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 사랑, 부르는 대로 (72/98)

72. 사랑, 부르는 대로

“뭐고. 니 아는 사람이가.”

알량한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이윽고 옅은 반가움도 지나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윤은 차민규의 어깨를 붙잡고 서서 자신을 바라보

고 있는 전남편을 향해 쌍심지를 켰다.

“뭐야, 왜 이제 와? 지금이 몇 신데 이제 오냐고.”

“오는 길에 일이 생겼다고 안 했나. 뭐, 얼추 시간 맞춘 것 같은데.”

현수는 중얼거리며 그녀의 타박에 대꾸했다.

놀랐는지 자신에게 어깨를 붙잡힌 채 끅, 끅, 딸꾹질만 하는 차민규의 얼굴

을 바로 보았다.

“여 볼일 있습니까.”

“볼일은 무슨! 뭔데 어깨를 잡아! 놔! 끅!”

“아니이, 내가 먼저 물었잖아. 당신 이 여자 아냐고.”

“알긴 뭘 알아! 이 여자가 내 옷에 커피를 쏟아서! 끅! 아, 놓으라고!”

차민규는 거칠게 반응하며 몸을 움직였다.

자신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잡고 있던 현수의 손을 뿌리치며 차민규는 비틀

비틀 몸을 휘청였다.

이런 제길. 혼자 있다니 들이댔는데 일행이 있던 모양이다.

이럴 땐 자리를 황급히 떠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골치 아프니까.

“남자가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끅, 지도 마음이 있는 것처럼

굴더니.”

차민규는 어깨를 툭툭 털며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러자 다시 솥뚜껑만 한 현수의 손이 그의 어깨를 붙잡는다.

아아. 골치 아프게 생겼다. 끅.

“니 마음 있는 것처럼 굴었나, 이 남자한테.”

“뭐, 뭔 소리야! 누가 누구한테 마음이 있어! 재채기 하다가 커피 뿜어서 사

과하고 있었는데!”

“어깨 좀 놓고 말하쇼! 놓고! 아파 죽겠네! 끅!”

발버둥을 쳐보지만 어찌나 힘이 좋은지 붙잡힌 어깨가 빠져나올 생각을 하

지 않는다.

현수는 버둥거리는 차민규의 어깨를 꽉 잡고 시선을 정윤에게 주었다.

정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차민규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 남자가 갑자기 내 손목 턱, 잡았다고. 난 그저 커피를 쏟은 것밖에 없는

데.”

“맞나.”

이번엔 현수의 눈길이 차민규에게 닿는다.

눈빛이 얼마나 험악한지, 마셨던 술이 깨는 기분이다. 

“이 여자 손목은 와 잡았는데. 여 볼일 있나.”

“놔, 놔! 끅! 아, 수, 술이 취해서 내가 실수를 한 모양인데!”

“이 아저씨가 내 손목 잡은 게 신경 쓰여? 화나? 왜?”

“무슨 볼일이 있어서 손목을 덥석 잡았냐고. 묻잖아, 형씨.”

“그러니까. 이 형씨가 내 손목 덥석 잡아서 지금 너 열 받았냐구. 왜? 어느

지점에서?”

……개미지옥이다. 빠져나갈 수가 없다.

현수는 집요하게 차민규를 향해 묻고, 정윤은 집요하게 현수를 향해 물었

다.

차민규는 술이 점점 깨는 기분을 느꼈다.

아아. 격렬하게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

뭔가 이곳에 더 머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밀려온다.

“야, 니는 이상한 놈한테 손목을 잡혔으면 뿌리칠 일이지, 뭐 하는데 그러

고 멍청하게 서서 보고 있는데.”

……졸지에 이상한 놈이 되었지만, 

희한하게 참아진다.

“검사씩이나 되어서 호신도 할 줄 모르나. 애먼 놈이 손목을 잡았으면 비틀

어 부러트려야지, 뭐 한다고 당하고 서 있냐고.”

허.

거, 거, 검사란다!

차민규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저 대단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께서 검사님이시란다.

