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설날(1)
설을 맞아 부모님 집에서 차례를 지낸 뒤, 곧장 문방구로 달려왔다.
근방에 사시니 평소에도 자주 갈뿐더러 굳이 설날이라 해서 찾아올 아들을 기다리실 분들도 아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연휴를 활용한 여행이 예정되어 있으셨다. 사실 문방구는 핑계고 쫓겨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왕 이렇게 된 일, 대목을 맞아 돈을 좀 벌어볼 작정이다.
명절은 이 작은 시골 마을의 경사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낯선 차와 사람들이 붐빈다.
열심히 노동(?)하고 받아낸 세뱃돈을 아이들은 어디에 쓸까?
이 마을에는 피시방도, 오락실도 없다. 아이들이 세뱃돈을 손에 쥐고 올 만한 곳은 오로지 여기뿐이다.
조금 낡긴 했으나 엄연히 영업하는 문방구. 장난감도 많고 먹을 것들도 모두 안전인증을 받은 유통기한 내의 과자들이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아이들이 몰려들 터인데 한가롭게 있을 여유가 없었다.
사실 이런저런 거창한 마케팅 전략을 궁리해 봤으나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딱히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가 아니다.
돈을 더 벌고 싶었으면 문방구를 진작 두 형제에게 비싼 값에 팔아버리면 간단했다.
할아버지가 되어 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장난감을 들고 오면서 짓는 그 기쁜 표정과 문방구 앞에 모여 미니카며 딱지, 공기놀이 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던 자리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니, 마치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가 된 기분이다.
드르륵.
“어서 오세요.”
“이야. 이 문방구는 변하질 않네. 어? 혹시…….”
“하핫. 손자입니다.”
“맞네! 민호 맞지? 요만할 때 봤는데 다 컸네. 다 컸어!”
멋쩍게 대답했으나 누군지 모른다. 마치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처럼 반갑게 어깨를 두드리는 이 머리가 반짝이는 아저씨의 과한 친근함이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이 아저씨의 기억 속에 나는 막 걸음을 뗀 아이였겠지. 그때의 그리움에 할아버지와 함께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아빠.”
아저씨의 손을 잡고 온 아이는 이제 막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꼬마였다.
“어어. 맞다. 사고 싶은 거 골라봐. 세뱃돈 어차피 그냥 들고 가면 엄마가 통장에 넣으라고 하니까 지금 빨리 써버리자. 뒷일은 아빠가 책임질게.”
합격.
참된 아버지다.
물론 어머니의 판단이 정답이다. 아이에게 어려서부터 충동적 구매가 아닌 저축과 절약의 습관을 길러주는 건 아주 중요하니까. 하지만 나는 같은 아들의 입장으로 아버지의 행동에 마음속으로 엄지를 추켜세우며 찬사를 보냈다.
아이가 1년에 한 번 합법적으로 큰돈을 버는 날이다. 이럴 때 플렉스를 하지 않으면 영영 기회는 없다.
그런데 어째 모양새가 좀 이상하다.
아이는 유이왕카드를 몇 봉지 골랐는데 아저씨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미니카 두 대. 범퍼, 타이어에 모터까지.
그렇게 고르고도 연신 주위를 살피는 눈은 흡사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와 같았다.
“비닐에 담아드릴까요?”
“응? 아아. 괜찮아. 요 앞에서 조립할 거니까. 자, 계산.”
아저씨가 내민 돈 봉투를 받은 나는 낡은 계산기로 장난감들의 가격을 더해갔다.
“잔돈은 필요 없으니까 그냥 넣어둬.”
“네? 아니, 너무 많은데. 잠시만 기다리세요.”
“넣어두라니까. 할아버지 조의금이랑 같이 든 거야. 장례식 때 못 간 게 죄송해서 그래.”
한참 실랑이를 하다 결국 진 사람은 내가 되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오만 원짜리가 네 장은 넘었다. 다 합해 봐야 5만 원도 안 하는 장난감에 이토록 많은 돈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우리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슬퍼하고 애도한다는 마음이 담긴 봉투였다.
