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7화 (7/151)

#7. 미니카(3)

시그엘호텔 라운지 바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술집이다. 높은 층수만큼 아득히 비싼 가격으로 유명한 이곳에 양주를 병째 가득 깔아 둔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철진은 특유의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그 테이블로 걸어갔다.

“지환이는?”

“거짓말이야. 연락도 안 했어. 그냥 부르면 안 올 것 같아서.”

“이젠 뭐 미안하지도 않나 보네. 왜 불렀어? 직접 축하라도 받아야겠다 그거냐?”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망할.”

“일단 술이나 한 잔 해.”

의자에 앉지도 않고 상진이 따라준 위스키를 단번에 들이켠 철진은 독한 술에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그렇게 불편한 공기 속에 서로 폰화면만 넘기며 술을 마셨다. 피를 나눈 형제는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그리 할 말이 많지 않다. 서울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라운지 바는 서민들이 기념일에나 무리해서 오는 곳이지만 이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장소다.

서울의 야경 대신 폰만 바라보던 정적을 깨고 조상진이 입을 열었다.

“이 자리 다시 오려고?”

“염병. 술을 몇 잔을 했는데 이제야 본심을 말하네. 그냥 전화로 물어보던가, 새꺄.”

“오늘 그 할아버지 기념관 자리에 있는 문방구 갔잖아. 포기가 안 돼?”

“미행도 붙였냐? 미친 새끼.”

“아니, 나도 갔다가 형 차 봤지.”

“그런 거 아니다.”

“그러면 왜 갔는데! 나 엿 먹이려고?”

연거푸 마신 술 때문에 상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천천히 신경을 긁어 속내를 털어놓게 하겠다는 계획은 철진이 술에 취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오히려 반대인 상황.

속마음을 들킨 쪽은 숙취해소제를 세 개나 먹은 상진이었다.

탁.

상진의 외침에 주위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철진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이게 뭐야?”

“미니카.”

“아니, 누가 몰라서 물어? 이걸 왜, 아니, 이걸 안주머니에 넣고 다녀?”

“이거 사러 갔어.”

“뭘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야지. 술 취했네.”

“너 기억나냐? 우리 어릴 때 아버지 백화점 간 날. 내가 아버지한테 처음으로 사달라고 했던 장난감이다. 그 뒤로 내가 독립하기 전까지 받은 선물이라곤 책뿐이었어. 네 말대로 땅 사러 갔다가 이게 눈에 보여서.”

“우리 조철진 전무, 나이 먹더니 감수성이 풍부해졌네. 그런데 이거 굴러는 가는 거야?”

위이이잉.

미니카를 뒤집어 ON으로 버튼을 옮기자 힘차게 돌아가는 바퀴 때문에 잠깐 놀란 상진이 하마터면 미니카를 놓칠 뻔했다.

그 모습을 본 철진이 안절부절못하며 미니카를 달라 눈치를 줬지만, 상진은 좀처럼 미니카를 쥐고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연년생이던 상진의 과거도 철진과 같았다.

재벌가 2세의 망나니 같은 삶은 두 사람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조금의 빈틈도 허락되지 않는 엄격한 교육을 강요받았다.

미니카는 상진에게도 처음 만나게 되는 미지의 물건이다.

“너도 사러 가던지.”

“애도 아니고 뭘 이런 걸…….”

자신과 비슷한 말을 하는 동생을 보고 철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거기 트랙도 있대.”

상진은 시계를 보더니 서둘러 겉옷을 챙겨 입었다. 망설이기엔 지금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 * *

버스에서 내려 걷는 길은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였다. 마음이 추워서 그런가? 이 나이에 술 먹고 택시도 못 타는 형편이 되어서 그런가? 유독 패딩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이 매섭다.

발을 동동 구르다시피 경박한 발걸음으로 문방구로 향하던 와중에 고급 세단 두 대가 주차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또 뭐야?”

이젠 두 대다.

다시는 오지 말라고 뿌렸던 소금이 문제였다. 굵은 소금이 없어서 급한 대로 맛소금으로 대체한 게 화근이었다.

