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6화 (6/151)

#6. 미니카(2)

“애한테 주려고?”

나는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한창 조립에 열중하고 있는 덩치에게 물었다. 미니카를 가지고 놀 만한 애는 고사하고 결혼이나 했을까 싶은 나이다.

“어릴 때 가지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못 사게 했거든.”

“아들에게 엄한 아버지네.”

“그러게.”

분명 나처럼 어릴 적 추억 때문에 무심코 샀으리라 짐작하고 조금 놀려줄까 싶었는데 의외로 솔직한 대답이 나왔다.

자식에게 장난감 하나 사주지 않는 아버지라니. 복잡한 가정사는 사양이다.

“롤러는 너무 꽉 조이면 안 돼. 트랙에서 이게 뻑뻑하면 튕겨 나가니까.”

“트랙이라고?”

“어?”

갑자기 큰소리로 물어서 되려 내가 놀라 다시 물었다.

“여기에 트랙이 있는 거요?”

“그럴… 걸? 창고를 찾아봐야 하는데. 찾아줄까?”

“아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말과는 다르게 덩치의 눈에 실망감이 스쳤다. 당장에 완성하면 트랙을 달려볼 기세다.

내 짐작으로는 창고 어딘가 트랙이 있다. 원래라면 할아버지께서 문방구 앞에 평상을 두고 거기에 미니카 트랙을 설치해 놓으셨다.

시골 깡촌이라도 유행은 민감했다. 어느덧 미니카의 유행이 지나고 팽이의 시대가 왔을 땐 팽이경기장이, 그리고 카드게임이 유행하자 평상에는 방석이 깔렸다.

지금은 그 평상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창고 어딘가를 뒤져보면 나오긴 하겠지만 당장에 급한 건 아니니까.

원치 않는 가족사부터 트랙 이야기까지 잡담이 이어지는 사이 어느덧 박스에 남겨진 부품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배기구 모양으로 된 잠금장치를 돌려 뚜껑과 결합하자 마침내 미니카가 완성되었다.

“켜봐.”

딸칵. 위이이잉.

바퀴가 힘차게 돌아간다. 방치된 세월이 세월이다 보니 제대로 굴러갈까 싶었지만 역시 일제의 기술력은 대단했다.

“됐어!”

덩치는 어린아이처럼 뛸 듯이 기뻐했다. 이 좁은 방이 아니라 밖이었으면 더 볼만한 리액션이 나왔을 것 같았다.

“덕분에 완성했네. 후. 사례비라도 좀 드릴까?”

“지갑에 현금도 안 가지고 다니면서.”

“아, 계좌이체 하면 되지!”

폰을 열고 정말 계좌이체를 해줄 기세다. 입고 있는 옷이나 손목에 알이 큰 시계를 보아하니 돈이 꽤 있어 보여 사례금으로 얼마나 줄지 궁금하긴 했지만, 돈을 받자고 방으로 불러 조립을 도와준 게 아니다.

“됐고. 재미있게 가지고 놀아.”

“이 나이에 무슨… 그냥 한번 만들어 본 거지. 그럼 수고하쇼.”

덩치는 벌떡 일어나 어제처럼 손을 흔들며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나도 오랜만에 추억 속으로 되돌아간 기분이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몰두했었다.

‘민호야. 나중에 너도 동생들한테 알려줘야 하니까 지금 잘 배워둬야 해.’

이젠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동네 형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알려줄 동생을 20여 년이 지나서야 만나게 되었다.

* * *

“뭐야? 왜 형 차가 저기서 나와? 잠깐! 들어가지 말고 그대로 직진하세요.”

촌구석 문방구 앞에서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세단이 나오는 걸 본 조상진은 운전석에 앉은 직원에게 급히 지시했다.

“무슨 꿍꿍인지. 이해가 안 가네.”

“인사 이동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 아닐까요? 아니면 주인에게 이야기해서 땅을 팔지 않는 조건으로 더 큰 금액을 준다던가.”

“우리 형 성격 몰라요? 빡치면 멱살을 잡지 그런 치졸한 짓은 안 해요. 혹시 노인네가 또 뒤에서 우리 둘 가지고 노는 건가…….”

딸깍딸깍.

지포 라이터 뚜껑을 열었다 닫는 청량한 소리가 차 안에 울렸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생각 중이에요.”

