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낯선 이의 데이트 신청
ㅡ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양 대표님 명함을 두고 왔는지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희원 씨밖에 없네요.전화를 걸어온 주혁은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왔다.
희원은 격하게 아니라고 말하며 시종일관 웃었다.
남편의 올라간 눈꼬리 따위, 보고 있을 리 없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ㅡ내일 오전 중 처리해야 할 일이 밀려서 미팅을 한 시간 정도 늦춰야 할 것 같은데, 양 대표님 연락처를 좀 알 수 있을까 해서.“그럼요. 물론이죠. 제가 메시지로 연락처 보내드릴게요.”ㅡ그렇게 해주면 고맙겠습니다.주혁은 용무를 해결한 뒤 간략하게 전화를 끊었다.
희원은 휴대폰에서 사무실 대표의 연락처를 찾아 그에게 전송해주었다.
거실 공기가 지나치게 무겁다는 것을 깨달은 희원은 힐끔, 지환을 바라보았다.
어랍쇼. 눈에서 레이저가 솟구치고 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누구 전화입니까?”“누구 전화긴요, 그런 건 왜 물어요? 서지환 씨는 알 권리가 없고 나는 통지 의무가 없죠.”하…… 지환은 야박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대꾸에 눈을 가늘게 떴다.
쌀쌀맞게 대하기로 작정을 했는지, 그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시를 꽂았다.
부글부글부글…… 공연한 분노가 끓어오른다.
“이번에 내한한 유명 에이전시 대표님이세요. 우리 사무실 대표님 전화번호 좀 알려달라고, 용건은 그것뿐.”지환이 하도 개떡 같은 표정을 짓고 있자 희원은 마지못해 설명했다.
“원래부터 알고 지낸 사이입니까?”“아뇨? 아, 뭐, 안다고 하기도 뭐하고, 몰랐다고 하기도 애매한.”“한국 사람?”“그러니까 한국말을 했겠죠? 질문 몇 개 더 남았어요? 좀 알고 싶은데.”질문? 천오십 개 더 남았다! 왜!
“에이전시 대표라며, 호칭은 왜 그 모양입니까?”“네? 무슨 호칭요?”“하, 내 입으로 차마 뱉어내기도 민망스럽네.”하, 하! 하!
지환은 탄식처럼 코웃음을 치며 더욱 눈꼬리를 올렸다.
희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것처럼 멀뚱멀뚱 지환을 바라보다가 싱겁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대표님은 나이가 나보다 많아요.”“많아야지. 당연히 나이가 많아야지.”호칭이 오빠인데, 많아야 정상 아닌가? 누가 그걸 모른다고 했나?
“그래서 오빠라고 부른 건데, 문제 있어요?”……없다. 문제.
지환은 차마 제 입으로 뱉어내지 못한 말을 둥글게 둥글게 뭉쳐 꾹 삼켰다.
다시금 평온하게 돌아와 마저 뒷정리를 할 요량인지 뒤로 돌아서는 그녀를 향해, 그는 입술을 열었다.
결국 주둥이는 남의 편이지 싶다.
“나도 권희원 씨보다 나이가 많습니다.”“알아요.”“많죠. 나이. 알다시피 많습니다. 나이.”“그래서요?”뭐, 뭘 그래서요야!
나는 왜 오빠라고 안 불러주는 건데!
지환은 눈썹만 씰룩씰룩 거리며 초조한 듯 다리를 떨다가, 턱을 들어 올렸다.
다소 작위적으로 폼을 잡고 앉은 채 손가락을 휘휘 돌리다가 다시 입술을 열었다.
“불러봐요. 오빠라고.”“……뭐, 뭐요?”이번엔 희원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진다.
종이로 표현하자면 열여섯 번은 좌로 우로 접어놓은 것만 같다.
“해봐요. 오, 빠.”“내가 왜요?”“왜긴, 내가 당신보다 나이 많으니까.”“노노노. 가족끼린 그러는 거 아녜요.”“가족이라니, 아깐 타인이라며? 이럴 때만 가족입니까?”“…….”별것도 아닌 걸로 트집이다. 희원은 팔짱을 끼고 서서 지환을 바라보았다.
얼굴 볼 일이 별로 없어 싸울 일도 없겠다 싶었는데.
사소한 일로 투닥투닥 했던 날들도 그립겠구나, 싶었는데.
그립긴 개뿔이나!
