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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어디냐고 (41/98)

41. 어디냐고

“서검, 이거 빨리 먹어봐. 대박 사건. 진짜 맛있어.”정윤은 여타의 시작이 그러하듯 한 손엔 먹을 것을 들고 지환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오늘은 퍼지는 버터 향이 일품인 데다가, 폭신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야채 모닝롤이다. 

“어라? 맛있네?”지환은 한입에 반 이상을 베어 물며 눈을 크게 떴다. 

“진짜? 맛있어? 맛있지? 얼마나 맛있는데?”“뭘 또 얼마나 맛있냐? 맛있으면 맛있는 거지. 괜찮네.”대답이 금세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윤은 닦달하듯 지환의 책상을 쿵, 쳤다. 

“야, 이 모닝롤을 사려고 내가 아침부터 쌩쇼를 했단 말이야. 서두르지 않으면 금세 매진이에요. 니가 그걸 알아?”“지극도 정성이다.”그래서, 어디서 샀는데? 

지환이 남은 반쪽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묻자 정윤은 냉큼 하나를 더 꺼내 지환에게 건넸다. 

“야, 너는 맨날 사 먹지도 않는 게 위치는 왜 그렇게 물어대?”“궁금하잖아.”맛있으니까, 퇴근길에 조금 사서 권희원 씨에게 가져다주는 것도 나쁘지 않…….

“아…….”지환은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깨달음이 온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앞으로는 퇴근길에 빵을 사러 밀리는 도로를 헤매고 다닐 일이 없어졌다. 

그녀가 좋아할 것 같은 생각에, 정윤이 내미는 간식을 눈여겨볼 필요도 없어졌다. 

맛있겠다며 기뻐하는 희원의 표정을 보는 것이 좋아서, 빵을 고르는 시간도 짐짓 즐거웠는데. 

이젠 과거가 되어버린, 이야기.

“서검, 표정 왜 그래? 잘 먹다가 갑자기? 이거 안 상했어. 나 막 아침에 사 온 거야.”“……누가 뭐라고 했냐?”지환은 공연히 씁쓸해지는 마음에 우적, 들고 있던 모닝롤을 한입에 밀어 넣었다. 

정윤은 급격하게 표정이 변하는 지환의 얼굴을 이리저리 보다가, 휴대폰으로 상호를 검색했다. 

“여기야. 이 집에 가면 모닝롤 말고 진짜 시그니처가 있는데…….”“필요 없어. 안 보여줘도 돼.”“뭐야, 조금 전엔 어디서 샀냐며.”지환은 우적우적 빵을 씹으며 정윤을 향해 이만 가보라 손을 흔들었다. 

“시식 아바타 구경 끝났으면 빨리 가. 나 바빠.”“우씨, 하나만 더 먹어주면 안 돼?”“야, 차검. 내가 너 때문에 이 킬로나 쪘어. 알아?”“운동을 해, 운동을. 밤마다. 어? 운동.”“나가. 빨리. 만사 다 귀찮으니까.”정윤은 뒤돌아 팔랑팔랑거리며 다른 시식 아바타를 찾아 떠났다. 

지환은 마지막 모닝롤을 꿀꺽 삼키고는 멍한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했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권희원…….”지환은 생각이 난 김에 들여다봐야겠다는 것처럼 그녀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했다. 

최신순으로 뉴스 검색을 하니, 그녀의 최신 공연 관련 인터뷰가 있다. 

“이럴 땐 유명인이라 편하네.”지환은 저도 모르게 뉴스를 클릭하며 반가움에 미소 지었다. 

그녀의 표정은 밝았고, 맑았고, 그늘이 없어 빛났다. 

그는 홀리듯 희원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 옆엔 언제나 그러하듯 구언이 나란히 앉아 있지만, 주제에 신경을 쓸 수도 없다. 

질문자의 위트 있는 말에 희원이 뒤로 넘어갈 듯 웃는다. 

구언은 힐끔힐끔 희원의 표정을 살피며 따라 웃었다. 

……순간순간 짓는 상대의 표정이 궁금한, 그래서 자꾸만 흘깃거리게 되는,

구언의 마음이 드러나는 사소한 행동에 지환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며 침묵했다. 

인터뷰 영상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그러다가 카메라가 그녀만 단독으로 잡는 순간이 왔다. 

지환은 빠르게 영상을 멈췄다. 

모니터 가득 그녀 얼굴이 잡히고, 그녀는 질문자의 물음에 할 말을 정리하고 있는 듯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은 시선.

