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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53화 (53/151)

#53. 서바이벌(3)

콰당.

큰 물건이 거칠게 쓰러지는 소리가 복도를 타고 울렸다.

“찾았스므니다. 3학년 1반에 있스므니다.”

“봐봐. 괜히 살금살금 다닐 필요가 없다니까.”

사람은 본디 호기심의 동물이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본능이랄까? 호기심이 강한 사람만 살아남았기에 인류는 번성했다.

그 본성을 참는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 특히나 이렇게 수세에 몰린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적팀은 우리가 교탁을 쓰러뜨리는 소리에 놀라 빼꼼히 고개를 내밀다 얼른 다시 숨었다.

하지만 한 번 들킨 상태에서 다시 숨는 건 무의미한 행동이다.

“쏴!”

딱딱딱딱.

긴박한 와중에 비비탄이 쏘아지는 소리는 조금 맥이 빠졌다.

그러나 당장에, 눈앞에서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 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실감 나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총알 아끼지 말고 쏴! 어차피 휘어지니까 조준은 대충 하고!”

화력전이다.

나는 눈을 찡그리고 한 발씩 쏘는 지환이를 다그쳤다.

비비탄 총싸움에서 초보들이 하는 가장 흔한 실수가 바로 지환이처럼 총알을 아끼는 플레이였다.

물론 총알은 아깝다. 당시에도 한 봉지에 2천 원이 넘는 가격이었고 종일 총을 쏘다 보면 일주일도 못 갈 양이기에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조준해서 쏘게 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총격전은 대부분 유효 사거리보다 훨씬 멀리서 일어난다.

내가 쏘면 맞출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반대로 상대방 총알의 위력이 반감되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거리.

그 거리에서는 조준이 더 이상 무의미했다.

차라리 손이 퉁퉁 부을 때까지 열심히 장전해서 한 발이라도 더 빨리, 그리고 많이 쏘는 게 승리의 비법이었다.

그리고 이번 작전은 지환이의 연사 속도가 관건이었다.

“슬슬 앞으로 가자. 장전 타이밍에 한 교실만 앞으로 당기는 거야. 팔로 몸통이랑 얼굴 가리고.”

상대방은 미어캣처럼 교실의 정문과 후문에 달라붙어 몸을 숨긴 채 총을 쏘고 있다. 교탁을 복도에 쓰러뜨리고 그곳에 엎드려 있는 우리는 하늘에서 휘어 떨어지는 총알까지 신경 써야 하기에 훨씬 불리했다.

다행히 비비탄 총은 탄창이 하나다. 그리고 스프링을 눌러 총알을 다시 채우는 시간은 조금 걸리는 편이다.

우리가 잠깐 앞 교실로 달려갈 시간은 충분했다.

“지금!”

딱딱딱.

우리는 나름의 제압 사격과 동시에 교실로 뛰어들어갔다.

“이제 네가 잘해야 해. 알지?”

“작전대로 하겠스므니다.”

* * *

“어떡해? 민호 형 벌써 저 앞까지 왔어!”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쉴 새 없이 총알을 쏟아부으면서도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자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특히 아까부터 민호는 조금씩 숨어 있는 모습만 보일 뿐 사격은 하지 않고 있었다.

분명 또 이상한 계략을 꾸미는 게 분명했으나 그게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오케이! 일단 지환이는 팔에 한 방, 몸에 한 방!”

격전이 길어지면서 슬슬 부상자가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전세는 단번에 역전되었다.

부상자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그 짧은 순간에 두 방이나 맞은 지환은 전보다 총을 쏘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거 쉽게 잡겠는데? 지환이만 잡으면 민호 형 혼자 남잖아. 그냥 우리도 앞으로 나가버릴까?”

“가자! 형은 내 뒤에 붙어!”

철진이 기세만 읽고 내뱉은 단순무식한 전략이었으나 상진이 생각하기에 상당히 혹할 만한 방법이었다.

머릿수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지환이만 잡는다면 그냥 몸으로 맞으며 돌격해도 될 만한 거리였다.

무엇보다 뒤에서 꼼지락거리고만 있는 민호를 그냥 두기엔 너무나 찝찝했다.

세 사람은 지환이가 잠깐 숨을 돌린 틈을 타 복도로 달려 나왔다.