“나한테 오빠 소리가 듣고 싶은 거예요, 지금?”“듣고 싶다고 하면 해줍니까? 서지환 씨 집어치우고?”“서지환 씨도 날 권희원 씨라고 부르잖아요.”“그럼 앞으론 바꿔보죠. 뭐라고 불러주면 좋을지 선택해요. 여보, 부인, 자기, 내 사랑.”“그만! 그만 그만!”어후! 왜 이래 이 남자가 갑자기!
희원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강력하게 손사래를 쳤다.
그녀 얼굴이 문드러져갈수록 그의 속은 점점 더 좁아터져만 갔다.
“난 오빠, 혹은 자기야, 여보, 셋 중 하나가 제일 좋겠는데. 아이가 없는 집이니 오빠라고 불러도 무관하겠고.”“이봐요, 서지환 씨.”“할 수 있으면 말도 편하게 하고.”“…….”“나도 앞으론 그렇게 할 테니까.”순식간에 그의 말이 짧아진다.
희원은 짧은 시간에 훅, 치고 들어오는 그의 변화에 적응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휘둘리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당최 감을 못 잡겠다.
“어서 일어나요. 집에 가요. 나 진짜 쉬고 싶으니까.”생각이 많아지기 전에 어서 이 작자를 쫓아내야겠다, 희원은 이마를 짚으며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조금 더 버티고 앉아 씨름할 것 같았는데, 가라니 이번엔 순순히 일어난다.
“그럼 갈 테니 이만 쉬어. 피곤할 텐데.”지환은 재킷을 챙기며 갈 차비를 했다. 어차피, 얼굴만 보고 돌아가려던 차였다.
어느덧 짧아진 그의 말투가 낯설어 희원은 그의 행동만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빠르게 뒤로 돌아 저벅저벅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곁을 비켜 갈 줄 알았는데 자신의 발끝에 그가 멈춰 서자 희원은 움찔했다.
그는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깝게 서서, 얼굴을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왜, 왜 이래요.”“그냥.”“…….”“새삼 예뻐서.”
헐…… 희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는 비스듬했던 상체를 바로 했다.
“서지환 씨 왜 이렇게 갑자기 변했어요? 사람 적응 안 되게.”“이게 원래 나야. 당신이 궁금해했던 진짜 나.”“…….”“사랑에 빠진 남자, 서지환.”그는 덤덤하게 갈무리를 짓더니 그녀의 곁을 스쳐 지났다.
현관으로 걸어가 구두를 정갈하게 신고는 문고리를 잡았다.
“따로 사니까 좋은 점도 있네. 매 순간이 아쉽고, 간절하고.”“…….”“또 봅시다. 푹 쉬어.”지환은 멋쩍게 웃더니 문을 열고 나섰다.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희원은 입만 쩍 벌리고 서 있다가 눈을 깜빡거렸다.
“뭐야. 방금 저 남자, 서지환 씨 맞아?”가슴은 그가 사라짐과 동시에 풀떡거리기 시작했다.
희원은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그가 떠난 자리만 오래도록 응시했다.
……마음을 열기로 작정했다는 남자는, 각오가 단단히 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두껍게 입고 있던 갑옷을 벗어던진 것처럼 행동과 표현에 거침이 없었다.
농담처럼 내뱉던 때와는 사뭇 다른 진심이 느껴졌다. 희한하게도.
“밥이라도 먹여서 보낼걸, 설마 안 먹었는데 거짓말한 거 아냐?”사랑에 빠진 서지환은 권희원을 향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도착할 때까지,
전력으로 질주하여.
얼마 후에 개최될 서울세계무용축제를 앞두고 국제 합작 프로그램을 위해 관계자들이 모였다.
그중엔 내한한 주혁도 있었고, 희원도 있었다.
문화적 외교를 위해 서울시는 매해 축제를 열었다. 이번엔 전례 없이 규모가 방대했다.
세계적으로 드높아진 K-POP의 영향으로 프로그램도 더욱 다양해졌다.
그중에도 서울시가 가장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부문은 한국무용.
이른바 전통이었다.
“이번 기회에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무용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그 외 다수의 핵심 프로그램에 협력하게 된 주혁은 일정을 조율하며 한국무용에 대한 기대를 표했다.
“물론입니다. 저희가 누구보다 가장 바라는 일이기도 합니다.”원탁에 모여 대화를 주고받던 관계자들은 일제히 희원을 바라보았다.
구언과 나란히 앉아 있던 희원은 시선이 쏠리자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믿어주세요.”“그럼요, 우리가 희원 씨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당연한 말씀을. 잘 부탁드립니다.”관계자들이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온다.