숨이 턱하고 막히며 술이 완벽하게 깬다. 차민규는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내가 저 아저씨 팔 비틀어 부러트리기 전에 니

가 먼저 왔잖아. 그러는 넌 형사씩이나 되어서 못 부러트리고 그렇게 서 있

니? 어?”

“허어…….”

차민규는 저도 모르게 신음했다.

아, 어떡하지,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손의 주인공께선 형사란다.

아니 그런데 이 검사님과 형사님께선 묘한 포인트를 두고 서로 으르렁대고있다.

오도 가도 못 하고, 애먼 남녀의 싸움 구경이나 하며.

“내가 저 아저씨한테 손목 잡힌 거 봤으면 보자마자 팔을 비틀어 부러트려

야지. 넌 뭘 잘했다고 나한테 큰 소리야?”

“아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내 확인부터 한 거 아이가. 니도 가만히 있는데

내가 비틀어 부러트렸다가, 뭔 일이 날 줄 알고.”

저기, 니들 둘이 지금 못 부러트려서 안달난 그거,

그거…… 내 팔 아니냐……?

차민규는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저런 아저씨를 어떻게 알아?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내가 저런 아저

씨를 어디서 어떻게 알겠냐고.”

“난들 아나? 혹시 알 수도 있지. 일적으로 만났거나, 기소 건으로 만났거

나, 뭐, 없겠나?”

저기……

아무리 내가 범죄자 상이라고 해도 

말이 좀…… 심하다 너네…….

흐어.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차민규가 연신 눈치만 보며 쭈뼛거리자 정윤은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

마치 현수를 소개라도 시켜주듯 턱끝을 올리며 입술을 열었다.

“뭐, 남편이에요.”

허, 나, 남편이란다!

차민규의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진다.

검사의 손목을 잡은 것도 모자라, 유부녀의 손목을 낚았으니 정말 큰일인

것이다.

정윤은 ‘전남편’이라고 말했지만 ‘전’ 소리가 너무 작아 ‘남편’만 새겨들은

것이다.

큰일 났다. 유부녀의 손목을 잡았다. 심지어 검사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나,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차민규는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서로 으르렁거리는 정윤과 현수를 바라보

았다. 

호시탐탐 도망갈 기회를 엿보지만 쉽지 않다.

차 가지러 떠난 김복재는 돌아올 생각을 않고ㅡ

“야, 남현수. 사람이 약속을 했으면 빨리빨리 올 생각을 해야지, 도로 통제

를 하고 있어? 제정신이야? 내가 빨리 오라고 했지. 빨리 오라고 했으면 빨

리 와야 할 것 아니야!”

“아, 사정이 있었다고 사정! 사정이 있다고 몇 번 말하나 내가!”

“사정? 넌 맨날 그놈의 사정 때문에 나랑 약속한 건 지키지도 못하잖아! 너

만 사정 있어? 나도 사정 있어. 넌 나랑 한 약속이 우스워? 매번 이렇게 우

스워?”

……격렬하게 도망가고 싶다.

“누가 우습다 했나? 넌 매번 왜 사람 말을 오해하고 니 멋대로 판단하고 결

론짓는데. 그럴 거면 나한테 와 묻는데. 그냥 니 멋대로 생각하지, 와 묻냐

고!”

“이 와중에도 내 잘못이야? 니가 늦어놓고 왜 나한테 화내?”

“내가 언제 화냈냐?!”

“지금 화내고 있잖아! 지금! 바로 지금!”

차민규는 슬금슬금 뒷걸음을 걸었다. 

“하, 뭐라노. 생사람 잡지 마라이. 나 화 안 났그든. 화 안 났다고.”

“어디서 남방은 몸에다가 박음질하고 다니는 주제에.”

“니 지금 뭐라 했어.”

그러다가, 점점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싸우느라 정신 팔려서 차민규의 존재를 잊은 듯한 두 사람을 경계의 시선

으로 보다가, 차민규는 뒤돌아 허겁지겁 가게를 나섰다.

정윤은 팔짱을 끼고 가늘게 눈을 뜨며 현수를 바라보았다.

“솔직하게 말해봐, 너. 박음질했지? 몸에 박았지? 그 남방, 한 몸이지 너하

고?”

