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61화 (61/151)

#61. MM(2)

“하자.”

“해요.”

“야. 너희들 이제 집에 가.”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을 들쑤시는 녀석들을 손으로 휘휘 저어 나가라 했지만, 뜨끈한 바닥에 몸을 지지고는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민호 형. 왜 안 하겠다는 거예요? 연봉도 두 배가 넘는데!”

“그거 3년하고 나면? 나 경력 다 끊기고 서른 후반에 뭐 먹고 살라고?”

“뭐라도 하겠죠. 민호 형인데.”

퍽.

나는 기대고 있던 베개를 상진이에게 던졌다.

“세상일이 그리 드라마틱하지가 않아요. 내가 안 해도 삼정그룹에서 누가 할 거 아니야.”

그럴싸한 둘러댐이다.

대회까지는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내정된 사람이 분명히 있을 터였다.

“있긴 한데. 우리 사람은 아니야.”

“너희 사람이 아니면?”

“몰라. 그냥 그렇게 다른 부서에 남는 인력 중에 발령 내겠지. 5명이 가기로 했어.”

“…….”

공기가 불편해진다.

철진이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지 않았다.

세상에 돈이 싫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공짜점심이 없듯이 큰돈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반짝하는 인기로 만들어진 프로팀의 구단주로 오는 사람이 그룹 내 중책을 맡았던 인물도 아니고 전문 경영인 또한 아니다.

누가 보더라도 가시밭길이 보장된 자리. 그리고 3년 뒤에는 계약 연장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9할 이상이다. 3년도 회장님이 크게 인심을 쓰신 것이리라.

가장 높은 직책인 구단주인 나조차 이렇게 사력을 다해 거절하고 있는데 그 밑에 들어오는 실무담당자들의 상황은 더 비참할 것이다.

회사 내부에서는 미니카프로팀이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이른바 이직 대기소라 불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힘없고 어중간한 나이라 이직도 어려운 사람들이 올 게 분명했다. 그들이 이 급조된 프로팀에서 일하다 계약이 끝나면 수고했다 박수를 받으며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너무나 꿈같은 일이다.

나 혼자 먹고살 길이 막막한 길이 아니다. 구단주로 있으며 그들의 뒤틀려버린 삶까지 책임져야 하는 자리인 것이다.

내가 마음먹는다고 덜컥 맡아선 안 되는 직책이다.

하지만 이미 정해져 버렸다. 5명이라는 퇴사내정자들이.

좋든 싫든 나는 이 미니카프로팀에 남게 된다. 그리고 삼정그룹에서 쫓겨난 이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 부양해야 할 가족 때문에 이직도 하지 못하는 그들과 함께 말이다.

고민은 그 다섯 사람의 무게만큼 깊고 무거웠다.

그리고 나는 손에 쥔 폰에 온기로 땀이 찰 무렵, 느릿한 동작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회장님, 밤늦게 죄송합니다.”

(어데. 그래, 결정했나?)

“하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뭐꼬?)

“인력은 올해 정년퇴직자들로 보내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신다면 구단주를 맡겠습니다.”

(니 약속했데이.)

* * *

연못에 잉어가 노닐고 작은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정원이 인상적인 한정식집.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는 느낌을 입구부터 뿜어내는 이 고급 한정식집은 아직 영업을 시작하기 한참 전이지만, 직원들의 움직임은 부산스럽기 그지없었다.

예정에 없던 손님이 온 까닭이다. 그것도 거절할 수 없는 손님이.

후룩.

조동욱 회장은 윤기가 반질반질한 찻잔을 들고 향을 즐길 새도 없이 반 잔이 넘게 마셨다.

“거 비싼 차인데 향이라도 좀 맡지.”

“내가 산다는데 와 얻어먹는 사람이 말이 많노.”

“그래, 우리 수전노 조 회장이 아침 댓바람부터 밥을 다 사준다 하니 내가 죽어서 저승에 있나 싶더라니까.”

“실없는 소리 고마하고, 느그 이번에 그 장난감프로팀에 들어갈 아들 있제?”

