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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오빠가 간다 (86/98)

86. 오빠가 간다

“뭐야. 얼굴에 그런 건 왜 발라. 뭐 하려고 그런 걸 바르는 거지? 갑자기?”

“갑자기는 무슨 갑자기. 이거 수분크림이거든? 심지어 매일 바르거든?”

“…….”

주말 당일.

저녁 약속이 잡혀 분주히 치장에 나선 희원의 뒤에 팔짱을 끼고 서서, 지환

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야 그거. 바르니까 갑자기 얼굴에서 빛이 나잖아.”

“그러라고 바르는 겁니다, 서지환 씨.”

“……그건 뭔데. 지금 뭐 바르는 건데. 갑자기 얼굴빛에 생기가 돌잖아.”

“그러라고 바르는 거예요. 서지환 씨.”

“그러니까 글쎄. 왜 갑자기 얼굴에서 빛이 나고 생기가 돌아야 하지? 왜?”

“아 자꾸 옆에서 시끄럽게 할 거야? 매일 하는 화장인데 서지환 씨야말로 오늘따라 왜 이래?”

신경 쓰이니까 저리 가요!

희원은 눈썹을 그리다 말고 휘휘 팔을 저었다.

아내의 불호령에 두어 걸음 옮기는 시늉을 하던 지환은 다시 돌아와 거울에 비치는 그녀를 관찰했다.

“눈썹 왜 그래. 없던 눈썹이 왜 갑자기 생겼어. 흐릿하고 불분명했잖아.”

“생겨야 나가지. 그럼 눈썹도 없이 나가? 선명하고 분명해지라고 그리는거야.”

“그럼 그리는 김에 조금 더 거칠게 그릴 순 없어? 약간 터프하게.”

“난 어떻게 그려도 사랑스러운 얼굴이라. 아! 시끄럽다니까?”

거울 속에서 아내의 눈빛이 번쩍한다.

흠칫 놀란 지환은 다시 두어 걸음 도망치는 척하다가 돌아왔다. 

엇, 아직도 노려보고 있다.

“안 돼. 눈에 색칠하지 마.”

“이미 했어.”

“안 돼. 멈춰.”

“다했어.”

허. 빠르다. 손가락을 쓱쓱 몇 번 움직이니 눈매가 깊어지고 고혹해진다.

시간이 갈수록 지환의 마음은 더욱더 불편해져갔다.

남편의 불편한 심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희원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진열

해놓은 립스틱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았다.

“흠, 오늘은 뭘 바를까. 레드? 아니면 약간 누드톤으로 갈까?”

“지금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그렇다면 블랙.”

“아니. 나 혼잣말이야. 신경 꺼요.”

“빨간 거 바르지 마라. 나 말했다.”

부인. 그런데 말이야. 

…….

안 발라도 이미 붉잖아! 어쩔 건데!

“어허, 속눈썹 내버려둬. 괴롭히지 마.”

“아니야. 올려줘야 눈이 더 커 보이지.”

“고만 커도 돼. 더 커지면 비율적으로 맞지 않아.”

“한껏 올려줘야 된다니…… 아, 안 나가요, 진짜?! 아우, 성가셔!”

희원이 마스카라를 바르다 말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 지환은 눈꼬리를 올렸다.

화장품이 하나하나 그녀 얼굴을 스칠수록, 그녀는 놀라운 변신을 거듭했다.

순둥순둥하던 얼굴에 삵이 보이는 것도 같고.

한껏 커지고 고혹해진 눈매는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깊어졌다.

하…… 열 받는다.

“지금 그건 뭐 하는 건데?”

갑자기 브러시를 들더니 사정없이 턱 주변을 왔다 갔다 한다.

“턱 치는 거야. 갸름해 보이라고. 셰이딩.”

응? 턱 치는 거라고?

“부인. 그 턱 내가 쳐줄까? 눈 뜨면 내일 아침이 될 수 있게?”

“죽을래 진짜?”