“내가 옷을 박음질하는데 니가 실을 사줬냐, 바늘을 사줬냐, 와이카고 시비

거는데.”

“……갔다.”

언성을 높이던 정윤은 힐끔, 가게 문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뚝, 말을 멈추며 현수도 남방을 툭툭 털었다.

“차에 있는 거 맞나. 확실하나. 잡았다가 아니면 수습 안 되는 거 알제.”

“맞아. 나 믿고 빨리 가봐. 난 여기서 김복재 잡을 테니까 넌 가서 차민규

잡아 와.”

“간다 그럼.”

지금껏 차민규에게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려고 쇼를 벌인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형사과 앞으로 정윤이 찾아가 한 번 정도 합을 맞춰본 상황이지만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상황극에 서로는 만족했다.

백인호의 감시로 손발이 묶인 지환을 대신하여 정윤과 현수가 그의 손발이

되어준 것이다.

지환의 지휘 감독 아래, 두 사람은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렸다.

이럴 때만 척척 죽이 맞는다.

현수는 밖으로 나섰고 사라진 차민규를 찾았다.

“저깄네.”

현수는 주차해두었던 차를 탔고, 허겁지겁 자신의 차로 달려가는 차민규를

응시했다. 

김복재가 운전석에서 내리자 끌어내다시피 그를 내동댕이치며 차민규가

차에 오른다.

“그래그래, 엑셀 밟고, 옳지, 그렇지.”

현수는 중얼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엑셀, 좋다. 간다, 가.

차민규가 운전대를 잡고 차가 출발하자 현수는 부리나케 그를 뒤를 향했

다.

부웅…… 차가 도로로 빠져나가자 현수는 조금 더 속도를 내어 차민규 차

량 앞으로 진입했다.

급 브레이크를 밟자 차민규의 차량이 현수가 탄 차량을 들이 받았다.

쿠콰콰콰아아앙ㅡ!

하…… 현수는 뒷목을 붙잡으며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차민규가 어찌나 세게 들이받았는지, 목덜미 주변이 찌릿한다.

“하, 데다, 데. 아이고 목이야. 전치 몇 주고 이거.”

……믿는 건 차민규의 음주운전뿐.

현수는 중얼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정신 못 차리고 운전대를 잡고 있던 차민규는 다가오는 현수를 두렵게 바

라보았다.

“어이, 내려 보쇼, 아저씨.”

현수는 차창을 두드렸다.

“내리라니까?”

“이런 썅…….”

차민규는 절망했다.

지금 이 차 안엔 금괴가 가득했다. 

*

“민규야! 민규야!”

김복재는 차민규가 정신없이 운전대를 잡고 홀로 떠난 자리에서 그의 차를

따라 달리다가 멈췄다.

“아, 저 새끼가 미쳤나, 왜 저렇게.”

버젓이 음주운전을 하며 떠났지만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기에 김복재는

중얼거리며 뒷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김복재를 찾아 나선 정윤이 그를 발견하고 어떻게 잡아야 하나 입술만 물

어뜯고 있을 때.

“아, 쟤를 어떻게 잡지? 명분이 없는데.”

눈앞에서 김복재를 놓치게 생겼다.

그가 다시 카페로 돌아오지 않는 이상 그를 잡을 수가 없다.

김복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정윤은 갖은 생각을 다 더하며 발만 동동 구르

고 있을 때.

“저 사람 잡아야 해요?”

“아, 가장!”

일전에 가게에서 도움을 주었던 어린 가장이 다가왔다.

출근한 지 얼마 안 된 듯, 가장은 사복 차림이었다.

“저 새, 저 사람 잡을 수 있어? 가장님이 어떻게 잡아?”

“다 방법이 있죠.”

어린 가장은 성큼성큼 김복재의 뒤를 따랐다.

큰 키로 돌진하며 걷더니, 다짜고짜 김복재를 돌려세웠다.

“뭐야!”

“손님. 술값 계산 안 하셨는데요.”

“뭐?! 뭔 계…….”

하…… 차민규…….

