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11화 (11/151)

#11. 미니카 튜닝의 세계(2)

“그런데 형은 이 문방구로 먹고살 수 있수?”

“뭐 인마? 잘 놀다가 갑자기 왜 때려?”

“아니, 손님도 우리밖에 없고.”

딴에는 내 밥벌이 걱정이 되나 보다. 한참 미니카 부품을 뜯던 와중에 철진이 걱정을 가장한 일침을 날렸다.

물론 먹고살 수 없다. 짐작하기에 두 형제를 제외하면 손님은 명절 때 할머니 집에 오는 손자들이 유일하다. 그마저도 유통기한이 지난 불량식품을 갈아치우는 비용이나 메울지 미지수. 이 시골 문방구를 운영한다는 건 나에게도 때 이른 추억놀이다.

“나 두 달 뒤에 일 가.”

“그럼, 이거 망해?”

“야, 이 씨. 저녁에는 열 거야.”

“그렇지?”

불안감이 조금 해소됐는지 두 사람은 다시 개조에 열중했다.

“거기 사포로 너무 갈면 나중에 헛돈다. 끼워보면서 갈아.”

베어링이 잘 들어가지 않아 한참 사포질을 하던 철진이 내 말을 듣고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허겁지겁 갈아낸 부위를 확인했다. 미니카 부속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했으나 아직 서툴다.

미니카 튜닝은 우리 동네에서도 여러 계파가 나뉠 정도로 다양했다.

큰 줄기는 속도파와 외관파.

외관이야 어찌 되었건 빠른 속도가 목표인 아이들이 있었고 드라이빙은 그저 구색 갖추기로 화려한 외관을 꾸미는 데 중점을 두는 아이들도 많았다.

두 계파 간의 갈등도 제법 컸었다.

‘느린 똥차에 왜 돈을 투자하냐?’

‘남이야 느리든 말든 왜 시비냐?’

뭐 이런 하찮은 말다툼으로 시작해서 할아버지가 뛰어나오기 전까지 주먹이 오갔던 적도 몇 번 있었다.

이 둘은 명백한 속도파다. 처음에는 그저 흥미로 미니카를 샀을지 모르나 너튜브로 만화영화를 보여준 뒤에는 레이싱에 진심모드가 된 듯했다. 그래 봤자 이제 고작 천 원짜리 부품을 하나 산 게 전부지만 말이다.

“너희들 나중에 집에 가면 구급상자 꺼내서 미니카 상자 하나 만들어라.”

“그게 뭔데요?”

아. 설마 아직 있나?

할아버지는 물건을 잘 버리지 않으셨다. 나는 부엌으로 나와 보이지 않는 선반 위를 손으로 더듬거렸다.

톡.

손가락 끝에 끈적한 먼지가 아닌 무언가 걸렸다.

있다. 비밀장소랍시고 숨겨둔 내 미니카 상자.

자랑은 아니지만 내 미니카는 전국구였다. 부모님을 따라 다른 지역에 가는 기회가 있으면 늘 미니카를 들고 다녔고 그렇게 원정 레이싱에서 내 미니카보다 빠른 미니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형, 이건……!”

내가 꺼낸 상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딸칵.

상자가 열리고 드디어 20년이 훌쩍 지나 내 미니카를 다시 만났다. 구급상자를 개조해 만든 미니카 상자에는 칸칸마다 가지런히 부품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놀랍도록 그대로다. 바퀴를 비롯한 고무 재질의 부품들은 많이 삭았지만, 그 밖에 다른 부품들은 지금도 현역으로 보였다.

부품이 살아 있는 이유는 구급상자 곳곳에 뚫려 있는 구멍 덕분인 듯했다. 습기가 차면 금속부속에 치명적이니 송곳을 라이터로 달궈 여기저기 뚫어놓은 나름의 지혜가 지금에 와서 빛을 본 것이다.

“형, 이거 굴러갈까?”

“글쎄, 외관은 일단 멀쩡한데…….”

행여 어딘가 약해진 곳이 있을까 봐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미니카를 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할아버지를 졸라 억지로 받아낸 부품도 보이고 동네 형에게 받은 것, 딴에는 수제로 만들어보겠다고 어설프게 알루미늄 캔을 잘라 만든 스포일러도, 까맣게 잊은 줄 알았는데 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도전해 볼까?”