“아, 그 미니카? 뭐 반반이니 들어가겠지.”

마주 앉은 대현그룹의 오너, 정진수 회장은 뭘 그런 걸 다 묻느냐는 표정으로 남은 찻잔을 들었다.

형제들과 지분 싸움 중에 빈틈을 노리고 해외투자회사가 들어오는 바람에 알짜 계열사 세 개가 공중분해 되어 지금은 그 힘이 예전만 못하다곤 하나, 엄연히 대한민국 5대 그룹에 속했다. 그런 큰 그룹의 회장은 계열사에서 추진하는 작은 일에 하나하나 신경 쓰지 않아도, 아니, 신경 쓰면 안 되는 자리다.

“니 거기 얼라들 넣을 때 젊은 아들로 넣어도.”

“무슨 꿍꿍인데 그러는가?”

“꿍꿍이는 무신, 우리는 정년퇴직할 늙다리들 넣으니까 이 바란스가 맞아야 안 되긋나?”

“우리 조 회장이 이렇게 부탁하는 걸 보니 장남이 구단주로 오겠군.”

“어데. 글마는 아직 밖에 나돌라면 멀었다.”

“허허. 그럼 누가 오길래 이렇게 생전 안 사던 밥까지 사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건가?”

“우리 삼정그룹 대들보가 될 안기라.”

“대들보?”

영문 모를 소리만 계속 늘어놓는 조동욱 회장이 답답했는지 되묻는 질문에는 진한 팔자주름이 더해졌다.

“가가 우리 회사 복덩인기라. 아들 둘 사람 구실 하게 만들어주고 우리 박 상무도 함부로 못 한다카이.”

조동욱 회장의 입에서 박 상무까지 나오자 정진수 회장은 비죽 올라왔던 짜증이 슬며시 내려갔다.

박 상무는 표면적으로는 아무 힘도 없는 비서로 대외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 상무의 진가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손이 뻗어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박 상무의 정보력 덕에 전자, 제조업 쪽으로 조금만 눈길을 돌려도 득달같이 조동욱 회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부에 정보원이 있나 수차례 교차검증을 해보고 회사와 집에 수억 원을 들여 도청방지 장치까지 했지만, 무용지물. 그룹 내 기밀 정보는 고스란히 박 상무의 손에 들려 조동욱 회장에게 올라갔다.

결국, 두손 두발 다 들고 기웃거리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하고서야 내부 정보가 새어나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물론 조동욱 회장이 청진기를 떼겠다 말을 했기에 그냥 믿는 것이지 실상은 어떨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 박 상무가 함부로 못 하는 사람이라니?

호기심을 넘어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궁금하제?”

“자네가 허튼소리를 할 양반은 아니고. 부럽네그려. 아들 둘도 잘 키웠고 그룹을 받칠 대들보까지 미리 구해놨으니, 원.”

식전음식으로 나온 도토리 죽이 유독 씁쓸한 건 맛 때문만이 아니었다.

대현그룹은 인복과 거리가 멀었다. 후계 구도가 복잡해진 탓에 그룹 총수 자리를 두고 형제들끼리 길고 긴 공방전을 이어갔고 그 끝에 자신이 승리하긴 했으나 대현그룹은 예전의 대현그룹이 아니었다.

‘형제 중에 조금만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 있었더라면, 아니, 나를 보좌했던 임원 중에 박 상무의 흉내라도 낼 만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지금 재계 구도는 달랐을 것이야. 그런데 그런 박 상무보다 더한 놈이 또 조 회장에게 갈 줄이야. 잠깐!’

정진수 회장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내가 먼저 묶어놨으니까 침 바를 생각은 하지 말그라.”

“어허. 어디 내가 부른다고 올 사람이면 이렇게 자랑을 했을까.”

“크흠. 당연하지!”

어르고 달래고 다 죽어가는 연기까지 했다. 이만큼 했는데 덜컥 어디 다른 곳에 뺏긴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괜히 불러가 이야기해뿐나?’

