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숨겨진 의도(1)
부우우웅.
“저희 내려서 다른 차 탈까요?”
“아닙니다. 이게 방음이 잘 안 돼서 그렇지, 지금 잘 달리고 있어요.”
오랜만에 최대 인원을 태운 내 차가 완만한 언덕을 오르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그 탓에 뒤따르던 차들도 덩달아 느림보가 되어 눈치가 조금 보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시골길이라 차가 없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출근길보다 힘들게 도착한 문방구에는 어젯밤 치우지 않은 미니카 트랙과 오락기가 그대로 나와 있었다.
“진짜 문방구네요.”
“어제도 말했지만 저는 원래 문방구 주인입니다.”
“이렇게 진짜 문방구일 줄은 몰랐어요.”
사장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이 문방구를 보여주는 것도 고민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차에서 내린 직원들과 선수들은 내 민망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폰으로 사진을 찍기 바빴다.
나는 문방구 안으로 들어가 미니카 박스를 양손 가득 들고 나와 평상에 올려놨다.
“입사 기념이랄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마음에 드는 걸로 하나씩 고르세요.”
당장에 이렇게 나눠주고 나면 팔 물건이 없지만, 어차피 발주서를 보내면 또 금방 채워질 것들이다.
“감사합니다!”
다행히 미니카를 고르는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직원들의 연령대는 극명하게 나뉘었다.
이제 막 서른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젊은 사원들과 이제 지긋한 나이가 된 부장급으로 정확하게 나뉜 직원들은 내 안배였다.
만약을 대비한 보험이었다.
어찌 되었든 이 프로팀의 대표는 구단주인 나다. 혹시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해도 대미지가 적을 사람들로 추려달라 회장님께 부탁을 드렸다. 뜻밖에, 대현자동차에서는 젊은 신입사원들이 와서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저들도 나도 이미 일어난 일을 돌릴 힘은 없다. 지금은 서로 최선을 다해야 할 때다.
안타깝게도 두 회사에서 온 직원들은 미니카를 다뤄보지 못했다. 유행을 피해간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30 중반에서 40 중반의 나이가 미니카 붐을 관통하는 세대다. 그보다 많다면 기껏해야 딱지나 팽이 정도일 테고 한참 어리다면 컴퓨터게임이 더 재미있었을 시대에 유년기를 보냈다. 미니카는 이들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다.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미니카대표팀에서 입사 기념으로 주는 선물로 미니카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어떤 곳에서 일을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니까 말이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 공구를 가지고 나오는 사이 각자 손에 미니카 상자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다 고르셨으면 여기서 조립하시면 됩니다.”
“여기서요?”
“평상이 조금 좁긴 한데 그래도 조금 붙어서 만들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죠? 바닥은 제가 매일 청소합니다.”
충분하고도 남는다. 한창 우리가 여기서 미니카를 조립할 때는 스무 명도 넘게 이 좁은 트랙에 달라붙어 있었으니까.
우리는 그때보다 조금 더 머리가 벗겨지고 쑤구려 앉을 때 관절 걱정을 조금 해야 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을 뿐이다.
“여기서 이걸 연결하셔야 해요.”
“기어는 제대로 맞추지 않으면 나중에 헛돌아요.”
선수들은 각자 담당하는 직원들을 붙잡고 미니카 조립을 도와주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렇게 문방구에 손님이 많았던 적은 학교가 폐교된 뒤에 처음이 아닐까 싶다.
물론 돈은 내가 다 냈지만…….
이렇게 문방구가 북적이는 모습을 보니 그깟 이십만 원도 하지 않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저는 다 조립했습니다.”
“아. 도와드려야 했는데 벌써 다 하셨네요. 참, 어릴 때 해보셨겠군요.”
“네.”
무미건조한 대답을 하며 담뱃불을 붙이는 이 남자는 대현자동차에서 나온 유일한 부장급 직원이었다.
차재훈 부장.
인사기록부에 적힌 내용으로는 조기 진급을 두 번이나 한 에이스 중 에이스였다. 그렇기에 저 냉소적인 태도가 더욱 이해가 갔다.
