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미니카(4)
“불 없어요?”
“폰 있잖아, 폰. 잘 좀 비춰봐.”
결국 무언의 압박으로 창고까지 오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창고를 여는 건 저번 49재 때 이후로 두 번째다.
가로등도 없는 새까만 밤이다. 고작 폰 카메라 불빛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잡동사니 박스를 치우며 들어가는 것부터가 곤욕이다.
“야.”
“예?”
“예? 따라 들어와야지! 안 보이잖아!”
어쩐지 안으로 들어갈수록 어둡더라. 이 귀하게 자란 놈들은 창고에 한 발짝도 들이지 않고 멀리서 폰만 들고 있었다. 군대도 안 갔다 온 놈들이 분명하다.
“어디 보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따로 박스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 적혀 있는 게 아니었다. 대충 트랙이 들어가 있을 법한 큰 상자들 위주로 하나하나 열어보다 결국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마지막 상자까지 왔다.
“여기 없으면 없는 건데.”
두 형제도 마지막 상자의 정체가 궁금했는지 내 뒤로 바짝 붙어왔다.
부스럭.
“야옹!”
“으아아악!”
고양이다. 그것도 노란색 길고양이. 추위를 피해서 들어온 모양이다. 고양이의 안광이 스마트폰 불빛에 반사되어 세상 다시없을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해 냈다.
“식겁했네. 후.”
이 나이 먹고 고양이 따위에 꼴사납게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이 조금 민망해 괜한 혼잣말을 했다.
고양이는 내가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질렀는데도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니 알아서 다가와 볼을 비볐다.
“이거 사람 손 탔나? 도망을 안 가네.”
시골 인심 좋은 할머니들이 먹고 남은 잔반을 주는 고양이인 것 같다.
나는 고양이를 안아서 박스 밖으로 꺼냈다.
내용물은 확실하다. 조금 낡았지만 정성스럽게 비닐에 쌓인 트랙이 가지런히 박스 안에 정리되어 있었다.
“형.”
“왜?”
“상진이 기절했나 본데?”
“뭐? 야야!”
풀썩.
선 채로 미동조차 하지 않던 상진이는 내가 흔들자 볏짚 쓰러지듯 그대로 주저앉아 뒤로 넘어갔다.
나는 그대로 상진이를 엎고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등이 축축하고 코를 찌르는 지린내가 슬며시 풍겨온다. 이 자식 오줌도 지렸다.
급한 대로 방에 눕힌 뒤 바지를 벗기고 여기저기 몸을 확인하니 다행히 숨은 쉬고 있고. 다친 곳도 보이지 않는다.
“구급차 불러!”
“안 돼.”
“야, 애가 쓰러졌는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금.”
“하여튼 안 돼. 어차피 조금 있으면 깰 거 같으니까 그냥 한숨 재우자.”
사람이 쓰러졌는데 태연한 말이나 하는 답답한 덩치를 무시하고 119를 부르기 위해 폰을 열었을 때였다.
“흠냐흠냐.”
쓰러진 상진이가 세상 편안한 모습으로 몸을 뒤척이는 모습에 맥이 탁 풀려버렸다.
그제야 주위가 눈에 들어온다.
신발을 신고 들어와 방은 아수라장. 등과 바지, 속옷까지 저 녀석의 오줌으로 축축해졌다.
“어휴. 일단 나 옷부터 갈아입고. 넌 쟤 바지랑 구두 좀 벗겨.”
오래된 통돌이 세탁기에 옷을 던져 놓고 장롱을 열었다. 출근용 정장을 빼면 처참하기 짝이 없는 옷가지들이다. 유일한 주말 외출용 청바지와 검은색 목티를 꺼내입고 상진이에게 입힐 바지를 찾았다.
보이지 않는다. 내 하늘색 A급 아디디스 츄리닝 말고는.
해외 출장을 갔을 때 산 유일무이한 메이커 복이다. 자주 빨면 로고의 코팅 부분이 갈라질까 봐 입지도 못하고 걸어만 뒀던 옷인데 생면부지의 오줌싸개한테 입히게 생겼다.
“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흉물스러운(?) 하반신을 그대로 내놓고 내 집에서 자게 둘 순 없다.
“자, 이거 입혀. 아니다, 같이 입히자.”
