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우리만 아는 비밀
우리 결혼할래요?
지환은 멍하니 벌어진 입술을 하고는 희원을 바라보았다.
정작 본인은 무슨 말을 뱉었는지 모르겠다는 평온한 얼굴로, 피하지 않고 시선을 맞춰온다.
결혼해요. 우리.
이 여자가 취했나 싶어 힐끔, 지환은 술병으로 시선을 옮겼다.
“두 잔 마셨어요, 두 잔. 저 주량 아시죠? 취하지 않았어요.”그러자 그녀가 변호하듯 취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닌 그녀가, 갑자기 결혼을 하자고 하니 지환은 정신을 차리기가 힘이 든다.
사실은 자신도 이 말을 하려고 찾아왔으면서.
“서지환 씨, 놀라서 미친 거면 미리 말해줘요.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 그녀에겐 터무니없는 소리가 될까 봐, 막상 입도 뻥긋 못 하고 있었으면서.
“오해는 하지 말아요. 내가 서지환 씨를 사랑하게 됐다거나, 서지환 씨와 백년해로를 하고 싶다거나, 그런 뜻은 아니니까.”안심해요. 그런 거 아니에요.
희원은 아직 말을 잇지 못하는 지환에게 덧붙여 설명했다.
“쉽게 말하자면 서로 윈윈, 그러니까, 서지환 씨는 맞선의 고충에서 벗어나고 나는 자유를 얻고.”그녀는 내내 해왔던 생각을 말했다.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쉽게 생각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하며, 충동적인 결심 또한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서지환 씨가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처음 봤으니까.” 미친 여자로 보이기는 싫었다.
“형식상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해도 서지환 씨와 나는 서로가 원하는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벼운 여자로 보이기는 더더욱 싫었다.
“서로가 잘만 협의하고 협조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제안했어요. 거절해도 좋아요. 아니, 거절하는 게 맞겠지만.”희원은 상세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설명하며 술잔을 쥐었다.
그가 짓고 있는 표정만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으니 심장은 덜컹거렸다.
“사실 종갓집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어요. 집안 행사는 자유롭게 사는 대부분의 날들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할게요.”그녀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다.
긴장한 것이다.
“뭐, 아무리 놀랐다고 해도 그런 표정을 지을 것까지야. 그냥 평소처럼 웃으며 농담처럼 넘어가요. 서지환 씨는 충분히 그래도 되는…….”“……놀랍네요.”그가 입술을 연다.
희원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놀랐겠죠. 나도 내게 놀라고 있는 중이니까.”“사실은 나도 그 말 하려고 왔거든요.”“……네?”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희원은 멈칫하며 지환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기침도 잊은 지환이 종전과는 다른 눈빛을 하고 있다.
“권희원 씨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어…… 네. 그랬죠.”그녀의 맥박은 미친 듯이 뛰었다.
“선수를 뺏겼네요. 나도 그 말하려고 했는데.”“아…….”비로소 평온을 찾은 듯 보이는 그는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내어놓았다.
“잘됐네요. 어떻게 말해야 하나 내심 고민하고 있었는데. 권희원 씨에게 미친 사람으로 보일까 봐.”……맙소사. 생각이 통했단다.
“서로 원하는 바를 이루어줄 수 있을 것 같네요. 어차피 권희원 씨도 나도, 집안의 강압을 거스르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콩나물국밥을 먹다가,
지독한 감기로 앓는 기침을 하다가.
“권희원 씨가 하고 있는 생각, 나도 하고 있습니다. 굳이 부연 설명을 더 하지 않아도 될 만큼.”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를 결정한다.