“잘, 있죠.”그는 중얼거렸고, 화면 속 그녀는 그렇다고 말을 해오는 것만 같다. 

그렇게 오랫동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가슴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뛰었다. 

지환은 억지로 미소 지었다. 실제 그녀를 마주한 것처럼.

……웃을 일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 지금의 나날.

“덕분에 좀 웃습니다.”이렇듯 잠시나마 입꼬리를 올리게 만드는 건, 사진이건 영상이건, 실제이건 오직 그녀뿐.

휴. 지환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도무지 먼저 연락을 취할 주제가 못 되는 것 같아, 그녀에게 거는 전화 한 통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게 느껴지는 요즘.

마음은 마지막 퍼즐 하나를 잃어버린 것처럼 답답했다. 

어딘가 모르게 미완성인 것만 같아, 시원하게 지낼 수가 없었다. 

“오늘도, 파이팅해요.”그녀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갑자기 열 받는다. 

오늘따라 그녀의 행방을 묻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커피를 마시는데.

“검사님, 사모님 기사 잘 봤습니다. 검사님은 좋으시겠어요.”“예. 좋습니다.”재판 준비를 하는데.

“검사님, 신혼이라 재미 좋으시죠? 사모님이 어찌나 미인이신지, 부럽습니다.”“예. 저도 제가 부럽습니다.”점심을 먹으려는데.

“검사님, 갈수록 얼굴이 훤칠해지십니다. 사모님이 잘 챙겨주시는 모양입니다?”“예. 무척 잘 챙겨줍니다. 갈수록 훤칠해지네요, 쓸데없이.”남의 사정도 모르고, 오늘따라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녀의 이야기를 꺼낸다. 

뭐? 훤칠? 잘 챙겨줘? 재미가 좋아?

하! 웃기고들 있네! 정작 나는 내 와이프 목소리도 까먹게 생겼는데!

왜 이렇게 열 받는지 모르겠다. 

지환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검은 연기를 피워내듯 어둡게 걸어 다녔다. 

엇, 저쪽. 다섯 시 방향. 

염장 지를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이는 동료 한 명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다.

“야, 서검. 우리 와이프가 제수씨 팬이라는데, 제수씨 사인 한 장만 받아다 줘라.”“만나면.”“응? 만나면?”“……가, 좀.”지환은 대강 뱉어낸 자신의 대꾸가 이상했음을 깨닫고는 급히 손사래를 쳤다. 

하, 드럽게 피곤하다. 

“제수씨가 유명한 무용수이긴 한가 봐. 우리 와이프가 요즘 제수씨 동영상 찾아보느라 푹 빠졌어.”그 유명한 무용수, 나도 못 만나는 중이라고. 혹시 아냐고.

“가, 받아다 줄게.”“짜식, 왜 이렇게 넋이 빠졌어. 간다.”가…… 빨리…….

지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종료했다. 

시원하게 웃어 보였지만 내상을 입은 것처럼 속은 뜨끈뜨끈했다.

옘병, 저기서 또 날 보며 음흉하게 걸어온다. 

“아, 서 검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모님은 잘 계시지요?”“……예. 잘 지냅니다.”아마도. 

사실은…… 나도 몰라…….

지환은 공연히 씰룩씰룩 올렸던 눈꼬리를 내렸다. 

온종일 ‘사모님’ 소리에 시달렸던 지환은 급히 자리를 뜨며 걸음을 빨리했다. 

생각하다 보니 억울하다. 

결혼해요.

사랑은 하지 말죠. 

결혼을 하자고 제안한 것도 그녀.

사랑할 리 없으니 편하네요. 

사랑하지 말자고 제안한 것도 그녀.

좋아하게 됐어요, 서지환 씨를. 

그러더니 난데없이 좋아하게 되었다며 고백했던 것도 그녀.

예전처럼 편안하게 지내요, 우리. 

며칠 지나지도 않아 마음을 접겠다며 통보해온 것도 그녀.

전부 다 권희원! 권희원! 권희원!

“생각해보니 좀 억울한데.”지가 먼저 사랑 없는 결혼하자 해놓고, 좋아한다며 아무 생각 없던 마음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갑자기 더 생각해보니 우리는 안 되겠다며, 그녀는 혼자 치고 빠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이런 거지 같은 사태를 맞이하고 보니 슬슬 억울한 마음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꼬셔보겠다더니, 이게 꼬시는 거냐? 꼬시는 거야?”……휴.

지환은 사무실로 돌아와 아침 내내 만들어둔 서류를 들다 말고 중얼거렸다. 