“오오!”

“그런데 그거 수리해도 느리지 않을까요? 너무 오래된 건데.”

“어쭈? 도발이야? 가소롭네.”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 나도 불안하긴 하다. 미니카의 심장인 모터는 아무리 당시 최고의 기술력이라는 일제라도 방치된 세월이 너무 길었다.

“야, 너희들은 너희들 것 해. 오늘 집에 안 갈 거야?”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부담스러워서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손을 휘휘 저으니 두 형제는 입맛을 다시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방해꾼은 사라졌지만, 섣불리 공구에 손이 가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 천천히 하자. 어차피 나에겐 남는 게 시간이다.

우선 조립되어 있던 미니카를 전부 분해하는 것부터다. 다행히 내 미니카는 모터를 제외하면 금속 재질의 부품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무거운 부품은 속도의 적이니까.

똑.

역시 모두 멀쩡하진 않나 보네.

조심스럽게 분해한다고 했는데 결국 사이드 롤러 하나가 부러졌다. 이참에 롤러는 그냥 싹 다 갈아야겠네.

“어디 보자. 봉 타입이 여기 어디 있었는데…….”

미니카 부품이 들어 있던 바구니는 두 녀석이 한참을 헤집어 놨는지 골고루도 섞여 있었다. 자식들 좀 정리해 가면서 구경하지. 정리해 봤자 내일 다시 와서 어질러놓을 것 같아 그냥 뒤적거려서 필요한 부품만 집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방문 앞에서 두 형제가 나를 막아섰다. 얼굴에는 어쩐지 음흉한 웃음이 가득하다.

“뭐? 왜?”

“형. 잊었어? 여기선 하루에 천 원 이상 못 사.”

“야! 나는 주인이고!”

“인당 하루에 천 원. 이곳의 룰이잖아. 예외는 없어!”

“아니, 애초에 내 건데 그게 무슨!”

낌새를 보아하니 말이 통할 상황이 아니다. 젠장.

「12월 29일

조철진: 1,000원 -> 500원

조상진: 1,000원 -> 0원

김민호: 1,000원 -> 0원」

결국, 반강제적으로 달력에 내 이름을 적었다. 내 물건을 내가 돈을 주고 사야 한다니! 을사늑약 버금가는 이 억지스러운 장단에 휘말려 버렸다.

봉 타입 롤러의 가격은 무려 천 원. 네 개가 필요한데 나흘간 한 땀 한 땀 바꾸게 생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우리 갈게.”

김이 빠져 폰으로 너튜브나 보고 있던 차에 어느덧 개조를 마친 두 형제는 작별인사를 하고 휑하니 가버렸다.

시간은 저녁 10시.

낮잠을 거하게 자버려서 새벽까지 잠이 오진 않을 것 같다. 영화나 한 편 볼까?

“아.”

티비도 없고 인터넷 채널도 없다.

영화는 자고로 푯값 아깝지 않게 빵빵 터트려주는 장르만 고집했는데 막상 작은 폰화면으로 보자니 맥이 빠졌다.

뭐 할 수 없지. 아쉬운 대로 폰을 베개 옆에 잘 세워두고 주전부리를 꺼내러 슬리퍼를 신었다.

「김민호: 1,000원 -> 0원」

방문 앞에 걸린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나는 오늘 용돈을 다 써버렸다. 영화를 보면서 먹을 밭뚜러와 깐도니는 앞으로 나흘 동안이나 참아야 한다.

* * *

“자료 파악은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당장에 입찰이 시작되면 세부 항목은 변경해야겠지만 조철진 상무 측에서 어떻게 입수했는지 사우디 쪽 내부 문서도 있습니다. 저희는 협력 업체들만 조금 더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잘됐네요.”

무미건조한 대답.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는데도 상관인 조상진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발견하셨습니까?”

딸깍. 딸깍.

상진의 손은 실내공기가 따뜻함에도 벗지 않은 코트 속 미니카의 온오프 버튼을 다시 괴롭혔다.

