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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작고 예쁜 큐피드 (20/98)

20. 작고 예쁜 큐피드

“정말 괜찮겠습니까? 다시 생각해봐요.”칩거 기간 동안 하리를 돌봐주겠다는, 구두상 확정을 짓고 본가를 나온 희원을 바라보며 지환은 다시 생각해보라 말했다.

희원이 형의 아이를 봐준다는 일은 어려운 문제였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대단한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괜찮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한 달 금방이에요. 봐요, 우리가 결혼한 지 벌써 몇 달인데.”“한 달은 짧지만 하루는 길지도 모릅니다.”“하리도 좋다고 하잖아요. 하리가 좋다는데 망설일 이유 없죠. 그리고 제가 바쁠 땐 아버님도 도와주신다고 했고요.”자다가 깬 하리는 아빠 엄마가 없는 동안 함께 있자는 희원의 말에 소파 위를 방방 뛰었다. 

마치 방학을 맞이해 친척집으로 놀러가는 듯한 즐거움이, 아이에게 묻어났다.

희원은 하리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난 사실 하리가 좋아해줘서 기뻐요. 내가 돌봐준다고 해도, 하리가 싫다고 하면 안 되는 일이었잖아요. 점수 잘 받은 것 같아서 좋은데요?”“희원 씨, 지금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내가 뭘요?”지환은 잠시 말을 아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하리와 알콩달콩 잘 지낼 생각에 들뜬 희원에게,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리 머리도 묶어주고 예쁜 옷도 입혀주고. 밤엔 동화책도 읽어주고, 너무 좋을 것 같지 않아요?”“좋습니다. 다 좋은데.”다 좋은데 말이죠…….

“하리만 돌보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 저도 그 집에서 살아야 합니다.”“……네?”역시.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지환이 난처한 표정을 짓자 희원은 눈을 감았다가 뜨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들어와서 살아요. 그럼 되잖아요.”뭐, 뭐라? 

지환이 당황한 듯 바라보자 희원은 무엇이 문제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알겠지만 남는 방 있어요. 문제없죠.”“아…… 괜찮겠습니까? 진심으로?”“제겐 서지환 씨가 더 불편해 보이는데요?”“저야 물론 형의 일이고, 하리에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 고맙기는 한데…….”지환이 속 시원하게 말을 뱉지 못하고 얼버무리자 희원은 맑게 웃었다. 

“지환 씨가 우리 집에도 잘하잖아요. 저번엔 할아버지랑 낚시도 다녀온 거, 다 알아요.”“그건 뭐, 일회성이었고 당연한 일이니까요.”“이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줘요.”“…….”더 이상 남은 말이 없는 지환은 그녀를 길게 바라보았다. 

……처음에 만났을 땐 예쁜 깍쟁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없는, 그녀는 지극히 개인주의 성향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씩 알게 되는 사실. 

그녀는 생각보다 정이 많고, 타인의 삶에 무심하지 않았다. 

“신세 한번 갚고 싶었어요. 지환 씨가 우리 집 식구가 되고 나서, 나와 우리 부모님, 우리 할아버지까지 얻은 게 너무 많으니까.”자신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소중한 만큼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것들을 귀히 대했다. 

받은 것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더 많이 보답할 줄 아는 사람.

“권희원 씨. 그럼 나, 이 대목에서 감동받아도 됩니까?”“물론이죠. 그러라고 이러는 건데?”그녀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대도 그녀를 선택했겠지만ㅡ

그녀가 예상보다 더욱 따뜻한 사람이라서. 

마음이 크고 넓은 사람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왕 받을 감동이면 많이 받았으면 좋겠어요. 나 무척 좋아하거든요, 생색내는 거.”“생색 많이 낼 수 있도록 감동받겠습니다. 저기, 권희원 씨.”“네?”“고맙습니다. 진심으로.”지환은 그녀에게 진심을 전했다.

함께 의논할 수 있고, 함께 헤쳐 나갈 상대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같은 고민, 같은 근심, 그리고 같은 행복.

“내일 제가 형님하고 통화하면서 다시 정리할게요. 남은 이야기는 다시 해요.”“네. 희원 씨.”함께 누릴 수 있었으니까. 

서지환 검사.

백인호 의원은 서재에 앉아 그의 이름을 곱씹었다. 

“서지환…….”금괴 밀수 현장에서 운반을 관리하는 중간책 ㅡ 공두철이 홍콩에서 붙잡혀 국내로 송환되었다. 

