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25화 (25/151)

#25. 다미야 미니카 대회(6)

“출발!”

[네. 출발은 153번 선수가 앞서갑니다! 그 뒤를 추격하는 41번 선수!]

[41번 선수는 작년 대회에서 2위를 했던 강력한 우승 후보인데 이렇게 밀리나요?]

2차 예선부터는 두 명의 해설진이 마이크를 잡았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선수들의 매칭이다 보니 메인이벤트의 시작이라 그런 듯했다.

미니카들이 굉음을 내며 달려간다. 예선 1차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

그런데 이상하게 내 미니카가 빠르다. 아니, 빠르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다른 선수들의 미니카도 1차전보다 훨씬 빨랐지만, 그 격차가 조금 줄어들었을 뿐, 내 미니카가 선두로 치고 나가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점프 구간이 무서워서 그렇다. 아무리 빠른 미니카도 결국 코스를 이탈하면 탈락이니까. 안정적인 착지는 물론, 착지 후 반동을 줄이기 위해 모터의 최대 출력까지도 줄이는 선택을 해야지만 완주라는 첫 번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이 점프 구간 때문에 무게도 늘리고 토크가 적은 모터를 사용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빠른 속도로 점프를 한 뒤에 체공 시간이 길어도 우리 미니카는 롤러의 회전이 만든 자이로 효과로 차체가 흔들리거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질 때도 뒤늦게 떨어지는 롤러 안의 쇠구슬이 눌러주면서 반동을 상쇄시켰다.

지금 내 미니카에 들어간 모터도 스피드 레이스에서 사용하는 모터다.

타다다닥.

코너에 롤러가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다.

[153번 선수는 이번에 첫 출전으로 독특한 기종과 튜닝으로 검차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았었죠?]

[그렇습니다. 2세대 미니카로 보디도 구형에 커버도 열리지 않는 모델입니다. 하지만 1차전에서 보인 성적은 아주 놀라웠습니다. 기대가 큰 선수죠.]

[아! 말씀드리는 순간 192번 선수 코스 이탈!]

해설이 더해지니 더욱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되었다. 덕분에 레이싱의 열기도 한층 더 뜨겁게 느껴진다.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다. 2등과 족히 5미터 넘게 차이가 나는 간격을 유지했다.

나도 모르게 꽉 쥔 손에는 진땀이 배어 나온다.

[이제 마지막 코스! 153번! 153번 선수가 1위로 안착합니다! 결승전 티켓은 153번 선수에게 돌아갑니다!]

[이변을 만들어내네요. 이래서 점핑트랙이 재미있습니다. 해마다 새로운 선수들이 다크호스처럼 나타납니다!]

이겼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이렇게 결승으로 간다고?

와아아!

경기에 집중하느라 몰랐다. 트랙 주변에 둘러진 펜스에는 다른 선수들과 스탭들이 빼곡하게 달라붙어 이번 경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아마 내 구형 미니카가 얼마나 달릴지 보러왔겠지.

시선이 집중되니 문득 입고 있던 핫핑크색 유니폼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승리가 있을까?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펄쩍펄쩍 뛰면서 달려오는 두 형제가 두려웠다.

오지 마! 유니폼이 더 눈에 띈다고!

* * *

[점핑트랙 결승은 10분 뒤에 시작됩니다.]

전광판에 적혀 있는 내 이름과 번호가 믿기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2차 예선에서 탈락했다. 예상된 결과였기에 큰 실망은 없었지만, 철진의 경기는 1등과 모니터 판별을 해야 할 정도로 박빙의 승부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아쉬움보다 내가 결승에 진출했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이 가득했다.

“형! 이거 우승하는 거 아니야?”

“지금 제일 빠른 사람이랑 2초 차이밖에 안 나요. 우승할 수도 있어요. 아니, 3위까지는 거의 확정이에요!”

“알았으니까 조금 떨어져. 자꾸 사진 찍히잖아!”

이미 너튜버가 두 명이나 우리 테이블에 다녀갔다.

아직 결승전이라 간단한 인터뷰만 했지만 여간 부끄러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결승에 진출한 선수는 총 5명이다. 한 번의 레이스로 1, 2, 3위가 결정된다. 상진의 말대로 5명 중에 중간만 하면 시상대에 오를 수 있었다.

[잠시 후 점핑트랙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선수분들은 트랙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긴장해서 그런지 얼마 앉아 있지도 않았는데 벌써 안내방송이 나왔다.

“다녀올게.”

이제 결전의 순간이다.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다. 예선만 통과해도 성공이라 노래를 불렀으면서 막상 우승의 기회가 다가오니 근거 없는 기대를 하게 된다.

“준비, 출발!”

치고 나가는 건 이번에도 내 미니카다.

코너링에서는 롤러가 두꺼워 조금 따라잡히는 듯했으나 직선 구간에 들어서면 토크 차이가 확실히 드러났다.

[오늘의 다크호스, 153번이 선두를 차지합니다!]

[라인 운도 좋았습니다. 외곽라인이다 보니 코너에서 롤러가 힘을 받는 시간이 충분하면서 작은 각도로 속도 저하도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네! 트랙의 라인은 뽑기로 지정되며 각 라인 별로 세팅을 달리하는, 아! 말씀드리던 순간 92번 선수가 치고 올라옵니다! 박빙입니다!]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던 검은색 미니카가 결국 내 미니카와 나란히 달렸다. 따라잡히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아직은 2위. 다른 선수들과는 아직 격차가 있었고 역전을 노려볼 직선 구간이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그때였다.

[아! 153번 차량 갑자기 연기가 나기 시작합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속도도 점점 줄어듭니다!]