엇. 산만하게 턱 주변을 브러시로 왔다 갔다 하더니 내려놓는다.

뭔가 많이 한 것 같은데 메이크업은 빠르게 끝이 나고.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앉아 있다.

“나 오늘 화장 괜찮아? 어때?”

지환은 희원의 질문에 흠, 숨을 내쉬며 가만히 그녀 얼굴을 응시하다가 입술을 열었다.

“당신 혹시, 주민등록증 사진도 화장하고 찍었어?”

“응? 민증? 당연하지. 당연히 화장하고 찍었지. 갑자기 그건 왜?”

“권희원 씨. 당신을 형법 제225조에 의거 주민등록증 위조 혐의로 긴급체포 합…….”

“야! 서지환! 이게 진짜!”

킁. 아내를 공문서위조 혐의로 방 안에 구금해두려던 지환은 앙칼진 목소리에 말꼬리를 흐렸다.

아아. 구금해둘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는데.

너무나 무서워서 실패했다.

“서지환 씨는 나 없는 동안 오늘 뭐 할 거야?”

“너 기다릴 거야. 하루 종일. 하염없이. 눈 빠지게.”

“아, 진짜. 사람 부담스럽게 왜 이래요?”

“부담스러우라고 이러는 건데? 엄청 짐 되라고. 나 두고 발길 떨어지지 말라고.”

“질척거리긴.”

“내 전문이야. 알잖아.”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니 희원은 그만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팔짱을 끼고 뒤에 서서 번쩍번쩍 레이저를 쏘는 듯한 눈빛을 하는 남편은 어쩐지 귀여웠다. 

“향수는 무얼 뿌릴까?”

“향수 뿌릴 거면 이거 뿌려. 난 이게 좋더라.”

“응? 뭐?”

웬일로 향수를 골라주자 희원은 시선을 돌려 그의 손길을 따라갔다.

“그건 서지환 씨 향수잖아! 남자 거를 내가 어떻게 뿌려!”

“왜? 안 돼? 언제 어디서나 나의 향기를 간직해줄 순 없겠어?”

“……당신이나 많이 뿌리세요.”

향수는 포기해야겠다.

휴. 메이크업을 끝낸 희원은 머리를 손으로 빗어 묶듯이 들어 올렸다.

지환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아, 옘병. 예쁘다.

“나 머리 묶을까? 그냥 세팅해서 풀어놓을까?”

“머리 땋아. 댕기 가져다줄게.”

“아오, 진짜.”

“내가 준 반지 하고 가. 가락지.”

“그, 그 반지가 지금 어울리기나 해?!”

희원이 휙 돌아보며 노려보자 지환은 마른침을 삼켰다.

묶어도 예쁘고, 풀어도 예쁜데,

너를 대체 어디에 내어놓는단 말이냐?!

“결혼은 친구가 하는데 왜 당신이 이렇게 힘을 주고 나가?”

“무슨 힘을 줬다고 그래? 나 원래 이렇게 하고 다녀. 새삼스럽게?”

“……안 돼. 못 나가. 화장 지우고 수수하게. 다시.”

“아아, 옷은 무얼 입나아?”

희원은 남편의 말을 콱 씹으며 일어나 드레스룸으로 걸어갔다.

졸졸졸졸 따라온다. 그 걸음이 귀여워 또다시 피식, 그녀의 입가로 웃음이샌다.

“오랜만에 좀 과감하게 입어볼까? 나 너무 요즘 정숙했는데.”

“장난치지 마. 이 방에서 한 걸음도 못 나가는 수가 있어.”

“아, 진짜 왜 이래? 옛날 사람처럼?”

예, 옛날 사람…….

지환은 나이로 공격해오는 아내의 대꾸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하, 열 받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거,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하는 거 알아. 장난인 거 다 알아.”

지환은 희원이 꺼낸 옷을 보며 말을 더듬었다.

분명 바지가 존재해야 할 것만 같은, 짧고 타이트한 원피스를 골라 든 것이다.