‘누구 장단에 맞춰야 하지? 그냥 모르는 척 들어가? 아니면 형을 찔러볼까? ’

답을 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적진에 들어가는 것은 조상진이 가장 꺼리는 일 중 하나다.

“일단 오늘은 그냥 가죠. 어차피 직접 들어야지 짐작만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니까요. 차 돌려요. 저번 주에 갔던 라운지 바로.”

“네, 알겠습니다.”

조상진은 라이터를 탁 소리 나게 닫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형. 뭐 해?”

(왜 전화했냐?)

“왜긴, 술이나 한잔하자고.”

(내가 지금 너랑 술 마실 기분이겠냐?)

“형 사무실 그대로 비워놨으니까 기분 풀지? 세그엘호텔 라운지 바로 와. 지환이도 부를 거니까.”

(너희들끼리 노세요.)

“나라고 좋아서 여기 온 줄 알아? 형 제끼고 안방 차지하려는 놈으로 뒷말이 얼마나 나오는데. 그러지 말고 와. 먼저 가 있을 테니까. 끊는다.”

(야! 안 간…….)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종료 버튼을 누른 조상진은 뒷좌석 팔걸이를 열고 숙취해소제를 꺼내 입에 물었다.

최소한 말술인 형보다 덜 취해야 본심을 물어볼 수 있을 터였다.

* * *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나니 저녁이다. 시골이라는 기분 탓인지 겨울이 다가와 해가 짧아졌는지 아직 6시도 안 되었는데 주변이 어둑어둑하다.

2,500원짜리 하나 팔고 종일 조립까지 도와주면 이거 엄청 밑지는 장사네. 물론 저런 손님이 또 올 것 같지는 않지만, 마수걸이치고는 과한 서비스였다.

그래도 회사생활만 하다 이렇게 장사라는 걸 해보니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녹슨 카운터기에 들어간 첫 수익을 기념으로 맥주라도 살까 하다가 나중에 거스름돈을 위해 남겨뒀다.

그동안 회사의 부속이 되어서 했던 일들은 결국 밖으로 나오니 아무 쓸모가 없다.

사업을 수주하기 위한 제안서와 발표자료를 만들고 수주하게 되면 각종 관리문서와 분기별 제출 서류들을 쏟아내야 했다. 내 월급은 고작 몇백이지만 그렇게 움직이는 돈들은 수십 수백억이다 보니 수치 하나라도 잘못 들어갔다간 모두가 골치 아파진다. 책임 소지를 떠넘길 사람은 항상 필요했고 내 차례에서 제법 오래 버틴 편이라 볼 수 있었다.

나름 인정받고 여기저기 스카우트 제의도 적지 않았다. 곧 가게 될 새 직장도 그렇게 얻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테두리를 벗어나고 보니 난 아무것도 아니다. 퇴사 기념으로 축하주를 했던 동료들도 안부를 한두 번 묻고 끝이다. 좁은 바닥이라 이래저래 마주칠 사람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다시 직장에 들어갔을 때 일이다.

지금은 그저 퇴직금만 두둑한 무직 백수가 아닌가?

그리고 그곳에서 하는 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급여만 조금 더 아쉬워질 뿐.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진다.

오늘은 나가자. 어차피 먹을 것도 없고.

지도 앱을 열고 근방에 적당한 이자카야로 택시를 불렀다.

혼자 먹는 술은 익숙하다. 이른바 혼술에는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너무 왁자지껄한 곳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허름한 곳 역시 별로다. 2시간 정도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을 적당한 곳을 찾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술집이 모여 있는 상가단지에서 최대한 떨어진 아파트 근처. 이런 곳에 왜 술집이 있지? 라는 의문이 든다면 합격이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17,500원이 자동 결제됩니다.)

택시를 타고 내린 나는 곧장 검색했던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닭꼬치와 도쿠리 한 병 시켜 놓고 가만히 매장에 흘러나오는 철 지난 노래를 듣는 게 내가 가진 취미 아닌 취미다. 예전에 너튜브로 우연히 봤던 일본 먹방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닭꼬치를 맛있게 먹던 장면이 뇌리에 박힌 뒤로는 혼자 가는 술집은 늘 이런 이자카야가 되었다.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홀로 술을 마시기에 이만큼 편한 장소가 없다.

“사장님, 여기 모둠꼬치 하나랑 황도, 그리고 도쿠리 한 병 주세요.”