탁.

그리고 상진이 쏜 한 발이 지환이의 고글을 강타했다.

“좋았어! 어?”

항복을 받아낼 생각에 신이 난 세 사람이 양손을 들고 자신이 죽었다 어필하는 지환이의 뒤를 겨눴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했…….”

툭. 툭. 툭.

상진이 뭐라고 외치기 전에 세 발의 총알이 순서대로 뒤통수에 박혔다.

* * *

“우리가 이겼지?”

“조마조마했스므니다.”

작전은 대성공이다.

다들 지환이가 있는 정면을 신경 쓰느라 바로 뒤까지 다가간 내 존재를 총을 쏠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어쩐지 한참 동안 총을 안 쏘더라…….”

세 사람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의자에 걸린 야상을 바라봤다.

작전은 이러했다.

야전 상의를 의자에 걸어두고 지환이가 조금씩 발로 움직여 마치 내가 지환이의 뒤에 있는 것처럼 꾸몄다.

어차피 하체와 머리는 보여주지 않으니 상관없었고 내 개구리 무늬 야전 상의가 숲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실내에서는 오히려 다른 옷들보다 월등하게 눈에 띄었다.

그렇게 지환이가 홀로 세 사람을 상대하는 사이 나는 일 층으로 내려가 뒤를 노렸던 것이다.

사공명주생중달.

죽은 공명이 산 사마의를 내쫓았던 방법이다.

여기선 도망치는 게 도리어 불리해진 우리 팀을 쫓아오게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결과는 비슷했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한 판이 꽤 오랜 시간을 잡아먹었다. 팀을 바꿔 한 판 더 하기엔 벌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아쉽지만 오늘의 총싸움은 여기까지.

우리는 쓰러진 교탁을 다시 세우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옛날에는 이렇게 총싸움 끝나면 전부 모여서 총알을 주우러 다녔다?”

“왜요?”

“총알이 비쌌으니까.”

세 녀석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어쩌다 운이 좋아 칼라 총알이나 야광 총알을 주우면 중요한 전투에 쓰려고 따로 모아두기까지 했는데 좀처럼 믿을 눈치가 아니었다.

“이렇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나씩 주웠어.”

“거짓말!”

“그대로 총에 넣으면 고장 나니까 거름망에 넣고 씻어서 말려서 썼다니깐. 너희들 지금 총알 쓴 거 못해도 반 통은 될걸? 나중에 한 통 사려면 그것도 무시 못 한다.”

“아!”

그제야 잠시 잊고 있었던 우리 문방구의 구매 방식이 떠올랐나 보다.

“흠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바닥에 쭈구려 앉아 총알을 주웠다. 계산이 빠른 녀석들이다. 먼저 줍는 놈이 임자라는 진리를 금방 깨달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문방구의 주인이라지만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은 이 녀석들과 같다.

나중에 억울하게 나만 총알을 사야 하는 불상사를 겪지 않으려면 지금 부지런히 주워놔야 했다.

“그런데 머릿수가 부족해도 작전만 잘 세우면 이길 수 있네요. 저는 어려울 줄 알았어요.”

“거의 마주 보고 숨어서 쏘는 게 전부긴 했는데 그래도 나름 특공대도 있었고 스나이퍼도 있었어. 3:2 정도야…….”

툭. 또르르르.

나는 부지런히 줍던 총알을 놓쳤다.

“우리 네 명이잖아.”

“그럼 철진 상 팀에 상진 말고 한 명은 누구였으므니까?

“형…….”

휘이이잉.

갑자기 찬 공기가 목덜미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우와아아악!”

가장 먼저 건물 밖으로 달려나간 사람은 철진이였다. 이 녀석 이럴 때만 몸이 재빠르다.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전력으로 질주하는 철진을 따라 우리도 달렸다.

하지만 나는 몇 발짝 가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섰다.

귀신에 홀린 것치고는 그다지 무섭지도, 머릿속이 혼란스럽지도 않았다. 그저 원래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들과 재미있게 총싸움을 한 판 한 기분이었다.

정작 그게 누구인지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자꾸만 발길을 붙잡았다.

