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달고나(2)
“국자는 세 개, 기회는 한 번. 제일 크게 망한 사람이 설거지하는 거다?”
“알았어. 빨리 줘봐!”
“네.”
“알겠스므니다.”
세 사람은 막상 국자가 손에 쥐어지니 긴장한 모양이다.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깟 설거지가 뭐 대수라고 우습게 알았던 녀석들은 바닥이 새까맣게 타고 안쪽에 달고나가 딱딱하게 눌어붙은 국자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은 듯 보였다. 저 국자 하나만 닦아도 한참이 걸릴 터인데 무려 3개가 더 추가된다. 남들은 방 안에서 달고나를 먹으며 노는 사이 설거지만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설탕 봉지를 들고 정량대로 나눠서 각자의 국자에 부었다.
파파팍.
설탕이 부어진 국자들은 쉴 틈이 없었다. 나무젓가락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아직 녹지 않은 설탕을 못살게 굴었다.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 타이밍을 모르기에 빠르게 젓는 것으로 최소한의 태움을 방지하는 전략이다. 다들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다. 왕도가 없는 달고나 제조에서 이 정도 출발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영원한 난제가 있다면 바로 베이킹소다를 넣는 시점과 양이다. 베이킹소다를 넣는 시점에서 설탕물은 달고나로 변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건 양.
너무 적게 넣으면 딱딱한 설탕 덩어리나 다를 바 없는 과자가 되고 만다. 반대로 너무 많이 넣으면 푸석푸석하고 쓴맛이 나는 먹지도 못할 실패작이 된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경험이 필요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녀석들은 이 베이킹소다의 정량을 찾지 못했다.
“어어? 왜 연기가 나!”
철진이가 당첨이다. 너무 오래 국자를 저은 탓에 물기가 말라 까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자, 이제 철판에 부으면…….”
“오호.”
예상외로 상진이와 지환이의 달고나는 그럭저럭 모양새를 갖췄다. 셋 다 국자에서 꺼내지도 못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
식용유를 바른 식당용 커다란 철판에 부어진 달고나를 누름판으로 누르자 두 번째 탈락자가 나왔다.
쩌억.
“이거 왜 이렇스무니까?”
“설탕이 덜 녹아서 그래. 조금 꾸덕꾸덕하게 해야 하는데 너무 묽어. 그래도 상진이가 성공했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처음 만들 때 유심히 지켜봤던 눈썰미 탓인지 제법 모양새가 그럴싸하게 나온 상진이의 달고나는 하트표 문양까지 찍혀 완성되었다.
“이제 시작인 거 알지? 철진이는 설거지하고.”
“이거 보고 할래.”
“너 저거 굳으면 오늘 밤새도록 닦아야 한다? 지금 시작하는 게 나을걸?”
“에이씨!”
“일단 뜨거운 물에 담가서 세제 풀어놔. 푸읍! 푸하하!”
“웃지 마!”
꼴에 와이셔츠에 물이 튀는 게 싫었는지 앞치마까지 두르고 고무장갑을 낀 모습이 도무지 매칭이 안 되는 비주얼이라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충분히 굳어진 상진이의 하트표 달고나로 다시 관심을 돌렸다.
“침 바르기는 동네마다 다른데 우리 동네는 그냥 하게 해줬어.”
바늘로 그냥 쑤시는 것과 물기가 닿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온기가 어느 정도 있는 침은 표면을 적당히 녹여서 고난도 구간을 공략하기 쉽게 해준다.
위생적으로나 지켜보고 있는 사람에게나 조금 불결함은 어쩔 수 없지만 당장에 성공만 한다면 공짜로 하나 더 할 수 있는데 체면을 차릴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톡톡톡.
상진이의 바늘이 무늬를 따라 조금씩 파고든다. 막상 이렇게 보니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네. 뭐가 걸리지도 않았는데 우리 셋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한 갈색의 하트에 들어가는 바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시원하게 지나가는 바늘은 반쪽짜리 코너에서 드디어 멈췄다.
잘못 힘을 주면 부러지는 곳이다. 어려운 코스는 마지막에 도전하는 게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는 공략법이었지만 사실 큰 차이는 없다. 어차피 뚫고 지나가야 할 난관이라면 미리 돌파하는 것이 오히려 심적으로 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상진이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그렇게 가운데 파인 곳을 조심스럽게 찌르는 순간.
파삭.
“아!”
하트는 여지없이 쪼개졌다.
“어렵지?”
“아니, 이렇게 약하면 어떻게 성공해요?”
“네가 잘못 만들어서 그래. 소다를 많이 넣으면 약해서 금방 부러지거든. 이거 먹어봐.”
나는 부서진 조각 중에 가장 큰 걸 집어 상진의 입에 넣었다.
“으웩!”
“그것 봐. 쉽지 않다니까.”
“한 번 더 해볼래요.”
“나도!”
“저도 다시 하므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다. 한 번의 데이터가 쌓인 녀석들이 두 번째 도전을 외쳤지만 아쉽게도 그 기회는 그냥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쳤다.
“오백 원이야.”
신메뉴 소개는 이미 충분하다 못해 과했다.
달고나 뽑기는 원래 백 원이다. 하지만 고물가시대에 언제까지 예전 금액을 받으며 영업을 할 순 없다. 설거지라는 노동력이 들어가는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돈을 받아야 했다. 물론 설거지는 철진이가 하고 있지만 말이다.
문방구의 밤은 오늘도 그렇게 흘러간다.
프로팀의 구단주가 되어도 이곳은 변함없는 일상이 펼쳐진다.
* * *
삐비비빅.
오래된 알람시계가 머리맡에서 울리자 누렁이가 시끄러웠는지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너도 일어나. 맨날 늦게까지 자고 새벽에 놀아달라 그러지 말고!”
