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다미야 미니카 대회(5)
드디어 대회 당일.
“거짓말이지?”
“형…….”
거짓말이라 믿고 싶다. 철진이가 가져온 유니폼은 실로 그 정도의 파급력이 있었다.
삼정자동차.
MM.
등에 새겨진 스폰서 로고와 팀명까지는 어느 정도 각오했기에 조금 민망해도 괜찮다는 수준이었다. 대가라 하긴 뭣하지만, 오늘 저녁에는 비싼 고깃집이 예약되어 있기도 했고 하루만 입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색이었다.
핫핑크.
여자가 입어도 소화해내기 어려운 진한 핫핑크 티셔츠를 입어야 한다. 그것도 서른이 넘은 남자 세 명이 같은 옷으로.
“죽어! 죽어!”
“아악! 나도 몰랐어! 그냥 제일 빨리 나오는 걸로 달라고 한 거야!”
아무리 때려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계약은 계약이니 일단 입어야 했다.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가리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을 만큼 튀는 옷이다.
“일단… 입자.”
“공구함에 뭐 빠진 거 없지? 가면 정신없을 테니까 지금 확인해봐.”
너튜브 영상으로 확인한 대회는 의외로 돌발 변수가 많이 일어났다. 순위권의 선수조차도 검차에 통과하지 못해서 부랴부랴 다시 부품을 바꾸거나 운이 나빠 부품이 파손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터. 유비무환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했다.
“난 다 챙겼어.”
“나도.”
“그래. 가자!”
“어디 가요?”
나와 두 사람은 가는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상진이 차 안 타? 내 차 타게?”
“삼정자동차 스폰서인데 삼정차를 타야지 롤슨로이스랑 벤즈를 타면 되겠냐?”
“그럼…….”
“여기 있잖아. 2000년식 삼정자동차의 대표 경차 테크노 미니!”
취업하고 착실하게 모은 돈으로 처음 산 차였다. 중고차 중에서는 신차급 매물로 어렵게 구한 녀석이다.
잔고장 없이 8년을 탄 내 애마가 드디어 빛을 볼 때가 된 것이다.
“뭐 해? 빨리 타!”
수욱.
상진이와 철진이 타자 차가 눈에 띄게 아래로 내려갔다. 차는 조수석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상진아. 거기 창문 열고 휠하우스 바퀴에 닿는지 한번 봐봐.”
“형. 이거 창문 어떻게 열어요?”
“그거 손잡이 잡고 돌려.”
그동안 혼자 출퇴근용으로만 타고 다녔으니 사람을 이렇게 많이 태운 적은 처음이었다.
“닿지는 않는데, 조금 불안해요.”
범인은 누가 봐도 철진이다. 저 커다란 덩치는 내 1.5배는 거뜬히 넘어 보였다.
“너 내려서 화장실 다녀와.”
“아이 씨, 농담이지?”
“찬장 위에 변비약 있는데 그것도 먹을래?”
“다녀올게…….”
그렇게 우리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대회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 * *
다미야 공식 미니카 대회.
한국에서는 이미 미니카의 인기가 식어 소수의 마니아와 아이들이 하는 체험 놀이의 성격이 강했다.
이 대회에 발을 들일 어른들은 미니카의 추억이 너무 깊은 곳에 파묻힌 까닭이었다. 나조차도 두 형제가 아니었으면 오래된 미니카를 꺼내 볼 생각을 하지 못 했을 테니까.
“야, 저기.”
“뭐 광고라도 하러 온 건가?”
대회장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식들 좀 안 들리게 이야기하던가.
우리는 힐끔거리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검사장에 들어섰다.
“검차 시작하겠습니다. 어?”
스탭이 우리 세 명의 미니카를 보더니 눈동자가 갈 길을 잃었다.
뭐지? 잘못됐나? 규정은 다 지켜서 왔는데…….
“자, 잠시만요! ”
우리 차를 검사하던 스탭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이내 열 명 가까이 되는 인원으로 늘어났다.
“이게 언제 모델이지?”
“전부 2000년, 아니, 99년 이전 모델일 수도 있어요. 부장님은 모르세요?”