최다 밀수 금괴였던 만큼 국민적 관심도 대단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떠들썩했던 기사가 사라지고, 검찰은 은밀한 수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수사 중심엔 서지환 검사가 있었다. 

‘일단 공두철이 쉽게 입을 열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수사망에 잡힐 인물 몇 명 포섭해두었습니다.’은밀하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중앙지검의 윤명국 지검장이었다. 

수사가 시작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밀수단은 미리 잡혀 들어가도 무관한 인물들을 만들어두었다. 

방식은 간단했다. 

수사망에 걸려들 수 있도록 허술한 보안책을 유지하며, 당국 수사에 잡혀 들어가면 진술 또한 순순히.

적당한 변호인을 구성하여 최소한의 형을 집행 받는 방식.

잡혀 들어가는 대가는 상당한 액수로 보상되었다. 

늘 이런 식으로, 조직의 최상단은 검거망을 피할 수 있었다. 

잡혀 들어가는 건 돈이 필요한 궁색한 자들.

전과기록이 두렵지 않은, 죄의식에 무심한 자들이었으니까. 

“뭐 하느라고 빨리빨리 덮질 않고 아직까지도 수사 종결이 안 돼.”검찰청에서 수사를 오래 끌어봐야 좋을 일이 없는 백인호 의원은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걱정 말라던 윤명국 지검장의 말만을 신뢰할 수 없으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백 의원은 일어나 서재의 비밀공간으로 다가갔다. 

거울을 터치하자 지문을 인식하는 시스템이 열린다. 

쿠구궁……. 

지문을 인식하니 육중한 소리와 함께 비밀공간이 열렸고, 백 의원은 안으로 들어섰다. 

……사방이 금괴로 둘러싸여 있다. 

수북하게 쌓인 금괴는 언뜻 그 가치와 양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뚜벅뚜벅 걸음을 걷던 백 의원은 아무렇게나 금괴 하나를 집어 바라보더니,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카캉!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금괴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미 일본으로 들어갔어야 한다고. 이것들은.”일본으로 들어갔어야 하는 많은 양의 금괴를 바라보며 백 의원은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무릇 정치란 돈이 있는 곳으로 힘이 몰렸다. 

그렇게 쌓인 힘이 권력을 만들고, 그 권력이 더 많은 부와 더 많은 힘을 창출하게 하는 것이었다. 

신념으로 하는 정치란 결국 입만 놀리는 장돌뱅이나 다름없다고.

그에겐 끊임없는,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정치자금이 필요했다. 

금괴의 안전을 확인한 백 의원이 다시 비밀공간을 나올 때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ㅡ저예요. 들어가도 될까요?황급히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백 의원은 느닷없이 찾아온 아내 ㅡ 희주의 음성에 대꾸했다. 

“들어와.”서재는 백 의원의 철저한 개인 공간이기 때문에 희주는 이곳에 비밀공간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설마하니 집 안에 그토록 많은 금괴가 보관되어 있을 거라고는 꿈조차 꾸지 못한 희주가 안으로 들어선다.

행여 부산했던 움직임을 그녀가 눈치챌까, 백 의원은 평소보다 더욱 날카롭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데 여기까지 찾아와.”“영양제 드실 시간이에요. 챙겨드리려고 들어왔어요.”날이 선 백 의원의 음성에 희주는 머뭇거렸다. 

아내가 남편의 서재로 들어선 모습이라기보다ㅡ 

“빨리 놓고 나가!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네? 아, 네!”매 순간순간 지적과 꾸중을 듣는, 일 못하는 아랫사람 같다. 

불호령에 놀란 희주가 헐레벌떡 다가와 영양제와 물을 내려놓자 백 의원은 혀를 끌끌 찼다. 

……그녀와 결혼을 결심했던 건 몇 년 전.

채널만 돌리면 그녀가 나오기 시작하던, 그녀 최고의 전성기 때였다. 

“더 늦기 전에 챙겨드세요. 요즘 며칠 안 드셔서…….”“왜 이렇게 보채. 내가 건강하게 오래 살길 진심으로 바라는 것도 아니면서.” 그는 조금 더 자신을 빠르게 알릴 수 있는 방법으로, 그녀의 인지도를 선택했다.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녀를 반드시 가져야 했다.

수단과 방법이란 중요하지 않았다. 