마음은 마치 메뚜기 떼가 휩쓸고 지나가듯 휑하고. 

지난 결혼생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난데없이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하자는 대로 다 해준 것뿐인데.

나는 왜 와이프에게 당당하게 전화 한 통 걸어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점점 더 열 받는다. 

“가만히 있는 사람 들쑤셔 놓고…… 잘도…….”사람 마음이 갈대 같아도 유분수지, 이 정도면 갈대가 아니라 수수깡 바람개비 수준 아닌가?

생각할 틈도 안 주고. 마음을 정리하고 들여다볼 시간도 주질 않고. 

뭐가 이렇게 급해? 갑자기 좋아졌다더니, 갑자기 싫어졌어?

내가? 내가? 내가?! 

“따져야겠어. 안 되겠네.”흥, 지환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차 키를 노려보았다. 

두고 봐라. 일이 끝나자마자 달려가 얼굴 마주하고 이거저거 전부 다 따져줄 테다.

내가 따져 묻는 게 직업이야. 당신 딱 기다려.

“그럼 일단 일부터 끝내고, 그럼 뭐부터 하지. 아, 서류.”지환은 챙기던 서류를 주섬주섬 챙겨 쏜살같이 복도를 나섰다. 

공격적으로 걸음을 옮기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기다려라, 권희원.

눈물 콧물 쏙 빠지게 따져 물어줄 테다. 

“오늘은 모처럼 칼퇴다. 칼퇴.”지환은 모처럼 생기 있는 눈빛을 했다. 

비로소 그녀를 만나러 가도 될, 적합한 이유를 찾은 것이다. 

ㅡ여보세요 권희원. 공항 잘 도착했냐?“어어. 나 잘 도착했어. 정신 하나도 없네.”희원은 걸려온 구언의 전화를 받으며 짐을 챙겼다. 

오늘은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는 기록적인 날. 

며칠 전부터 꼼꼼하게 싸온 짐을 끌며 희원은 웃었다. 

“심장이 완전 두근두근해. 공항만 와도 이렇게 좋은데, 진작 좀 다닐걸 그랬어.”ㅡ너무 들떠서 생각 없이 돌아다니지 말고 긴장해. 사고는 갑자기 당하는 거야.“알았어. 알았다고. 나 이제 발권해야 해. 끊어.”ㅡ야, 권희원.응? 희원은 휴대폰을 내리려다가 다시 귀에 가져다 댔다. 

ㅡ연락 자주 해. 걱정되니까.“어이구? 남편처럼 군다?”ㅡ남편처럼 군다니. 네 남편은 이렇게 굴지 않잖아.“아오……. 무소식이 희소식이야. 끊어.”희원은 전화를 끊었다. 

깨끗하고 화려한 공항 안에서 좌우를 살피던 희원은 입가에 둥근 미소를 지었다. 

“내 걱정은 유구언이 대신해주니 나는 뭐, 즐겁게 놀기만 하면 되겠네.”가슴은 한없이 설레고, 무거운 짐을 끌고 다니지만 조금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발걸음.

“그래, 이제 시작이야. 시작.”진정한 홀로서기의 첫걸음. 

무엇이건 간에 혼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 위한 출발선.

이번 여행은 그녀의 인생을 통틀어 굉장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모든 것이 활기차 보이는 공항 안.

그녀는 항공사 데스크를 찾아갔다. 친절한 직원이 웃으며 반겨준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여권을 보여주시겠습니까?”“네. 여기요.”……그를 잊기엔 아주 좋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전화기의 전원이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

희원에게 두 번째 전화를 걸어보지만 전원이 꺼져 있다. 

지환은 턱을 문지르며 휴대폰을 내렸다. 

“공연 있나, 스케줄 없던데.”지금 이 시간이면 아슬아슬하게 연습실에 있을 것 같은데, 그녀의 전화기가 꺼져 있다. 

비행기에 탑승한 희원은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전원을 아예 꺼버렸지만, 그녀가 여행을 갔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지환이다. 

일단 전원이 꺼져 있으니 만만한 연습실로 찾아가 보기로 한다. 

흠. 어쩐 일인지 사뭇 긴장감이 웃돈다.

“권희원 씨, 얘기 좀 합시다.”룸미러를 힐끔 보며 지환은 정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너무 딱딱한가. 그래도 오랜만인데.

“연습 중이었어? 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언제부터 말을 놨다고.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지환은 입가에 매달았던 웃음을 지우며 도리질을 쳤다. 

