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승패(1)
삼정자동차 전략혁신본부 3팀은 계속되는 철야 릴레이에 모두 녹초가 되었다.
여기저기 쌓여 있는 컵라면과 종이컵들은 이들이 얼마나 이곳에 오래 갇혀 있었는지 알려주었다.
“이게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전부야?”
“팜플렛 인쇄비까지 다 긁어모은 겁니다. 이제 돈 나올 구멍이 더 없습니다.”
“막막하게 됐네.”
철진은 손에 쥔 문서들을 탁 소리 나게 책상에 던졌다.
초라하다.
CF는 초저가제작으로 메인 시간에 한 달도 못 걸릴 비용이었다. 다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봤자 없던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다들 지금 이번 기획이 회사에서 마지막 기회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전략혁신본부 1팀과 2팀이 번갈아 가며 프로모션과 각종 판매기획을 담당했다.
3팀은 애초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팀이다.
‘알아서 나가라. 이직할 시간은 충분히 주겠다. 우리가 주는 마지막 배려다.’
3팀에 발령받는다는 것은 그런 뜻이었다.
조철진 상무를 따라온 충신들도, 줄을 잘못 대거나 일어난 사고에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는 억울한 억지에 끌려온 사람들도, 모두 권고사직만 기다리던 신세였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업무지원이랍시고 여기저기 팔려 가서 눈칫밥을 먹던 날이 끝나고 드디어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팀원들은 희망과 의욕에 불타올랐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배려의 시간이 끝났음을. 이번 기획안이 실패하면 이제 갈 곳이 없었다.
“야! 뭐 망하면 죽인데? 다른 데 가면 되잖아!”
여기저기서 한숨 릴레이가 이어질 무렵 그 소리가 거슬렸던 철진이 유리 벽 넘어 다른 부서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볼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무님!”
“답도 안 나오는 서류 그만 들여다보고 전화 돌리든 뭐 일자리닷컴에 들어가든 해서 이직할 자리 알아봐. 내가 보니까 지금 그게 답이야.”
“….”
진실도 직접 들으면 입맛에 쓴 법이다. 사무실에는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망할….”
철진은 피지도 못할 시가를 입에 물고 다시 보던 문서를 집어 들었다. 문서에는 SB3의 사진이 빼곡하게 들어가 있었다.
“다 똑같아 보이는데 무슨 셀트라비3이니 SB3니 이름만 바꿔 가지고.”
그 순간 누군가 자신에게 해줬던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잘 생각해봐. 내 미니카에 그 부품을 끼우면 어떤 부분이 바뀔지.’
“잠깐!”
“임 차장, 이거 미니카랑 비슷하지 않아?”
“네?”
평소 같으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는 임 차장에게 질펀한 욕을 내뱉었을 철진은 어쩐지 SB3의 옵션별 가격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 봐봐. 플러스, 골드, 럭셔리, 엠퍼러. 말장난만 있고 실상 선택할 수 있는 부품, 아니 옵션은 이게 다야. 단가 올리려는 개수작이지.”
차는 같은 모델이라도 등급이 올라가면 당연히 옵션이 많아진다. 차량 가격을 올리는 얄팍한 상술.
‘그 개수작을 전무님 집안 회사에서 하고 있습니다.’
상하관계 때문에 차마 꺼내지 못한 본심은 그렇게 다시 임 차장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난 이거면 되거든.”
철진은 통풍 시트를 손으로 짚었다.
유독 더위를 많이 타는 철진에게 통풍 시트는 없어선 안 될 필수 차량옵션이었다. 그밖에 다른 기능들은 어차피 무덤덤한 성격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십니까?”
“이거 옵션 다 버리고 그냥 자유 선택하는 건 어때? 나 같은 놈들이 있을 거 아니야.”
“그러면 마진율이 떨어집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특히 만년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SB3에게 마진율까지 떨어진다면 그야말로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철진은 그 사형선고를 직접 내리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알 바야? 어차피 망하면 쫓겨날 회산데. 내가 왜 여기 마진율까지 걱정해야 해! 난 하루 천 원씩 벌어서 미니카 부품을 사야 한다고! 골드 모터는 2만 원이나 하는데 이건 꿈도 못 꿔. 젠장.”
“여기서 갑자기 미니카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잘 생각해봐. 내가 골드 모터를 못 사고 그냥 실버 모터를 살까 고민하는 것처럼 이 차 사는 사람들은 다 나랑 비슷해. 준중형은 꿈도 못 꾸고 그냥 경차 신세나 면해보자는 거지. 이거 풀옵션 살 바엔 중고로 준중형 뽑고 말지. 안 그래? 어차피 아쉬운 돈으로 사는 거면 필요한 옵션만 선택해서 사라 그 말이야.”
“잘못하면 삼정자동차 전체 순 매출에도 영향을 줄지 모릅니다.”
“우리는 판매 대수가 중요해. 순 매출이야 나중에 분기별로 삼정자동차 전체 합산으로 뜨지 SB3 판매수익만 개별 공시하진 않잖아? 뭐 번호표 뽑고 쫓겨나길 기다렸던 놈들이 갑자기 회사 걱정이라도 하는 거야?”
그럴 리가 없다.
모두 젊음과 열정을 다 바쳤던 회사에서 버림당한 몸이다. 복수심이라면 모를까 애사심 따위는 진작 헌신짝처럼 내다 버린 지 오래였다.
“이걸 위에서 승인해줄까요?”