“내가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지금 그거 윗도리지?”

“아니? 원피스인데?”

“…….”

희원은 원피스를 눈여겨보며 흠, 하고 숨을 뱉었다.

지환의 혈압이 급상승한다.

“안 돼. 침착해. 내려놔. 그런 건 입는 게 아니야. 그건 옷 아니야.”

“옛날엔 이런 것도 잘 입었는데.”

“……그런 걸 입고 언제 돌아다녔는데. 누구 만났는데. 그 시절에 그런 걸 왜 입었는데 대체.”

“이건 너무 춥겠다. 패스.”

희원이 다시 옷장에 옷을 집어넣는다.

후. 짧은 시간 지환의 마음속으로 평화가 찾아온다.

그것도 잠시.

“……웃기려고 하지 마. 하나도 안 웃겨. 나 안 웃었어, 지금. 장난 아니야.”

이번엔 그것보다 더 과격하게 생긴, 앞뒤로 실컷 파인, 번쩍번쩍하는 옷을꺼내든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모르겠고.

어디도 앞이 아니었으면 좋겠는.

…….

그렇다고 뒤라면 괜찮다는 뜻은 아니고! 

지환이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옷을 바라보자 희원은 그만 참지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 우리 남편, 왜 이렇게 따라다니면서 귀여운 척해?”

“빨리 옷장에 도로 집어넣어. 아니다, 내놔. 당장 가져다가 버리게.”

“안 입어! 안 입는다고! 이런 걸 지금 이 날씨에 어떻게 입니?”

희원이 장난이었다며 웃는다.

그렇지? 장난이지? 남편한테 장난치는 거지?

지환이 씰룩씰룩거리며 따라 웃자 희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생글생글웃는다.

그러더니 옷을 집어 든다.

“이거 입어야겠다. 이건 괜찮지?”

“…….”

딱히 말릴 명분이 없는, 길고, 앞뒤 꽉 막힌 롱 원피스.

어딘가 모르게 과감한 의상인 것 같지만 명분을 찾기 힘든, 그런 원피스.

희원은 원피스를 살랑살랑 흔들며 웃었다. 

“이거 당첨.”

아오. 지환의 눈꼬리는 사정없이 올라갔다. 

*

[재미있게 놀다 들어와요, 부인.]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쯤, 지환에게 메시지가 온다.

희원은 내용이 뜻밖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르렁댈 줄 알았는데 재밌게 놀다 오라고? 갑자기 왜 이래?”

그녀가 알겠다고 답변을 보내려고 하는데, 이어서 메시지가 온다.

[재미있게 놀고, 우리 아홉 시 뉴스 함께 보자. ^^]

“이 양반이 진짜.”

지금 일곱 시인데, 아홉 시 뉴스를 어떻게 같이 보냐?! 말이 돼?!

희원이 농락당했다는 듯 눈꼬리를 가늘게 하며 답장을 보냈다.

[서지환 씨 혼자 봐요. 난 뉴스 취미 없어서.]

[이따가 데리러 가도 될까?]

이따가? 희원은 흠,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러라고 답장을 보냈다.

[서지환 씨가 데리러 와주면 나야 땡큐지. 그래요, 그럼.]

[그래. 그럼 아홉 시 뉴스 보면서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진짜 이 사람이.”

희원이 아홉 시 뉴스 타령을 하자 이를 꽉 깨물고 있다가 웃었다.

그러곤 여유를 되찾은 손길로 메시지를 보냈다.

[응. 알았어. 아홉 시 뉴스 할 때 데리러 와.]

그녀는 다음 메시지를 보내고 약속 장소로 들어갔다.

[저녁 말고, 내일 아침 아홉 시 뉴스.]

흥. 메롱이다, 서지환.

*

[저녁 말고, 내일 아침 아홉 시 뉴스.]

“아, 이 사람이! 아침? 아치임?!”

지환은 소파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 이, 이, 정신 빠진 와이프의 메시지 좀 보소.