김복재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어린 가장은 김복재의 옷깃을 잡으며 인상을 구겼다.

“그 나이 먹고 먹튀하면 쓰나, 경찰 불렀으니까 따라와요.”

“하…… 씨…… 놔! 계산할 테니까!”

아오씨! 놔 이 새끼야!

거칠게 김복재가 반항하며 주먹을 휘두르자 어린 가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김복재의 주먹을 피하며 그를 제압했다.

정윤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저렇게 잘 피하는데, 그땐 그 진상한테 그냥 맞은 거야? 하…… 세상에

나…….

김복재는 결국 가장에게 붙들린 채 두 팔을 포박당했다.

어린 가장의 힘이 상당한지 김복재는 꼼짝도 못 했다. 

“계산한다잖아! 이 새끼가! 놔!”

“계산은 당연한 거고. 신고했다니까? 따라오시라니까?”

“신고했어? 너 이 새끼 진짜 신고했어?!”

“아니, 지금 하려고.”

어린 가장은 힘껏 김복재의 두 팔을 움켜쥔 채 뒤를 돌아 정윤을 바라보았

다.

……도움은 돌고 도는 세상.

“누나! 이 사람 계산 안 하고 도망가요! 누나가 해결 좀 해주세요!”

가장은, 잊지 않고 빚을 갚았다.

“아아, 그래! 누나가 지금 간다!”

정윤은 활짝 웃었다.

*

커피를 탔지만 누구도 마시질 않는다.

이미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커피를 바라보다가, 지환은 입술을 열었다.

정윤이 어떤 상황인지 알 길은 없고. 차민규를 한 타에 잡는다는 보장도 없

고.

머릿속은 복잡했다.

미지근한 커피처럼 미지근한 온도로 계속 자리를 버티고 있어야 하는 것도

환장할 노릇이다.

눈치 빠른 백인호를 어디까지 묶어둘 수 있을지, 그것도 관건이었다.

“그러니까 의원님 말씀은,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지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더는 시간을 끌 수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수사를 종결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백인호는 더 이상 애매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패를 열었기 때문에 거슬릴 것이 없단 듯 보였다.

“제 아내의 공연을, 의원님께서 취소하신 겁니까?”

“대의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재고의 여지는 있습니다.”

“그 재고의 여지란 게 수사 종결을 뜻하는 거겠군요.”

“때로는 신념보다 현실에서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검

사님께 어려운 선택인 줄은 알지만 가정도 생각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환은 깊은숨에 분노를 실었다.

이렇게 마주 앉아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도 고역이다.

“저는 검사님의 여러 가지 약점을 쥐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공평한 관계

란 있을 수가 없지요. 하지만 저는 검사님과 좀 더 편안한 관계로 지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은 덮고.”

“…….”

“내 아내와 있었던 과거의 일도 덮고. 그렇게.”

백인호는 시선으로 점점 더 압박해오고, 지환은 이제 완벽하게 식어버린

커피를 응시하다가 잔을 들었다. 

디이이잉, 메시지가 오는 것을 느끼며 지환은 단숨에 커피를 털어 마셨다.

진하고 달짝지근한 커피가 빨려 들어간다. 지환은 침착하게 휴대폰을 확인

했다.

내용을 확인한 그의 손끝에 잠시 힘이 실리고ㅡ

“덮지 마시죠. 의원님.”

디이이잉, 하나의 메시지가 더 도착한다.

“덮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편하게 공개하시죠.”

“뭐, 뭐라고?”

……지환은 고개를 들었다.

커피를 마셨을 뿐인 지환의 눈빛에서 조금 전과 몹시 다른 공격이 엿보였

다.

알 수 있었다.

지금 서지환 검사의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변했다는걸.

“수사는 종결 못 합니다. 끝이 보이는데 제가 그럴 수는 없죠.”

“서지환 검…….”

그때였다.

디이이잉, 백인호의 휴대폰이 울린다.

백인호는 테이블에 올려둔 자신의 휴대폰을 내려다보다가, 발신인을 확인

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

ㅡ인호야! 인호야 큰일 났어! 인호야!

차민규의 전화.