반도 먹지 못할 양이다. 하지만 혼자 테이블을 차지한 자릿값으로 안주 한 개는 조금 부족하다. 음식을 남기는 건 용납하지 못해서 꾸역꾸역 다 먹긴 하겠지만 말이다.

우우웅.

「현물주식 전환 완료 안내.

전환 내역: 삼정공업 590주. 누적배당금 1,209,410,500원

문의 전화…」

응?

당연히 광고겠거니 하고 폰을 열었던 나는 믿을 수 없는 문자 내용에 그대로 몸이 굳었다.

잘못 보낸 문자가 아니다. 증권 앱을 켜고 확인한 금액도 동일했다.

이게 진짜라고? 12억이 그냥 통장으로 들어왔다고?

금액에 정신이 팔려 한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주식은 더 충격이었다.

삼성공업 590주(현재가 3,390,060원).

자그마치 20억이다.

주식계좌도 없을 정도로 이쪽은 무지했다. 그 종이쪼가리가 32억에 가까운 가치가 있을 줄이야! 현실감각을 잊을 정도로 너무 큰 금액이 준비도 없이 들어와 기쁜 감정도 들지 않는다.

다 팔고 강남에 아파트를 살까? 아니다. 너튜브에서는 아파트보다 상가건물을 사라고 하던데. 그냥 부동산에 가면 되나?

자고로 재테크를 모르면 땅과 건물이 최고라 했다. 남들은 몰래 숨어서 폰으로 주식이다 비트코인이다 하며 열을 올릴 때도 나는 유독 그런 쪽으로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결혼은 이제 불가능에 가깝고 씀씀이가 헤픈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다른 중견기업 대비 조금 괜찮은 월급을 받아 적금에 넣으면 노후는 걱정이 없었다.

32억이면 평생을 모아도 불가능할 큰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뒤바뀔 만큼 큰돈이라 보긴 어려웠다.

일단 일은 해야 한다. 32억의 이자만 해도 월급보다 훨씬 클 테지만 사람의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기뻐할 새도 없이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일확천금을 얻고도 앞으로 살아갈 세월이 너무 길다. 물가 상승률을 생각해 보면 지금 이 돈의 가치는 흥청망청 놀고먹어도 될 정도는 아니다.

그래, 로또 한 장 산 게 당첨된 셈 치자.

로또 1등도 운 없으면 15억씩 떨어지는 마당에 32억이면 그야말로 최고의…….

우우웅.

증권 앱을 뚫고 문자 하나가 팝업되었다.

「상속세 납부 관련 안내

귀하는 상속재산 관련 법률에 의거…」

“시발…….”

욕이 절로 나온다. 할아버지의 문방구를 상속받을 때 공인된 실물거래가가 없어서 산정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던 비용도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세금 폭탄이다.

사람이란 본디 이기적인 동물이라 했던가? 당장 큰돈을 벌었음에도 뺏기는 돈에 더 큰 분노가 인다.

“상속세 세율… 으아!”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오타를 지워가며 구굴에 검색한 상속세의 세율은 자그마치 50%. 딴 돈에 반만 가져가는 구니도 울고 갈 계산법이다.

내일 아침에 따로 세무서에 연락을 해봐야겠지만 일단 절반을 토해내야 하는 건 확실해 보였다.

잠깐.

지금 가진 현금이 12억인데 주식까지 포함한 금액의 절반이면 얼추 16억을 내야 한다. 30억 이하가 40% 세율의 마지노선이었다. 고작 2억을 넘겼다고 법정 세율 최대치를 찍어버린 것이다.

그래.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그래도 16억이 남는다.

문제는 부족한 돈이었다. 배당금으로 받은 돈을 다 토해내더라도 4억이나 모자란 상황. 예전에 살던 원룸의 보증금과 퇴직금. 그리고 모아둔 돈을 전부 털고도 대출까지 내야 할 판국이다. 주식을 팔면 당연히 해결될 문제지만 배당금으로 12억이나 받은 마당에 주식도 잘 모르는 내가 이 캐쉬카우를 처분하긴 아까웠다.

기분이 울적하다는 핑계로 술잔을 기울일 때가 아니다. 지금 먹는 위로주가 최후의 만찬이 될 줄이야.

돌아가는 길은 버스를 타야 한다.

가난한 부자는 멀리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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