“대회가 코앞인데 선수들의 연습 시간을 뺏어도 괜찮겠습니까?”
“다들 적게는 5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미니카 대회에 참가했던 베테랑들입니다. 연습은 큰 의미가 없을 겁니다.”
“지금 시키신 일도 그다지 의미는 없어 보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 미니카 조립이 가장 절실한 업무입니다. 그 이유를 모른다면 아마 승승장구하시다가 이곳에 내쳐진 이유도 계속 모르실 겁니다.”
“…….”
모든 일에는 이유를 따져 물어야 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아는 것이 먼저다. 자신의 예상을 벗어난 행동이라 하여 처음부터 비관적인 접근을 한다면 시야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차재훈 부장은 뛰어난 능력으로도 그 시야가 너무나 좁아 보였다.
하지만 다 큰 성인이다. 심지어 나보다 나이도 많고 직장생활도 더 오래한 선배다. 자리에 앉혀놓고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준다 해서 온전한 도움으로 받아들일 위치가 아니다.
이럴 때는 차라리 혀에 칼을 담는 게 잘 먹힌다. 구슬려서 될 사람이면 이런 모난 성정이 되질 않았을 테니까.
싫든 좋든 제 발로 나가지 않는다면 상사와 부하직원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으니 말이다.
“완성했으면 트랙에 한번 올려보시죠. 꽤 잘 만드셔서 제법 빠를 텐데요.”
“괜찮습니다.”
삭막한 대화는 그렇게 단답형으로 끝났다. 어색한 침묵.
하지만 우리 둘과는 다르게 다른 직원들의 분위기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
완성된 미니카를 낡은 트랙에 올려 달려보기도 하고, 침침한 눈과 뜻대로 잘 움직이지 않는 손 때문에 완성이 더딘 사람들도 조립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했던가?
공교롭게도 나는 늦은 나이에 다시 한번 골목대장이 되었다.
여전히 아이들의 손에는 미니카가 한 대씩 들려 있고 평상에는 낡은 트랙이,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할아버지의 대신이었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조금 늙고 지친 몸뿐이다.
* * *
“애들 장난도 아니고, 나 참.”
사무실로 돌아온 차재훈 부장은 서류가방 속에 들어 있는 미니카를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이탈리아 장인이 수제로 만든 서류가방 안에 이런 조잡한 장난감을 잠시 넣어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짜증이 솟구쳤다.
못마땅한 일은 그뿐이 아니다.
선수를 서포트하라 했지만, 자신이 담당하는 선수는 다름 아닌 구단주였다.
운 좋게 회장 눈에 띄어 덜컥 높은 자리에 앉은 햇병아리.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소위 낙하산 인사였다.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자신이 뭐라도 된 것처럼 그저 알량한 권력을 쥐고 흔드는 데 재미를 붙인 한심한 놈. 철저하게 평사원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올라온 자신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인물이다.
민호의 첫인상은 이보다 더 나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내 아들이 올해 서른인데 아들이랑 동갑이네.”
“하하. 제가 진짜 아들뻘이네요.”
“박민재 선수는 결혼했어요?”
“아뇨. 연말에 하려고 식장은 잡아놨어요.”
“이야! 새신랑이네!”
의자에 몸을 기대고, 이직을 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해지는 차재훈 부장과는 다르게 사무실 분위기는 전보다 훨씬 화기애애해졌다.
뒤늦은 통성명과 업무에 전혀 관계가 없는 질문들, 회사인지 동호회 모임인지 모를 지경이다. 당장 있을 대회에 최소한 시상대에 올라갈 성적이 되지 않는다면 펼쳐지는 암울한 미래는 오직 자신만 걱정하는 듯했다.
‘이게 가장 절실한 업무라고? 하! 쫓겨난 것도 모자라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별 병신같은 설교를 다 듣네.’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들의 처지가 어떤지 모르지 않을 텐데 하하 호호 웃으며 실없는 소리나 하고 있는 저들도 나사 빠진 구단주와 다를 바 없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대회 전까지 최대한 많은 인터뷰를 잡고 다른 협찬과 광고를 받는 데 열을 올려야 하는 시기다.