공연에 관련된 이야기는 가열되나 싶더니 소각되었고, 어느덧 끝이 났다.
참석했던 희원과 구언은 일어났고 주혁은 찾아오는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는 회의장이었다.
“슬슬 가자, 희원아.”“응. 그래, 가자.”격식 있게 차려입은 두 사람은 갈 차비를 했다.
길게 늘어선 관계자들과 한 명 한 명 인사를 주고받던 주혁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잠시만 실례.”이야기를 나누던 관계자와 대화를 끊은 주혁은 희원에게 걸어왔다.
“갑니까?”“네. 저희는 이만 가도 될 것 같아서요.”“도착하자마자 정신이 없어서 말도 몇 마디 못 했는데.”“그러게요. 유명하신 분이니 유명세 톡톡히 치르시네요.”일 보세요. 저는 가볼게요.
희원이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주혁은 다소 아쉽다는 듯 손을 비볐다.
바라보니 충혈 된 주혁의 눈. 희원은 일정이 빡빡한 것 같아 근심을 담아 물었다.
“피곤해 보이시는데, 괜찮으세요?”“사실 어제 밤새 권희원 씨 공연 무대를 찾아보느라 잠을 못 잤어요.”“어? 진짜요?”“하나만 더 보고 자야지, 하나만 더 보고 자야지, 하다가 그만.”그가 보조개를 드러내며 웃자 희원은 말도 안 돼, 하며 따라 웃었다.
데니스 한이 자신의 공연 무대를 모두 검색해보았다는 사실은 감동이긴 했다.
“괜찮으면 시간 좀 내줘요. 권희원 씨와 한국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물론이죠. 그런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저도 같이 가도 됩니까?”구언이 훅, 껴들자 주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드러냈던 보조개를 지웠다.
뚱한 표정으로 구언을 바라보던 주혁은 다시 친절하게 웃었다.
“안타깝지만 유구언 씨의 무대 영상은 아직 못 봐서, 보고 나서 다음 기회를 잡도록 합시다.”……하! 구언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군계일학의 군계가 되는 일, 언젠가 한번 겪은 것만 같은데.
맺고 끊음이 확실한 CEO는 불필요한 사람들과 자리를 엮지 않았다.
지금 주혁의 시선에 구언이란 그런 존재였다.
그가 꽂혀 있는 분야는 한국무용이었으므로.
“그럼 10분만 기다려줘요. 식당은 이 건물 8층, 괜찮겠죠?”“그럼요. 천천히 일 보세요.”희원이 어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가보라 하자 주혁은 걸음을 옮겼다.
옆에 서서 수치스러움을 긴 숨으로 표현하고 있는 구언을 바라보며 희원은 팔을 툭툭 쳤다.
“먼저 가봐. 다음에 기회 있을 거야.”“하…… 말도 안 돼. 날 까다니.”“까는 게 아니지, 아직 안 봤다잖아.”“그게 그거야. 그게 그 말이라고.”무용수의 자존심에 금이 간다.
내가 같이 가면 뭐 어때서? 똥파리 보듯이 그렇게 사람을 내리깔며 봐도 되는 거야?
“나는 뭐 지랑 할 얘기가 있어서 같이 가자고 한 줄 알아?”너만 잘났어? 나도 잘났어. 이거 왜 이래?
오랜만에 무시당했다는 느낌. 구언은 눈꼬리를 올리며 긴 숨만 불어 내쉬었다.
사실 데니스 한과 사적인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앞으론 내 쪽에서 사절이다! 사절이야!
흥, 구언이 금 간 자존심을 붙들고 어깨를 펴고 있자 이윽고 볼일을 끝낸 주혁이 희원에게 다가왔고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퇴장했다.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에야 구언은 눈꼬리를 가늘게 만들었다.
“마음에 안 들어…… 안 들어…….”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어, 구언 씨, 아직 안 가셨어요?”“아, 예. 지금 막 가려고 합니다.”멍하니 서 있자 관계자가 다가온다.
오랜만에 만났다는 듯 어깨를 툭툭 치며 인사를 해오던 관계자는 데니스 한을 만난 소감을 토로했다.
“실제로 보니 진짜 미남이더라고요. 그 얼굴에 그 재력에 그 능력에, 캬. 대단하지 않습니까?”“아, 네, 뭐.”지금 심정엔 별로 달갑지 않은 말이다.
사실 처음 데니스 한을 보았던 연습실에선 그에게 호감도 적지 않았는데.