내일 아침까지 놀겠다는 말이냐? 지금?!

“허, 참, 허, 참.”

지환은 기가 차다는 듯 격한 숨을 내쉬다가 다리를 떨었다.

각자의 인생을 즐기며 살기로 했던 결혼 초반처럼, 느긋하게 그녀의 시간을 존중해주고 싶은데.

“뭐, 별일이야 있겠나.”

그게 안 되잖아! 별일이고 나발이고!

존중이고 뭐건 간에 지금 그게 안 되잖아!

아오. 지환은 긴 탄식을 뱉었다.

현관문을 나서던 희원은 누가 봐도 결혼한 태가 없어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결혼반지를 끼고 나가는 것은 보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질 않았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어? 내가 맨날 보고 듣는 일이 어? 얼마나 무

시무시한데 세상 물정도 모르고 말이야.”

검사로 일을 하며 보고 듣는 일이란 게, 아름다울 리 없는 현실.

지환이 사는 세상엔 너무나도 험한 일이 많아서 그는 자꾸만 불안한 상상만 거듭했다.

얼마 전에 출소한 사기꾼도 떠오르고.

또 얼마 전에 출소한 강간미수범도 떠오른다.

아직까지 검거되지 않은 못된 놈도, 떠올랐다. 

“아, 왜 이래 서지환. 없어 보이게.”

하. 하! 하!

지환은 이런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팔짱을 끼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다리는 덜덜덜덜 계속 떨어댔다.

“……아, 뭐, 가서 기다리는 건 내 마음이니까.”

그렇지. 언제까지고 기다리면 되는 거니까.

할 일도 없는데 근처 가서 서성일까, 지환은 차 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옳거니. 지환은 후다닥 휴대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이 번호로 전화를 거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ㅡ뭡니까? 황금 같은 주말에.

역시나, 반갑지 않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환은 소파에 느런히 몸을 기댔다. 

“황금 같은 주말에 너하고 볼일이 좀 생겨서.”

ㅡ볼일요? 나하고?

분하지만 당장은 떠오르는 상대가, 녀석밖엔 없었다.

“시간 괜찮으면 좀 봅시다. 술이나 한잔할 겸.”구언이었다.

*

“여기서 술을 마시자고요? 우리 둘이? 지금?”

끌려 나오듯 약속 장소로 걸음 한 구언은 지환을 한번 바라보고, 술집 간판을 한번 바라보고, 다시 지환을 바라보았다.

“여기 가본 적은 있고?”

“지금 가보려고. 문제 있나?”

“검사님이 이런 곳에서 술 마셔도 돼요?”

구언이 위아래로 지환을 훑으며 묻자 지환은 눈동자에 억울함을 가득 담았다.

“왜? 검사는 이런 곳에서 술 마시면 안 돼? 검사도 사람이야. 검사도 평범한 사람…….”

“아, 알았어요. 알았다고. 뭘 울먹거리기까지 해.”

지환이 볼멘소리를 하자 구언은 손사래를 쳤다.

시끄럽고 어두컴컴하고, 힙한 클럽 노래가 쾅쾅 울리는 것 빼고는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만.

구언은 미적거리며 영 못마땅한 표정으로 간판만 올려다보는 지환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오호라. 지금 여기 희원이 있구나?”

“…….”

“오늘 아는 동생이 결혼 전 여자 동료들 모아서 파티한다고 들었는데, 여기구나?”

불안해서 왔구나? 감시하러 왔구나?

예쁜 와이프 누가 업어 갈까 봐 걱정돼서 왔구나?

“보기보다 엄청 의심 많이 하네요. 희원이를 뭐로 보고 이렇게 사사건건 감시를 합니까?”

“지금 누가 와이프를 의심했다고 그래?”

“당신.”

구언이 턱 끝을 들며 본인을 가리키자 지환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헛기침을 뱉었다.

아아. 와이프의 뒤나 밟는 신세라니. 꼴사납다.

