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23화 (23/151)

#23. 다미야 미니카 대회(4)

인생에 답이 있다면 즐거울까? 아니면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갈까?

현실에 치여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고작 미니카 때문에 스스로 던지는 꼴이 조금 우스웠다.

미니카 튜닝에는 답이 있었다.

이미 전 세계의 선수들이 부품별 재질부터 스프링의 탄성 같은 세밀한 세팅까지도 어느 정도 정형화된 기본적인 정보가 인터넷에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기본이 끝난 뒤가 바로 튜닝의 영역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미니카는 이미 경기에 나갈 상태가 아니었다.

문방구 한구석에서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던 구세대 버전으로 이미 순정 상태에서부터 성능 차이가 심했다.

막연하게 우리 미니카도 운이 좋으면 예선을 통과할 수 있다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진 게 화근이었을까?

지금 우리가 경기에 나가서 예선이라도 통과하려면 선수들의 카피 미니카를 구매해서 유튜브에 나와 있는 개조 팁을 따라 하는 게 확실한 답이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미니카를 새로 산다는 선택지를 입에 담는 사람은 없었다.

남들 눈에는 낡고 보잘것없는 장난감이지만 우리에겐 이미 정이 들대로 들어버린 애증의 존재였다.

꿈과 추억이 오래되었다 해서 버리는 사람은 없으니까.

“형, 모터를 바꿔 볼까?”

“지금도 트랙 밖으로 날아가는데 어쩌려고.”

“아니면…….”

마을 회관에서 대회연습을 한 지 벌써 3일이나 지났다.

마을 어르신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우리는 3일 동안, 이 조잡한 트랙조차 완주하지 못하고 고민만 늘어나는 중이다.

“뭐가 잘 안 되는 겨?”

“네. 여길 빨리 돌아야 하는데 어렵네요.”

또 무슨 방송을 하시려는지 마을 회관의 문을 열고 들어오신 이장님이 물었다.

“아, 이런 쫴깐한 기계는 전파상 강 씨가 잘 만지는디.”

“전파상 문 닫았잖아요.”

“아, 문 닫은 건 전파상이고 강 씨는 시내에 아파트로 이사 갔지. 딸래미 따라서.”

“정말요? 혹시 전화번호 아세요?”

“아, 알다마다! 내가 말여. 우리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묫자리까지 다 적어두는 철두철미한 성격이란 말여. 마을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을라믄 보통내기론 힘들제! 전파상 강 씨가 어디 보자…….”

전파상 아저씨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할아버지 장례식에도 오셨던 분이다.

전파상은 오래전에 문을 닫고 그 자리에는 양파저장소가 지어져 있었다.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으니 떠올리지 못한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여 있네! 전파상 강만식 구봉동 302-1번지에서 구리시 르네상스아파트로 이사 감. 봤제? 딱 이래 이사 간 날까정 적어 논겨. 나가 소싯적에도 문서 정리를 잘하니께 동사무소에서 일 좀 해달라고 을매나 귀찮게 했는지 몰러. 아, 지금도…….”

나는 이장님의 이야기를 마저 들으라 두 사람에게 손짓하고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 문방구집 손자 김민호입니다. 잘 지내셨죠?”

(응? 민호가 어쩐 일이냐?)

“이장님께 물어서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저희 옛날에 문방구 앞에서 가지고 놀던 자동차 장난감 아시죠? 그게 자꾸 트랙 밖으로 튕겨 나와서요. 혹시 무슨 방법이 있을까 해서 연락드려 봤어요.”

(아아. 그 미니카? 일단 가져와 봐. 주소는 내가 케톡으로 보내줄게.)

“감사합니다! 야야, 미니카 챙겨. 트랙도. 빨리 가자!”

“어디 가는데?”

“가면서 이야기해 줄게.”

우리는 상진의 차에 올라 케톡으로 알려주신 주소로 향했다.

“전파상 아저씨? 그 사람이 누군데 그래?”

“우리 마을에서 못 고치는 게 없고 못 만드는 게 없는 분이셔. 만물박사라고나 할까?”