그렇게 두 부자는 트랙이 있는 평상에 앉아 한참 동안 미니카를 만들다 떠났다. 시간이 모자라서인지 지루했던 아이가 빨리 돌아가자고 보채서인지는 모르지만, 아저씨는 아쉽게도 트랙에 미니카를 달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 뒤로도 드문드문 손님이 왔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야 말았다. 신기하게도 손님은 모두 아이가 아닌 어른들이었다. 저마다 미니카, 공기, 구슬 등 재미있게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을 골랐다.
그중에는 나와 같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또래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버려 반가움과 어색함이 섞인 악수를 하고 나중에 술 한잔을 하자며 기약 없는 약속을 한 뒤에 폰 번호를 교환했다.
물론 다시 연락할 일은 없을 것이란 걸 우리 둘은 너무나 잘 안다. 희미한 어린 시절의 기억만으로 다 커버린 어른들이 나눌 말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명절 대목 장사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금고에 현금이 이렇게 많았던 날은 장사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이었다.
하지만 금고 속 돈보다 이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문방구에서 만들었던 추억을 지켰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 뿌듯하게 했다.
* * *
「민호: 야. 언제 올 거야?
철진: 저녁쯤?
민호: 노는 날이잖아. 올 수 있으면 지금 와.
상진: 왜요?
민호: 세배해야지, 왜는 왜야.
지환: 지금 가겠스므니다.」
해가 뜨고 얼마 안 되어서 마을에 들어왔던 차들이 거의 다 빠져나갔다.
그게 아침부터 녀석들에게 케톡을 보낸 이유였다.
자식이 오기만을 몇 달 전부터 기다려온 어르신들이다. 그마저도 전화로 다음을 기약하는 집도 많았다. 집집마다 자식이 서넛은 되었으나 마을에 들어온 차들은 그보다 훨씬 적었으니.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였다. 하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과 손자들이 난 자리다.
저녁부터 들이칠 그 적적함이 얼마나 클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도시에 나가 살 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다.
“이건 건너 집, 이건 파란 대문 집…….”
세 사람이 오는 사이 나도 분주하게 준비해야 했다.
약국에서 샀던 약들을 모두 봉투에 나눠 담는 작업이 남았다. 그냥 전부 마을회관에 넣어놓고 필요할 때 꺼내쓰시라 할까 했지만 주는 사람 마음이 그게 아니다. 그래도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였다.
차에 가득 실렸던 약들도 이렇게 나누고 보니 양이 많지 않았다. 애들 올 때 좀 더 사 오라고 시켰어야 했나?
“형! 우리 왔어!”
철진이 놈은 늘 뭐가 그리 급한지 문을 열기도 전에 인사를 한다.
“들어와서 이것 좀 같이 들어!”
“이게 다 뭐예요?”
“약이야, 약. 어르신들 드릴 거니까 나눠서 들고 따라와.”
작은 마을이라도 모두 들르려면 스무 집이 넘었다.
서둘러야 한다.
우리 문방구는 마을에서 가장 아래에 있으니 윗집 할머니부터 타고 올라가면 된다.
“할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이고, 뭘 이런 걸 다 사 왔댜. 그랴그랴. 느그들도 새해 복 많이 받고. 자. 이거 얼마 안 대는디 그랴도 세뱃돈이니께.”
“정말 안 주셔도 돼요. 저희 가볼게요!”
“으른이 주면 그냥 받는 거여!”
주섬주섬 쌈짓돈을 꺼내는 할머니를 황급하게 말렸지만, 할머니는 조금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으셨다.
그렇게 우리는 만 원짜리 한 장씩을 손에 들고 나왔다.
어떤 집에서는 떡과 과일을 한가득 먹었고 또 어떤 집에서는 되레 선물로 받은 비싼 술을 주시기도 하셨다.
“형, 짐이 안 줄어. 좀 두고 올까?”
“야, 다 왔어. 이제 여기만 들르면 돼.”
하지만 희망적인 말과는 다르게 우리는 가장 큰 시련 앞에 서 있었다.
바로 이장님의 집이다.
“명심해. 우리 목표는 30분이야. 그 이상은 저녁까지 먹고 가라고 하실지 모르니까 절대 안 돼. 내가 흐름을 끊으면 망설이지 말고 곧장 일어나는 거야.”
이장님은 좋은 분이다.
마을 사람들의 일을 자기의 일처럼 여기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신다.
