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74화 (74/151)

#74. 결승선

(드디어 출발했습니다! 우리 선수들, 출발이 아주 순조롭습니다! 앞뒤로 큰 차이 없이 달려 나갑니다!)

위에에엥.

트랙을 따라 거침없이 달려 나가는 미니카 10대는 결승전답게 그 출발부터가 남달랐다. 특히 매끄러운 주행을 강점으로 범퍼에서 좌우로 수축하는 민감도를 최대로 올린 듯 보였다.

전략적으로 완벽한 튜닝이다.

이번 결승전 트랙은 유독 지그재그 코스를 비롯해 커브가 많다. 코너링에 중점을 둔 튜닝은 정답이다 못해 완벽한 해답이었다.

투두두둑.

우리 팀의 미니카들은 코너에 부딪힐 때마다 제법 큰 충격음이 경기장에 울렸다.

(말씀드리는 순간 첫 번째 지그재그 코스에 들어섰습니다. 아! 우리 선수들, 일본 선수들에 비해 지나치게 거친 주행입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마지막 검차에서 과감한 튜닝을 했던 게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스에서 모터까지 갈아 끼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다소 거친 주행을 하더라도 스피드를 올리는 방향으로 개조가 진행된 듯합니다!)

중계진의 해설은 정확했다.

어차피 코너링은 스피드트랙이 아닌 이상 크게 속도 차이를 벌리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확실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직선 구간에 올인한 것이다.

만약 과한 속도 진입하다 코너에서 이탈한다면?

그런 사소한(?) 문제는 운에 맡기기로 했다.

다고 무책임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속도를 늦추고 확실한 패배를 얻느냐 아니면 코스 이탈의 위험을 감수하고 승리할 확률을 높이느냐의 선택지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리 다섯은 모두 두 번째 선택지를 골랐을 뿐이다.

다행히 그 거친 주행으로도 아슬아슬하게 코너를 돌아나가는 다섯 대의 미니카는 모두 반대쪽 바퀴가 살짝씩 들려 있었다.

(손에 땀을 쥐는 주행입니다! 앞으로 남아 있는 코너가 많은데 과연 무사히 완주를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만약 완주만 가능하다면 지금 일본 선수들보다 근소하게 앞서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행인 점은 1번 코스에서 달리는 임정훈 선수를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끝 쪽 라인에서 달리고 있다는 겁니다!)

같은 코스라도 10번 라인에 가까울수록 거리는 길어지고 코너의 각도가 완만했다. 경기 전, 제비뽑기로 랜덤하게 정해지는 라인이기에 보통은 골고루 섞여서 달리게 되지만, 이번 결승에는 임정훈 선수를 제외하고 우리 네 명이 모두 끝 라인에 서게 되었다.

이것도 뒤가 구린 방법을 썼을 테지. 코너링에 중점을 두고 거리가 짧아지면 훨씬 유리하니까.

하지만 그 얕은수는 도리어 우리 팀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만큼 완만한 코너링으로 안전성을 높여주었으니 말이다.

미니카는 우리네 인생과도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꽉 쥔 주먹에 핏기가 사라질 정도로 간절한 바람이 담긴 녀석이다. 무사히 결승선으로 들어와야 한다. 게다가 빨리 들어와야 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듯이 늦거나 혹은 실패했다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승리의 단맛보다 패배의 쓴맛이 더 크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달려야 한다.

양쪽이 벽으로 둘러싸인 고독한 라인을 따라 묵묵히 달려가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그렇게 우리 다섯의 미니카도 트랙을 따라 달렸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응원도, 중계진의 열띤 해설도, 그리고 우리들의 간절함도, 그렇게 무겁게 실린 미니카는 회색 트랙 위에 올려진 삶이었다.

(박빙입니다! 코너에서는 일본팀이, 그리고 직선 구간에서는 다시 한국팀이! 선두를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접전입니다! 역시 결승선다운 명경기!)

길게 느껴졌던 트랙은 어느덧 마지막 코스만 남겨두었다.