“시간 있습니까?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하…… 미치겠다…….

뭐라고 인사를 하냐…….

와이프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어려운 시간.

그녀가 무슨 표정을 지을지 너무도 궁금하고, 기껏 준비해 봐야 그녀 표정 앞에 말이 제대로 나올 리도 없겠고.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그냥…… 될 대로 돼라…….”어떤 표정을 짓는 그녀이건 간에 얼굴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왜 왔냐며 냉랭할 카랑카랑한 목소리도. 

시시한 농담이나 내뱉는 내게 지지 않겠다는 듯 힘을 줘 올리는 눈꼬리도.

다 비워내 공허해진 눈빛이라도.

“설마 왜 왔냐며 잡아먹을 듯이 박대하겠어? 응?”일단 봐야겠다. 

보고, 이야기를 해야 했다. 

평소처럼 그녀 연습실 앞에 주차를 마치고, 한참이나 머뭇거리던 지환은 차에서 내렸다. 

마지막으로 희원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여전히 전원이 꺼져 있다. 

들어가도 되는 걸까, 아닌가.

언제나처럼 시원하게 발길이 떨어지질 않고 희한하게 머뭇거리게 된다. 

저 안에 그녀가 있다는 보장도 없고.

지금 그녀가, 자신과 마주칠 준비가 되었는지는 더더욱 모르겠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자신감이 떨어진다. 

“아, 거, 되게 어렵네.”용기 내어 몇 발자국 걸어보았지만 멈칫. 또다시 몇 걸음 옮기고는 멈칫.

아내를 만나러 온 남편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일단 통화가 될 때까지 기다려봐야겠다.”막상 연습실 앞에 도착해서 들어가려고 하니, 막막하다. 

지환은 일단 차로 돌아가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올 때까지 기다려봐야겠다, 다시 걸음을 틀었다. 

연락이 오늘 내에 오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그때였다.

“어?”자신을 발견한 듯한 여성의 목소리.

지환은 찰나, 온몸을 휘감는 반가움과 덜컹거리며 떨어지는 심장의 기운을 느꼈다. 

돌아서는 짧은 시간에 무척이나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며 지환은 저도 모르게 반가운 미소를 매달았다.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심장은 쿵쾅거렸다. 

“아…….”그런데, 

“희원 언니 남편분, 맞으시죠?”그녀가 아니다. 

“아…… 어…… 예. 안녕하세요.”지환은 당혹스럽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떼를 지어 밖으로 나오는 무용수들은 다름 아닌 희원의 후배들이다. 

그녀들은 지환을 알아보고는 반갑다는 듯 가까이 다가왔다.

우르르, 다가오니 지환은 저도 모르게 약간 뒷걸음을 걸었다. 

“맞구나. 안녕하세요, 저희는 희원 언니 동료예요. 결혼식 때 갔었어요.”“아, 네. 안녕하십니까.”이제 연습을 끝낸 모양이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아…… 그게.”아내를 좀 만나려고요. 전원이 꺼져 있던데, 여기 있습니까?

지환은 멘트를 정리하고 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말문을 연 건 그녀의 후배였다. 

“희원 언니는 잘 도착했대요? 혼자 여행을 보내주시다니, 깜짝 놀랐어요.”……응?

지환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그녀의 후배들이 따라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더니 시계를 보고는 저들끼리 떠든다. 

“아. 희원 언니 아직 가고 있겠다. 시간이 아직 도착했을 시간이 아니야.”“그런가? 좋겠다. 혼자 해외여행이라니. 너무 설레지 않아?”“그보다도 형부가 대단하신 것 같아. 보통 결혼하면 와이프 혼자 여행 보내주기 쉽지 않잖아.”……아. 여행.

그녀는 여행을 간 모양이다. 

여행.

“아, 하하하. 여행, 네. 여행. 갔습니다, 우리 와이프. 여행”여행! 그것도 해외로!

지환은 이제야 그녀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이다. 

느닷없이 마주한 진실에 당황한 지환이 하하하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고 있자 영문 모르는 희원의 후배들은 그를 따라 웃었다. 

뭐, 혼자 여행 갈 수 있지.

원래 그녀의 꿈이었으니까. 자유. 

결혼 뒤 혼자 만끽하는 삶. 그녀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

그래, 당연한 일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그녀는 버릇처럼 말했으니까. 

어디로 갔을까. 푸른 바다? 멋진 유적지? 

여기까지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녀는 언제고, 어디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니까. 