잠든 새벽에 내일 아침에 있을 회의 보고서 좀 만들어달라며 받은 연락과 어쩐지 비슷한 상황이다.

이건 뭐 직접 찾아오니 폰을 꺼두는 걸로 막지도 못하는 잔업이다.

“장사 접은 줄 알았네.”

“시간이 10시인데 그럼. 진작 문 닫았지.”

예상대로 밤에 찾아온 무례하기 짝이 없는 손님은 어제 그 덩치였다. 거기에 혹 하나를 더 달고 온.

“여기는 내 동생 상진이.”

“안녕하세요.”

“그리고 여기는…….”

서로 통성명을 한 기억이 없다. 건넸던 명함은 미니카를 살 현금으로 바뀌었으니까.

나는 손가락을 들어 간판을 가리켰다.

“그래, 민호 형.”

“일단 추우니까 들어와.”

덩치는 인상과는 다르게 그다지 글러 먹은 성격은 아니다. 겨울바람에 세워두긴 어쩐지 미안한 감정이 들어 결국 안으로 들였다.

우르릉.

보일러를 켜자 두 형제는 큰 소리에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서민의 기름보일러가 그렇게 놀랄 일이냐?

“보일러 틀었으니까 금방 따뜻해질 거야. 그래, 뭐 사러 왔어?”

“미니카를 한 대 더 샀으면 하는데. 있지?”

말은 덩치가 했지만 딱 봐도 옆에 있는 상진이라는 동생의 미니카다.

첫 마수걸이는 경황이 없어서 얼떨결에 팔았지만 이제 본격적인 영업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동생은 아직 눈빛에 탐욕(?)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미니카 상자를 모두 들고 와 방 안에 펼쳤다.

구멍가게 수준의 문방구답게 바닥에 펼친 열 개가 안 되는 상자 중 겹치는 종류는 하나도 없다. 누군가 하나를 고르면 곧바로 선택지는 사라진다.

“이건 2세대 미니카들이야. 2세대 미니카는 세 가지 기종이 있어. 이건 클래식한 모델. 전에 네가 골랐던 거. 모터가 뒤에 있지. 그리고 이건 밑 모터라는 건데 모터가 아래쪽에 들어가. 납작해서 공기저항이 훨씬 적어. 이건 앞 모터. 모터가 앞에 있어서 무게중심이 바뀌어서 코너링이 훨씬 부드러워.”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체계적인 검증이 전혀 되지 않은 정보들이다. 미니카는 1세대 모델과 2세대 모델이 구분된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등급이 아니라 단순히 그 당시 나왔던 만화영화를 기준으로 나뉜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또래 아이는 2세대 미니카를 선호했다.

단순히 유명한 걸로 치자면 미니카의 인기를 처음 몰고 온 1세대가 단연 압도적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변덕이 심한 아이들에게 1세대 미니카는 너무나 먼 과거의 유산이었다. 어릴 적부터 6시가 되면 티비 앞에 앉아 모든 만화영화 본방을 사수했던 나조차도 1세대 만화영화는 기억이 가물가물했으니까.

그런데 이 녀석들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 추억에 잠겨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이 나와야 하는데 생소하고 신기한 물건을 본 것처럼 이리저리 박스만 돌려보고 있다. 설마?

“잠깐, 너희들 이 만화영화 안 봤어?”

“만화도 있어요?”

예상대로다. 이 자식들 안 되겠구먼. 나는 덩치에게 폰을 달라 손짓했다.

플립폰으로 우리가 가진 폰 중 가장 큰 화면이었다.

“패턴 풀고 너튜브 좀 켜서 줘봐.”

내 기억으로 옛날 만화영화는 너튜브 채널에 맛보기로 3화 정도를 풀어준다. 그 뒤는 따로 구독이나 결제를 해야 하지만, 뽐뿌를 넣기엔 3화만으로도 충분히 과하다.