부러움이 담긴 눈에서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눈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린 조동욱 회장은 신이나 떠들어대던 조금 전 자신이 조금 후회가 되었다.

“창단식이 다음 주라고 했나?”

“어? 어어.”

“나도 참석하지. 그렇게 자랑을 해대는데 나도 눈도장은 찍어놔야 나중에 잘 봐달라 말이라도 할 거 아닌가?”

‘조짓네.’

집에 황금 송아지가 있다고 자랑하는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 집까지 찾아와 그 송아지를 좀 보자고 한다면 찝찝함과 불안함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 * *

입사 후 급작스러운 퇴사. 경우가 없는 일이었다. 나도 그걸 알기에 말을 꺼내기가 무척 조심스러웠다.

따지고 들자면 그나마 타이밍이 나은 편이었다.

올해 굵직한 사업은 모두 수주에 성공했고 인센티브는 아직 받기 전이다. 그리고 추가 사업 건도 미리 준비가 끝났다. 막말로 올해 제안팀에 과장급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도 될 만한 타이밍에 퇴사라는 말을 꺼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짧게 든 정도 정이다.

“김 과장 가면 이제 우리는 어쩌라고!”

“또 그러신다. 여태 잘해 오셨잖아요.”

“그래도 있다가 없는 거랑은 다르지!”

나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였다. 싫든 좋든 직장을 다니면 부서 내 사람들과 엮이게 된다.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중 적지 않은 시간을 말이다. 잘 맞지 않는다면 지옥 같은 시간이고 그렇지 않다면 썩 괜찮은 직장생활이다. 나는 명백히 후자였다.

이전 직장에 비하면 같이 밥을 먹고 터놓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도 할 만큼 동료들과 막역한 사이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성공해서 가니까 마음이 무겁진 않네. 종종 연락하고!”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끝내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에는 팀장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짐은 그게 다야?”

“네. 챙겨놓고 보니 별로 없네요.”

이런저런 자잘한 물건들을 챙겨 다니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챙겨갈 물건은 작은 A4용지 상자 하나로 끝났다. 일찍 떠남을 직감한 이유였을까? 상자에는 즐겨 쓰던 펜, 그리고 낡은 다이어리와 메모장이 전부.

짐을 들어주겠다는 핑계로 따라 나온 팀장님의 손이 민망했는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고맙지.”

팀원 중에 제안서와 사업 준비에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은 우리 둘이 유일했다. 짧지만 아쉬운 마음은 훨씬 크게 느껴졌다.

주머니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손이 나왔다. 그렇게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살다 보면 무수히 많은 인연이 곁을 스치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스치고 지나갈 인연들조차 때가 되면 보내는 안부 인사문자와 이따금 만나서 마시는 술 한잔으로 이어지곤 한다. 팀장님과 내 인연도 그랬으면 했다.

아쉬운 작별을 뒤로하고 차에 오른 나는 곧장 연습실로 차를 몰았다.

“여보세요?”

(형! 어디야?)

“이제 막 출발했어.”

(얼마나 걸리는데?)

“왜 그래? 어차피 창단식은 오후에나 시작하잖아.”

(지금 난리 났어! 아버지도 벌써 와계시고 대현그룹 회장도 왔어!)

“응? 두 회장님이 거길 왜?”

(나도 모르지!)

조촐한 창단식이다. 기자들이야 몇 오겠지만 지금은 외부에 크게 마케팅으로 열을 올릴 필요가 없었다.

관심의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기 있는 배우라도 활동 시즌이 아니면 티비에 나오지 않는다. 이미지가 소모되어 대중들이 더 이상 배우에게 흥미를 느끼지 않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다.

우리 미니카프로팀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관심은 세계대회를 앞둔 시점에 극대화된다. 지금 과하게 홍보를 했다간 정작 대회가 열리고 미지근한 반응이 나올 수 있었다.

지금은 그저 오겠다는 기자들만 불러 잘되게 해달라 돼지머리 하나 두고 절이나 하면 그만인 일이다.

그런데 고작 그런 행사에 회장님이, 그것도 대현자동차 회장까지 세트로 올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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