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예전에 좀 하더놈 같은데(1)
“성준이 형, 이거 진짜 맞아요?”
“야, 찐이야. 오죽했으면 너 대회 준비로 바쁜 거 알면서 연락을 했겠냐? 너튜브 콘텐츠 하나 나올 거야.”
“준비랄 게 뭐 있나? 그냥 평소대로 하는 거죠.”
성준은 약간의 허세가 있지만, 본성이 나쁜 형은 아니었다. 좁은 격투 게임 바닥에서 사비를 들여 지역대회를 열고 카페도 운영하며 나름 이쪽에서는 발이 넓고 덕망도 높았다.
유통사업을 하며 제법 큰 벌이를 하는지 매번 차가 바뀌고 팔찌와 목걸이도 두꺼워졌다. 아마 그 돈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꺼드럭거림이리라. 하지만 딱히 그런 모습이 밉게 보이진 않았다.
자신이 방송할 때도 꽤 큰 후원을 해주는 형이었기에 짬을 내서 차에 오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사진으로 본 곳이 진짜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지만 말이다.
“저기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드디어 사진으로 보던 문방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낡아빠진 간판, 평상에는 색바랜 미니카 트랙이 올라가 있었다. 마치 홀로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왔는지 세월이 멈춘 곳처럼 보였다.
“진짜 있었네요. 민호 문방구?”
“나흘 전에 기판을 보냈으니까 아마 지금쯤 설치했을 거야. 어때?”
“대박…….”
둘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문제의 문방구로 향했다.
“주인은 없나 본데?”
“아, 7시에 오픈한다고 적혀 있네요. 쩝.”
달력 뒷면에 구수한 문체로 적은 영업시간이 문 앞에 테이프로 붙어 있는 걸 발견한 재익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7시라면 적어도 앞으로 3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아무리 호기심이었다지만 밤늦게까지 문방구 주인을 기다려 너튜브 촬영을 할 정도로 급하진 않았다. 여차하면 간단한 영상이라도 찍어보려 들고 온 카메라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온 김에 게임이나 몇 판 하죠.”
어차피 목적은 너튜브가 아니었다. 사진으로 봤던 작은 오락기다.
전선은 오래된 샷시에 구멍이 뚫려 문방구 안으로 들어가 있고 오락기 앞에는 핑크색 목욕탕 의자가 두 개 놓여 있다. 게다가 오락기도 오래된 겉면 그대로의 모습이다. 모서리가 다 닳아 코팅이 벗겨져 너덜거리는 디테일도 그대로 살아 있었다.
“이거 진짜 옛날 느낌이네요.”
재익은 가만히 오락기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자신도 어린 시절을 이런 시골에서 보냈다. 오락실은 하루에 4대가 오는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있었다. 그 버스비면 게임이 세 판. 시내를 간다는 건 그만한 각오가 필요했다. 아쉬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 유일하게 즐길 게임은 오락실 앞에 있던 이 작은 오락기가 전부였다.
‘네가 아직 살아남아 있었구나.’
이 녀석으로 꿈을 키웠다.
게임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죄악이라 여겼던 시기를 지나 격투 게임의 대회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몸과 동체 시력은 젊은 10대 학생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런 페널티를 안고서도 타고난 재능 덕이었는지 아니면 무수히 많은 연습 덕이었는지 수많은 재야의 고수들을 꺾고 당당하게 철건의 챔피언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15년 동안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켰다.
무릅신.
세계 어디에도 자신의 닉네임인 무릅을 꺾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작은 킨오브파이터즈였다.
자신을 격투 게임으로 인도했던 이 오래된 2d 게임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브라운관을 비추고 있었다.
재익은 무언가 홀린 듯 그대로 목욕탕 의자에 앉았다.
타닥타닥.
손때가 까맣게 묻은 조이스틱과 버튼도 가볍게 두들겨 봤다.
‘진짜 그대로다. 복원하는 데 애 좀 먹었겠는데?’