그리고 말이 아주 많으셨다.
한번 입을 여시면 그 말이 끊기는 법이 없었다. 마을 어르신들이야 나이가 있으니 ‘시끄러우니께 그만 나불대고 하던 거나 계속햐.’라며 타박이라도 주실 수 있지만 우리는 꼼짝없이 그 이야기들을 전부 들어야 했다.
이장님도 오랜만에 마음껏 이야기할 상대가 우리라는 걸 깨달으셨는지 부쩍 문방구에 들르는 날이 많았다.
“후. 그럼 들어간다? 이장님, 저희 왔습니다!”
* * *
“요즘 애들은 말여. 어찌나 서구적인지 이런 전통을 지키려 하질 않는단 말여. 딱 할머니집에 왔으면 이렇게 이웃집에 가서 새해 인사도 드리고 말여. 얼매나 좋은 겨. 나 때는 말여. 설날이나 추석이다 하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떡도 치고 당산나무 아래에서 제도 올리고 했는데 인제는 할마시들도 다 귀찮다고 안 할라 한다니께. 그리고 말여…….”
길다.
도대체 숨은 언제 들이쉬는지 모를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설교는 듣는 사람이 4명이라 그런지 평소에 네 배는 더 길게 하시는 듯했다.
‘형. 어떡해?’
도리도리.
철진이 간절한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으나 뾰족한 방도가 없던 나는 작게 고개를 저어서 포기하라 답했다.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에 라디오에서 5초간 정적이 흐르면 방송사고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쩌면 이장님은 때를 잘못 맞춰 태어나신 걸지도 몰랐다. 조금만 늦게 태어나셨으면 분명 괜찮은 라디오 DJ가 되셨을 테니까.
예의 없이 시계를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아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창문을 통해서 길게 뻗어오는 햇빛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환이의 눈이 심상치 않다. 금방이라도 감길 듯이 풀려서 고개도 점점 내려간다.
요놈 봐라?
번뜩 묘수가 떠올랐다.
“이장님! 지환이는 일본에서 왔는데 아직 전통문화를 잘 모르더라고요.”
“겨? 아이고, 내가 그것도 모르고 우리 아는 이야기만 했구먼.”
“저희는 잠깐 요 밑에 내려가서 짐 좀 놔두고 올게요. 지환이는 이장님께 제대로 배워! 평소에도 많이 궁금해했잖아.”
“예? 나니?”
“이이. 그려. 지환이라고 했능가? 이, 참말로 잘 왔네. 나가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고조선 때부터 내려온 그 역사와 뿌리를 지금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줄 테니께 오늘 제대로 배워가는 겨. 자, 환웅님이 계셨제…….”
까악까악.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온 이장님의 집에는 명절답지 않게 을씨년스러운 까마귀가 몇 마리 날아들어 울어댔다.
“형, 지환이 어떡해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거야. 우리는 지환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면 돼.”
지환이를 방패 삼아 빠져나온 건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나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리고 고조선까지 나올 줄은 나도 몰랐다. 명절을 맞아 한국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기회를 마련해 줬는데 이보다 더 큰 명절 선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여기는 게 서로 마음의 짐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진짜 설날이 끝났다.
어르신들께 인사도 드리고 작은 선물도 전해드렸다. 이제 집에서 느긋하게 비디오나 보면서…….
“참, 형. 우리 차에 소고기랑 전복 있는데 이거 아버지가 형 주래요.”
“뭐?”
두 형제의 아버지인 조동욱 회장과의 첫 만남이 그리 화기애애하진 않았다. 선물을 받을 이유가 없는데 귀한 소고기와 전복이라니?
그렇게 두 형제를 따라 나간 차에는 뒷좌석까지 고급스러운 비단으로 쌓인 박스가 가득 실려 있었다. 다행히 날이 추워 고기가 상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문제는 양이었다.
“이걸 전부 다 주셨다고?”
“네, 눈치가 있으면 알아서 할 거라던데요?”
온 마을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고기다. 알아서 하라 함은 딱히 다른 뜻이 아닐 것이다.
“상진이는 창고 뒤에 가면 장작 남은 거 있거든? 그거 다 이 앞으로 가져와. 철진이 너는 나랑 같이 가자!”
설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