 

희원은 할아버지께서 이 시간에 주로 계시는 서재 방 앞에 섰다. 

똑똑, 노크를 했다. 

“할아버지, 저예요.”들어와라. 할아버지의 음성이 들려 희원은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희고 정갈한 한복을 입고 앉아 계신 그녀의 조부, 권난섭 선생께선 돋보기안경을 벗으며 고개를 들었다.

지난 세월을 말해주듯 손때가 묻어 너덜거리는 낡은 고서를 내리셨다. 

“저녁은 먹고 들어온 게냐?”“네. 먹고 왔어요. 약속이 있었거든요.”“순 못 먹을 것들 먹고 다니지 말고 웬만하면 집밥 먹어라.”“네. 할아버지.”수순이다. 이 정도의 잔소리는 그저 흔한 인사 정도인 격이니 희원은 차분하게 대꾸했다. 

“그럼 나가볼게요. 쉬세요, 할아버지.”“얘야.”“네?”희원은 다시 돌아섰다. 

여전히 펼쳐져 있던 고서를 완벽하게 덮으며 권 선생은 손녀딸을 응시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뜸을 들이시나, 희원은 멀뚱멀뚱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애비가 잘 아는 사람이 네 배우자 될 사람 소개를 하겠다고 해서.”“……네?”네? 희원은 못 알아듣겠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집안 좋고 가문 훌륭하고 배운 집에 정도를 아는, 그런 뿌리 깊은 집의 차남이란다.”“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제 배우자를 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찾아줘요?”“그 댁 차남도 잘 배우고 잘 자라 지금은 나랏일을 맡고 있다니 한번 만나나 보아라.”“제가 왜요?”쯧쯧. 권 선생은 혀를 찼다. 

권 선생의 시선에 손녀는 혼기가 꽉 차다 못해 이미 혼기를 놓쳐버린 노처녀였다. 

희원의 나이 서른둘. 

세상의 시선과 권 선생의 시선엔 간극이 있었다. 

“결혼 안 할 게냐?”“안 할 건데요?”“평생?”“응. 평생.”하지만 권 선생의 진짜 염려는 손녀딸이 평생 결혼을 하려 들지 않겠다는 작심에 있었다. 

“네가 이러고 배필 없이 혼자 살겠다고 하면 네 부모 속은 까맣게 타들어간다는걸 왜 몰라?”“일전에도 선보라고 하셔서 봤잖아요. 그게 마지막이라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는데.”“글쎄 만나나 봐. 누가 하루아침에 결혼하라냐? 얼굴이나 보고 밥이나 먹고 하라는데 뭔 말이 이렇게 많은 겐지.”“삼시 세끼 전부 중요한데, 그 중요한 밥을 아무나랑 먹기 싫어서요.”“네가 제일 잘하는 일이 밖에서 밥 먹는 일인데, 그중 한 끼 떼어먹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선만 보고 오면 체기가 돌아요.”“걱정 마라, 손 따줄 테니.”“꼭 선을 보고 결혼을 하고, 그래야 효도고 참된 인생인가요? 저는 혼자가 좋은데?”희원이 참고 있던 짜증이 폭발하듯 따져 묻자 다시 낀 작은 안녕 너머로 힐끗, 권 선생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태어났으면 응당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사는 거지. 그게 순리고 그것이 인생인데.”“어느 시대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니까요?”“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또 변한다고 순리마저 변하지는 않는다.”“그리고 저 아직 어려요, 할아버지. 요즘 나이 서른둘이면 한창 자기 개발하며 살아도 좋을 때라고요.”“여직 그 나이 되도록 자기 개발만 하고 살았는데도 여직 다 못 한 게냐?”“그러게요. 해도 해도 미개발 구역이 있어서요. 끝이 없네요?”“삼십이 년째 자기 개발만 해도 발전이 없다면 발달이 안 되는 게지. 포기해.”하…… 희원은 팽팽한 눈길로 대립했다. 

