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꿩 대신 닭(2)
원초적 공포는 마약과 같다.
그 끝이 파멸인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탐하게 되는 마약.
혹자는 이 모순적인 행동이 우리가 너무 안락한 삶을 살기 때문이라 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반복해 왔는데, 갑자기 창과 도끼 대신 스마트 폰을 손에 쥔 탓에 본능을 억누르지 못한다는 그 주장은 인류사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절로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설득력이 높았다.
안락한 솜이불을 덮고 편안한 자가용을 타더라도 주말이 되면 구슬땀을 흘려가며 산을 오르고 비바람 속에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는 이유를 설명하라면 그저 본능이 그걸 원한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취미 생활이라고는 누워서 너튜브나 웹소설을 보는 게 전부인 나조차 학창 시절에 친구의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가는 장난을 곧잘 치곤 했다.
잡히면 끔찍한 대가가 따르는 그런 짓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결국 그 두근거림, 맹수를 피해 도망치는 생존본능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거기서!”
콧김을 씩씩대며 달려오는 철진이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는 오랜만에 차오르는 숨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가로등이 없는 골목길로 달려 들어갔다.
어둠이다.
어둠은 나의 영역.
이 녀석들에게는 낯선 공간이지만 나에게는 숨바꼭질과 술래잡기로 단련된 공간. 어디에 숨어야 하는지, 어디로 다가가야 하는지, 그 답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다.
나는 제설도구함 뒤에 숨어 먹이를 기다렸다.
두 번째 먹이는 지환이였다.
두리번거리며 점점 내 쪽으로 다가오는 지환이는 눈을 찡그려가며 나를 찾아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연합이라 그거지?
모처럼 형인 나에게 합법적으로 총을 쏠 기회다. 상진이와 지환이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3:1이면 단순히 머릿수로도 월등히 유리하니 해볼 만한 싸움이라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너무도 어설프다.
딱.
“으악!”
쏘아진 고무줄은 정확하게 지환이의 이마를 가격했다. 고무줄 총은 지근거리에서 쏠수록 그 대미지가 강력해진다. 내가 숨어 있는 걸 꿈에도 몰랐던 지환이는 거의 코앞에서 고무줄을 맞았고 그대로 이마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나는 얼른 지환이를 붙잡아 다시 제설도구함 뒤로 숨었다.
“말해! 나머지 놈들은 어디 갔지?”
“말할 수 없으므니다.”
“이 자식, 아직 매운맛을 덜 봤구나!”
딱딱딱.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운 고무줄이 사정없이 지환이의 허벅지를 때렸다.
“악! 악! 말할 수 없므스니다!”
이거 완전 일본 순사랑 독립투사가 반대로 된 것 같은데?
어찌 됐든 이제 2:1이다. 화력으로는 2:2와 다름없다. 지환이를 포로로 잡으면서 노획한 총이 하나 더 있으니까 말이다.
지환이의 입으로 들을 수 없다면 직접 찾아 나서면 그만이었다. 나는 지환이를 데리고 벽을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시가전은 벽을 사이에 두고 엄폐한 상태로 지루한 공방전이 반복된다.
먼저 나오는 사람은 아이들이 겨눈 총에 벌집이 되고 만다.
조금 따끔함을 감수하고 적진에 들어가는 게 훨씬 이득이 아닌가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동네마다 룰은 조금씩 다르나 통상적으로 머리를 맞으면 한 방, 몸을 맞으면 3~5방 사이에 사망자로 분류되었다.
의외로 총싸움은 한판 한판이 한 시간이 넘도록 길게 진행되기에 한 번 죽음에 이르면 문방구에 앉아 쮸쮸바나 빨면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선고받게 된다.
한순간도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그런 고문은 진짜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
그 때문에 전투 양상은 극도로 몸을 사리면서 어쩌다 운이 좋아 머리를 많이 맞은 쪽이 지는 싸움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인원이 적고 움직임이 자유로운 저녁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용맹한 전사보다 은밀한 암살자가 필요한 순간이다.