족히 30년 가까이 된 골동품이다. 브라운관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조이스틱과 버튼도 뻑뻑하거나 어디 힘없이 처지지 않고 최적의 상태다. 작정하고 옛 부품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고집 없이는 나오기 어려운 디테일이었다.
짤그락. 우르르르르.
“어어어! 괴돌이!”
“야! 괴돌이도 나와! 미쳤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펼쳐졌다.
진짜 괴돌이가 나올 줄 몰랐던 두 사람은 바닥에 쏟아진 괴돌이를 허겁지겁 주웠다.
“후후!”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고 바닥은 시멘트라 나름(?) 위생적으로 보였다. 대충 불어낸 괴돌이는 그대로 재익의 입으로 들어갔다.
3초 룰이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은 3초 안에 주워 먹으면 원래의 청결을 잃지 않는다.
“그런데 너 킨오파98 해도 되냐? 이거 괜히 감만 어지럽히는 거 아냐?”
“우물우물.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억울하잖아요. 한 판 해봐야죠.”
입안에 든 괴돌이가 수분을 모두 빼앗아 텁텁한 혀를 힘겹게 놀리며 대답했다.
라운드 원. 레디 고. 흐랴! 흐랴!
어차피 한두 판만 하고 갈 생각이다. 아무렇게나 고른 캐릭터로도 인공지능 상대로 충분히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아, 괴돌이 기름.”
급하게 주워 먹느라 잊고 있었다. 오락기에서 나오는 괴돌이를 먹으면 얼른 바지에 손을 닦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냥 조이스틱을 잡으면 다음 사람에게 비매너이기도 했고 불쾌한 미끈거림이 플레이를 방해했다.
슥슥.
얼른 바지춤에 멋대로 손을 닦고 한창 게임에 열중할 때였다.
끼익.
누군가 자신들의 차 옆에 거칠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주차를 했다.
“주인 왔어?”
“야, 마이바후야. 좀 사는 집 자식인가 본데?”
정황상 이 외진 곳에 자신들 말고 올 사람이라곤 문방구 주인이 유일했다. 문제는 그 주인이 타고 온 차였다.
벤즈 S클래스 마이바후.
옆에 있는 성준의 제네실스가 조금 위축되어 보일 정도로 비싼 고급 세단이었다. 심지어 출시한 지 얼마 안 된 모델이라 지금 구매 예약을 해도 올해 말이나 받아볼까 한 모델을 지금 끌고 왔다는 것은 해외에서 관세를 물고 직접 구매했다는 뜻이었다.
차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해박한 성준은 주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연신 고개를 기웃거렸다.
새까만 정장에 190은 되어 보이는 큰 키와 넓은 어깨. 거기에 스포츠형으로 짧게 자른 머리와 날카로운 눈매는 보통 사람의 인상이 아니었다.
‘깡패다.’
‘행동대장이다.’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이런 허름한 가게를 운영하면서 안에서는 불법적인 일을 하는 흔한 레퍼토리를 말이다.
두 사람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약 자신들이 게임기판을 핑계로 주소를 알아내고 여기까지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저 건달이 알게 되면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몰랐다.
저벅저벅.
발걸음이 가까워진다.
조이스틱을 신나게 휘젓던 손도 멈췄다.
“형, 지금이라도 일어날까?”
“야, 그게 더 수상해.”
수군대는 사이 발소리는 어느덧 자신들의 뒤에서 멈췄다.
꿀꺽.
어색한 긴장이 흐르고 뭐라 변명을 해야 할지 두 사람의 머리가 바쁘게 굴러가는 순간이었다.
짤그랑. 드르르륵.
곰처럼 커다란 건달은 동전을 넣고 익숙한 자세로 괴돌이를 받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저기…….”
“옆으로 좀 가슈.”
“아! 네!”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재익은 건달이 앉을 수 있도록 황급히 의자를 옆으로 빼냈다.
HERE COMES CHALLENGER!
화면은 다시 캐릭터 선택 창으로 바뀌었다.