“나도 본사에서 역사관에 전시된 거 말고 이렇게 본 건 처음이야. 삼정자동차에서 복원한 건가?”
“저… 검차는…….”
“아,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사이즈 통과, 모터 규격품, 나사 머리 모두 통과입니다.”
검차는 의외로 쉽게 끝났다.
걱정했던 롤러 부분도 한두 번 흔들어보더니 높이만 측정하고 통과. 오히려 우리 뒤에 멀쩡해 보이는 미니카들이 줄줄이 불합격을 당했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아니면 모르는 게 약인지 우리가 몰랐던 다른 개조방법 중에 규정을 아슬아슬하게 건드리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형, 우리도 저런 거 좀 살 걸 그랬나?”
“저기는 뭐 폰으로 막 보는데요?”
공구 가방이 아니라 수평계와 전압측정장치, 그리고 무슨 용도로 쓰는지 짐작조차 안 되는 장비들을 테이블에 늘어놓은 테이블이 많이 보였다. 사실상 이 대회는 참가에 의의를 두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저들만의 리그라 볼 수 있었다.
어느 분야 건 전문가의 영역은 존재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능력을 갖추고 같은 곳에 흥미를 느끼진 않으니까.
이 보잘것없이 보이는 미니카도 전국에서 모인 전문가, 소위 마니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분명 주변의 시선이 그리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나이에 무슨 장난감이냐며 조롱받고 괴짜라며 없는 자리에서 수없이 입에 오르내렸겠지. 우리나라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용서하지 않으니까.
그런 시선을 묵묵히 견디고 진심으로 무언가에 열정을 쏟는 모습은 최소한 내 눈에는 철없는 어른이 아니라 누구보다 마음이 성숙한 사람들이었다.
저들에겐 추억의 장난감이 아니라 그 시절부터 지켜온 순수함이다.
[연습 주행은 10시부터 시작합니다. 검차를 통과하신 분들에 한해서 트랙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다른 차량과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딱 한 바퀴만 돌아보자. 어차피 계속 주행한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으니까. 느려서 다른 차랑 부딪치면 괜히 민폐잖아.”
우리는 완주가 목적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트랙을 이탈하지 않는 세팅을 해왔고 의외로 그런 부분에서는 마을회관에 만든 트랙이 최고의 코스였다.
처음부터 좁은 문방구 방에 설치하려던 구조라 코너링이 극단적으로 짧고 많았다. 이렇게 넓은 트랙이라면 코스 아웃 걱정은 없다.
웨에에엥.
눈치껏 사람이 없는 기회를 틈타 달린 우리 세 명의 미니카는 모두 예상대로 안정적인 주행으로 연습주행을 마쳤다.
“괜찮은데요?”
“전파상 아저씨는 최고라니까.”
특수제작된 롤러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코스 이탈은커녕 눈대중으로 봐도 우리 미니카보다 안정적으로 착지를 하는 미니카를 찾기 어려웠다. 오랜만의 작업이 즐거우셨는지 어제 붙잡혀 이 롤러의 장점에 대해 두 시간 정도 설명을 듣느라 곤욕을 치르긴 했지만,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점핑 트랙, 1차 예선전 시작하겠습니다. 1조부터 트랙 시작 지점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속한 1조부터 시작이다.
“다녀올게.”
“이기고 와.”
“그냥 하는 거지 무슨. 운 좋으면 이기는 거고.”
우리 목표는 1차 예선 통과. 오후에 있을 본선과 결승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설마 운이 좋아서? 라는 기대감까지 지우진 못했다.
트랙은 총 5라인.
대회 접수는 아침까지 받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아침에 체험 코너에서 만들어 놓은 미니카들이 지금 내가 싸워야 하는 경쟁자다. 1차 예선을 목표로 잡은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의 희망을 밟고 올라가는 예선이기에 마음이 불편…….
“엄마, 저 아저씨는 왜 우리랑 같이 해? 안 좋은 미니카인데.”
“얘! 그런 말 하면 안 돼. 쉿!”
하늘에 맹세했다.