말라버린 도랑 아래, 가로등이 꺼진 전봇대 밑, 경운기 뒤. 어둠을 틈타 숨어들 공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골목 어귀를 돌아 나올 때였다.
“어디 갔지? 뭐 좀 보여?”
“아니, 너무 어두… 형! 미쳤어? 플래시를 켜면 어떡해! 우리 위치가 들키잖아!”
“안 보이잖아!”
“빨리 꺼!”
“늦었어.”
나는 두 형제의 목덜미에 총구를 들이댔다. 옥신각신하는 사이 내가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이 패착의 원인이었다.
“하, 항복. 살려주면 지환이 어디 있는지 알려줄게!”
손을 들고 돌아선 두 형제는 비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적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포로 따위는 필요 없어. 사죄는 저승에 있는 지환이에게 해라!”
딱딱.
날카로운 총성 두 방이 고요한 밤을 잠시 깨웠다.
겨울이었다.
* * *
“푸흡! 전무님, 이마가 왜 그렇게 되셨습니까? 푸하하!”
빨갛게 부어오른 철진의 이마를 보고 임 차장이 박장대소했다. 다른 직원들도 웃음을 참기 힘들었는지 파티션 사이로 고개를 처박고 연신 어깨를 들썩였다.
“야, 예의상 입이라도 가리고 웃던가! 총 맞았어.”
“총이요?”
“이거.”
철진은 품에서 고무줄 총을 멋있게 꺼내 들었다. 마치 마피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들어진 자세였으나 손에 들린 고무줄 총은 비루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으하. 진짜 오랜만에 보네요. 어릴 때 많이 가지고 놀았는데.”
“만들어 본 적 있어?”
“제가 또…….”
“너 인마! 전에 미니카 만들 때도 그런 말 했었지?”
“이번엔 진짜 다릅니다! 제가 5연발까지 만들었었다니까요!”
“거짓말하지 마! 이게 어떻게 연발로 나가? 민호 형도 연발로는 못 만들었어.”
“이 총신 뒷부분에 홈을 다섯 개 만든 다음에 이렇게, 이렇게!”
이미 미니카를 조립하면서 한 번 사고를 친 전적이 있는 임 차장의 말이 조금도 신뢰가 가지 않는 철진이었다.
하지만 임 차장은 억울한 듯 연신 손 연발 고무줄 총의 가능성을 설명했다.
“진짜야? 쓰읍.”
“지금 당장 젓가락이랑 고무줄만 있으면 만들 수 있습니다!”
“좋아. 오늘 별다른 업무 없지? 다들 만들어 봐.”
철진이 있는 전략혁신본부 3팀은 이미 초과 달성한 실적으로 지극히 한가로운 상태였다. 모처럼 재미있는 놀 거리가 생기자 슬며시 일어나 모여들었다.
“막내는 마트 가서 나무젓가락이랑 고무줄 좀 사 와. 많이!”
“네!”
3팀의 사무실은 갑자기 초등학교 미술 시간이라도 된 것처럼 모두 젓가락 총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평균 나이가 사십 대가 넘는 3팀이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무덤으로 악명이 높았던 부서다.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가장들만 온갖 수모를 감수하고 버티던 치열한 팀인 만큼 평균 연령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모두 소싯적에 고무줄 총 정도는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다.
모두 옛 기억을 더듬어 만드는 고무줄 총은 저마다 그 모양이 가지각색이었다.
그중에도 단연 임 차장의 총은 그 크기부터가 남달랐다.
“어떻습니까?”
자랑스럽게 내민 임 차장의 고무줄 총, 그것은 총이라기엔 너무나 컸다. 엄청나게 크고, 두껍고, 무겁고, 그리고 정밀했다.
그것은 진짜 소총이었다.
“우와! 임 차장, 진짜였어?”
철진은 기대도 하지 않았던 임 차장이 만든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모양만 그럴싸한 게 아닙니다. 잘 보십쇼.”