지환은 편안한 시선으로 통화를 하라며, 백인호를 향해 손짓했다.

백인호는 아찔한 기운을 느끼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무슨 일인데.”

ㅡ인호야! 인호야 나 좀 살려줘! 인호야! 인호야 큰일 났어! 지금 차량이 털

려! 경찰들이 왔어! 털린다고!

“그게 무슨 소……!”

……백인호는 천천히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전화를 끊었다.

절규하는 차민규의 소리가 뚝 끊기며 정적이 스며든다.

지환은 빙그레 웃었다.

“오신 김에 가볍게 조사받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혐의는 금방 만들어드리

겠습니다.”

“서지환 너 이 새끼…….”

발을 묶어두고, 때를 기다렸나.

백인호는 이를 아득 물었다.

“제 신변만 압박하시면 어떡하십니까. 검찰청엔 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의

원님.”

“니가 감히 나를…….”

“조금 전에 의원님께서 가진 게 권력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지환은 웃음기를 지운 얼굴을 했다. 

“권력. 그거 아무것도 소용없습니다. 알기에 그것만큼 신기루인 게 없거든

요.”

백인호의 심장은 가파르게 뛰어올랐다.

“그렇게 꽉 쥐고 있던 권력이란 게 얼마나 신기루였는지, 제가 직접 알려드

리겠습니다. 지금부터.”

“…….”

“천천히.”

음주운전 차량에서 금괴가 다량으로 쏟아졌고, 용의자는 백인호 의원의 친

척이라는 소식을 듣고 빠르게 몰려드는 기자들로, 경찰서와 검찰청 앞은

벌써 북적였다.

차민규는 경찰서로 이송 중이었다.

“변호사 빵빵하게 선임하시고, 언론 플레이 준비하시죠. 압박 수사니 민간

인 사찰이니, 뭐든 좋습니다. 괜찮습니다.”

“…….”

“오늘 댁엔 못 들어가시겠습니다. 벌써부터 이 앞에 도착한 기자들이 엄청

날 것 같은데요. 우선 자리 비켜드릴 테니 이곳에서 급한 대로 처리하시죠.

의원님.”

지환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백인호의 팔은 처음으로 후들거렸다.

낚였다.

*

이미 뉴스 헤드라인은 온통 차민규였다.

자극적인 사안이고, 거물급 인사가 연루되었을 확률이 높으니 앞다투어 방

송사들은 사안을 특보했다.

아무리 돈을 쓰고 막아도 한계란 있는 법.

그에게 돈을 받은 방송국도 터지는 뉴스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검사님, 체포 동의 요구서 법원으로 보냈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최금호 계장은 지환의 옆에 서며 종이컵을 입에 물었다. 

“검사님, 그런데 법원에서 통과시켜줄까요? 뭐, 사안이 막중하니 법원은

통과한다 쳐도, 국회가 통과시켜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백인호인데.”

“일단 영장 발부가 안 된다고 하면 불구속 기소라도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안 해 줄까요? 아무리 백인호라고 해도 쉽게 덮이진 않을 겁니다.”

지환은 백인호 의원 체포 동의 요구서를 법원에 청했다.

불법 정치 자금, 금괴 밀수 가담 등의 사안을 집중적으로 내세웠다.

사회적 지위를 이용한 증거 소멸 및 도주 등이 우려된다는 점.

그것이 지환의 이유였다.

“그럼 일단 법무부에 보낼 서류는 미리 만들어두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계장님.”

불체포특권을 가진 현직 국회의원을 구속한다는 것은 절차도 복잡했으며,

쉽게 허가되지 않았다.

백인호가 이대로 귀가한대도 붙잡을 수는 없지만ㅡ

그가 이곳에 있다는 소식을 귀신같이 접한 기자들이 바글바글하게 몰려들

기 시작했으므로,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국회의원이 검찰청에 드나든 ‘명분’을 찾지 못한다면 밖을 나서는 일도 쉽

지 않을 테니까.

연루된 모든 자들은 이해관계를 따져대며 몸을 사릴 테니 말이다.

이젠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다.

“여보세요? 나야.”

지환은 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금세 전화를 받는다.