만화영화를 보지 않고 미니카를 논한다는 건 애초에 성립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명작은 1세대 만화영화인 ‘파워 부메랑’이다. 깃털을 꽂으면 스피드가 올라가는 주인공의 독보적인 필살기 덕분에 당시 닭장에 백숙처럼 하얀 닭들이 속출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여주는 만화영화는 ‘2세대 챔피언’이라는 제목의 98년도에 방영했던 만화다. 작화를 떠나 1화부터 미니카의 특성과 개조에 필요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내용에 녹여놔서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동네마다 소문으로 떠돌던 근거 없는 개조 기술을 어느 정도 정립하게 만든 1등 공신이다.

물론 내용 면에서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서로 손을 잡은~ 뜨거운…)

오프닝 곡이 흘러나오고 우리 세 명은 작은 병풍처럼 세워 둔 폰 화면에 집중했다.

스토리는 두 형제가 극비로 개발 중인 미니카를 받으며 시작된다. 그때는 몰랐는데 화면 여기저기 일본 완구업체 다미야의 로고가 박힌 걸 보니 만화영화의 의도가 사뭇 불순하게 다가온다.

역시 뭐든 비싸게 팔아먹으려면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법이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엔딩 곡이 흘러나오고 만화영화는 어느덧 3화 분량이 끝났다. 한 화당 20분 남짓이기에 시간은 벌써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자, 어때? 이제 좀 고를 의욕이 나나?”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미니카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미니카를 선택할 것인가? 이것은 2세대 미니카를 가지고 놀았던 모든 아이들의 영원한 난제였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과 가슴이 끌리는 미니카. 두 가지 모두 취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미니카는 그저 모은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미니카의 꽃은 그다음이니까.

상진의 눈은 아까와 달랐다. 물론 이까짓 장난감 전부 사버린다 해도 그리 큰돈이 드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만화영화를 본 이 녀석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단 하나, 나만의 미니카를 선택하는 것이 가진 의미를.

“저는 이걸로 할게요.”

한참을 고민한 상진이 고른 미니카는 챔피언의 두 주인공 중 동생의 파란색 미니카다. 전통적인 선택.

만화영화에서는 주인공의 보정으로 정말 하이테크 기술력이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기종이다. 물론 냉정하게 따지자면 껍데기만 다르고 안은 똑같지만.

“그럼, 이제 조립해 볼까?”

“완성품이 아니에요?”

“디자인은 거의 같은 기종이니까 네가 좀 봐줘. 한 번 해봤으니까.”

다행히 귀찮아서 치우지 않은 공구들은 방 한구석에 그대로 있었다. 두 명은 그렇게 가시지 않은 술기운을 풍기며 조립에 몰두했다.

내가 도와줘도 되지만 두 형제는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일전에 들었던 복잡한 가정사도 그렇고 동생과의 어색한 공기는 외동아들인 내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다.

주위 친구들을 보면 뭐 형제끼리 남처럼 지내는 녀석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굳이 동생을 데려와 미니카를 사주겠답시고 이 늦은 시간에 시골 문방구의 문을 두들기는 모순적인 행보를 보면 관계 개선의 여지는 충분했다.

하찮은 장난감이지만 미니카를 조립하며 우애를 다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다 큰 어른 두 명이 손바닥만 한 미니카를 가지고 조립에 몰두하는 장면은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막히는 부분은 일전의 덩치에게 알려주었던 방법으로 대부분 해결이 가능했다. 고작 10살도 안 되는 아이들이 조립하는 장난감이다. 사실 사출 불량이나 오랜 세월 때문에 변형되고 녹슨 부품만 아니면 그리 어려운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됐다.”

부품이 많은 조립이 아니기에 조립은 금방 끝났다.

위이이잉.

역시나 모터가 힘차게 돌아간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한참 자신이 조립한 미니카를 만지작거리던 상진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여기 트랙이 있다고 하던데…….”

“아! 있을 거야. 할아버지는 웬만해선 물건을 잘 버리지 않으셨거든.”

“흠흠.”

꺼내 달라는 뜻이다.

그것도 이 야심한 밤에. 고작 2,500원짜리 미니카를 사놓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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