권 선생의 눈썹이 씰룩거리며 움직인다. 

“사람은 등 맞대고 살 사람이 있어야지. 네 부모는 항상 그 자리에 있고, 너는 천년만년 청춘일 것 같으냐?”“혼자 늙는 삶도 나쁘지 않아요. 저 외로움 잘 안 타는 거 아시잖아요.”“시간 넉넉하냐? 대화가 길어질 것 같은데.”……아. 아아. 그만. 그만 그만.

희원은 끝나지 않는 대화가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껏 무수히 많은 시간 싸움을 반복해왔지만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정서, 문화의 차이다.

할아버지는 여든을 넘은 연세에도 정정하셨으나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의 시대는 모르고 사시는 분이셨다.

저 옛날 어느 시절에 멈추고 고여야 이어갈 수 있는 무형문화재의 삶.

늘 옛것을 반복하고 옛것을 지키는 일에 열중이시다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빠르게 포기한 희원은 가늘게 눈을 뜨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만나서 밥만 먹으면 되죠?”“그래. 내가 무얼 더 하라 했냐? 밥만 먹고 오라는데 뭘 그렇게.”“알았어요. 저 그럼 밥만 먹고 와요. 진짜로요.”“차도 마시면 좋고.”“……콜. 거기까지.”쿨내가 진동하는 손녀딸은 쉽게 할아버지의 청을 들어준다. 

갈등과 서운함은 어쩔 수 없다 쳐도ㅡ

손녀딸과 할아버지는 서로가 서로를 아꼈고,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럼 저한테는 뭐 해주실 거예요?”“통금 하루 연장해주마. 열 시.”“열두 시. 열두 시까지로 해줘요, 할아버지.”“열 시.”“열한 시.”“……그래. 열한 시.”오케이! 콜! 

희원은 할아버지를 향해 협상을 완료했다며 눈을 찡긋거렸다. 

그러자 웃는 희원이 귀엽다는 듯 할아버지의 입가에 실금 같은 미소가 지어진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에요. 우리 할아버지 체면 안 설까 봐 나가는 거니까.” 희원은 나가려는 듯 방문을 붙잡고 신신당부했다. 

“또 내 허락 없이 선 자리 잡아 오고 그러면 안 돼요, 할아버지.”“일찍 자라. 또 휴대폰인지 뭔지 붙들고 늦게까지 있지 말고. 눈 베려.”“네. 쉬세요ㅡ!”내일 오후 일곱 시.

이름 석 자도 알지 못하는 사내와 식사 약속이 잡혔다. 

  

이튿날. 

희원은 식사 약속이 잡혀 있는 서울 시내 특급호텔로 이동했다. 

“얼마 전에 선봤을 때도 여기서 밥 먹었는데.”희원은 안으로 들어서며 중얼거렸다.

마주 앉아 식사했던 사내는 이미 이름조차 희미하지만 밥은 참 맛있었다는 기억이 선명하다. 

이왕 온 김에 일전에 먹어보지 못한 메뉴나 먹어봐야겠다. 

희원은 단순하게 생각하며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이십 분 정도 일찍 도착한 희원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내가 너무 일찍 왔나?”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일절 없고 예약된 식사 자리만 있다. 

흔한 전화번호도 알지 못해 희원은 가만히 앉아 상대를 기다려보기로 한다. 

버릇처럼 휴대폰을 들고 포털사이트를 바라보았다. 

“나랏일을 한다고?”그러다가 사내를 떠올렸다. 

얼핏 듣기에 나랏일을 한다던 것 같던데.

“공무원인가? 뭐, 녹 먹는 일이면 공무원이겠지.”사실 그다지 궁금하진 않다. 

직업이 무엇이건 하는 일이 무엇이건 간에 자신과 관계될 일이란 조금도 없을 테니까.