[모터가 과열되었습니다! 구형 모델이다 보니 커버가 모터를 모두 뒤덮어 공랭 효과가 상당히 떨어졌던 게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드린 순간 3위, 4위로 밀려납니다! 아. 이대로 경기를 속행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내 미니카에서 흰 연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불길이 점점 퍼졌다. 스탭이 내 미니카를 꺼내려 트랙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만요. 달릴 수 있을 때까지 달리게 해주세요…….”

나는 손을 들어 스탭을 막았다.

내 미니카는 아직 달리고 있었다. 천천히. 언제 멈춰도 이상하지 않을 위태로운 모습이지만 바퀴는 멈추지 않았다.

생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껏 소중하게 아껴온 것도 아니다. 잊고 지내다 뒤늦게 찬장 위에서 찾아낸 오래된 장난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추억이 깃들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찬장 위에 잠들어 있었으면서도, 구급상자로 어설프게 만든 조악한 상자를 열자 예전처럼 나를 반겨 주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힘차게 트랙을 달려주었다. 나이가 들어 감수성이 예민해진 탓이었을까? 이 녀석의 마지막 레이스를 이대로 멈추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네 번째 차량까지 모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경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아직 153번 선수의 차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과연 들어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속도가 점점 느려지네요. 차가 멈추게 되면 리타이어로 기록됩니다!]

“힘내라! 힘내!”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앳된 목소리의 응원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예선전에서 나와 악수했던 아이다. 경기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아이는 어쩐지 나에게 졌을 때보다 더 서럽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화이팅!”

“들어올 수 있다!”

“조금만 더!”

짝짝짝!

그 아이의 외침이 시작이었다.

트랙에 모인 사람들은 불이 붙은 채 천천히 결승점으로 향하는 내 미니카를 응원했다.

[자, 남은 거리는 불과 30㎝! 과연! 과연!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당장 멈출 것 같은데요?]

[모두의 응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꼭 완주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미니카 대회를 진행하면서 이렇게 간절하게 응원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도착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그렇게 힘닿는 데까지 달리다 멈춰도 아쉽지는 않을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을 같이해 준 친구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마지막일 테니.

“5번 트랙 153번 선수 3분 52.10초. 도착입니다.”

우와아아!

내 미니카는 숯처럼 까맣게 그을린 범퍼가 겨우 결승선에 닿으면서 멈췄다.

“수고했어. 그리고 고맙다.”

나는 거뭇하게 타버린 미니카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패배했다.

하지만 그 패배는 승리의 기쁨보다 가슴을 더 벅차오르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저 그런 대학에 다녔고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겠다는 말만 믿고 청춘을 바쳤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도 흔한 연애 한 번 하지 못했다.

치열하게 살았던 나날들은 그렇게 패배자라는 낙인이 되어 이마에 박혔다.

어쩌면 이 까맣게 타버린 미니카와 내 신세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패배자가 아니다.

나도, 이 미니카도. 누군가의 응원을 받으며 결승점에 닿을 수 있다면 그건 패배가 아님을 알았으니까.

* * *

「삼정자동차의 또 다른 반전 마케팅, 이번엔 미니카?」

「삼정자동차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계자의 행보.」

「작은 미니카에 담긴 드라마. 삼정자동차 후원이 해냈다!」

「그 어떤 결승전보다 뜨거웠던 경기! 2023 다미야 미니카 대회.」

「우승보다 더 큰 박수를 받은 꼴찌? 사진 한 장에 담긴 추억.」

뉴스 기사들이 프린트된 A4 문서가 수십 장은 되어 보였다. 조동욱 회장은 그 문서들을 훑어보며 인상을 찡그리기도 하고 돋보기안경을 들어 가까이 들여다보기도 하며 한장 한장 읽어나갔다.

“테레비 뉴스도 나왔다꼬?”

“뉴스는 아니고 너튜브에 꽤 인기 있는 동영상으로 올라왔습니다.”

박 상무가 조동욱 회장의 컴퓨터에 너튜브 창을 열고 검색도 없이 메인화면에 있던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자, 숑카월드 오늘의 주제 바로 미니카! 어… 미니카가 갑자기 왜 나왔느냐? 형님덜 이게 다 스토리가 있어요. 우리 어릴 때 미니카 다들 가지고 놀았잖아요? 그 미니카 대회가 아직까지! 그 까마득한 세월 동안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는 거! 그런데 그 대회에 난데없이 삼정그룹의 장남과 차남이 나타났습니다! 등에 커다랗게 삼정자동차 로고를 박고! 여기서 우리가 삼정자동차의 눈물 나는 일대기를 언급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관련 영상입니다. 조회수가 벌써 300만이 넘었습니다. 주식도 반등의 움직임이 계속 보입니다.”

“꼴찌를 해 뿟는데 와 이래 소란이고? 이 대한민국은 2등한테도 10원짜리 광고 하나 안 주는 나라 아이가?”

박 상무는 사진 한 장을 책상 위에 올렸다.

민호가 다 타버린 미니카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는 장면이었다.

“마지막까지 이 상태로 완주를 했고 그 과정이 상당히 처절해서 너튜브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허.”

“키어자동차와 현산자동차도 스폰서 목적으로 국내 미니카 팀과 접촉하고 있답니다. 일시적인 화젯거리로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반응이 뜨겁습니다. 특히 대회장에 타고 온 차량이 삼정자동차에서 단종된 테크노 미니라 경차 라인업의 부활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임원진들도 진지하게 검토 중입니다.”

‘내 직감이 마자뿟네.’

“연락해서 전하그라. 삼정그룹 회장인 이 조동욱이 직접 만나고 싶어 한다꼬 말이다.”

“네, 회장님.”

“아이다.”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박 차장에게 조동욱 회장이 손사래를 치며 그만두라 말했다.

“내 지금 찾아갈란다. 차 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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