이번 예선을 이긴다면 울고 있는 저 꼬마 앞에서 승리의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대회를 위해 트랙까지 사고 맞춤제작 부품까지 구한, 할 일 없는 어른을 무시한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주마. 무한 경쟁 사회에 쓰디쓴 첫 패배를 안겨줄 사람은 바로 나다!
“출발!”
투두둑.
시작하자마자 빠르게 치고 나가던 두 대가 첫 코너링에서 코스 밖으로 튕겨 나왔다. 빠른 모터를 쓰고 무게중심과 롤러를 신경 쓰지 않은 차다. 이제 막 초등학교나 들어갔을까 싶은 아이들에게 코스에 대한 이해도를 기대하긴 어렵겠지. 아쉽지만 패배도 좋은 경험이다. 아까 나를 도발했던 그 녀석이 겪을 패배는 다르겠지만.
“가라!”
“조금만 더!”
트랙에서 출발 신호에 맞춰 미니카를 놓으면 쏘아진 화살이 된다. 중간에 어떤 컨트롤도 할 수 없다. 그저 완주할 때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아이들의 힘찬 응원은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무시할 만큼 간절하고 진실했다. 지금 이 순간은 나도 이 아이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다.
내 미니카는 어느덧 마지막 코너에 진입했다. 그리고 큰 격차를 내며 가장 먼저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2차 예선 진출은 153번!”
됐어! 어떠냐? 아…….
아까 전 내 미니카에 막말을 퍼부었던 아이는 분에 겨워 울먹이면서 자신의 미니카를 두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이제야 그 미니카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이 레이스에 진심이었는지 또래들의 다른 미니카에 비해 여기저기 개조한 흔적이 많이 보였다. 오늘 하루 그냥 재미있게 놀려고 나온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달렸어. 아저씨가 질 뻔했네.”
“아저씨랑 악수해야지?”
“훌쩍. 다음엔 안 질 거예요.”
“그래. 다음에 또 보자.”
엄마의 권유에 못 이겨 내민 손을 잡은 아이는 당돌한 다짐으로 패배를 인정했다.
세상엔 승자와 패자가 있다.
싸우지 않아도 그 승패는 누군가의 시선과 잣대로 정해지게 된다. 연봉과 타는 차, 사는 집으로 말이다. 어쩌면 이 아이도 벌써 이 세계에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뉴스에서 보던 학원들, 성적과 사는 곳으로 마치 계급이 나누어지듯 그렇게 원치 않는 경쟁 속에 놓여 어른 못지않은 힘든 하루를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남들이 하찮게 여길지도 모르는 이 미니카 대회만큼은 패배의 아쉬움이 있을 뿐 패배자의 낙인은 없다.
내년에도 이 아이는 대회에 나올 것이다. 오늘보다 더 강해진 마음과 미니카로 말이다.
의젓한 아이와 악수를 한 뒤 승리를 안고 돌아온 테이블에는 상진이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낙승이었네요?”
“다음은 누구야?”
“철진이 형이에요. 지금 나가 있어요.”
사람은 많고 트랙은 하나. 진행은 쉴 틈 없이 진행된다. 축하 인사와 응원을 나누기도 전에 철진이 다음 경기에 서 있었다.
그렇게 금방 1차 예선이 끝났고, 우리 셋은 모두 1차 예선을 거뜬하게 통과했다. 운이 좋아 같은 조에 선수들이 끼어 있지 않은 탓이었다. 이른바 죽음의 조라 불리는 조에는 선수급 미니카가 3대나 모여 있는 곳도 있었다.
“2차 예선 시작하겠습니다. 41번, 89번, 136번, 153번, 192번 선수 트랙으로 모여주세요.”
이제 2차전이다.
지금부터는 걸러진 미니카들 빼고 진짜들만 남았다.
긴장감과 공기가 이미 달랐다. 서로 웃고 떠들던 사람들도 모두 트랙으로 모여 결승에서 만날지도 모르는 상대방의 미니카를 주시했다.
난 사실 여기까지임을 직감했기에 첫 승리의 기쁨만 안고 돌아갈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말이다.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