당시 우리는 척척박사 아저씨라는 다소 고루한 별칭으로 전파상 아저씨를 불렀다. 티비, 라디오, 선풍기 등등 일단 전기가 들어가는 기계들은 못 고치는 게 없는 분이셨다.

아이들의 장난감도 마찬가지였다. 어딘가 부러지고 깨진 장난감들도 전파상 아저씨에게 가져가면 말끔히 고쳐지곤 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에 큰 설비 공사들도 전파상 아저씨의 조언이 꼭 필요했다.

물론 이 미니카를 전파상 아저씨께 보여드려도 별다른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전파상 아저씨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없으셨다.

아저씨를 뵙는 데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많이 뺏기는 것도 아니다. 작은 조언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차라리 우리 회사 연구소에 물어보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야. 진짜 대단한 아저씨라니까. 그리고 너희 회사에는 식비, 교통비 말고 다른 도움을 받으면 안 돼.”

차는 구리에 지어진 지 얼마 안 되는 고급 브랜드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잠깐만 여기 있어 봐. 금방 다녀올게.”

“왜?”

“빈손으로 가면 예의가 아니야. 과일이라도 사 가자.”

나는 아파트 앞 과일가게에서 딸기 한 박스를 샀다. 어릴 때 기억으로 전파상에 가면 늘 귀한 딸기를 대접해 주셨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아직 철이 아니라 조금 비싸긴 했지만, 예의를 떠나 반가운 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좋은 선물을 하나 들고 가는 건 가격을 논할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딸기를 사 들고 아파트 입구에 벨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그래, 어서 오너라. 장례식도 보고 이렇게 또 볼 줄은 몰랐는데 반갑구나. 뒤에는 친구들인가 보네.”

“네. 세 명이 미니카 대회에 나가는 데 문제가 생겨서요.”

“이 아저씨가 한번 볼까? 들어오너라.”

이 나이를 먹고 고작 미니카 대회에 나간다는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는 데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전파상 아저씨는 별다른 말 없이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예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다. 늘 무덤덤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반겨주셨던 그때와 달라진 거라곤 입가에 조금 늘어난 주름뿐이셨다.

“와. 이게 다 뭐예요?”

“취미 삼아 하는 소일거리지. 허허.”

집안에는 도대체 뭐 할 때 쓰는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기계들이 거실과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고급아파트에 평수도 제법 넓어 보였는데 워낙 기계 설비들이 많아 집이 좁아 보일 지경이었다. 마치 전파상이 이 집안에 그대로 들어온 듯했다.

“그래, 이게 문제라고?”

“아, 네.”

나는 아저씨의 컴퓨터에 작년 대회 너튜브 영상을 검색해 틀었다.

“이 부분이 문제예요. 일단 하늘로 뜨면 최대한 빠르게 내려와야 하는데 자세가 무너지면서 트랙 밖으로 나가떨어집니다. 운 좋게 제대로 착지해도 반동으로 뒤집힐 때도 많고요.”

“우리 민호가 그냥 오진 않았을 거고. 생각해 둔 게 있지?”

눈치가 빠르시다.

“사실 가능할지는 모르겠는데 이 롤러 부분이 자이로 효과를 냈으면 합니다.”

“오호?”

나는 종이에 커다란 원통 링을 하나 그렸다. 흡사 자르기 전 두꺼운 바움쿠헨 같은 모습이다.

대회규정에서 유일하게 제한이 없는 부품이 바로 롤러였다. 다른 부품들은 다미야 정품 부속을 써야 한다거나 구체적인 길이와 무게까지 명시되어 있지만, 사이드에 설치되는 롤러는 개수나 크기 제약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기형적인 롤러를 사용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안에 물을 넣어서 롤러가 돌면 비슷해지지 않을까요?”

막연하게 짐작만 했던 내용이다.

자이로 효과.

회전하는 회전체가 일정 속도를 넘으면 중심을 안정적으로 잡게 되는 성질이라 배웠다.