“야옹!”
나는 자비 없이 누렁이가 파고든 이불을 걷어 접기 시작했다. 오늘 밤에도 어찌나 뛰어다니던지 내 배를 몇 번이나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계속 잠을 설쳤다.
이불을 개고 폰을 열어보니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늦잠이 아니다.
평소 같았으면 출근길에 차가 막히는 시간까지 고려해서 일곱 시 전에 집을 나서야 했지만, 오늘부터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직원들에게는 사장이 정시에 출근하는 것만큼 곤욕도 없으니까.
내가 잠정적으로 정한 출근 시간은 열 시다. 아홉 시 출근인 직원들이 조금 지각을 해도 눈치가 덜 보일 시간으로 정했다. 내가 늦는다고 해서 면박을 줄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구단주 김민호입니다.”
크.
거울을 보며 자기소개를 연습해 봤더니 역시 기분이 오묘하다.
창단식 때는 바쁜 와중에 정신없이 인사를 하느라 몰랐는데 이제 진짜 첫 출근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물론 달라진 건 그뿐이다. 오늘은 첫날이라 양복을 입겠지만 나중에는 면바지에 카라티로 복장도 이전과 같을 것이다. 사무실까지 몰고 갈 차도 오래된 경차다.
“흐음~ 흐음~”
사무실이 있는 MM 프로팀의 창고는 문방구에서 그리 멀지 않다. 신호만 잘 받는다면 15분 내외로 갈 수 있는 거리. 출근 시간을 한참 지나 한적한 도로를 달리니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그렇게 노래 세 곡이 끝나갈 무렵, 아직 경축 현수막이 내려지지 않은 창고에 도착한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구단주님.”
“반갑습니다. 이렇게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네요. 구단주 김민호입니다.”
모두 어제 있었던 창단식에서 잠깐 본 뒤로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직원은 열 명, 선수들 열 명이 와 있었다. 생업이 있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일찍 와달라 부탁했기에 이렇게 업무 시간에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건 오늘이 유일할지도 몰랐다.
“잠깐 하던 일 마무리하고 회의실로 들어갈까요?”
다들 이제 막 첫 출근으로 컴퓨터를 세팅하고 비품을 옮기는 부산스러운 와중이라 회의실에 모이라 하기 조금 미안했지만 그래도 첫인사를 대충 하고 지나갈 순 없었다.
사무실 한쪽에 가벽도 없이 마련된 작은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긴장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각자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 할 말을 기다리는 직원들과 선수들에게 나는 어제 녀석들이 만든 달고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먹기 좋게 펼쳤다.
“일단 드시면서 이야기하죠.”
사람은 의외로 그리 복잡하지 않다.
단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쓴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리고 그 기분은 처음 만난 상대방의 인상을 결정짓기도 한다.
모두가 처음 만난 이 시간이 달콤한 인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달고나에 담겼다.
그렇게 내 권유에 못 이겨 하나둘 달고나를 집어 먹고 볼 한쪽이 부풀 때쯤이 되어서 준비한 말을 시작했다.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직 통성명도 다 하지 못한 사이에 주어진 처지를 먼저 설명해야 하는 내 마음도 그리 편하지 않았다. 입안에 맴도는 달고나의 쓴맛이 조금 스치고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3년의 계약 기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1등을 하지 못하면 그 기간마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당장에 지원이 끊기지는 않겠지만 급여를 제외한 다른 지원들은 대폭 감소할 테니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다 봐야겠지요.”
조동욱 회장님이 나를 좋게 보시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점은 어디까지나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리라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이 이름 모를 프로팀에 1년에 수십억씩 들어가는 기약 없는 투자를 계속하실 성정이 아니셨다. 게다가 대현자동차와 같이 얽혀 있는 팀이니 내부에서도 득실을 따지는 말들이 계속 나올 것임이 분명했다.
지원은 길게 보아야 1년이고 그 1년 사이 성적을 낼 곳은 한 달이 조금 넘게 남은 다미야세계대회가 유일했다. 우리 팀의 존속이 걸린 대회가 코앞까지 다가온 셈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모든 대외업무는 중단합니다. 업무는 각자 선수를 한 명씩 맡아 서포트하는 방향으로 대회 전날까지 운영합니다.”
“저, 구단주님. 재무담당자와 홍보담당자는 어떻게 하실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직원이 열 명에 선수가 열 명, 도합 스무 명이 일하는 곳이다. 최소한의 업무 유지는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모두 스톱입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급여는 어차피 자동이체죠?”
“네. 다른 지출만 따로 없으면 크게 상관없습니다.”
“광고, 협찬 문의, 뭐 기타 자잘한 업무들도 다 중지입니다. 이번 대회에 우승하지 못하면 모두 부질없는 일들이니까요.”
난감한 표정들이다.
당장 업무를 그만두고 선수들을 도우라 하니 막막함은 모두 비슷한 심정일 테지. 나 또한 엊그제까지만 해도 과장의 직함을 달고 일했던 한 명의 평사원이었으니 지금 구단주가 하는 말이 얼마나 골치가 아플지 모르지 않았다. 일을 내려놓고 다른 업무를 하라 지시하면 본인의 일이 줄어드는 게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괜찮다. 대회가 끝나면 모두 여유롭다 못해 지겨울 정도로 한가해질 시간이 있으니까.
그날을 위해서 지금은 조금 다른 업무가 필요했다.
“우선 미니카를 알아야 합니다. 다들 이동하죠. 제 차는 다섯이 탈 수 있으니 나머지 분들도 차에 나눠타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미니카 프로팀에서 미니카를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미니카를 파는 곳은 여기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