“안 해주면 개 같은 거 다 엎으면 돼! 난 원래 그런 놈이니까. 아니, 그런 놈으로 보이니까. 좌천으로 승계 구도에도 밀려난 장남이 물불 가리게 생겼어? 여차하면 가스통이라도 매고 가지 뭐. 으하하!”
세상 다시없을 유쾌한 농담이었지만 임 차장을 비롯한 측근들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농담이 아님을 오랜 경험으로 뼈저리게 체득했기 때문이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설마 진짜 그렇게 하시겠어? 라는 안일한 마음으로는 철진의 측근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다.
“홍보자료는 이걸로만 밀고 나간다. 옵션 자유 선택제, 이것만 크게 띄워. 디자인, 안전성, 뭐 다른 거 다 지워버려. 궁금하면 찾아보겠지.”
“정말 괜찮을까요? 하다못해 어떤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지 정도는….”
“신경쓰지마. 내 차에 그 부품을 끼우면 어떤 부분이 바뀔지는 모두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 민호 형?’
* * *
(SB3의 인기가 나날이 치솟고 있습니다. 삼정자동차의 아픈 손가락으로 판매 부진을 이어가던 SB3가 이렇게 갑자기 화제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경제분석 전문가 장유진 교수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파격적인 옵션 자유 선택제 영향이 큽니다. 등급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강제적으로 정해진 요즘 판매전략과는 전혀 상반된 행보를 보였습니다. 소비자는 필요 없는 옵션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최대 600만 원 이상 낮은 가격에 차량을 구매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번 SB3의 돌풍으로 과연 다른 차종에도 영향을 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기 맞나?”
“현재 SB3는 사전예약만 3만 2천 대를 넘었습니다. 타 업체 동일 등급 대비 4배가 넘는 실적입니다. 경차 모델인 SB미니가 조금 타격을 입긴 했지만,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닙니다.”
티비 화면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조동욱 회장의 물음에 박 상무는 담담하게 결과를 보고했다.
“장사를 해야지 이거 덩치만 키우는 거 아이가? 옵션을 저래 안 넣으면 마진이 남겠나?”
“저희도 그걸 우려했는데 의외로 편의성 때문에 어라운드뷰, 충돌방지시스템 같은 고급옵션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많습니다. 거기에 선택하는 옵션이 거의 정해져 있다 보니 공장에서 출고되는 속도도 빠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회장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어데 세상일이 뜻대로 흘러가는 기 얼마나 댄다고. 이왕 이래 된 거 그짝 부서 아들 금일봉 노나주고 다 원래 부서로 복귀시키라. 성을 함락시킸으믄 패잔병이 아이지.”
“안 그래도 부서 이미지가 워낙 안 좋다 보니 부서이동을 권유했습니다. 그런데…,”
“안 간다 카드나?”
“예. 전원 거부했습니다.”
“누 작품이고?”
“임 차장 아니겠습니까?”
“아이다. 가는 철진이 사고 친 거 수습하기도 벅찬 아다. 딱 보믄 모리겠나? 미련스럽구로 그래 당해놓고는. 끌끌끌.”
“설마?”
“그래 문방구. 글마 말고 또 있드나?”
박 상무는 조동민 회장 손짓에 들고 있던 파일을 책상 위에 올렸다.
단단하게 봉해진 파일에는 붉은 글씨로 대외비(상)라 적혀있다. 봉인지까지 여러 겹 붙어있는 모습은 누구도 쉽게 열어선 안 된다는 노골적인 경고와도 같았다.
“어데보자. 김민호. 스른다섯. 광석대 콤퓨타공학과, 배강SI솔루션… 계약직이었네?”
의외의 내용이 적혀있자 조동민 회장의 머리가 갸웃거렸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한 게 수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자료를 한번 보시겠습니까? 배강SI솔루션에서 문방구 주인이 퇴사한 뒤 실적입니다.”
박 상무는 가장 뒷면에 있던 문서 들을 잘 보이도록 살짝 위로 밀어 올렸다. 수주실패. 수주실패. 감사결과 진척율 미달.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SI업체로서 달갑지 않은 문구가 제목으로 들어가 있다.
“배강SI솔루션이 워낙 규모가 큰 회사라 단언할 순 없지만, 이 자가 퇴사한 뒤에 관련 분야 사업에 눈에 띄게 수주를 많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기존 사업 역시 외부에 알려지고 소송에 들어갈 정도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글마가 맥여 살리고 있었단 소리네. 카모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승승장구할 텐데 와 해필 문방구로 가가 내 아들 두 놈을 구워삶고 있노 이 말이다. 도대체가 무슨 꿍꿍이고?”
* * *
나는 오랫동안 이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많은 망설임과 고민을 반복하며 성공 가능성을 저울질했었다. 성공의 과실은 그리 달지 않고 실패의 쓴맛은 오래도록 혀에 남을 일이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에 도달했다.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
“후.. 저질러버렸다.”
낙장불입.
이제 되돌릴 수 없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을 개인 변심으로 반품한다는 건 같은 자영업자로서 해선 안 되는 일이니까.
두 형제를 만난 뒤부터 이 계획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고 이젠 던져진 주사위의 숫자를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배송까지는 2주,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비록 배달음식도 안 오는 깡촌이지만 그래도 행정구역상 경기도에 위치했기에 의외로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을 금방 받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건은 다르다.
업체 측도 난색을 표했고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거부하던 걸 겨우 설득했다. 전문가도 예측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그저 인터넷으로 본 정보 몇 가지로 발을 디딘 것이다.
실패하면 어쩌지? 아니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었나? 이미 저질렀음에도 의문과 불안감을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나와 유일한 손님인 두 형제에게 큰 타격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성공해야 한다.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실패한 사람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법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