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마음가짐의 차이
짧은 만남 후에 돌아온 경기장에는 어느덧 마지막 경기가 치러지고 있었다.
“구단주님, 어디 다녀오셨어요?”
“아, 잠깐 사람을 만나고 왔습니다. 마침 마지막 경기가 끝났네요. 이제 돌아가도록 하죠. 다들 짐 챙기세요.”
이미 다들 녹초가 된 상태다. 자리를 지키는 것 이외에는 한 일이 없지만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힌 선수들과 직원들에게 나는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자 했다.
내일까지 부스에 놔둬도 될 물건들은 기껏해야 난로나 티백 정도다.
짐을 챙기러 케리어 가방을 열고 보니 새삼 나도 많이 달라졌음에 피곤함을 뚫고 살포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각종 예비 부품이 들어간 공구 상자, 모터 회전 수를 체크하는 장비, 그리고 속도 측정기까지. 나도 어느덧 선수들과 비슷한 가짓수의 미니카 장비들을 갖추게 되었다.
그저 어릴 적 추억이나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는 취지로 참여했던 대회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프로팀의 구단주라니. 예전처럼 오래된 부품과 눈대중으로 조립하던 때와 너무나 달라진 모습이다.
“다 챙겼으면 나가죠.”
빨리빨리 민족답게 나갈 채비를 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른 부스는 그제야 어기적어기적 눈치를 보며 짐을 챙겼다. 빨리 나가는 게 뭐 그리 대수겠냐만은 우리는 잠깐의 쪽잠이라도 절실했다.
그렇게 각자 손에 사람도 들어갈 만한 캐리어 가방을 하나씩 들고 경기장 밖으로 나오자 밖은 벌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그럼 내일 봅시다. 다들 오늘처럼 일찍 나오지 말고 대회 시간에 맞춰서 나오세요. 이제 준비도 다 했으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시원했으나 표정을 보아하니 내 말을 들을 기색이 아니다. 아마 우리는 내일도 새벽 해가 뜨기 전에 부스에서 만날 것이다.
직원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그렇게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작은 승리를 자축할 새도 없이.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익숙한 호텔이 보이기 시작했다.
“숙소에 들어가면 초밥이 차려져 있을 겁니다. 최대한 욱여넣고 2시간 정도는 자야 합니다. 내일이 더 큰 경기니까요. 그럼 아침에 봅시다.”
우리는 캐리어 가방을 끄느라 뻐근한 어깨와 목을 두들기며 각자 숙소로 들어갔다.
“구단주님, 둘이 먹긴 조금 많은 것 같은데요?”
“5인분입니다. 제일 비싼 거로 시켰습니다. 혹시나 해산물을 못 먹는 사람도 있을지 몰라서 육류도 추가했습니다.”
방에 마련된 테이블에는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이 가득했다.
임정훈 선수가 토끼 눈을 뜨고 연신 사진을 찍을 만한 비주얼이다.
참치, 성게, 바닷가재에 그릴에 구워 먹는 소고기까지. 아침에 숙소를 나서면서 로비에 팁까지 두둑하게 주며 부탁한 상차림이었다.
사람은 잠을 자야 한다. 하루 정도는 어찌어찌 뜬눈으로 지낼 수 있다지만 이틀은 인지의 영역이 아니다.
철야는 내 주특기였다. 격무에 시달리며 당장 눈앞에 처리해야 할 문서만 수백 장에 다다랐을 때가 많았다. 한계까지 다다른 몸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다. 하루에 열 잔도 넘게 마시는 커피와 자양강장제는 심장을 터질 듯 움켜쥐고 뇌를 압박한다. 그러나 그렇게 이틀을 보내면 오히려 실수가 잦아지고 차라리 충분히 자는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최소한 두 시간은 자야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휴식은 허락하지 못했다.
포만감에 나른하게 눈을 감는 그 잠깐의 단잠이 끝나고 나면 다시 엄습해 올 것이다. 오늘 자신들에게 전기난로를 켜주고 담요를 덮어주던 직원들의 운명이 자신의 미니카에 달려 있다는 부담감이.
나는 적어도 그 부담감에 허기가 더해지질 않기를 바랐다.
* * *
(드디어 다미야 4WD 세계 레이싱대회 대망의 두 번째 날이 밝았습니다! 저는 중계를 맡은 배재송 캐스터입니다.)
(저는 김상순 캐스터입니다.)
(네. 우리 선수들 어제 1차전은 정말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이번 준결승과 결승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박빙의 승부가 예상됩니다. 특히 완주까지 소요된 시간은 일본팀과 평균을 냈을 때 불과 1초 안팎의 수치였습니다. 이 정도 수치라면 자리 배정에 따라 충분히 역전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해설에서도 준결승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준결승에서 스피드팀은 영국, 우리는 독일과 맞붙게 된다.
두 팀 모두 딱히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데이터조차 없었다. 물론 세계대회에 출전한 만큼 어느 정도 수준은 갖췄겠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1차전에서 보여줬던 실력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면 결국 한국, 일본, 대만의 3파전이다.
그리고 이변은 없었다.
우리 팀 모두 1차전과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차이를 벌리며 결승에 진출했다.
문제는 결승이다.
“잠깐 모여보시겠습니까?”
준결승이 끝나고 트랙이 바뀌는 사이, 나는 선수들을 모았다. 어제 하지 못했던 말을 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불리합니다.”
무언가 힘이 되는 응원을 기대했던 선수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굳이 모두가 아는 그런 말을 하려고 바쁜 와중에 자신들을 불렀나 하는 원망의 눈초리도 보였다.