세계대회가 끝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잊힐 게 뻔한 팀이다. 올해 매출이라도 건지려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인데 이 천금 같은 시간을 하던 업무도 내려놓고 장난감이나 만들고 있다니. 생각이 있는 놈이 하나라도 있다면 분명 반론이라도 펼쳐야 했다.
‘나는?’
구단주의 지시에 가장 먼저 반대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런데도 귀신에 홀린 것처럼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오래된 경차에 구겨지다시피 타고 다 쓰러져가는 문방구에서 미니카까지 만들었다.
답답해지는 속을 다스릴 담배를 물고 문밖으로 나서는 동안에도 차재훈 부장은 이 어이없는 놀이에 장단을 맞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 * *
“만다꼬 여까지 또 왔드노? 일 없나?”
“다 늙어서 하는 일이라곤 차 마시는게 다지.”
“끌끌끌. 월급 아깝구로 차 마시는데 돈 주는 회사 오래 못 간데이.”
두껍게 쌓인 결재판을 일일이 넘겨보며 사인을 하던 조동욱 회장은 모처럼 찾아온 정진수 회장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핀잔을 던졌다. 한번 검토한 사항에 사인을 잘못했다간 그 뒤는 회장의 책임도 적지 않았았다. 이 중요한 시기에 방해꾼으로 온 정진수 회장이 달가울 리 없었다.
“나도 이제 다 넘기고 은퇴해야지. 자네는 어떤가?”
“뭐? 나도 그만두라꼬? 하이고, 아직 십 년은 더한다!”
“말년에 주주총회에서 험한 꼴 보고 끌려 나오지 말고 곱게 나와야 자서전이라도 팔지.”
“말뽄새하고는……. 쉰 소리 할라꼬 여까이 왔나? 바쁘다. 할 말이 뭐꼬?”
피차 공사다망한 직책에 있었다. 실권을 쥔 현역 그룹 총수의 스케줄은 여유로운 편이었으나 그렇다고 시간이 남아 경쟁사의 회장실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이제 막 경영권 승계를 시작하는 대현그룹의 회장은 지금 한창 마라톤 회의로 진땀을 빼야 할 시기였다. 일전에 형제의 난으로 그룹이 공중분해 될 뻔한 뒤로 정진수 회장은 이번 경영권 승계에 병적인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실없는 소리를 하러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조동욱 회장은 본론으로 들어가라 다그쳤다.
“비결 좀 들으려고.”
“무슨 비결?”
“아들 둘이 문방구 주인 덕에 사람 구실 한다면서? 내 아들도 좀 끼워볼까 해서.”
은근한 말투는 거절하기 힘든 노련한 힘이 담겼다. 문방구 주인에게 의탁해 자신의 사람도 키워볼 요량임을 노골적으로 말했다. 문방구 주인을 발견하고 구워삶은 건 조동욱 회장이지만 그 사이 자신의 사람을 밀어 넣기만 한다면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욕심이 과한기라. 장성한 아들이 그마이 잘하고 있는데 무신.”
“아니, 그 아들 말고.”
“카모! 뭐 바람 나가 뒤늦게 티 나온 아들 하나 더 있드나?”
“예끼! 이 사람아! 듣는 귀도 많은데! 자식놈이야 미워도 내 새끼라고 어찌어찌 키워놓은 거고, 정가는 놈이 하나 있으니까 그러지. 자네 박 상무처럼.”
조동욱 회장은 그제야 저 구렁이 같은 노인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눈치챘다.
“니 저질러놓고 허락받으러 온기네.”
“허허.”
“글마 이름이…….”
“차재훈 부장. 우리 회사 대들보.”
미간을 찌푸리며 스쳐 지나간 미니카프로팀의 직원들의 이름을 더듬는 게 답답했는지 정진수 회장이 정답을 먼저 말했다.
“끌끌끌. 돈 내라, 알긋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