“독 탄 거 아니야? 서서히 말려 죽이려고. 응?”“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원래 드시던 거니까 챙겨드리는 건데…….”그는 곁의 누구도 믿지 않았다. 

자신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결국엔 자신의 돈을 바라보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사랑 없이 곁에 온 그녀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너. 거기 서봐.”더는 나눌 이야기가 없어 희주가 돌아서자, 백 의원이 그녀를 부른다. 

멈춰 선 희주는 돌아볼 용기가 없어 멈춰 서기만 했다. 

백 의원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미간을 문질렀다.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어, 의심 많은 그는 필요 이상으로 모든 것들을 확인했다. 

피곤은 가중되었고, 자연스럽게 짜증과 분노가 늘었다. 

세상 앞에 드러낼 수 없는 본연의 탁한 모습은 언제나 그녀 앞에서만 벗겨졌다. 

“내가 널 왜 싫어하는 줄 알아?”희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더 이상 다칠 마음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 한마디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넌 항상 피해자야. 항상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난 잘못이 없어요, 난 순수해요.”하, 말끝에 백 의원은 실소했다. 

“하지만 넌, 내가 아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통틀어 가장 천박해.”“제발, 제발요 좀!”희주가 더는 참지 못하고 돌아서자 백 의원은 눈을 치켜떴다. 

그 쏘아보는 눈빛에 눌린 희주가 다시 어깨를 축 늘어트리자 백 의원은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기다려. 어떤 새끼들하고 질펀하게 놀아나다가 나한테 온 건지, 내가 전부 다 알아낼 테니까.”“……나가볼게요.”“개가 사람 말을 잘 듣는 이유가 뭔 줄 알아?”죽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그녀는 매일같이 그런 생각을 했다. 

“하도 잡아먹히다 보니 잘 따르는 거야. 대를 내려오며 습득한 거지. 잡아먹히고 싶지 않다는 본능이 있으니까.”조금의 사랑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백 의원은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이어 들려오는 칼날 같은 말들 앞에, 희주는 무거운 눈꺼풀을 올렸다가 내렸다. 

그녀는 버릇처럼 지환이 떠올렸다. 

지환과 행복했던 나날들을 되새기는 일만이, 지금을 버티게 해주었다. 

“너도 선택해. 그따위로 내 앞에서 언성 높이다가 잡아먹히든지.”……당신은, 잘 지내나요.

당신의 결혼은, 행복한가요. 

“그게 아니라면 개처럼 잘 따르든지. 꼬리를 흔들며, 살살살 웃으며.”생각이 드니 사무치는 그리움이 따라 밀려들었다. 

보고 싶다.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언제나 그리운 그가. 

“아…… 어디 보자…… 방은 다 치웠고…….”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 희원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늘은 하리가 집으로 오는 날. 

그녀는 아이가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이런 거 좋아할까? 좋아했으면 좋겠는데.”아이 방을 꾸미며 어둠도 무섭지 않을, 알록달록한 침구와 인형을 잔뜩 들여놓았다. 

지석의 부부가 이것저것 알아서 챙겨 보내준다고 했지만 어쩐지 긴장한 희원은 미리부터 하나둘 아이 용품을 사들였다.

“자…… 다 된 것 같지?”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희원은 두 손을 비볐다.

문제가 없다고 판단. 아이 방을 나선 희원은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뭐…… 여긴 내가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지환이 당분간 지내게 될 방. 희원은 주변을 돌아보다가 커튼을 묶었다. 

침실용으로 빠진 공간이 아닌 드레스 룸 공간이었지만 잠만 자기엔 문제가 없었다. 

한 달뿐이지만 그가 지내며 불편하지 않도록 싱글 사이즈의 침대까지 들여놓았다. 

“어우, 막상 온다니까 떨리네.”새 칫솔을 꺼내어 나란히 늘어놓고, 그와 아이가 신을 슬리퍼도 현관에 내어놓았다. 

아이가 먹을 밥은 낮 동안 아이를 봐주실 이모님께서 해주신다지만, 그녀는 틈틈이 블로그를 보며 아이 간식을 연구했다. 

그와 먹을 밥상도, 따라 눈여겨보았다. 

“아휴, 정신이 없네. 뭐 빠트린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혼자 살던 집 안의 변화. 

모든 것이 그녀 생활 패턴에 맞춰져 있었지만 한 달 동안은 아이의 눈높이로 변하리라. 