그렇게 잠시 생각하는 시간이 흐르고 상진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백 이사님, 지금 통화됩니까?”

(말씀하시지요.)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들어보겠습니다.)

“전략혁신본부 3팀에 이번 풀 체인지 되는 차 이름이…….”

“SB3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직원이 나지막이 정답을 말했다.

“그래. SB3, 그 차 판매 기획 건 좀 맡겨주세요. 아직 시작 안 했죠? 부탁드려요.”

(저, 죄송합니다만 지금 그 업무를 맡기에 전략3팀은 관련 업무 경험이 있는 인원이 없습니다.)

“오해가 있으신가 봅니다. 제가 지시가 아니고 부탁한다고 고개를 숙일 땐 아쉬워서가 아닙니다. 귀찮게 둘러 갈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려고 숙이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경영권을 쥐면 자리보전이 어렵다는 말을 대놓고 들은 상대방 쪽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원하는 답변을 들은 상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폰을 내려놨다.

명백한 겁박이다. 그것도 아버지뻘 되는 한참 높은 직급인 총괄이사에게 하는 겁박. 하지만 상진은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의 가장 큰 적은 이제 다름 아닌 회장인 아버지였다. 겉으로는 오늘내일하는 노인처럼 보였으나 올해 막 환갑잔치를 하신 현역이었다. 앞으로 10년은 거뜬히 그 자리를 지키실 테니 당장 햇병아리인 자기 말을 백 이사가 순순히 따를 연유는 없었다.

그 때문에 피차 껄끄러운 상황을 만들지 말자며 과한 무례로 백 이사를 겁박한 것이다.

“전무님,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뭐가요?”

“SB3는 어중간한 포지션으로 만년 꼴찌 판매량이 나오는 차입니다. 풀 체인지래 봤자 다른 라인업에 맞게 외형만 조금 바뀌는 차의 판매 기획을 맡기겠다는 말은 곧 구체적인 실적이 화살로 날아와 박힌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글쎄. 그게 어디로 날아갈 화살일까요?”

“예?”

“백 이사는 아버지 쪽 사람입니다. 당장에야 좌천당한 형보다 내가 더 힘이 있으니 귀찮은 일을 피하려고 지시를 따르겠다 한 겁니다. 판매 부진의 여파가 예상 범위보다 크다면 어떻게든 저를 걸고넘어지겠죠. 아마 통화도 녹음해 놨을걸요?”

탁.

상진은 자신의 책상 위에 있던 문서들을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이 자료들 다 싸서 창고에 박아요. 세절시키든지.”

“전무님!”

“우리도 처음부터 합니다. 시장 조사부터 단가 산정, 제안 전략, 모두 제로부터 시작할 겁니다.”

사무실에 앉아 있던 직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가용 인원을 총동원해도 지금 이 자료들의 5분의 1도 만들지 못할 터였다. 야근이나 근성으로 어떻게든 해보라 소리쳐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일이다.

“입찰까지 너무 시간이 빠듯합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이면 수주는 압도적으로 저희가 유리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심이…….”

“아뇨! 일정이 빠듯한 건 저쪽도 마찬가집니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얻어서 따낸 성과는 필요 없습니다. 평생 술주정으로 내 덕에 부회장직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

평소 상진의 말이라면 절대 토를 달지 않는 직원들의 필사적인 만류에도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상진답지 않은 즉흥적이면서 논리적이지 않은 행동에 얼떨떨한 직원들이 정말 이 피 같은 문서들을 다 버려야 하나 머뭇거렸다.

“왜요? 내가 직접 할까요?”

“아, 아닙니다. 지금 바로 창고로 옮기겠습니다.”

상진은 털썩 하고 의자에 반원을 그리며 돌아앉았다. 창문으로 비치는 뼈만 남은 가로수와 꽉 막힌 도로는 상진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했다. 전망 좋은 사업총괄부 임원 사무실을 비워두고 굳이 구내식당 옆, 사무용품이나 쌓아두던 이 자리에 들어온 이유를 그동안 알지 못했었다.

형이 무서워서였을까? 아니면 내심 진짜 내 자리가 아니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형, 이제 변명은 안 통해. 공평하게 겨루는 거야. 미니카 레이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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