“와이프가 오늘 아주 삵 같은 얼굴을 하고 나갔단 말이지. 난 와이프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와이프 주변을 떠돌 날파리들을 제거하러 왔다고.”

“삵? 삵 같은 얼굴은 대체 뭐요?”

“있어. 들어가서 보면 알 거 아냐.”

지환이 들어가자고 눈을 희번덕거리자 구언은 피식 웃으며 끼고 있던 가죽장갑을 벗었다.

뭐, 요즘 들어 가장 핫한 술집이기도 하고.

미혼 남녀들에게 썸을 탄생시키는 위대한 술집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으니.

“그럼 빨리 들어가요. 날파리가 날아들어도 수십 마리는 날아들었겠네.”

“아, 내가 총을 빌려와야 했는데.”

“날파리들을 총으로 어떻게 쏩니까?”

“왜 내가 총으로 날파리를 쏠 거라고 확신하는 거지? 내 앞에 제거 대상 1호가 있는데.”

“아오…… 진짜…….”

구언은 지환과 옥신각신 다투며 술집 안으로 입성했다.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는 구언을 바라보다가 지환은 물었다.

“자주 왔나 봐?”

“물론이죠. 핫하다니까요. 게다가 난 법적 미혼이고. 문제없죠.”

“좋겠다…….”

“뭐라고요? 좋겠다고? 어? 나 희원이한테 일러요?”

“잠 깬다. 잠 깬다, 라고 말했어. 내가 언제 좋겠다고 했어? 할 말 없게 생긴 주제에 사람 잡네.”

두 사람은 한 시도 쉬질 않고 투닥거리며 계단을 밟았다.

문을 열기 직전부터 미세한 음악이 틈 사이로 흘러나오더니, 구언이 문을

열자 지붕이 내려앉을 것 같은 엄청난 소음이 지환을 맞이했다.

“허…….”

지환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음악 소리에 입술을 멍하니 벌렸다.

“들어와요! 뭐해!”

구언이 어서 오라 손짓하자 지환은 간신히 녀석의 행동만 알아보며 걸음을옮겼다.

현란한 형광색 빛줄기 사이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음을

확인한 지환은 혀를 내둘렀다.

“이봐! 유구무언! 여기서 대체 술을 어떻게 마셔!”

“뭐라고요? 안 들려요!”

“안에서 마신다고? 안에 어디!”

“아내가 어디 있냐고? 찾아봐야죠! 나라고 아나?”

“아나고? 살아 있는 아나고를 먹고 있다고? 붕장어?”

……어라? 맛있겠는데?

엄청난 소음에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갑자기 분위기는 고요 속의 외침으로 변하고, 서로는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뚱한 표정을 지었다.

구언은 안 들린다는 표시로 귀를 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형! 룸 잡아요? 아니면 여기서 마셔? 어떻게 할까요!”

너…… 안 들린다며…….

“안에 들어가면 희원이 못 찾을 텐데! 어떡할래요!”

나는…… 들리겠냐……?

지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따라 귀를 막자 구언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지환을 끌었다.

귓가에 대고 우렁차게 말한다.

“이제 어쩌자고!”

지환은 다짜고짜 고막에 음성을 집어넣는 구언의 행동에 흠칫 놀라 뒷걸음을 걸었다.

으어으. 저 자식의 입술이 귓불에 닿았다.

“죽여버릴 테다.”

“뭐요? 죽치고 있자고? 여기?”

오케이! 구언은 지환의 말을 잘못 이해한 채 지환을 끌었다.

홱, 구언이 끌자 홱, 하고 지환이 튕겨낸다. 서로는 으르렁거리며 앞으로나아갔다.

……그사이.

“결혼 축하해ㅡ!”

희원의 선창과 함께 작은 룸에선 그녀들만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고깔을 쓰고, 샴페인 잔을 들며, 오랜만에 함께하는 즐거움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다.

“다들 고마워요! 와줘서 진짜 너무 고맙고요!”

밖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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