후…… 긴장감에 희원은 숨을 불어 내쉬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을 만큼, 시간이 지나면 더욱 심장이 뛰었다.

괜스레 그의 방을 열어보았다가, 아이의 방을 열어보기도 하고.

“잘할 수 있겠지? 한 달, 한 달만…….”동동거리는 발걸음으로 주변만 배회하던 때.

띵동ㅡ 

“왔다!”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희원은 부리나케 나가 문을 열었다. 

“아…….”문을 열자 하리가 서 있다. 

희원은 방금 전까지의 긴장감을 지우며 환하게 웃었다. 

“안녕, 하리야?”“앙녕하세여.”“어서 와. 어서 와, 잘 왔어 하리야.”그녀는 문을 더욱 크게 열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지환이 보인다. 

“아…… 잘 왔어요. 지환 씨.”지환은 일찍 퇴근을 마친 뒤 하리를 데려왔다. 

형의 집에서 챙겨준 하리의 짐을 들고, 캐리어를 끌며 현관문 앞에 서 있다. 

머뭇머뭇 안을 들여다보던 하리가 살금, 발을 내디딘다.

품에 꼭 안은 곰돌이 인형은 하리의 애착 인형인 것 같았다. 

뒤에 서 있는 지환도 어서 들어가라 아이를 재촉하지 않고, 안에 서 있는 희원도 하리에게 어서 들어오라 재촉하지 않았다. 

아이가 자발적으로 낯선 환경에 발을 내디딜 때까지.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기다렸다. 

“우와, 하리가 집으로 들어왔네?”결국 현관으로 느린 걸음을 걸어온 하리와 시선을 맞추며 희원은 하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리는 품에 안고 있던 곰돌이 인형을 쓱 내밀었다. 

“내 칭구. 이름은 하늘이에여.”“아아. 하늘이구나. 이름 너무 예쁘다. 하리가 지은 거야?”“네에. 하리 동생이에여.”신발을 벗기도 전에 애착 인형부터 소개해준다. 

희원은 하리가 신발을 잘 벗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손바닥만 한, 자그마한 신발이 현관에 놓이자 귀여움에 웃음이 난다.  

지환은 캐리어를 안으로 들여놓으며 문을 닫았다. 

“실례하겠습니다.”그런 말 하지 마요. 이상하잖아요.

희원이 눈으로 신호를 주자 지환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 앞이라지만, 자연스러워야 한다.

“하리야, 하리야. 숙모가 하리 방 소개해줄게. 우리 함께 가볼까?”“하늘이는요? 하늘이도 같이 가요?”“그럼. 하늘이도 같이 가야지.”아이 손을 붙잡고 희원은 하리의 방으로 들어섰다. 

지환은 익숙하게 하리의 짐을 풀었다. 

조카가 온다고 방까지 꾸며놓은 그녀의 정성 앞에 감탄사만 튀어나온다. 

하리야, 이것 봐. 얘들도 하리 친구야. 인사할래?

방에서 그녀 목소리가 들린다. 

하리야, 이건 어때? 이건 숙모가 하리 주려고 만든 잠옷이야. 숙모가 직접 만들었어. 

지환은 아이의 짐을 꺼내며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아이 잠옷까지 손수 만들었다니. 

이 여자,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 예쁘다. 

“하리야, 방은 마음에 들어?”희원이 긴장한 듯 묻자 하리는 희원을 올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인형들이 무척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하…… 성공했다…….

안절부절못했던 마음이 싹 가시는 기분. 

희원은 하리의 손을 붙잡고 나왔다. 

그사이 짐을 다 풀어놓은 지환은 일어서 가볍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내 잠옷은 안 만들었습니까?”헛소리하지 말아요. 나도 사서 입는데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하리는 특별하니까 만들어준 거예요. 지환 씨는 지환 씨의 사제 잠옷을 입도록 하죠.”“숭모, 삼쵼도 하리처럼 특별해요.”엇. 하리가 대꾸하자 희원이 당황한 듯 얼굴을 붉혔다. 

지환은 속이 다 시원하다는 것처럼 크게 웃었다. 

“들었습니까? 나 특별하다고?”“숭모도 특별해여. 우리는 다아아아 특별해여.”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모든 말이 보석 같다. 