즐겁게 식사하고 즐겁게 대화하며 시간에 집중한 뒤ㅡ

“오시기 전에 화장실이나 다녀와야겠다.”최대한 정중하게, 최대한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는 선에서 만남을 종료하면 그만이다. 

희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였다. 

이곳으로 들어서던 사내가 직원과 몇 마디를 나누더니 희원이 앉아 있던 테이블을 바라본다. 

이미 걸음을 옮기고 있던 희원과 눈이 마주쳤다. 

“어…… 저분인가?”정갈한 슈트는 빈틈없이 맞아 떨어지고, 단정하다 못해 각이 잡힌 어깨는 상당히 넓었다. 

굵직한 선을 따라 시선을 올리니 훤칠하게 생긴 이목구비가 시선을 끌어당겼다. 

희원은 자리에 우뚝 멈췄다.

사내는 힐끔, 희원을 바라보다가 구석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저 남자가 내 맞선 상대가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없어 희원은 그 자리에 멈춰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니 창가 테이블에 사내 둘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저분들 일행이신가? 

그런데 왜 저렇게 바라만 보고 있지?

본인의 맞선 상대는 아닌 것 같아 희원은 화장실로 가려던 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휴대폰으로 무언가 확인하던 사내도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서로 가는 방향이 맞닿아 희원은 옆으로 비켜섰다. 

“19시 정각 식사 예약. 두 번째 테이블에 계신 분 맞습니까?”“네? 아, 네. 맞아요.”미묘하게 자신을 비켜서던 사내가 자신에게 물어오자 희원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사내는 쓱 희원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다시금 창가 테이블 쪽을 흘깃거렸다. 

“인사는 일단 나중에 하도록 하고.”……네?

통로에 서서 이도 저도 못 한 채 희원이 사내를 올려보자 사내는 다짜고짜 슈트 단추를 끌러 재킷을 벗었다. 

뭐 하는 작자인가 싶어 희원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실례지만 이것 좀.”사내는 자신의 재킷을 희원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사내의 재킷을 받아든 희원은 상황을 종잡지 못해 얼떨떨한 눈빛을 했다. 

“조금 떨어져요. 가까이 오지 말고.”“대체 무슨…….”알 수 없는 말만 잔뜩 늘어놓더니 사내가 걸음을 옮긴다. 

예약되어 있던 자신의 테이블을 지나치며 창가 테이블 쪽으로 다가간다. 

사내의 재킷을 내려다보고 다시 사내에게 시선을 옮긴 희원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벅저벅 창가 테이블로 걸어간 사내는 열을 올리며 앞에 앉은 남자와 대화 중인 남성에게 다가갔다.

“편수섭.”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소스라치게 놀란 눈으로 남자는 벌떡 일어섰다. 

편수섭이라는 사내는 잘 차려입은 정장에 깨끗한 얼굴을 하고 있어 사업차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라고 믿기 쉬웠다.

하지만 강간미수, 사기 전과를 통틀어 10범인 편수섭은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사기 및 마약운반, 성추행으로 수배령이 떨어진 상태였다. 

서울 한복판, 그것도 특급 호텔에 앉아 또다시 대범하게 사기를 치고 있던 현장을 잡은 것이다. 

“야 이씨!”편수섭이라 지목된 사내는 본능적으로 칼을 잡아들었다. 

두꺼운 바비큐를 썰던 나이프는 상당히 날렵하게 생겼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오지 마!”꺄아아악!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고 사람들은 자리를 이탈했다. 

“헐.”희원은 벌어진 상황을 바라보며 입술을 멍하니 벌렸다. 

보라는 맞선은 못 보고 경찰청 사람들을 라이브로 보고 있는 것만 같다. 

“또 너냐?! 또 너야?! 제발 나 좀 가만히 두라고!”편수섭은 징글징글하다는 듯 악다구니를 썼다. 

하마터면 사기를 당할 뻔했던 편수섭의 일행마저 멀찍이 벗어나고, 두 사람은 대치했다. 