딱딱딱딱딱.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고무줄이 하나씩 쏘아져 나갔다.
“여, 연발로 나간다고?”
“제가 어릴 때 이 고무줄 총을 너무 잘 만들어서 다른 동네에서 돈까지 주면서 만들어달라는 애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번 돈만 해도…….”
조금만 기회를 주면 자랑을 멈추지 않는 임 차장의 주책맞은 입이 오늘만큼은 밉지 않은 철진이었다.
“으하하! 고마워!”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응?”
철진과 임 차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한참 바라봤다.
“이건 제 겁니다. 오늘 아들 갖다 줄 겁니다. 전무님은 직접 만드셔야죠.”
“젠장! 그럼 어떻게 만드는지라도 좀 알려줘.”
“크흠. 우선 뼈대가 중요합니다.”
또 고까운 소리를 들어가며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철진은 가슴이 답답해졌지만, 그 모든 걸 감내하고서라도 5연발 고무줄 총은 꼭 가지고 싶은 물건이었다.
부어오른 이마의 상처를 씻어낼 복수의 그날을 위해서…….
* * *
끼익.
낡은 공장의 문이 열린다.
“계세요? 계세요!”
쿵쾅거리며 돌아가는 기계들 사이에 목소리가 묻히자 여성은 고함을 지르다시피 인사를 내질렀다.
“뉘쇼?”
거뭇한 먼지를 뒤집어쓴 지긋한 나이의 남자가 기계들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다른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홀로 이 낡은 공장을 운영하는 듯했으나 나이에 맞지 않는 다부진 몸과 부리부리한 인상이 결코 그 실력까지 낡지 않았음을 보증했다.
“저는 삼정유통 신소영 대리입니다.”
“흐음.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요?”
허겁지겁 명함 케이스를 열어 내민 명함을 받고 한참을 읽어보던 남자가 물었다.
“아. 혹시 여기서 이 제품을 저희가 납품받을 수 있나 해서요.”
신소영 대리는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 한 장을 또 내밀었다.
디지털 풍화가 일어나 번짐이 조금 거슬리게 남은 이미지에는 오렌지라 적힌 주황색 플라스틱 통이 찍혀 있었다. 달랑 사진 한 장이 전부라 크기는 가늠할 수 없으나 요즘 나오는 요플레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허! 옛날에 우리 공장에서 만든 게 맞긴 한데 단종된 지 20년도 더 되었소. 지금은 그냥 프린팅 박스나 만드는 곳이지. 그런데 우리 공장에서 만든 걸 용케 알고 오셨네.”
신소영 대리는 공장 주인의 말을 듣고 그제야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저기 먼지가 쌓여 있고 녹슨 기계들은 대다수가 언제 가동했는지 모를 정도로 녹슬어 있었다. 음식을 만드는 공장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 잠시만요!”
잠깐 자리를 비우겠다 말한 신소영 대리는 공장을 나와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과장님, 공장을 찾긴 했는데 여기 박스 공장으로 바뀌었어요. 안 만든 지 20년도 지났대요. 어쩌죠?”
(어쩌긴! 무조건 가져와! 필요한 기계 다 넣어주고 원하는 만큼 사준다 그래!)
“제가 그렇게 덜컥 계약해도 될까요? 그럴 권한이…….”
(지금 상황 몰라서 그래? 기본전자계약서 보낼 테니까 어떻게든 사인받아 와!)
“과장님! 과장님!”
전화는 진작에 끊겨 메인화면을 비추고 있는 폰에 다급하게 과장님을 불러봤지만,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계약을 성사시켜야 하는 상황에 의지할 사람도 없이 홀로 다시 낡은 공장에 들어서는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하지만 신소영 대리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자신이 연차가 낮아 비교적 쉬운 물건을 맡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삼정만물상의 존망이 걸린 일에 때 아닌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 전쟁의 원인이 옛 추억을 떠올린 시골 문방구 주인이 안 되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써 내려간 발주서 몇 장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오직 삼정그룹의 주인, 조동욱 회장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