“권희원 씨와 나는 집안의 숙원사업을 해소하는 거죠. 효를 다하는 마음으로.”“맞아요. 남의 눈총을 받지 않아도 되고, 명절이나 가족 모임에서 미운오리새끼가 되지 않아도 되고.”“열이면 열이 묻는 결혼 안 하느냐는 질문을 피할 수도 있죠. 때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맞아요. 심지어 매체 인터뷰 때도 저는 비혼인 이유를 항상 설명해야 했어요. 그리고 결혼한 사람들의 인생 선배 혼이 담긴 잔소리, 더는 듣지 않아도 된답니다.”당신과 내가 뜻을 합치면 수많은 불편거리를 해소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한 경우는 많죠. 무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맞아요. 사랑 빼곤 전부 다 맞는 결혼도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서지환 씨와 나처럼.”그 어느 때보다 대화가 잘 통한다.
서로 가지고 있던 고충이 동일하다 보니 뱉는 말 하나하나 깊은 공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혼이 성사된다.
해외 토픽에나 나올 법한 일을 단번에 결정한 것이 황당한지, 서로는 간간이 헛웃음을 토했다.
이렇게 쉽게 진행되는 것이 허무하기도 하고.
그래서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권희원 씨의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해줘요. 취소는 얼마든지 가능하니까.”“네. 하지만 번복할 일은 없을 것 같아요.”서로는 긴 대화를 나누었다.
적당한 호감만을 가진 채 진행하는 만큼,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며 배려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다.
집중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고 가능한 선에서 원만한 타협을 보았다.
남은 이야기는 차차 나누자고 대화를 갈무리하며 지환은 물었다.
“권희원 씨, 그럼 언제쯤부터 진행을 할까요? 저는 다음 주에도 맞선이 잡혔는데.”“쇠뿔, 단김에 빼죠. 미적거릴 것 없이.”양가에 알리는 일을 바로 처리하자고 그녀가 말하자 지환은 동의했다.
어차피 진행할 거라면 다음 맞선을 보기 전에 시작하고 싶었다.
지환은 술잔을 내밀었다.
거짓말처럼 기침이 멈춘 지금, 인생 전부를 내건 도박이 시작되었다.
“서로에게 필요한 조건들은 만나서 차근차근 해결합시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이야기해요.”“네. 서지환 씨.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서로는 잔을 부딪치며 약속했다.
평소엔 각자의 삶을 살다가 부부의 모습이 필요할 땐 언제든 최고의 배우자가 되어주기로.
지환과 희원은 서로에게 그 이상 발전하지 않는 호감을 느꼈다.
사실은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상대가 나를 사랑할 리 없다는 것.
내가, 상대를 사랑하게 될 리도 없다는 것.
“그나저나 서지환 씨, 기침 멎었네요?”“기침만 멎겠습니까? 권희원 씨 때문에 심장도 멎을 뻔 했죠.”“으휴, 능글맞기는.”아마도 기대하기를, 최고의 쇼윈도 부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역사적인 날이 지난다.
“결혼…….”집으로 돌아온 지환은 낯선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며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권희원. 그녀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니 그녀와 관계된 정보가 물밀듯이 쏟아진다.
키, 몸무게, 생년월일 같은 간단한 신상부터 공연 동영상, 뉴스, 인터뷰까지.
능력 있는 무용수 인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유명인사인 줄은 몰랐다.
대를 이어 내려오기에 어릴 때부터 조명받고 있었다.
그녀 공연을 보고 온 사람들의 포스팅엔 감동의 찬사가 이어지니 지환은 저도 모르게 실금 같은 미소를 지었다.
“조회 수 봐라. 엄청 높네.”그러다가 수많은 그녀 무용 동영상 중 가장 조회 수가 높은 동영상을 열었다.
두꺼운 화장을 얼굴에 입힌 그녀가 어둠 속에서 조금씩 움직임을 더해간다.
유심히 들여다보니 공연장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다.
상세 설명을 살펴보자 재작년 성공리에 폐막한 올림픽 개막식의 한 부분이다.
그때 당시 현장에서 개막식을 보았던 지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어…….”3분 남짓한 시간, 솔로로 무대를 장식하는 희원은 커다란 공간을 존재감으로 꽉 채웠다.