저 우악스러운 손에 내 소중한 츄리닝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하반신을 날 것 그대로 내놓고 있는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츄리닝을 입히는 작업은 상상 이상으로 자괴감이 들었다.
“형, 이 새끼 웃는데?”
“내버려 둬. 좋은 꿈이라도 꾸나 보지.”
대충 츄리닝을 입히고 이불까지 던져두자 상황은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다.
“이제 우리도 자자. 어차피 술 마셔서 운전도 못 하니까. 야,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왔어?”
“대리.”
“그래, 설마 했다.”
방에 어른 세 명이 누우니 팔도 벌리지 못할 정도로 비좁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또 온 거야?”
“그냥…….”
“그냥?”
“그냥 생각이 나서.”
“곱게 자라서 이런 미니카는 못 만져 봤다 그거냐?”
부잣집 도련님의 삶 따위는 모른다. 어느 재벌집 드라마처럼 자기 키만 한 골프채를 휘두르며 쭈쭈바 대신 유기농 과일주스나 마시려나?
하지만 그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은 서른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 이 낡은 문방구의 문을 열 정도로 강했나 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점점 윤곽이 보이는 짧은 시간 동안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갔다. 뒤늦은 통성명부터 만화영화 이야기까지.
“드르릉.”
그리고 그 대화는 마침내 이름을 듣게 된 철진의 우렁찬 코골이로 끝을 맺었다.
* * *
잠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모르는 사람 두 명과 같은 방에 누워 잔다는 건 매사 무덤덤한 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바로 옆에 누운 철진의 우렁찬 코골이도 잠 못 이루는 밤의 일등공신이었다.
결국, 버티다 못해 슬며시 일어나 아풀러 한 봉지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눈도 붙이지 못하는데 낯선 남자 둘과 같은 방에 있고 싶지 않았다.
입에 문 아풀러는 오래전에 끊은 담배처럼 익숙한 감촉이다.
“으으아.”
나는 딱딱한 방바닥에 굳어 있었던 허리를 크게 젖히고 다시 창고로 향했다.
어차피 다시 돌아가 눕기에도 어정쩡한 이른 새벽. 할 일은 남아 있고 저 지긋지긋한 진상 손님 둘이 가고 나면 얼마든지 잘 수 있다.
창고는 어젯밤과는 다르게 굳이 폰을 켜지 않아도 주위가 구분될 정도로 밝았다.
쌓인 박스들은 모두 빳빳한 플라스틱 이사 박스들이다. 꼼꼼하신 할아버지는 이 눅눅한 창고 안에 종이박스를 넣어두면 얼마 가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계셨다. 덕분에 들고 나오는데 중간에 박스가 터져 내용물이 흘러나올 걱정은 덜었다.
“읏샤.”
큼지막한 플라스틱 이사 박스가 3개, 그리고 혼자 들고 오는 데 애를 먹은 평상이 수십 년 만에 원래 자리를 찾아 놓였다.
트랙의 조립은 간단하다. 시골 문방구에 구색 갖추기로 있었던 트랙이니만큼 그 크기는 작고 아담했다. 대충 꿰맞추기로 완성된 트랙은 어느덧 그럴싸한 모습으로 변했다.
마지막 부품은 선택 옵션이다. 무한궤도처럼 이어지는 트랙에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부품은 곱게 처음 지점으로 줄만 바꿔주는 것과 360도 회전, 이렇게 두 가지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당연히 퍼포먼스 면에서는 선택하고 말 것도 없이 360도 회전트랙이다. 하지만 기본 모터를 달고 있는 두 형제의 미니카는 이 360도 트랙을 넘지 못한다.
내 어린 시절 기억으로 이 트랙을 달리기 위한 최소 커트라인은 실버 모터다.
그래. 벌써 실망감을 줄 필요는 없지.
잠시 고민을 했으나 이내 완성된 트랙은 조금 밋밋한 모습이 되었다.
“민호 형! 나 부르지! 이걸 혼자 했네.”
철진이 호들갑을 떨며 나오는 타이밍이 마치 방 안에서 완성되길 지켜본 것처럼 기가 막혔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
“상진이 깨워서 한번 달려봐. 나도 좀 궁금하긴 하네.”
두 형제의 미니카는 우연의 일치인지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형제의 미니카와 같은 기종이다. 만화영화에서는 형이 가진 미니카는 코너링에 특화되어 있고 동생의 미니카는 직진 가속에 특화되어 있다.