점프대다. 극적인 역전극을 염두해둔 가장 큰 점프대가 마지막 코스에 위치하고 있었다.

10대의 미니카가 동시에 날아올랐다.

그 찰나, 경기장은 고요해졌다. 승패를 가를 마지막 기회임을 경기를 지켜보는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비상하는 미니카는 가지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치 그렇게 끝없이 날아갈 것만 같던 미니카들은 공중에서 점점 느려지고 이내 바닥으로 범퍼를 향했다.

하지만 먼저 착지한 미니카는 전부 우리 팀의 미니카들이었다.

무리하게 끌어올린 스피드를 감당하기 위해 한계치까지 무게추를 추가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너무도 치명적이었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바닥에 착지한 임정훈 선수의 미니카가 반동으로 코스를 이탈했습니다!)

(아무래도 점프대에 들어서기 전 급격한 코너링에서 차체가 흔들린 상태로 점프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속도에 비해 안쪽 라인이라 코너진입각이 상당히 컸으니까요! 너무나 아쉽습니다! 이제 남은 대한민국 선수의 미니카는 단 4대입니다!)

임정훈 선수의 코스 이탈.

처음 라인이 배정되었을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했던 일이다. 오히려 마지막 코스까지 달려준 게 신기할 정도로 불리한 주행이었다.

이제 남은 선수는 네 명.

이 중에 1위는 당연하고 4위 안에 우리 선수들 3명이 들어와야 우승이다.

코스 이탈은 완주보다 낮은 점수를 받으니 극단적으로 불리한 상황임은 틀림없었다.

(다행히 나머지 선수들은 무사히 마지막 코스를 지났습니다. 이제 결승선을 코앞에 둔 직선구간! 드디어 모두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그렇게 9대의 미니카는 눈대중으로 순위를 매길 수 없을 만큼 바짝 붙어 결승선을 지났다.

결승선에 붙어 있는 작은 타이머는 어느 선수가 몇 위인지 나타내주지 못했다.

하지만 1위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1위는 김민호 선수! 1분 19.96초로 1위입니다! 자랑스럽습니다!)

큰 고비를 넘겼다. 1위는 당연히 우리 팀 선수 중에 있어야 했다. 문제는 4위권의 우리 선수들이다.

(지금 순위가 집계되고 있습니다. 전광판에 아직 뜨기 전인데요. 2위도 1분 20.10 한국 선수, 그리고 4, 5위 모두 한국 선수입니다!)

(이렇게 되면 순위 합산으로 다미야 4WD 세계레이싱대회 우승은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 팀입니다! 큰 점수 격차로 불리한 상황에서 값진 승리를 따냈습니다!)

경기장 중앙에 매달린 전광판에는 일본 특유의 투박한 순위표가 띄워졌고 그 상단에는 대부분 우리 선수의 이름이 박혔다.

우승.

조금의 여지도 없는 완벽한 승리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승리의 기쁨 따윈 없었다.

안도감.

눈을 감으면 직원들의 죽어 있는 표정이 아른거렸다.

등 떠밀리듯 한 장의 인사이동 통지서로 이곳에 오게 된 직원들이다.

평생을 바쳐 공부하고 자격증을 준비한 신입사원들, 그리고 더 이상 불러주는 곳도 없이 막막한 퇴직을 앞둔 부장들이다.

그 누구보다 이번 승리에 간절한 그들이 무슨 심정으로 이 대회를 지켜보고 있었을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인생을 걸고 배팅한 것이다. 나에게 그럴 자격이 없음을, 일이 잘못되었을 때 저들을 책임지지 못함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승리했다.

“구단주님!”

부스에 있던 선수들과 직원들이 달려 나왔다.

“이 기쁜 날 왜 다들 울고 있습니까?”

“구단주님도 마찬가지십니다.”

모두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고작 장난감대회다. 예선전에는 부모님과 함께 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조립해서 당일 트랙을 달리는 아이가 더 많을 정도다.