“그래서일까요? 여성 편력이 엄청나다는 소문이 있어요.”“네? 무슨.”관계자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검증되지 않은, 한갓 소문에 불과하다.
“그 나이에 벌써 이혼을 네 번이나 했대요. 중간에 스캔들도 많았고.”“예에?”구언은 눈을 크게 떴다. 관계자는 조용히 하라며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두 사람의 등이 이유도 없이 굽어진다.
“데니스 한을 보기 전엔 별 미친놈이 다 있구나, 혹은 그냥 하도 잘났다니 소문도 무성하구나 했는데 말이죠. 오늘 보니 소문이 사실일 수도 있겠어요.”“아…… 어…….”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든다.
한국무용에 관련된 일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하는 희원에게 검은손이 음흉하게 다가가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인다.
“괜한 소문은 아니겠거니 싶습니다. 남자가 봐도 잘생겼는데, 그렇죠?”“어…… 그래도 확인된 사실은 아니죠?”“뭐, 그렇죠. 당사자한테 들은 이야기는 아니니까. 가정사를 묻는 건 실례잖아요.”이렇게 검증되지 않은 소문을 옮기는 것도…… 실례야…….
실제인지 소문인지 알 수도 없는 이야기. 하지만 구언의 얼굴은 편치 않다.
“전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또 봐요, 구언 씨.”관계자는 괜한 근심거리만 잔뜩 안겨준 채 퇴장했다.
여성 편력.
……여성 편력.
구언은 힐끔 시선을 들어 올렸다. 이 건물 8층, 전망 좋은 레스토랑.
“설마, 뭐, 문제 있겠나.”……이곳은 호텔 컨벤션.
“아 찝찝하게, 진짜.”구언은 내내 중얼거리다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쩐지, 희원의 뒷모습이 늑대의 손을 잡고 퇴장한 빨간 망토 아가씨처럼 기억되었으므로.
“나야.”ㅡ네네. 알고 있어요.“연습은 끝났나? 오늘 바쁘다더니.”지환은 얼추 일을 마무리했다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들여다보며, 그녀의 연습이 끝났는지 물었다.
시간을 맞춰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오늘 하루 종일 이 시간만 기다렸다.
ㅡ연습 못 했어요, 오늘. 바빴거든요.“저녁은?”ㅡ아직요.“잘됐네. 저녁 같이 먹자, 내가 당신 있는 곳으로 갈게.”ㅡ저녁? 오늘은 안 되겠는데.외투를 집던 지환은 멈춰 섰다. 응? 안 돼?
“선약 있어? 웬만하면 같이 먹고 싶은데.”ㅡ웬만하지 않아서요. 미안해요,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아아, 약속. 중요한 약속.”지환은 희원의 말을 곱씹으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평소라면 그녀가 어떤 약속인지 설명을 해주었기에.
ㅡ밥은 혼자서도 씩씩하고 맛있게. 알죠? 그럼 끊어요.“어? 권희원 씨! 권희원 씨! 잠깐만! 잠깐만요!”급하니 짧아졌던 말도 다시 길어진다.
띠릭. 하지만 애석하게도 전화는 끊겼다.
지환은 황당하다는 듯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뭐야, 무슨 약속인데 이렇게 야멸차게, 사람 참.”에효…… 누가 배가 고프다고 했냐? 얼굴이나 보려고 같이 먹자는 거지.
밥은 핑계란 말이다, 이 여자야.
“……제길,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야근이나 해야겠다.”지환은 수북하게 쌓아놓은 서류 더미를 바라보다가 다시 외투를 걸어놓고는 털썩, 자리에 앉았다.
칼퇴는 개뿔이나, 야근이나 하며 일이나 처리해야지.
휴대폰으로 전화가 오는 것에 지환은 빛의 속도로 반응했다.
옘병, 그녀인 줄 알았더니 모르는 번호이다.
심드렁하게 전화를 받았다.
“서지환입니다.”ㅡ접니다. 유구언.……오라는 전화는 안 오고, 이상한 놈팽이가 어떻게 번호를 알고 전화를 걸어왔다.
지환은 오만상을 찌푸리다가 입술을 열었다.
“뭡니까, 알려주지도 않은 남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다 하고.”반갑지 않다고 대놓고 말하자 저쪽에서 난들 좋아서 전화했냐는 듯한 음성으로 말을 한다.
ㅡ시간 되면 좀 만나죠. 우리.응? 지환은 눈을 크게 떴다.
ㅡ밥 먹자고요.이상한 놈의 데이트 신청 같은 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