만약 미니카의 앞범퍼와 뒤범퍼에 설치된 롤러에 자이로 효과를 준다면 하늘에서도 중심을 잡기 쉽지 않을까 생각만 했었다. 특히 점핑트랙은 코너가 많아 롤러의 회전이 거의 멈추지 않는 코스가 많아 회전력은 충분했다. 바닥에 착지할 때도 물이 뒤늦게 아래로 떨어지며 미니카가 퉁겨져 올라오는 반동을 줄일 수도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이과 출신이지만, 물리 공학적인 지식이 얕았다. 어림짐작으로 무언가 만들어보고 도전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가능하다 하더라도 공학적인 계산 없이 만든 롤러가 제 역할을 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제 생각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

“물은 무게가 좀 부족한데 수은 같은 액화 금속이 더 효과적일 거야.”

“규정상 유독성 재질은 안에 넣을 수가 없더라고요.”

“흐음. 아니면 입자가 정말 고운 금속이나 구슬이면 아쉬운 대로 괜찮을 거 같은데…….”

아저씨는 연습장에 무언가 복잡한 수식을 한참 적었다 지우길 반복하셨다. 그리고 답을 찾으셨는지 마지막 공식에 크게 체크가 되었다.

“대회가 언제라 그랬지?”

“이번 주 토요일입니다. 시간이 조금 촉박하죠?”

촉박한 정도가 아니라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아니. 뭐 따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일까지는 만들겠네. 12개?”

“정말요? 감사합니다!”

됐다! 가능하다는 확답을 받는 것이 목표였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제작까지 도맡아주셨다. 발품을 팔 시간을 번 셈이다.

“허허. 돈 받을 거니까 그렇게 안 고마워해도 된다.”

“당연히 드려야죠!”

아저씨의 도움으로 추억의 미니카는 아직 현역이 될 수 있었다. 사례는 당연하다. 물론 이번에는 뿜빠이다. 나보다 많이 버는 놈들이니!

* * *

띠 띠띠띠 삐삐삐. 띠띠 띠띠띠띠.

“쯧쯧.”

누군가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더듬더듬 누르면서 계속 틀리자 한심한 듯 혀를 찬 강 씨는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문이 열렸습니다.]

“공주님 퇴근!”

한참 만에 열린 문을 박차고 들어온 여성은 혀가 꼬인 목소리로 우렁차게 외쳤다.

“맞다! 방금 아파트 입구에 롤슨로이스 나가더라! 울 아파트에 그런 차 들어온 거 처음 본 거 있지? 한 10억 한다는데 이사 왔나?”

“또 술 마셨냐? 아주 애비보다 먼저 가려고 발버둥을 치세요.”

“얼마 안 마셨거든? 어? 딸기다! 공주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

여자는 딸기를 집으려다가 술기운 때문에 손도 잘 움직이지 않는지 책상 위에 정리된 부품을 헝클었다.

“그거 흐트러트리지 마. 다 자로 재어 놓은 거야.”

“또 누가 고장 난 거 맡겼어? 이제 하지 말라니깐.”

“심심해서 하는 거야, 심심해서. 참, 이거 문방구집 손자가 맡긴 거다. 딸기도 걔가 사 왔어.”

“손자? 누구?”

“네가 어릴 때 좋다고 졸졸 쫓아다니던 민호.”

“뭐? 진짜? 왜 말 안 해줬어!”

“애가 장례식장에서도 그렇고 의젓하니 잘생겼어, 아주. 거기에 머리도 똑똑하고 먼저 간 김 씨 아저씨가 부럽네. 내 딸년은 시집도 안 가고 소주병만 끌어안고 사는데. 어휴.”

아비로서 하나뿐인 과년한 딸을 번듯하게 장성한 민호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민호는 그 인물이나 됨됨이가 일등 사윗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딸은 그렇지 못했다.

“아, 빨리 말하지 그럼 볼 수 있었잖아! 하. 민호 오빠 어릴 때 진짜 멋있었는데.”

“지금 네 꼬락서니를 봐라. 이게 어디 우리 딸입니다. 하고 말해 줄 상황인지. 안 마주친 게 다행인 줄 알아. 넌 민호 있을 때 들어왔으면 벨 잘못 누르셨습니다. 하고 내보냈을 거야.”

그제야 딸은 거울로 가 자신의 옷을 확인했다. 흰 셔츠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빨간 국물이 여기저기 튀어있고 오다가 몇 번 넘어졌는지 치마와 재킷은 먼지투성이였다.

“내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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