“하하, 하하하, 여행. 네. 여행, 갔죠. 잘 가는 중일 겁니다. 하하, 하하하.”자,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지환은 자신에게 향하는 여러 눈동자를 바라보며 웃음을 서서히 그쳤다. 

계속 웃는다고 해결될 일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여기는 왜 오셨어요?”그러게 말이다. 

나는 지금 여기 왜 왔다고 해야 하는 거지?

“언니도 여기 없는데. 연습실까지.”“…….”따져 묻는 것에 능한 남자는, 재치 있는 답변엔 젬병이 되었다. 

수많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고, 지환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의 답변을 기다리는 그녀 후배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앞이 깜깜했다.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해,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우와…… 대박…….”그녀는 비행을 끝내고, 입국 심사를 마친 뒤 공항을 빠져나왔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괌. 

원래 처음에 계획한 곳은 정신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관광지였지만, 구언의 조언을 얻어 막판에 휴양지로 바꿨다. 

사실 따뜻한 곳이 그립기도 했고, 바다도 실컷 보고 싶었던 김에 그녀가 선택한 최초 여행지다.

혼자 온 사람은 없어 보이지만,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도착했다…… 드디어…….”무사히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일렁인다. 

희원은 카메라에 풍경 한 장, 사진을 담고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자신을 호텔까지 안내해줄 버스를 찾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보이질 않는다.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했는데. 분명.”늦었나? 그럴 리가.

희원은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져온 짐을 터덜터덜 끌며, 이곳저곳을 찾아 헤맸다. 

“아…… 뭐야, 없잖아.”바로 앞에 있는 작은 봉고차가 자신을 픽업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녀는 ‘버스’라고 하니 이미지 그대로 생각한 대형 버스만 찾아다녔다. 

없다. 없어. 당황한 희원은 우두커니 멈춰 섰다. 

그녀가 이곳저곳을 헤매며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자 어슬렁거리던 현지인들이 다가왔다. 

택시를 이용할 것이냐? 흥정해주겠다. 

내가 더 저렴하게 해주겠다. 어디까지 가느냐?

숙소는 있느냐? 머물 곳을 찾는다면 내가 패키지로 저렴하게 안내해주겠다. 저들보다 저렴하게.

그들은 앞다퉈 영업을 시작했고, 희원은 갑자기 밀려오는 현지인들의 영업에 겁을 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 버스…… 어…… 셔틀…….”당황하니 기본적인 말도 제대로 튀어나오질 않는다. 

눈앞은 캄캄해지고, 대부분의 인파는 각자의 길로 접어들어 한산해진 공간.

“아, 미치겠다. 택시 안 탄다고 이 사람들아. 정신 하나도 없네, 진짜.”그때였다. 

“한국인?”누군가 자신을 불렀다. 

“네! 한국인!”“문제 있습니까?”웬 남자가 지나가던 길에 멈춰 서 자신을 부른다. 

예스! 되었어!

도와줘요! 의지의 한국인!

“호텔로 가는 버스를 놓친 것 같아요.”“호텔이 어딥니까?” 희원이 웬 사내와 대화를 시작하자 현지인들은 물러섰다. 

그녀가 호텔을 보여주자 사내는 잠시 들여다보는 척하더니 다짜고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코앞에 있는 조그마한 봉고차를 가리켰다. 

“저기 있네요. 바로 앞에.”“아…… 저거예요?”저거였다니! 희원은 캐리어를 바짝 쥐고는 사내에게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찾았어요!”“천천히 가요. 십 분 뒤 출발이니까.”“아…… 네.”사내는 웃었다. 그녀가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같은 방향인지 따라온다. 

그녀는 운전수의 도움을 받아 짐을 싣고 올라탔다. 

사내도 짐을 싣더니 올라탄다. 

남은 좌석을 찾아 앉는 사내를 향해, 희원은 상체를 비틀어 돌아보며 고개 인사를 다시 건넸다. 

“감사해요. 하마터면 놓칠 뻔했어요. 바보같이 큰 버스만 찾아다녔거든요.”“이 호텔은 공항 픽업을 자주 해서 작은 버스도 있어요. 큰 버스도 있고.”“감사합니다. 그리고 숙소가 같은 모양이네요.”“네. 보다시피.”감사함에 그녀는 웃었고, 사내는 더 말을 섞지 않을 예정인지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무안해진 희원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봉고차는 잠시 후 출발했고, 아름다운 풍경을 연신 지나 그녀가 머물 호텔로 데려다주었다. 

감탄만 내뱉기엔 지금이 믿기지 않을 만큼, 그녀는 충분히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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