“실력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저들은 미리 결승트랙을 입수해 별도의 연습실에서 3일간 테스트했다고 합니다.”
“그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우리는 검차도 계속 떨어져서 얼마 달리지도 못하는데…….”
나는 하시모토 부장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가감 없이 그대로 선수들에게 전했다. 굳이 경기를 앞두고 꺼내지 않아도 될 말을 꺼낸 파장은 예상대로 적지 않았다.
“정식으로 항의하면 안 될까요?”
“결승을 앞둔 지금 그런 항의가 먹힐 리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하지만 이겨야 합니다. 왜 이겨야 하는지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겁니다.”
이겨야 한다. 처음부터 2등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관객석에는 후원사인 삼정그룹과 대현그룹의 두 회장이 앉아 있었다.
두 회사의 로고를 붙이고 일본 차에 패배한다면 여기까지 두 회장님을 모신 의미가 없었다. 아니, 굳이 긁어 부스럼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런 무리한 부탁을 한 이유는 하나였다.
팀의 존속.
간판만 달고 있는, 한때의 관심이 끝이었던 그런 프로팀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다.
“이겨야 합니다. 반드시. 예외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미니카를 앞지를 차는 우리 팀의 다른 선수밖에 없습니다. 제 말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네!”
결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꺼냄과 동시에 낡아빠진 근성론으로 가뜩이나 절벽 끝에 선 선수들을 다시 한번 채찍질했다.
그것 이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마음가짐의 차이는 결과를 뒤집을 힘이 있다. 그렇게 믿었기에 우리는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
비과학적이고 아무런 근거가 없는 작전, 만약 그렇게 준우승에 그쳐 다시 귀국길에 오른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었다.
저들의 어깨에는 직원들의 운명이 달려 있다. 그리고 내 어깨에는 그 모든 선수와 직원들이 달려 있다.
(점핑트랙 테스트 주행을 시작하겠습니다. 점핑트랙 선수들은 검차 후 안내에 따라 주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시죠.”
검차 부스엔 어제와 같은 스탭들이 앉아 있었다.
어제는 하시모토 부장의 입김으로 어찌어찌 막아냈으나 오늘은 그 하시모토 부장도 없다. 본사에서 어제 일을 트집 잡아 다른 지역으로 출장 지시가 떨어졌다 했었다.
“나사 돌출, 검차 불합격입니다.”
예상대로다.
검차 결과는 유독 우리 선수들에게만 두루뭉술한 지적을 핑계로 불합격 딱지가 붙고 있었다.
선수들은 아무런 항의도 할 수 없었다. 항의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제의 일로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차라리 항의할 시간에 빨리 돌아와 지적받은 부품을 바꾸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물론 그럴 수록 준비했던 튜닝과는 멀어졌지만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F**king! It is an unfair result!(불공평한 결과다!)”
“Keep your eyes open!(눈을 똑바로 뜨고 다시 봐라!)”
“Ihr solltet euch schämen!(너희들은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무슨 일인가요? 검차 부스에서 소란이 일어난 듯합니다.)
(아, 지금 한국 선수들의 검차 불합격에 대해 다른 나라 선수들이 강력하게 항의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편파적인 검차였죠?)
(그렇습니다. 같은 선수로서 이렇게 대신 목소리를 내주는 상황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브라이언의 외침이 시작이었다. 이미 탈락이 확정된 다른 선수들도 검차 부스에 몰려와 거친 말과 함께 검차의 부당함을 항의해 주었다.
안전요원의 제지에도 항의는 멈출 줄 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 하나가 떴다.
왜?
굳이 이렇게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 이미 탈락은 확정되었고 지금 우리 팀을 도와준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설마……?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돌다 나는 번뜩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구단주님, 저 사람들이 왜 우리를 도와주는 걸까요?”
“아마 어제 숙소에서 저희가 방 배정을 도와줬던 일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도 피곤하고 힘든 날이었다. 이미 전날부터 신경이 곤두서 있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나날이었다. 그런 와중에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남의 일에, 그것도 한번 손댄 이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는 귀찮은 일에 직접 나선 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은 순수한 선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의에 보답을 받았다. 두둑한 이자까지 얻어서 말이다.
우리는 브라이언을 비롯한 다른 나라 선수들의 난처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그들 또한 우리가 늪에 빠졌을 때 손을 내밀어 주었다.
다음 검차는 당연히 통과였다.
소란이 일어나자 취재와 촬영을 나왔던 모든 카메라가 검차 부스로 몰렸고 보는 눈이 많아진 상황에서까지 그런 트집을 잡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래도 시간은 촉박했다.
테스트 한 번에 검차도 한 번. 만약 마지막 검차 시간까지 튜닝을 마치지 못한다면 탈락이었다.
선수 다섯 명의 순위가 모두 점수로 합산되는 방식으로 승패가 판가름 나는 승부에서 한 명이 있고 없고 차이는 좁히기 힘든 간격이다.
그 어느 때보다 안정성에 중점을 둔 튜닝이 필요한 시점.
하지만 우리는 왕도를 따르지 않았다. 결승전에 나온 트랙으로 3일간 갈고닦은 일본팀을 이기기 위해서는 안전한 길을 따라가선 안 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나사를 조이거나 풀어 각도를 미세하게 조절하거나 무게중심을 옮기는 자잘한 튜닝을 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모터를 바꾸고 부품들을 모두 뜯어고칠 기세로 미니카를 해체했다. 그렇게 우리 5명은 처음과 완전히 달라진 미니카를 들고 검차를 받았다.
(테스트 주행 시간이 끝났습니다. 선수들은 출발점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드디어 결승의 서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