공연을 관람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것 같아 지환은 흥미롭다는 듯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네. 내가 이 공연을 봤었구나.”개막식 어느 한 곳에 앉아 그녀의 공연을 보았을 때만 해도, 이렇게 인연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느덧 영상은 끝이 나고, 묘한 기분에 휩싸인 지환은 소파에 머리를 기대며 천정을 바라보았다.
결혼 같은 건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는데.
내 인생에 그런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뭐, 어찌 되었든 결혼은 결혼이니까.”휴. 지환은 어쩐지 씁쓸한 마음이 들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둥근 테이블엔 그녀가 헤어지기 전 건네준 약 봉투가 있다.
……바라보던 지환은 휴대폰을 들었다.
마음이 심란해지기 전에, 차라리 이 모든 상황을 못 박고 싶었다.
더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도록.
그는 집에 전화를 걸었다. 홀로 바둑을 두고 계셨을 아버지께서 전화를 받으신다.
“저예요.”ㅡ그래. 이 시간에 웬일이냐?그녀도 지금쯤이면, 실행에 옮기고 있으리라.
지환은 그녀가 사준 약을 바라보며 입술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결혼. 이젠 무를 수가 없는 일이 되었다.
“예비신부님, 답답하면 말씀하세요.”“네.”초고속 결혼 진행이 시작되었다.
지환과 희원이 결혼을 결심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던 것이다.
혹시나 두 사람의 마음이 바뀔까, 양가 어른들은 그들보다 결혼을 서둘렀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상견례를 해치우고.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식장과 신혼집이 정해지고.
집안을 가득 채울 혼수와, 양가가 주고받을 예물 예단이 정해졌다.
정신없이 빠르게 진행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신부님, 끈을 조금 더 당겨도 될까요? 바짝 조여야 사진이 예쁘게 나오거든요.”“네. 괜찮아요.”어른들께서 무척 기뻐하셨으니까.
그렇게 기뻐하시는 표정을 보자니 결정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송했다.
하지만 끝끝내 당신들의 손주 손녀가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믿으신다면 불행은 없으리라.
두 사람은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더 조여요? 괜찮아요, 신부님?”“네. 괜찮은데요?”“어유, 무용하신 분이라 다르긴 다르네요. 가뜩이나 허리가 한 줌인데 이렇게 조여도 되나?”바야흐로 오늘은 웨딩 촬영을 하는 날이다.
마음 같아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인신고나 했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어른들이 섭섭해하실 테니까.
유난 떨지 말고 남들 하는 만큼만 해서 결혼하자.
합의를 보았기에 이런 결과물이 탄생한 거다.
“된 것 같아요, 신부님. 그만 조일게요.”“네. 그러세요.”희원은 의상실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허리 조이기에 여념이 없다.
밖엔 준비를 끝낸 지환이 있을 거다.
화려한 공연 메이크업에 익숙한 희원은 신부 메이크업을 자연스럽게 받았다.
“자, 끝났습니다. 거울 보세요, 신부님.”“아…….”“어때요? 너무 예쁘죠? 신부님이 보셔도 신부님이 너무 아름다우시죠?”머리를 손보고 화장을 곱게 하고 나니 평생 볼 수 없을 것 같던 순백의 여인이 거울 앞에 있다.
희원은 낯설다는 듯 거울을 응시했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한 드레스, 비슷한 헤어, 메이크업.
천편일률적인 결혼식. 그리고 스튜디오 사진.
“너무 잘 어울리세요. 근래에 본 신부님 중에 제일 예쁘시네요. 신부님은 마음에 드세요?”“……네.”그런 것들을 한심하게 여기던 그녀였다.
보여주기식의 많은 것들에 반항하고 싶을 만큼 염증을 느끼던 그녀였다.
“예쁘네요.”하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수순을 밟으며 결혼을 하는지.
그저,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거다.