상금도 고작 3천만 원. 국밥도 만 원이 넘는 마당에 5명이 나누면 일확천금이라기엔 다소 아쉬운 돈이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고 기뻐할 정도로 값진 우승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달랐다.

선수들의 눈물은 같은 팀의 직원들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직원들의 눈물은 자신들을 위해 밤을 새워가며 최선을 다했던 선수들을 향한 고마움이었다.

눈물은 짜릿한 승리의 기쁨 대신 서로를 담았다.

* * *

“이기뿟네! 끌끌끌.”

조동욱 회장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알고 있었으면서 그리도 기쁜가?”

정진수 회장은 그런 조동욱 회장의 모습이 사뭇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나이가 들면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기 마련이었다. 판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안목이 바로 그것이다.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지금껏 살아온 경험이 빅데이터가 되어 될 일과 되지 않을 일을 구분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과 안목으로 정상 자리에 오른 두 회장은 이미 한국팀이 승리하리라 예상했었다.

한국 선수들과 일본 선수들의 눈빛의 차이, 그리고 다름 아닌 민호의 존재가 짐작을 확신으로 만들어주었다.

자신보다 더 안목이 뛰어난 조동욱 회장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자들 좀 보그라. 기뻐하는 걸로 비나?”

“응?”

그제야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에게 시선이 갔다.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들의 얼굴이 아니었다. 평생을 남을 이기는 경쟁을 해온 두 회장에게는 너무도 낯선 표정이었다.

그리고 마음속 어딘가 뜨끈한 기운이 차오르는 듯했다.

“사활을 건 기라. 우리까지 이 자리에 앉혀놓고 뒤가 없는 싸움을 한 기다. 알려줬을 끼다. 여기서 지뿌고 돌아가믄 내년에 우애 되는지 말이다. 그라이 저래 서로 부둥켜안고 울지.”

“허허.”

장사꾼이다. 자신도, 조동욱 회장도.

돈이 되지 않을 일에 10원 한 푼 쓸 생각이 없다.

홍보 용도로 적당히 우려먹다 내년부터 경기의 어려움을 들먹여 인원을 감축하고 지원도 줄일 작정임은 서로가 마찬가지였다.

공동스폰서로 있는 삼정그룹의 회장은 오히려 자신보다 더 지독한 수전노이기에 합의는 더욱 쉬울 터였다.

하지만 이렇게 세계대회에 우승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도 삼정자동차와 대현자동차가 프린트된 스티커를 붙이고 달렸다. 내년, 내후년에도 우승으로 광고효과를 톡톡히 할 노른자 프로팀의 후원을 줄일 바보는 아무도 없다.

MM 프로팀은 이번 우승으로 3년의 시간을 번 것이다.

‘돈 욕심은 조금도 없으면서 사람 욕심은 지독하군.’

그 시골에 다 쓰러져가는 문방구를 지키려고 삼정그룹 장남이 내민 거액의 돈까지 거절했다 들었다.

그런데 일면식도 없이 처음 만나 한솥밥을 먹게 된 직원들의 안위를 위해 저리 노력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정진수 회장은 이내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 아들대에서도 삼정그룹을 밟고 올라가는 날은 보기 어렵겠구나.’

자신조차 종잡을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젊은 청년이 삼정그룹을 돕는다.

대현그룹과 삼정그룹, 모두 자식 복이 없다는 뒷말을 들어왔다.

하지만 1년도 안 되어 삼정그룹의 후계자는 달라졌다. 그 뒤에 젊은 문방구 주인이 있었다.

자신의 사람을 끔찍히 아끼는 청년이다.

이미 그 품에 삼정그룹의 두 아들과 조동욱 회장이 있음이 분명했다.

기회를 노려 삼정그룹과 경쟁하려 든다면 두 젊은 후계자를 위해 저 시골 문방구 주인이 칼을 휘두르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대현그룹은 이번에도 한발 늦은 것이다.

“하! 아꿉나? 아서라. 이래 척지지 않고 지내는 걸로 만족하그라.”

“크흠.”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차가운 냉수를 들이켰지만, 정진수 회장의 갈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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