희원은 하리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리야, 다음에 숙모랑 함께 삼촌 잠옷 만들까? 하리랑 비슷한 걸로?”“녜! 숭모 것도 만들어요!”“좋아요. 다음에 우리 같이 만들어요.”시작이 순조로운 것 같은 느낌. 

지환은 내내 가지고 있던 약간의 부담감을 내려놓기로 한다. 

“이건 참고하라네요. 읽어봐요.”하리의 집에서 적어준 종이를 그녀에게 건넸다. 

하리가 잘 먹는 음식부터 가리는 음식, 버릇이나 성격, 취향 등등 세세하게 적혀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리를 봐주는 이모님은 내일 오기로 하셨고, 오늘은 바야흐로 첫날 밤이다. 

“하리야, 이제 뭐 할까? 숙모랑 뭐 할까?”뭐 할까? 묻자 하리가 잠시 머뭇거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발돋움을 하고는 귓속말을 하고 싶어 한다. 

황급히 허리를 숙인 희원이 하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화장실이 가고 싶단다. 

“어디 갑니까?”희원이 하리의 손을 잡고 움직이자 지환이 물었다. 

“우리끼리 비밀이에요.”그녀는 이상한 답을 내어놓고는 화장실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이, 그에겐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이상적이었다. 

평화로운 저녁 식사를 끝냈다. 

온통 하리에게 집중한 희원과 지환은 한시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찌어찌 힘겹게 아이 목욕을 시키고, 희원은 뜨겁지 않은 바람으로 아이 머리를 말려주었다. 

아이 몸에서 풍기는 연약한 살 냄새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자꾸만 미소 짓게 되었다. 

“하리 이제 코 잘까?”희원이 묻자 하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부리나케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곰돌이 인형을 가지고 나온다. 

“하리는 하늘이랑 자여. 코오오오 자면 하늘이가 하리 옆에 있어여.”“우와, 그렇구나. 좋겠다.”숙모는 혼자 자거든. 희원이 내뱉지 못한 말을 삼켰다. 

어찌어찌 아이를 재우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지환도 멀뚱멀뚱, 희원도 멀뚱멀뚱 보고 있는 순간.

두 사람을 지독하게 괴롭힐, 웃기고도 슬픈 문제점이 시작되었다.

“삼쵼이랑 숭모는 뽀뽀 안 해여?”“……응?”잘못 들었나 싶어 하리를 바라보았다. 

소파에 앉아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흔들며, 하리는 천진하게 답했다. 

“우리 아빠랑 엄마는여, 매일매일 뽀뽀해여. 뽀뽀해야 코 잘 수 있다고 했어여.”“아…….”“아…….”두 사람 입술 사이로 동일한 탄식이 흐른다. 

희원의 머릿속은 새하얘지고, 지환의 눈앞은 캄캄해진다. 

“코오 자려면 뽀뽀해야 해여. 하리는 엄마랑도 뽀뽀하고 아빠랑도 뽀뽀해여. 하늘이랑도 뽀뽀해여.”“어…… 하리야, 숙모랑 삼촌은 다른 방식으로 인사한단다. 볼래?”희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직 무엇도 준비가 되지 않은 지환에게 걸어갔다. 

춤을 춥시다. 서지환 씨.

희원이 느닷없이 정체불명의 춤을 추자 뜻을 알아챈 지환도 덩실덩실 춤을 췄다. 

보기에는 우스운데, 두 사람 지금 무척이나 진지하다. 

갑자기 춤을 뚝 멈춘 희원은 하리를 바라보았다. 

“하리야. 이게 숙모랑 삼촌의 인사야. 코오오 자려는 인사.”“아닌데. 뽀뽀해야 하는데.”“아…….”“아…….”다시금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탄식이 터진다.

하리는 무척이나 맑은 눈빛으로, 아주 영롱한 목소리로 입술을 열었다. 

희원은 그제야 형님께서 만들어준 하리 노트에 적힌 말이 떠올랐다. 

[아이가 맞다고 믿는 건 무리 없는 이상 긍정해주세요.]

“아닌데. 뽀뽀를 해야 코오 자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그런데.”흐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희원과 지환은 서로 바라보았다. 

난처함이 섞인 두 사람의 눈빛은, 무척이나 볼만했다. 

“뽀뽀해야 하는데 그래야 코오오오 자는데.” 한 달. 

우리가 잘 버틸 수 있을까……?

“삼쵼이랑 숭모는 왜 뽀뽀 안 해여?”두 사람의 머릿속으로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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