물론 실제 미니카는 그저 데칼만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일제 장난감의 디테일은 설마 하는 마음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생각해 보면 두 만화영화 주인공이 사용하는 미니카를 순정 상태 그대로 달려본 기억이 없다. 미니카는 순정 성능이 얼마나 처참한지 모두가 잘 알고 있기에 곧장 개조부터 들어가니까 말이다.
드르륵.
“죄송합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나온 상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 힘없는 사과를 했다. 간밤에 자신이 무슨 만행을 저질렀는지 들은 모양이다.
“아니야. 구급차 부르려고 했는데 그냥 자고 있길래 안 불렀다. 옷은 저 비닐봉지에 있으니까 이따가 가져가고. 자, 네가 찾던 트랙. 좀 작지?”
어릴 땐 그렇게 넓고 커 보였던 트랙이 막상 어른 셋이 둘러싸고 보니 작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혹시나 실망하면 어쩌지 싶은 내 우려는 기우였다.
철진과 상진은 미니카를 꺼내 들고 벌써 달릴 기세였다.
“이거 그런데 승부는 어떻게 가려요?”
좋은 질문.
문방구 트랙은 그 크기만 조금씩 다르고 모두 무한궤도처럼 끝없이 이어진 구조로 되어 있다. 만화영화처럼 서로 분리된 길을 달리는 트랙은 당시에도 우리에게 전설과도 같았다. 있다곤 하지만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그래서 문방구 트랙에는 문방구 트랙만의 룰이 있다.
“장거리전이야.”
“장거리?”
“서로 반 바퀴를 사이에 두고 동시에 달리면서 누가 꽁무니를 무느냐로 승패가 결정 나는 거지.”
“아!”
그랬다.
트랙은 하나뿐인데 미니카를 들고 달리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수십 명이다. 이들에게 트랙은 마치 골프장의 홀처럼 짧은 시간 안에 허용된 무언의 공간으로서 배정된다.
같은 출발선상에서 달린다는 레이싱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구조다 보니 결국 꼬리잡기가 승패를 가르는 승부 방식이 된다.
그때와 다른 점은 같이 달리는 다른 미니카가 없으니 서로 반 바퀴만큼 거리를 두고 누구 미니카가 빠른지 좀 더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준비됐지? 고!”
위이이잉.
차가운 겨울 이슬이 맺힌 트랙을 미니카 두 대가 힘차게 갈랐다.
* * *
시골 마을의 아침은 태양보다 빠르다. 아침잠이 없는 노인들은 일찌감치 나와 늦가을에 미처 끝내지 못했던 작물들을 다듬었다.
삼삼오오 모여 커다란 당산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아 생강과 쪽파, 알배추를 포대에서 꺼내 다듬는 모습은 어느 시골 풍경과 다르지 않다.
“쟈들이 누구랴? 김씨 손자는 하나 아니여?”
탈탈거리는 경운기나 왔다 갔다 하는 시골 마을에 못 보던 사람들이 문방구 앞을 서성거리는 걸 발견한 할머니가 바쁜 손 대신 턱을 쭉 빼서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친구들인 갑제.”
“옴마. 좀 모자라 보이는디?”
해맑게 웃으며 트랙을 달리는 미니카를 응원하는 남자들. 모자라 보인다는 말은 너무했다 싶지만, 특히나 상진이 입은 양복 정장에 하늘색 츄리닝, 그리고 고무 슬리퍼 조합은 누가 보더라도 정상인이라 말하기 어려웠다.
“이 무식한 할마시들. 그거 아녀, 그거. 그 뭐시다냐, 자원봉사?”
아는 체하기 좋아하는 방앗간 최씨가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하이고메, 그런갑다.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저 옷 입은 꼬라지에 장난감 가지고 노는 거 보소.”
“김씨가 손자를 참 잘 뒀어. 요즘 시상에 저렇게 모지란 사람 도울 줄도 알고 말여.”
“쟈가 요매날 때도 시방 동네 얼라들 다 데리고 다녔당께. 떡잎부터 달랐제!”
“김씨가 저승에서 울매나 좋아하것어. 참말로 복이여, 복.”
재벌 2세답지 않게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MBA 과정까지 수료한 조상진과 그 형은 모자라지만 순박한 청년들로 그렇게 동네 사람들에게 낙인이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