편수섭이 칼을 근본 없이 휘두르는 상황에서도 사내는 침착하게 체포 전 고지를 마쳤다. 

“칼 내려. 그렇게 잡고 사람 찌르면 너도 다쳐, 인마.”“제발 만나지 좀 말자! 너랑 나는 무슨 악연이라 이렇게 만나냐! 맨날 맨날!”징그러워! 너만 보면 징그러워 죽겠다고오오오!

편수섭은 또 이놈에게 잡히게 된 상황이 열 받는지 바락바락 고함을 질렀다. 

희원은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상황을 주시했다. 

“편수섭. 한풀이는 대충 다 했냐? 다 했으면 이제 잡고.”“야 이 나쁜 새끼야아아아!”편수섭이 칼을 휘두르며 사내에게 무작정 돌진한다.

“꺄아아악!”난데없는 난투극에 희원은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사내의 재킷으로 눈을 가렸다. 

재킷에 짙게 배어 있는 묵직한 향수 냄새가 코끝에 강하게 스며든다.

우당탕탕탕ㅡ!

“으아아아아!”괴상한 소리에 희원은 힐끔 실눈을 떴다. 

편수섭이 쥐고 있던 칼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동시에 편수섭은 제압당한 상황이었다. 

가볍게 편수섭의 팔을 꺾은 사내는 등을 강하게 붙잡으며 바닥에 내리눌렀다. 

“놔! 이거 놔! 이 개새끼야! 놓으라고!”누워서도 발버둥이 심한 편수섭을 제압하며, 사내는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희원이 보이자 사내는 크게 외쳤다.

“거기! 주머니 안쪽에 패용증 있으니 신분 확인하시고!”“네? 아, 네! 네네!”“왼쪽 주머니엔 명함 있습니다!”“네! 네네!”희원은 무엇에 홀리듯 사내의 말을 따라 주섬주섬 재킷을 안쪽 주머니와 바깥 주머니를 확인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희원은 증명사진이 박힌 패용증을 바라보다가 명함으로 시선을 돌렸다.

명함은 개인적으로 만들었는지 이름과 전화번호만 깔끔하게 적혀 있다. 

그의 얼굴과 이름, 전화번호, 소속까지 한 번에 확인한 희원은 고개를 들었다. 

“네! 이해했어요! 편안히 볼일 보세요! 기다릴게요!”“그럼 약속시간 십 분만 늦겠습니다! 초면에 죄송합니다!”“이…… 이 새끼 뭐하는 거야! 내 앞에서 여자랑 뭔 개수작이야!”난데없는 썸이 불쾌한지 편수섭은 으득으득 이를 갈았다. 

사내는 편수섭의 머리를 가볍게 때리며 중얼거렸다. 

“선보러 왔다. 나도 내 인생 좀 살자. 선 자리까지 와서 너를 봐야겠냐 내가?”“선? 선?! 선 같은 소리 하고 있네에에에! 이 개노무 새끼가아아아! 니 주제에 무슨 선을 봐아아아아!”선을 본다니 더욱 강력하게 반항한다. 

그럴수록 사내는 더욱 완강하게 편수섭을 붙잡았다. 

“거기! 아가씨! 도망쳐! 이런 놈 만나면 인생 조져! 이 새끼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라고!”“야, 편수섭. 니가 나한테 할 소리는 아니잖아.”“내가 어때서! 내가 어때서! 내가 어때서 이 새끼야아아아!”하, 이 자식 보게. 사내는 작정했다는 듯 편수섭을 더욱 압박했다. 

출입증에 박힌 증명사진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희원은 고개를 들어 사내를 바라보았다. 

희원은 여전히 범인을 제압 중인 사내에게 큰 소리로 인사했다. 

“반가워요! 권희원이라고 해요!”“서지환입니다! 식사는 잠시 후에 하죠!”네! 희원은 재킷을 흔들었다. 

잠시 후, 한 무리의 경찰이 레스토랑으로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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