1P와 2P의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다행히 셋 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서로 누군지 알아채지는 못했다. 만약 재익이 누구인지 알아차린다면 지금 이 순간, 그보다 더 어색한 만남이 또 없었다.
‘한국팀을 고르네. 생긴 것처럼.’
건달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김간판, 최천둥, 장고한이 속한 한국팀을 선택했다.
하나같이 까다로운 캐릭터다. 특히 리더격인 김간판은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손도 못 쓰고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사기성 캐릭터였다.
덩치가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건달과 나란히 앉아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뼛속까지 게이머인 무릅의 격투 본능이 상대방을 스캔했다.
‘철건이라면 걱정 없지만 킨오파는 나도 오랜만이다. 어쩌지? 콤보 캐릭터로 공략해야 하나? 아니면 기본기 위주로?’
팀을 고르는 손놀림이 빠르고 익숙한 걸 보아 보통실력은 넘어 보였다. 물론 자신도 격투 게임이라면 기본 이상의 실력을 두루 갖추고 있었으나 출시한 지 25년이 지난 게임이다. 고이고 고이다 못해 석유가 되어버린 은둔 고수는 얼마든지 많았다.
게임이 시작되고 긴장감은 이제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타닥타닥.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각자 바쁘게 조이스틱을 움직였다.
그러나 승부는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K.O. PERFECT
‘초보다. 아무것도 모르네.’
상대방은 기초적인 연속기도 쓰지 않고 무작정 큰 공격만 해댔다. 조이스틱을 뒤로 당겨 방어한다는 개념조차 없는 단순한 공격의 연속. 어쩌다 맞을지도 모르는 럭키펀치조차 닿지 않을 정도로 눈에 뻔히 보이는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연히 챔피언의 완승이었다.
“젠장.”
짤그락. 드르르륵.
건달은 짧은 욕지거리를 내뱉고 곧장 동전을 이어 넣었다.
그렇게 한 판, 두 판, 세 판, 압도적인 차이로 계속 승리를 쌓아가는 재익의 뒤에서는 성준이 흙빛이 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발 적당히 봐줘. 상대 인상을 좀 보라고!’
초보절단기.
늘 매너 있는 플레이를 고집하는 무릅에게 붙은 드문 별명이었다.
격투 게임은 본래 초보자가 처음 접하기 어려운 장르였다. 워낙 난이도가 큰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지만, 가장 큰 장벽은 자비 없는 고수들의 플레이였다.
모르면 맞아야지.
모든 격투 게임에 통용되는 말이다.
그 전통을 무릅이라는 닉네임으로 챔피언에 오른 재익도 훌륭하게 지켜나가는 중이었다. 상대방이 건달이었고 얼굴이 터질 듯이 붉으락푸르락하고 있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다.
* * *
누구지? 철진이 친구들인가?
간만에 일찍 퇴근해서 왔더니 문방구 앞에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엔 상진이와 지환이인가 싶었으나 뒷모습이 완전히 달랐다.
연휴도 아니고 손님이 올 리가 없는 촌구석에 사람이 둘이나 더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철진이의 친구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아, 안녕하세요.”
어색한 인사다. 아마도 게임에 집중해서 인사할 타이밍을 놓친 듯 보였다.
탁.
나는 철진의 자리 모니터 위에 백 원을 올려두고 게임이 끝나길 기다렸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걸 보니 다음 일어나야 할 사람은 철진이 분명했다.
K.O. PERFECT
“접어라, 접어. 한 대를 못 때리네.”
“우씨. 형이 해봐!”
“나는 급이 다르지.”
예전에 좀 하더놈 같은데?
분명 어느 정도 실력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철진이의 컨트롤이 워낙 절망적이었기에 제대로 판단이 서질 않았다. 충분히 이길 만한 상대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부딪쳐 봐야 할 상대. 나는 큰손 버튼을 눌러 게임을 이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누구셔?”
“형 아는 분 아니야?”
“응?”
“어?”
우리 네 명의 머리에 물음표가 떴다. 그럼 누구야,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