ㅡ여보세요? 오빠, 오늘은 바빴어?

“아아, 조금. 조금 바빴어.”

이런 사소한 것들이 속상했다.

휴대폰 들여다볼 새도 없이 바쁘던 나의 아내가, 삽시간에 일을 잃고 헛헛

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ㅡ나 있잖아, 오늘 굉장한 일이 생겼는데. 오빠 모르지?

“아? 무슨?”

오늘은 아무래도 집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다는 연락을 하려다가, 뜬금없

는 아내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지환은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ㅡ일단 그건 만나서 얘기해요. 전화로 하기는 싫어.

“아…… 그래, 일단 알겠는데 어떡하지, 희원아. 내가 오늘 일이 많아서 집

에 못…….”

ㅡ춥다, 오빠. 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네?

지환은 말꼬리를 흐리며 희원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녀는 춥다며 연신 종알거린다.

ㅡ추워. 추워어어어. 오빠 언제 나와?

“어딘데?”

ㅡ나 여기 검찰청 앞인데? 아까부터 나 여기 있었는데.

“아? 그래?”

잠깐만! 지환은 몸을 홱 돌렸고, 빠르게 달렸다. 

ㅡ근데 오빠, 오늘 여기서 무슨 일 있어? 조금 전부터 사람들이 막 서성거

려.

“기다려. 딱 기다려. 1분 만.”

그의 숨이 굵어진다. 정신없이 뛰는 소리가 휴대폰으로 쾅쾅 울린다.

셔츠 차림으로 건물 밖을 뛰어나오니 대기하던 기자들이 힐끔힐끔 그를 바

라본다.

지환의 눈은 그들의 사이사이를 지나고ㅡ

“희원아! 부인!”

세상 사람들 다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희원은 그의 시선을 따라 제게 꽂히는 여러 사람의 눈빛을 의식하며 어색

한 미소를 그렸다.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크게 불러야 할 이름이냐 싶다가도,

지금 그의 시선에 자신 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그것이 기쁘기

도 했다.

희원은 쥐고 있던 쇼핑백을 들어 보였다. 

그러곤 그가 했던 것처럼 큰 소리로, 그녀도 답했다.

……좋아.

언제든 어디서든 내 이름을 불러줘.

“오빠! 여보! 나 여기! 여보한테 줄 야근 도시락 싸왔어!”

하늘 끝 구름 속에 닿을 만큼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줘.

우리가 사랑하는 일, 세상 누구도 모르는 사람 없게, 그렇게 내 이름을 불

러줘.

혼잣말 같은 나직함 말고, 귓속말 같은 속삭임 말고ㅡ

언제나 어디서나 한결같은 커다란 목소리로, 내 이름을 고백처럼 들려줘.

“아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귀가 빨갛잖아! 손도 차네!”

“아닌데. 나 사실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십 분 됐나?”

“히익, 십 분씩이나. 전화를 하지 그랬어. 전화를 했으면 바로 나왔지.”

“아니, 전화도 없고, 오빠 좀 바쁜 것 같아서.”

지환은 쇼핑백을 전해 받으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확연한 온도 차이로 서로의 살갗이 느껴진다.

딱히 시선 둘 곳 없는 경찰청 앞 기자들은 두 사람에게 시선을 주었다.

특종 찾아 오늘 이곳에서 밤샘을 해야 할 것 같은 운명의 기자들은 따끈따

끈하다못해 타죽을 것 같은 부부의 닭살 행각을 곁눈질로 살폈다.

부러우면 지는 거지만,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왔어. 당신 여기 올 생각을 어떻게 한 거야. 날도 추운데.”

“뭐, 서프라이즈?”

그녀는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을 따라 하며 웃었다. 지환의 눈에 하트가 매달

린다.

……내 이름을 불러줘요.

간혹은 누군가 눈살을 찌푸려도, 또 다른 누군가는 유치하다 손가락질 해

도.

“하, 설레네 이거 또.”

사랑은 어차피 눈먼 자들의 세상.

“권희원한테 매일매일 완패다, 완패.”

내 이름을 불러줘요.

언제든, 어디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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