“신랑님 기다리시는데 이만 나가실까요?”“네. 나갈게요.”희원은 드레스 자락을 들고 열리는 문틈으로 발을 내디뎠다.
세트가 마련된 스튜디오 한 켠에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지환이 서 있다.
“신랑님! 신부님 나오셨어요! 여기 좀 보세요!”그가 돌아서자 희원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괜스레 민망하고 부끄러운 기운이 샘솟는다.
“신랑님, 우리 신부님 너무 예쁘죠? 너무 아름답죠?”“여어, 권희원 씨.”지환은 흔연한 미소를 지었다.
많은 말보단 짧은 탄식에 대부분의 표현을 섞어 버무린다.
“다른 사람 같습니다만? 예쁘네요?”“평소엔 별로였나 봐요?”쳇. 희원은 민망한 마음에 괜히 툴툴거렸다.
지환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희원을 도와주시던 분은 흔치 않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 분 서로 존댓말 쓰시네요. 너무 보기 좋아요.”“아…… 네. 뭐, 존중하니까요.”지환은 얼버무렸다.
“맞아요. 서로 아무리 가까워도 오가는 말을 예쁘게 해야 해요. 그래야 나중에 덜 싸우더라고요.”뭐…… 그런 의도로 쓰는 건 아니고……
그냥…… 안 친해서…….
지환과 희원은 마저 설명하지 못한 채 말을 꾹 삼켰다.
영문 모르는 도와주시는 분만 서로 위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연신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자, 준비됐습니까?”기다리던 포토그래퍼가 다가와 오늘 촬영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한다.
두 사람은 조금 엉성한 자세로 가까이 붙어서 이야기를 들었다.
“두 분이 얼마나 협조하느냐에 따라 촬영 시간이 고무줄처럼 줄거나 늘어납니다. 신부님이야 워낙 베테랑이실 테니 걱정 없지만 신랑님이 좀 걱정인데요.”신부님, 신랑님 컨트롤 부탁합니다.
포토그래퍼가 격려를 하며 세트 준비를 시작하자 둘만 남은 지환과 희원은 잠시 머뭇거렸다.
미리 보았던 샘플 사진은 남녀가 다정하기 이를 데 없어, 들여다보는 것만도 손발이 오글거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흔적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두 사람은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으니까.
“잘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사진 찍히는 일은 젬병인데.”“서지환 씨, 설명 잘 들었죠. 우리가 어떻게 참여하느냐에 따라 시간이 단축되는 거니까요.”잘해보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끝낸 희원이 그에게 힘을 북돋았다.
목적은 단 하나.
일찍 끝냅시다.
“자, 두 분 이리 오실게요!”희원은 지환과 함께 세트 앞에 섰다.
처음부터 고난도 자세를 요구하는 포토그래퍼의 설명에 따라 두 사람은 삐걱삐걱 움직였다.
“자, 신랑님 목에 손을 두르시고, 아뇨. 조금 더 가깝게.”후…… 희원은 작게 숨을 내쉬며 그의 목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손길이 목덜미에 닿자 지환은 돌처럼 굳어 어정쩡하게 섰다.
“하하, 두 분 시작이라 어색하시네요. 몸 풀리면 괜찮아질 거예요.”시작하겠습니다!
포토그래퍼는 두 사람의 자세를 고치고 고치다가 포기한 듯 카메라 앞에 섰다.
“신부님 좀 더 다정하게!”찰칵.
“신랑님! 신부님을 좀 더 사랑스럽게 봐주세요!”찰칵.
하라는 대로 열심히 따라서 몸을 움직여보지만 쉽지 않다. 흐어, 미치겠다.
두 사람은 뻣뻣하게 굳은 몸을 마네킹처럼 움직였다.
“서로 마주 보시고ㅡ! 스마일ㅡ! 자ㅡ 웃어요ㅡ 거의 다 왔고요ㅡ 하나ㅡ 둘ㅡ 조금 더 가깝게ㅡ!”머릿속이 하얘진다.