정문 밖에서 녀석들이 빨리 나오라며 소리쳤지만 멈춘 걸음은 다시 학교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격전을 치렀던 장소에 다다르고서야 나는 마침내 그 답답함을 풀 수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낡은 권총 한 자루.

도대체 언제부터 이곳에 버려져 있었는지 모를 이 권총이 헤프닝의 원인이었다.

나는 혹시나 부러질까 조심스럽게 권총을 집어 복도 벽에 기대고 앉았다.

* * *

“민호 형! 쟤들 또 쇠구슬 써!”

“다들 눈 조심해! 일단 후퇴하자. 고학년 네 명만 남고 나머지는 천천히 빠져나와서 뒷골목으로 도망가!”

비겁한 녀석들. 쇠구슬은 쓰지 말자고 했는데 또 쓰다니!

매번 이야기해도 안 썼다 시치미를 떼버려서 골치다.

우선 이번 전투는 후퇴다. 행여나 우리 동네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모두 내 책임이니까.

“자, 우리도 이제 가자. 도망가면 쟤들 쫓아올 것 같으니까 다 흩어져서 뛰어. 본부로 바로 오지 말고. 알겠지?”

“응!”

“하나, 둘, 셋! 뛰어!”

내 신호와 동시에 우리는 정해진 골목으로 뿔뿔이 흩어져 달렸다.

핑.

귓가를 스치는 총알 소리가 확실히 달랐다. 저 쇠구슬에 맞으면 분명 피멍이 든다.

약아빠진 놈들!

아랫동네 녀석들은 우리를 다치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이렇게 누구 하나 피멍이 들고 나면 다치게 한 아이가 아니라 비비탄 총을 들고 나간 아이가 혼난다는 걸 알고 하는 짓이었다.

그렇게 한 명이 총을 압수당하면 당장 전력이 줄어들고 함부로 모여 총싸움을 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고작 그런 이유로 내 친구와 동생을 다치게 한다는 사실이 분했다.

한참을 달려 적들을 따돌린 나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본부로 들어왔다. 오래전에 문을 닫은 허름한 신문사 건물 뒤편이 우리가 본부라 칭하는 곳이었다.

이미 본부에는 먼저 도착한 아이들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민호 형!”

“다들 괜찮아? 다친 사람 있어?”

“병식이가 달리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어…….”

“병식아, 참을 수 있겠어?”

끄덕끄덕.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을 앙다물고 울음을 참아내는 병식이가 대견해 어깨를 두드려줬다.

“돌아가자. 내일 학교 마치고 내가 따지러 갈 테니까 당분간 아랫동네 아이들이랑 만나지 마. 다들 알겠지?”

“알았어!”

도망치듯 쫓겨왔으나 다들 대답은 씩씩했다. 다음을 기약한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마을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세진이는 나한테 업혀.”

“혼자 걸어갈래.”

“안 돼. 또 병원 가려고?”

유독 삐쩍 마르고 피부가 하얀 아이가 마지못해 내 등에 업혔다. 등에는 작은 덩치만큼 가벼운 무게가 더해졌다.

“나도 다음번에는 민호 형이랑 같이 싸우러 가면 안 돼? 집에서 연습도 많이 했어! 본부 지키는 건 무릎 다친 병식이가 하면 되는데…….”

“아픈 거 다 나으면 하자. 그때까지 연습 계속하고 있어. 형이 준 총은 다른 애들한테 비밀이다?”

“응. 엄마, 아빠한테도 말 안 했어.”

“그래. 잘했어. 그 총 개조도 다 된 거라서 엄청 세게 나간다? 아마 형 총보다 셀걸? 나중에 다 나으면 그걸로 형이랑 하루 종일 총싸움하자.”

“응!”

깃털처럼 가벼운 세진이를 업고 마을까지 걸었던 그날은 노을이 유독 붉었다.

* * *

“지금까지 계속 기다렸던 거야? 약속 때문에? 난 다 잊고 있었는데.”

나는 낡은 장난감 총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뜻밖의 재회로 그때의 추억이 모두 떠올랐다. 세진이가 세상을 그리 일찍 떠나지만 않았더라면 아마 오늘 만난 얼굴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작 해주고 싶은 말은 하나도 전하질 못했다. 나는 울음을 참느라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을 힘겹게 열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재밌었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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