나는 누구이며, 이곳은 어디이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신부님! 턱 당기시고ㅡ! 신랑님! 어깨 펴세요! 다 찍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허리! 허리 세우고!”대체 내 앞의 댁은 누구이며.
“다정하게 보세요! 미소! 얼굴 미소! 신랑님 더! 더! 미소! 치즈! 치즈ㅡ!”포즈도 힘든데, 치명적인 난감함이 여기 있다.
바로 서로 응시하며 미소 짓는 것.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응시하니 웃음이 터진다. 몇 초도 못 버티고 희원은 풉,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수그렸다.
아! 못 보겠어! 못 보겠다고!
이건 일이다. 이건 비즈니스다.
아무리 자가 최면을 걸고 심호흡 끝에 지환을 올려 봐도 소용없다.
“풉ㅡ!”“내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하, 미치겠다고요. 못 쳐다보겠어요.”“나는 뭐 쉬운 줄 압니까? 조기 퇴근. 잊었어요?”“하…… 미안해요. 해볼게요.”희원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풉. 다시 웃음이 터진 희원은 고개를 내렸다.
마주 보는 사진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포토그래퍼는 빠르게 자세 전환을 요구했다.
서로 마주 보고 앉으란다.
한참 자세를 교정해주더니 눈을 감고 입을 맞추란다.
“예에?!”이, 입을 맞추라굽쇼?!
둘 다 화들짝 놀라 기함했다.
뭘 그렇게 놀라냐는 표정으로, 포토그래퍼는 카메라를 들었다.
“늘 하시는 대로 하세요. 사람 없다고 생각하시고.”“아…… 어…… 음…….”희원의 입에서 탄식이 터진다.
“진짜로 입을 맞추라는 게 아니라 가깝게. 그만큼 가깝게 다가가세요. 눈 감고 편하게.”“어…… 아…… 음…….”희원은 연신 탄식을 터트렸다. 지환은 민망한지 턱을 문질렀다.
서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표정으로 잠시 뜸을 들였다.
“두 분 이렇게 하시면 오늘 안 끝납니다! 어차피 저는 집에 가도 할 일 없어요!”어억. 안 끝난단다.
두 사람은 눈에 번쩍, 하는 기운을 풍기다가 척척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퇴근이란 이토록 무서운 일이다.
“권희원 씨, 그럼 잠깐 실례 좀 할게요.”“네. 그러세요.”……지환의 입술이 내려온다. 희원은 최대한 표정을 풀며 눈을 감았다.
“오! 좋습니다! 지금 딱 좋아요!”가깝게 불어 내쉬는 숨이 엉킨다.
눈을 감은 어둠 사이로 상대의 기운이 느껴진다.
심장이, 뛴다.
“자자! 조금만! 조금만! 아주 좋습니다! 좋아요!”지금 이 순간은 다른 나머지의 것들을 모두 잊은 채 서로에게 집중했다.
느껴지는 온기, 은은하게 풍기는 서로의 향기, 그런 것들이 가슴에 담겨 고스란히 남았다.
“자, 수고하셨습니다! 두 분 다음 장소로 이동하겠습니다!”……동시에 눈을 떴다.
잠깐 동안 서로에게 빠져들던 두 사람은 빠르게 현실로 돌아온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홱, 서로에게 멀어지며 밀렸던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런 게 결혼이라면ㅡ
곧 죽어도 두 번은 못 하겠다고.
“그런데 저 침대는 뭐예요?”희원은 드레스를 갈아입으러 들어가다가 끌려 나오는 침대를 바라보았다.
포토그래퍼는 해맑게 대답했다.
“두 분 이따가 캐주얼한 장면에 쓸 세트예요.”“헐.”희원은 우뚝 멈췄다.
갈수록 태산이 될 촬영 앞에 눈앞이 캄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